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원짜리가 1억5천만원, 돈을 돈으로 보지마! 박물관 기행

<3> 대전 화폐박물관
지폐 등장 인물·사물 보면 역사·문화 보여
세계 화폐·금융 자료 13만2천여 점 한눈에
 
 
박물관 정보
위치=대전광역시 유성구 과학로 54(가정동 35)
개관=1988년 6월
관람료=없음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연휴, 추석연휴, 정부지정 임시공휴일
연락처=(042)860-5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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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박물관. 싱싱한 돈을 만들어내는 기관 옆에 묵은 돈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대전 한국조폐공사 옆에 자리 잡은 큼직한 2층 독립 건물이 화폐박물관이다. 1988년 개관한 국내 첫 화폐, 금융 관련 박물관이다(서울 옛 한국은행 건물에도 화폐금융박물관이 있다). 돈 박물관이니, 돈의 가치를 액면가대로 묻고 따지는 곳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막강한 위력을 몸소 체험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돈이 값나가는 돈일까’가 먼저 궁금해진다. 들여다보니, 김치도 묵은 김치가 깊은 맛을 내듯, 가치로 따지면 돈도 묵을수록 더 쳐준다. 묵은 돈도 그냥 묵은 게 아니라, 희소성을 갖고 묵어야 값어치가 나간다.
 
금화 녹여서 금붙이로 쓰는 바람에 실제 유통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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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한국조폐공사 고객지원실 박노환 차장이 말했다. “우리 박물관에서 가장 비싼 돈 말입니까. 뭐 대단한 건 없고요. 고종 때 제조된 금화가 있습니다. 20원짜리가 1억5천만원, 10원짜리가 5천만원 가량 하죠.”
 
우리나라는 1887년(고종 24년) 최초의 상설 조폐기관인 경성전환국을 설립하면서 근대식 화폐제도를 도입했다. 이어 당시 세계 주요국들이 채택하고 있던 금본위제도에 따라 우리나라도 1901년(광무5년) 금본위제도를 채택하고 1906년 최초의 금화를 발행했다. 이때 20원, 10원, 5원짜리 3종의 금화가 발행(오사카조폐국 제조)됐는데, 이 중 하나가 1억5천만원을 호가한다는 20원짜리 금화다. 이 금화들은 청나라와 무역에 쓰기 위해 만든 것인데, 금화를 사들여 녹여서 금붙이로 쓰는 바람에 실제 유통엔 실패했다고 한다. 박 차장은 “각 주화가 100개 정도씩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로 외국인들이 소장하고 있다”며 “5원짜리 금화는 특히 귀해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Untitled-7 copy.jpg속된 궁금증은 이 정도로 하고 화폐박물관 전시실에 일목요연하게 깔아놓은 돈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자. 화폐박물관이 보유한 화폐·금융 관련 자료는 13만2천여점에 이른다. 이 중 4천800여점을 1, 2층 4개의 전시실에 종류별·시대별로 나눠 전시하고 있다. 동전·엽전 등 주화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1전시실(주화역사관)에서부터, 우표·메달··훈장에다 세계 각국의 은행권을 두루 보고 배우는 4전시실(특수제품관)까지 거치면 비로소 돈이 돈이 아니라 인류 역사를 이끌어온 복잡한 문화현상이란 걸 깨닫게 된다.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복잡다단한 삶과 문화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화폐의 기원은 인류가 한 곳에 정착해 자급자족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정한 형태의 화폐가 생겨 물품 교환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전까지는 특정한 물품 자체가 화폐의 구실을 했다. 곡식이나 옷감·가죽 따위가 그것이다. 이어 물품교환의 매개 구실은 하는 화폐가 등장했다. 기원전 20세기 무렵 열대지방에선 조개껍질이 화폐로 사용됐고, 중국 내륙에선 귀했던 생선의 모양을 본뜬 말린 생선 모양의 청동화폐 ‘어폐’가 쓰였다고 한다. 기원전 8~2세기 무렵 쓰인 농기구를 본뜬 포전이나 칼을 본뜬 도전도 마찬가지 형식이다. 서양에선 엣 터키 지역에서 기원전 670년께 사자 머리 모습을 도안한 금·은화가 쓰였고, 고대 그리스에선 기원전 510년께 올빼미를 새긴 드라크마란 은화가 만들어져 쓰이며 서양 주화의 모델이 됐다고 한다.
 
신안 앞바다 발굴된 무역선에서 각양각색 동전 8백만개
 
Untitled-5 copy.jpg우리나라에선 고조선시대에 자모전이 있었고, 삼한시대에도 동전과 금·은전(무문전), 철 등이 화폐로 사용됐다고 한다. 최초로 주조된 주화는 고려 성종 15년(996년)에 나온 철전이다. ‘건원중보 배 동국전’이란 주화로 실물이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화폐다.
 
동양의 주화가 둥근 테두리에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뚫은 모양을 한 것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뜨고 네모난 것은 땅을 본뜬 것으로 동양사상의 삼라만상 이치를 담고 있다. 고려 때 임춘이 지은, 돈을 의인화한 소설 <공방전>의 공방(孔方)도 엽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孔)은 엽전의 둥근 모양을, 방(方)은 네모난 모양을 뜻한다.
 
엽전은 왜 엽전(葉錢)일까. 주화를 주조할 때 최대한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이 말에 들어 있다. 제조과정에서 엽전의 틀을 여러 개 만들고 한꺼번에 쇳물이 동시에 흘러들게 하려면 형틀(거푸집)을 서로 연결시켜야 했다. 이렇게 효율성을 극대화해 나온 틀 모양이 나뭇잎을 닮아 엽전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구멍을 네모지게 한 데는 주화의 마지막 손질이나 유통과정에서의 편의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 거푸집에서 나온 주화는 거친 모서리를 다듬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네모난 금속 막대에 여러 개를 끼우고 고정시켜 줄로 한꺼번에 다듬었다고 한다. 네모진 구멍은 엽전을 대량으로 끈에 꿰어 운반하거나 보관하기에도 편리했다. 전시실 한쪽엔 주화 제조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조선시대 엽전 주조 시설 모형을 설치해 놓았다.
 
중국과 상거래가 빈번하던 우리나라엔 오래전부터 중국의 당전, 송전 등 주화도 들어와 유통됐다. 중국전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등에서도 유통됐다.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발굴된 14세기 초의 무역선에선 무려 8백만개의 각양각색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AD 14년에 주조된 중국 신나라의 주화 화천에서부터 원나라의 지대통보에 이르기까지 1천300년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234종의 주화로, 무게가 28t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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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가수, 심리학자, 식물학자, 탐험가 등 다양

 
흥미진진한 돈의 역사는 2층 지폐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종이돈의 과거와 현재가 모두 들어 있다. 여기엔 일본 제일은행권,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행권, 광복 뒤 한국은행권들이 발행 시기와 종류별로 전시돼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지폐는 997년 중국 북송시대에 사천지방에서 발행된 예탁증서 형태의 ‘교자’라고 한다. 주로 상인들 사이에서 사용되다가 1023년엔 교자발행소가 세워지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널리 유통됐다고 한다. 서양의 첫 지폐는 17세기 초 영국에서 쓰였는데, 주화의 도난 방지를 위해 기관에 주화를 맡기고 받은 일종의 예치증서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이돈으로는 저나무 껍질로 만든 저화에 대한 기록이 조선시대 <대전통편>에 전하나 실물에 대한 자료는 없다. 지폐역사관에선 초창기 지폐로 13세기 중국 원나라 때 발행된 ‘지원통행보초’ 영국의 635파운드짜리 지폐(1699년)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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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지폐와 ‘외화와 바꾼 돈표’라는 특수화폐가 함께 쓰이는 북한의 지폐도 흥미롭고, 은행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전시물도 재미있다. 세계 각국의 지폐를 살펴볼 땐 그냥 둘러보기보다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들을 눈여겨 관찰해볼 만하다. 유럽 지폐의 경우 그 나라의 국왕이나 유명 정치가의 초상이 많이 등장하지만, 최근엔 다양한 직업의 현대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폐와 비교해 볼때 상식을 뛰어넘는 등장인물이 많다. 민속학자(노르웨이), 여권운동가(뉴질랜드), 심리학자(오스트리아)  , 건축가(프랑스), 식물학자(스페인), 탐험가(스페인), 오페라 가수(체코)까지 등장한다.
 
돈은 어떤 종이로 만들까. 박노환 차장이 말했다. “많은 분들이 지폐를 종이로 만드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지폐 제조엔 순면사를 사용합니다. 질긴 면사를 써야 훼손이 덜하고 오래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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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용지는 또 그냥 용지가 아닌, 다양한 기능성을 곁들인 특수용지다. 용지 제조과정에서 색을 넣거나, 은사·은선 및 은화 등을 끼워 넣어 위조·변조 방지 기능을 갖추고 있다. 특수 용지 제조과정, 위·변조 방지기능 처리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3전시실에선 구체적으로 지금까지의 지폐 위조 유형과 은행권·수표의 다양한 위조방지 기능들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실물을 비교 전시해 놨다. 돈을 직접 넣고 위폐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시설도 있다.   
 
마지막 특수제품관에는 우표·메달·훈장·인지·증지·수표·어음 관련 자료와 함께 세계 각국에서 현재 쓰이고 있는 지폐들을 나라별로 전시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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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 행사
-1층 특별기획전시실에서 수시로 문화예술관련 기획전을 연다.
-2010년 말까지 대전 중앙과학관 등 15개 대전지역 박물관을 연계 관람할 수 있는 수소차 셔틀버스 도입을 추진중이다. 버스 운행에 앞서 자전거 전용도로를 개설하고 자전거를 배치해 연계관람 편의를 도울 계획이다.
-박물관 예산이 줄어 당분간 새 전시물 확보는 어려울 전망이다.

대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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