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밑 잠긴 수백년 전 삶 품은 보물선 잠 깨 박물관 기행

<6> 목포 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세월이 숨긴 배·돈·공예품 등 흔적 고스란히
고려시대 한-중-일 생활문화와 교역 한눈에
 

  국립 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개관=1994년
  위치=전남 목포시 용해동
  관람료=무료
  개관시간=오전 9시~오후 5시
  휴관일=월요일
  전화=(061)27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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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박물관이다. 바다에서 발생한 선박 사고. 화물을 싣고 거친 바다와 겨루며 항해하다 끝내 수장되고 만 배와 그 유물들이 주인공이다. 물살에 닳고 펄에 삭아 요점만 간추려진 유물들이 수백년 세월을 뛰어넘어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부러진 수저와 깨진 밥그릇들, 그리고 삭아 문드러진 갑판 나무판자엔 선원과 그 가족의 눈물이 묻어 있다. 캄캄한 바다 밑에서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한 서린 유물들이다. 배와 화물, 뱃사람들의 생활용품,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예품, 무역상들의 거래 내역 등이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난파선 박물관으로 간다.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해양유물전시관이다.
 
연안 230 곳 수중문화재 발견 …배 8척 등 9만 점 건져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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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엔 한반도 주변 특히 서남해안 바다 밑에서 발굴된 화물선의 잔해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도자기류나 생필품들을 싣고 연안을 오가던 고려시대 국내 배들과 중국~한국~일본을 오가던 중국 배가 남긴 수중 문화유산들이다. 수중문화유산이란 바다나 호수·강·늪지 등에 잠겨 있다가 발굴된 인류의 흔적을 말한다. 세계 각국의 바다와 호수 밑에선 이른바 보물선으로 불리는 가라앉은 배들이 발견돼 숱한 수중문화유산들을 발굴해 왔다.
 
대표적인 수중문화유산으로 9~10세기 노르웨이의 바이킹선, 12세기의 중국 난하이 1호, 12세기의 송대 해선, 16세기의 영국 메리로스호, 17세기에 발견된 스웨덴의 바사전함, 20세기초 영국의 타이타닉호 등이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 문화재가 발견된 지역은 230여곳에 이르고, 이 가운데 15곳에서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그동안 8척의 옛 선박이 발견돼 배의 잔해와 함께 9만여점에 이르는 해양문화재를 건져 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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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유물전시관은 목포시 용해동 바닷가의 천연 조각품 갓바위 부근 남농로에 있다. 갓바위는 바위가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기고 부서지면서 생긴, 갓을 쓴 사람 모양의 두 개의 바위다. 2009년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됐다. 갓바위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며 계단을 통해 전시관 입구로 오른다. 먼저 정문 옆쪽 광장에 전시된 거대한 닻을 만난다. 전통 새우잡이 배인 멍텅구리배가 바다에 정박할 때 내리던 닻 모형이다. 멍텅구리배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붙여진 이름이다.
 
전시관은 실내전시실과 다양한 우리나라 전통배들을 전시한 야외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실내전시관은 4개의 상설 전시실과 1개의 특별전시실로 나뉜다. 먼저 1전시실에선 수중문화재 일반과, 국내 연안에서 발굴된 옛날 배와 발굴 유물들에 대한 총괄적인 내용을 살펴본 뒤 완도선을 비롯한 국내 연안 해저 유물들을 둘러본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김병근 학예연구사는 “바다 밑에서 목선 일부와 유물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게 된 데는 갯벌에 파묻힌 상태에서 장기간 산소 공급이 차단됐기 때문”이라며 “수중문화재는 선박 건조기술 발달과정과 각 계층의 생활문화를 함께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라고 설명했다.
 
향료와 약재, 과일과 씨앗 등 최근의 것처럼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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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선은 11세기말~12세기초 고려시대의 배로, 강진과 해남 산이면 일대 가마에서 만들어진 청자들을 싣고 개경으로 향하던 중 완도 해역에서 침몰한 청자 보물선이다. 배의 이물(앞부분)과 고물(뒷부분)은 유실됐고 배 밑바닥과 옆부분 일부 목재가 남아 전체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길이 약 9m, 너비 3.4m, 적재중량 약 9t의 목선으로 추정된다. 주로 소나무나 참나무 계통의 나무로 이뤄져 있다. 완도선에선 청자류와 함께 나무 함지, 쌀을 담아두던 항아리, 시루, 숫돌, 나무망치 등 선원들이 썼던 도구들도 발굴됐다.
 
1전시실에선 보령 원산도 바다에서 발굴된 향로와 연적 등도 볼 수 있다. 보령 앞바다에선 완제품은 드물고, 주로 깨진 그릇 조각들이 발굴됐는데, 조각을 맞춰 보면 매우 아름다운 청자류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발굴된 제작연도가 새겨진 그릇들도 눈길을 끈다. ‘기사(己巳)’란 간지명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청자들이다. 청자국화무늬 기사명 대접, 청자구름·학무늬 기사명 대접, 청자국화무늬 기사명 접시 등인데, 이는 1329년 제작된 것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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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엔 신안선과 그 유물들을 전시했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신안선은 1323년 여름 중국 경원(현재 영파)에서 일본으로 항해하던 중 난파된 무역선이다. 길이 약 34.8m, 너비 11m에 이르는 대형 목선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일본 교토의 절 동복사였다고 한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중국인 선원들과 일본인 무역상 또는 그 대리인으로 추정된다. 항해 시기나, 이동로 등은 배에 실려 있던 동전들과 중국 연호가 기록된 화물표 등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배에선 중국 신나라에서 원나라에 이르는 동안 통용된 동전 29t, 약 8백만개가 나왔고, 1만2천여점의 청자류, 5천여점의 백자류, 7백여점의 금속제품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무역품의 주인 또는 대리인의 이름과 물품명 등이 적힌 목패(목간), 선원들이 쓰던 숫돌·벼루·빗·주사위·장기 등도 발굴됐다. 무엇보다도 정교한 무늬들로 장식된 청자류와 공예품, 금속유물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중국에서 생산된 물품이 중심이지만, 고려 청자류와 일본 도자기들도 함께 실려 있었다. 14세기 중국의 모란무늬 꽃병과 연꽃무늬 백자, 13~14세기 고려의 청자 사자모양 연적, 일본 세토 도자기 등이 대표적이다. 소를 탄 아이 모양의 연적이나 소 모양의 청자 연적 등, 청동 저울추 등도 아름답다.
 
신안선에선 향료와 각종 약재, 후추, 계피 등과 과일, 각종 씨앗들도 발굴됐다. 최근의 것들처럼 생생하다. 배 밑바닥에서 나온, 각종 글씨와 기호가 새겨진 목재 가공물 자단목도 관심을 끈다. 배 맨 밑바닥에 무려 1천여개가 실려 있었다고 한다. 자단목은 주로 가구를 만들 때 쓰던 고급 목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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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자산어보 본받아 전시한 갯것에 얽힌 이야기 재미도 쏠쏠

 
2층엔 어촌민속실과 선박역사실이 있다. 3전시실 어촌민속실은 조선시대 실학자인 정약전이 쓴 국내 수산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내걸어, ‘새로운 자산어보를 찾아서’란 주제로 전시실을 꾸몄다. 홍어·낙지·조기·전복·소금·젓갈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4전시실 선박사실에선 우리 전통 배인 한선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5세기 가야시대의 배 모양 토기에서부터, 장보고의 무역선 복원도, 거북선, 조선통신사선 등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1995년 발굴된 달리도 배 모형도 볼 수 있다. 지하 기획전시실에선 그때그때 새로운 주제의 전시회가 열린다. 세금으로 거둔 곡식 등을 실어 나르는 조운선, 조운선이 다니던 뱃길 등 고려시대 세금걷기와 운송시스템을 보여주는 ‘고려 뱃길로 세금을 걷다’(2009. 11.13~2010. 01.24)전이 열리고 있다.
 
해변전시장에선 신안 가거도배, 남해의 통구마니배, 동해의 목선, 멍텅구리배 등 여러 배의 모형과 개막이·덤장·죽방렴 등 전통 고기잡이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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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유물전시관을 보기 전후로 주변에서 다양한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다. 목포 입암산 자락, 남농로 주변은 ‘문화 예술 역사 전시관의 전시관’이라 할 만하다. 남농기념관·자연사박물관·목포문예역사관·생활도자전시관·목포문학관·옥공예전시관 등이 모여 있다.
 
목포/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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