탈 막으려 쓰고, 흐드러지게 놀려고 쓰고 박물관 기행

고성 탈 박물관
기능도 모양도 제각각…탈도 고친다니 써 볼만
차마 못 할 짓 하는 인간은 사람의 탈을 벗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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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탈 박물관 정보

위치=경남 고성군 고성읍 율대리 666-18.
주요 전시물=국내외 주요 탈과 탈춤 자료, 고성오광대 등 전통 탈놀이의 구성, 탈 만드는 재료 등.
관람시간=오전 9시~오후 5시.

휴관일=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의 다음날,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관람료=어른 2천원, 어린이·청소년 1000원.
전화번호= (055)672-8829.
 
 
탈이란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하여 나무, 종이, 흙 따위로 만들어 얼굴에 쓰는 물건’을 가리킨다(네이버 국어사전). 가면(假面), 마스크와 같은 말이다. 인간은 수천년 전부터 탈을 만들어 썼다. 종교의식을 행할 때도 쓰고, 놀 때도 쓰고, 춤출 때도 쓰고, 위엄을 과시할 때도 썼다. 남이 모르게 무슨 일을 꾸밀 때도 탈을 뒤집어 쓴 채 행하기도 했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차마 못할 짓을, 다른 탈을 쓰고 저지르기도 한다.
 
탈은 갑자기 일어난 사고, 병, 나쁜 일 따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다. 이 뜻밖에 생긴 궂은 일이나 나쁜 일을 미리 막기 위해 쓰는 도구 또한 탈이다. 탈을 막기 위해 탈을 쓰고 진행하던 행사에 사용된 탈을 신앙탈이라고 한다. 신앙도구로서의 탈은 점차 주술적인 역할이 사라지면서 놀이로서의 탈로만 기능하게 된다. 이런 놀이탈들을 예능탈이라고 하는데, 국내엔 지역마다 독특한 탈놀이가 전승돼 오고 있어 각양각색의 예능탈들을 살펴볼 수 있다. 경남 고성 탈 박물관에서는 탈을 물리치기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탈과, 새로 만들어 놓은 현대 작품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고성오광대 탈 등 주로 경남지역 탈을 중심으로 한 놀이탈과, 신앙탈, 창작탈을 둘러보며 탈의 역사와 의미를 깊이있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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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조개껍데기 가면 재현한 탈도

 
탈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무수히 세워진 장승들이다. 박물관 들머리 길옆 소나무숲에서부터 박물관 앞마당까지 웃고 울고 화내고 떠들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표정 의, 크고작은 장승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 7호 고성 오광대 탈 제작 기능 이수자인 탈박물관의 이도열 관장이 직접 만들어 세운 것이다. 장승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인다는 점에서 탈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장승들은 계속 새로 만들어 세워지고 있다.
 
2000원을 내고 들어서면 먼저 탈과 가면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나쁜 기운, 귀신, 병을 물리치기 위한 여러가지 액막이 도구들을 사용해 왔는데 탈도 그중 하나다. 탈바가지, 초라니 등으로 불려온 가면, 즉 얼굴가리개다. 탈은 새로운 인격 또는 신격으로의 역할바꾸기용 도구다. 탈을 쓰는 순간, 동물도 되고 양반도 되고 중도 되고 용왕님도 되고 잡신도 된다. 연날리기·부적지니기 등 개인이 나쁜 탈을 쫓는 방법, 금줄치기·엄나무가지 대문에 걸기 등 집안에 들어오는 액을 물리치는 방법, 동제지내기·장승세우기 등 마을에서 나쁜 기운을 막는 방법 등을 공부하고 본격적인 탈 구경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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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에 등장하는 형태별 여러 탈들과 신앙·벽사를 위해 쓰인 탈들이 이어진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조개껍데기 가면(재현품)과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먹을 때 조금 떼어 던지며 ‘고시래(고시레)’ 하고 외치는 그 고시래(농사짓는 법을 처음 사람에게 가르쳐줬다는 ‘고시’를 일컬음)를 형상화한 탈, 잡귀(역신)을 물리치는 데 썼던 처용탈, 장례행렬의 맨 앞에서 쓰고 춤을 추며 잡귀를 물리치는 구실을 했던, 눈이 네개 있는 방상시탈, 사당에 걸어두던 청계씨탈 등을 차례로 만난다. 전시된 탈들은 대개 최근에 만들었거나 60년대에 사용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의식 행사에 사용 뒤 모두 태워 없애 옛 탈 귀해
 
탈은 역할을 바꿔 새 인격·신격을 나타냈던 도구이다. 각종 의식에 사용됐던 탈들은 모두 태워 없애는 게 관례였다. 그 귀신이 붙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집에도 들이지도 않았다. 마을 행사에 연례적으로 사용해온 탈이라 해도 따로 당집을 지어 보관해 왔다. 고성 탈 박물관 학예사는 “전국 곳곳에 전통 탈놀이들이 전수돼 오고 있지만, 오래된 탈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행사 뒤 불태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탈에서부터 신라의 검무·처용무에 쓰던 탈, 일본에 200여개가 남아 있다는 백제의 탈 ‘기악면’, 고려시대의 궁중의식 나희와 산대놀이, 조선시대의 산대나희와 처용무 등 우리나라 탈춤의 역사를 살펴보고 고성오광대 탈들을 만난다. 고성오광대는 조선시대 섣달그믐의 세시행사로 벌여온 탈놀이다. 문둥광대, 오광대, 비비, 승무, 제밀주 등 다섯 과장으로 구성돼 있다.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탈로는 말뚝이·양반·비비·큰어미탈 등 20개가 전해지고 있다. 양반의 부도덕과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하는 역할을 하는 말뚝이는 오광대 탈놀이의 대표적인 등장인물이다. 1960년대 탈놀이에 사용된 말뚝이탈, 문둥이탈, 다섯 방향을 상징하는 색깔(오방색)의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다섯 양반탈, 무엇이든 다 잡아먹는다는 상상의 괴물 비비(또는 영노)의 탈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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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종이·나무·바가지·짚 등 재료…믿거나 말거나 체험

 
제주입춘굿탈놀이에 등장하는 탈들을 보고 나면 탈을 만드는 갖가지 재료들이 다가온다. 닥종이·나무·바가지·짚 등이 탈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닥나무로 만든 닥종이는 매우 귀했기 때문에 조선 인조때의 기록에 ‘궁중에서 쓰는 탈의 재료를 종이에서 나무로 바꾼다’고 하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북청사자놀이에 쓰이는 탈들과 동물형상의 탈을 보고 현대에 제작된 작품탈 전시 코너가 이어진다. 생명을 주제로 ‘생태계탈’이란 이름을 붙여놓은 대형 나무조각들이다.
 
이곳엔 반원형 공간에 마련된 탈 체험코너도 있다. 여러가지 탈의 표정을 새긴 긴 나무판들을 벽면에 걸어놓은  체험공간 가운데 서서 눈을 감으면, 몸과 마음에 도사린 갖가지 탈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일단 인간만사 희노애락의 표정들이 지켜보고 있는 반원형 공간 한가운데 서서 눈을 감고 볼 일이다. 이어지는 마지막 전시실엔 세계 여러나라의 탈을 전시했다. 중국의 나당희에 쓰인 탈, 일본의 가면극 노에 사용되는 탈, 티베트의 가면들, 아프리카 나라들의 탈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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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탈박물관에선 30인 이상 단체를 대상을 탈만들기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종이죽으로 탈 만들기, 종이탈에 색칠하기 등이다. 참가비 5천원. 이와 별도로 연 4회 분기별로 가족 대상 탈만들기 체험행사도 진행한다.
 
고성/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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