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도, 옥토끼도 좋아했던 떡의 나라 박물관 기행

서울 떡박물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동화 속 떡 세상이 여기
군침 돌지만 속지들 마시라, 진짜 같아도 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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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박물관 정보

-주소=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164-2. 종로3가역 6번 출구.
-주요 전시물=우리나라 전통 떡 모형과 관혼상제 상차림, 떡판·절구·떡살 등 떡 만드는 도구들.
-관람료=어른 3천원, 초중고생 2천원.
-관람시간=월~토요일 10~17시, 일요일 12~17시.
-전화번호=(02)741-7848.
 
 
설날 아침, 우리 모두 일제히 떡국 한 그릇씩 비우고, 마침내 한 살씩 더 먹었다. 떡국을 먹어온 만큼 나이를 먹었다. 떡국과 함께 자라서 떡국과 함께 나이 들어 간다. 지금까지 자셔온 가래떡의 길이 만큼 다들 기~일게 오래 오래 사시길. 우리나라는 떡의 나라다. 남자도 여자도, 어르신도 아이도, 호랑이도 옥토끼도 떡을 좋아해서, 명절에도 먹고, 생일에도 먹고, 제삿날에도 먹었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수시로 떡을 치고 빚고 쪄 먹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대대로 해먹어온 떡, 전통 떡의 종류가 200가지를 넘는다고 한다. 떡박물관을 찾아가 여러가지 떡들을 만나보았다. 참으로 예쁘고 먹음직스럽고 우아한 떡들이 모여 있었다. 2층과 3층 전시실을 돌며 떡들과 떡판, 떡메, 절구 등을 구경하는 데 한시간이나 걸렸다. 모양도 색깔도 이름도 가지가지다. 만나 보면 일단 군침이 돌긴 하지만, 진짜처럼 만든 모형 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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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쫓길 기원하는 붉은색 수수나 팥떡은 제삿상에 ‘금물’
   
 
10층짜리 한국전통음식연구소 건물 2, 3층이 떡박물관이다. 3층부터 둘러보면서 떡과 떡을 사랑한 우리 선조들의 생활과 문화를 만나 보자. 3층은 통과의례관이다. 통과의례란 태어나 성인이 되어 결혼하고 살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는 주요 의식을 말한다. 관례·혼례·상례·제례가 대표적인 의례다. 먼저 만나는 것이 혼례 관련 상차림이다.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개성식 폐백과 혼례식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신랑·신부가 받는 상차림엔 곶감·밤·대추가 오른다. 모두 다산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음식이다. 혼례식 전날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내는 함도 있다. 떡박물관 김태연(28) 학예사가 함 밑에 놓인 상자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봉치떡을 담은 떡함입니다. 봉치떡은 신부 집에서 함을 받을 때 준비하는 떡이죠. 함을 떡함 위에 올려놓고 풀어서 내용물을 확인한 뒤 함꾼들을 대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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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차림은 아기 백일상을 거쳐 돌상으로 이어진다. 여러 떡들이 푸짐하게 올라 있다. 백설기는 순수함과 장수를 뜻하고, 오색 송편은 아이가 품어갈 꿈을 상징한다. 붉은 수수팥떡은 사악한 귀신을 물리쳐, 건강하게 자라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송편은 소를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을 함께 올렸는데, “씹었을 때 소가 있으면 속이 꽉 찬 사람이 되라는 당부를, 소가 없으면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라는 당부를 담고 있다”고 한다. 돌상엔 음식과 함께 아이가 집어들어, 부모·친척의 마음을 만족시킬 국수·실(장수), 책·벼루·종이(학자·선비), 화살(장군), 돈(부자) 등을 함께 올렸다.
 
서당에서 공부할 때 책 한권을 뗐을 때 스승께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며 동료와 함께 나눠먹던 책례(책걸이) 상엔 국수와 오색경단·송편·시루떡이 푸짐하게 놓인다. 술안줏상인 관례(성인식) 상차림과 수명이 길어지면서 요즘엔 거의 차리지 않는 회갑연 상차림, 조상들께 올리는 상례·제례 상차림을 차례로 만난다. 제삿상엔 붉은색의 수수나 팥떡은 절대금물(귀신을 쫓으므로)로 치지만, 극히 일부 지역에선 붉은 팥시루떡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전통과 관습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리 전해져 옴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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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이전부터 떡 만든 흔적이…

 
차를 우려 마시는 도구와 녹차단자·녹차인절미 등 차를 넣어 만든 맛있게 생긴 떡들을 보고 발길을 옮기면 동화책 떡 세상이 펼쳐진다. 한석봉 이야기(어머니의 떡 써는 솜씨와 한석봉의 글씨), 이성계 이야기(조랭이떡의 유래), 팥죽 할머니(호랑이와 팥죽 잘 쑤는 할머니) , 햇님 달님(‘떡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와 썩은 동아줄) 등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떡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떡의 색깔은 어떻게 만들어 낼까. 3층 전시관 가운데 전시된 ‘여러가지 떡 재료’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곡식·씨앗·열매 등 30여가지의 떡 재료들을 작은 유리병에 담아 전시하고 있다. 노란색을 낼 땐 치자나 단호박을, 분홍색은 오미자·백년초·딸기가루 등을 쓴다. 쑥 가루로는 녹색을, 계피가루는 갈색을 낸다. 함지박과 절구, 떡판, 찬장을 보고 2층으로 내려온다. 계단 벽엔 새로 개발한 떡 사진들을 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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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관은 본격적인 떡 전시관이다. 떡의 종류와 유래와 발달과정 등 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훑으면서, 실물을 빼닮은 각양각색의 떡 모형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떡을 만들어먹은 흔적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확인된다고 한다. 청동기시대 유적인 나진초도패총과 삼국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시루가 그 증거물이다. 쌀과 여러 곡물의 생산량이 늘면서 떡은 한층 다양해진다. 고려시대 들어 상류층의 별식이나 세시행사와 제사 음식에서 벗어나 일반 대중의 간식으로 널리 보급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선 떡이 관혼상제 의례와 각종 연회의 필수 음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종류도 모양도 다양한 전통 먹을거리로 발전해 왔다.
 
떡은 만드는 방식에 따라 크게 찐떡, 친떡, 지진떡, 삶은떡 네 가지로 나뉜다. 2층 전시관에 이 네 가지의 떡들의 모형이 지역별 종류별로 전시돼 있다. 물에 불린 멥쌀이나 찹쌀을 빻아 가루를 시루에 안치고 김으로 익혀 내는 무시루떡·느티떡·국화병·두텁떡·깨찰편 등이 찐떡에 속하고, 찹쌀 등을 쪄서 절구나 떡판 등에 쳐서 만드는 인절미·흰떡·절편·차륜병 등은 친떡에 포함된다. 지진떡에는 찹쌀가루를 반죽해 기름에 지지는 화전·전병·부꾸미 등이 있다. 삶은떡은 끓는 물에 삶아 건진 뒤 고물을 묻혀 만드는 것으로 경단·대추단자·오메기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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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천차만별’…강원도엔 도토리 송편도

 
우리 민족은 철마다 절기마다 풍년·무병장수·액막이 등의 의미를 부여한 특색있는 떡을 해먹으며 1년을 지냈다. 봄엔 진달래꽃 등 꽃잎을 따 곁들인 화전이나 취떡 등을, 여름엔 술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증편을, 가을엔 햅쌀로 송편을 빚어 조상들께 감사드리며 주민들이 나눠먹었다. 겨울엔 떡 옹심이를 넣은 팥죽과 흰떡(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끓여 먹었다. 설날 아침에 흰 떡국을 끓여 먹는 것은, 1년이 때묻지 않고 밝고 좋은 일만 생기라는 기원이 담겨 있고, 떡을 엽전모양으로 둥글납작하게 써는 것은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한다.
 
김 학예사는 “중화절(음력 2월1일)엔 특별히 노비송편이라 하여 커다란 송편을 만들어 노비의 나이 만큼 송편을 먹게 하는 풍습이 있었고, 단오땐 바퀴처럼 둥글게 구르며 여름을 잘 넘기라는 뜻으로 수리취(차륜병)떡을 해먹었다”고 말했다. 수리취떡이란 수레바퀴 모양의 떡살을 찍어 만든 취떡이다. 떡살 무늬도 여러가지인데, 격자무늬 떡살은 무병장수 기원의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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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가을 명절떡인 송편의 경우 형태와 크기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경기지역에선 한입에 쏙 들어가는 아담한 크기에 다섯 색깔을 내 만든 오색송편을, 평안도 해안지역에선 조개껍질 모양을 한 조개송편을 만든다. 강원도에선 쌀 송편말고도 도토리가루를 재료로 쓴 도토리송편도 만든다.    
 
2층 전시관엔 장독대, 아궁이가 딸린 전통 부엌, 쌀을 담아두던 뒤주, 김치광 모습도 재현돼 있다. 전시관 한가운데 닥종이 인형들로 재현해 놓은 씨름대회, 창포물에 머리감기, 그네 타기, 차륜병 떡 만드는 모습 등 단오날 풍습도 볼거리다. 대형 떡판과 떡메, 맷돌과 매판, 체, 돌절구, 나무절구, 키, 대바구니, 함지박, 디딜방아 등은 직접 민가에서 사용하던 것을 수집한 것으로 모두 반질반질하게 닳고 꾀죄죄하게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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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박물관에선 초중고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떡 만들기 체험행사도 진행한다(20인 이상 단체). 떡을 만들어 맛보고 남은 것은 가져가게 한다. 초중고생 1인 1만원, 대학생 이상 1만5천원, 외국인 체험(10명 이상)은 1인 3만원.                           
 
모형 떡 구경하면서 진짜 떡 먹고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1층 떡 카페로 가면 된다. 커피·전통차·음료와 함께 한 덩어리에 1000~1500원 하는 떡을 골라 사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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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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