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후끈한 ‘19금’ 춘화도 가득 박물관 기행

박물관 기행<1> 조선민화박물관
기기묘묘 요모조모…낯 붉히며 볼 건 다 본다
서민 삶 밴 3500점, 익살과 파격 속으로 ‘풍덩’
 
  영월 조선민화박물관
  
  주소=강원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 841-1
  개관=2000년 7월
  주요 전시물=전통 민화, 현대 민화, 고가구, 춘화 등
  입장료=어른 3000원, 중고생 2000원, 초등생 1500원
  연간 방문객=3만여명
  연락처=(033)375-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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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화박물관은 영월 깊은 산속 산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산 넘고 물 건너서 다시 고개 넘어 들어가야 하는 먼 여정이다. 길은 멀어도 38국도, 88국도 따라 오며가며 만나는 볼거리는 아주 풍성하다. 풍자 시의 달인 김병연(김삿갓) 유적지도 부근에 있다. 늘 서민 편에 섰던 김삿갓과 조선 후기 서민들 삶의 애환이 담긴 민화(民畵)를 한 지역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옛 것 좋아하고 깨끗한 자연풍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보람찬 여정이 될 게 분명하다.
 
“민화는 조선시대 서민 생활상과 정서가 고스란히 밴 민속화입니다. ‘작자 미상’의 그림, 낙관 없는 그림, 격이 낮은 그림, 창의성이 부족한 그림이라는 이유로 홀대받던 그림들이지요.”
 
조선민화박물관 오석환(55) 관장은 공무원 출신이다. 민화에 반해 25년 가까운 세월을 민화와 함께 살아왔다. 처음 만나자마자 그는 정통회화에 밀려 가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촌스럽고 수준 낮은 서민 그림’인 민화의 세계로 다짜고짜 끌고 들어갔다. 끌려들어가서 빠져나오는 데 다섯 시간이 걸렸다.
 
작자 미상에 낙관도 없어 천대…20년 동안 사재 털어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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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화박물관은 2000년 7월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사립 민화 전문 박물관이다. 소장하고 있는 3500여 점 중 150~170여 점을 해마다 두 차례씩 교체해 상설 전시한다. 박물관엔 5명의 해설사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오 관장은 “혼자 오신 분에게도 해설사들이 직접 안내하며 상세한 설명을 해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이 20여년간 사재를 들여 모은 민화 3500여점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오 관장은 분재·수석이 취미였다. 연출을 위해 고가구를 모아들이다 고서화점에서 민화를 만났다. “민화 자체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가왔죠.” 빠져들수록 무궁무진한 이야기에 반해 하나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전국 고물상과 고서점을 뒤지고 다니며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모아들인 민화는 객관성 확보를 위해 곧바로 문화재전문위원의 감정을 받았다. 오 관장은 “지금까지 모은 민화는 단 한 점도 판 일이 없다”며 “돈이 된다고 생각해본 적도, 내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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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주로 조선 후기부터 일제시대에 걸쳐 민간에서 유행한 실용화다. 사대부들은 속화·잡화·별화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정통회화와 구분했다. 다양한 사물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일정한 격식을 갖춰 관습적으로 되풀이해서 그려져 온 그림이다. 주로 이름 없는 민간 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비슷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창의성이란 게 필요하지도 않고, 발휘해볼 여지도 별로 없는 그림이다. 감상용 그림이 아니라 복을 빌고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반복적으로 그려진 실용화이기 때문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서민들의 꿈과 소망을 담아 그려진 것들로, 왕실이나 사대부 등 상류계층의 그림 문화가 서민들 일상생활 속으로 퍼진 것이다. 비록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때론 소박하면서도 익살스럽고, 때론 파격적인 내용의 그림이 강렬한 채색으로 표현된다.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아니라 거기 담긴 의미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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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관장이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까치와 호랑이’ 그림의 호랑이 얼굴을 가리켰다. “민화는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 담겨 있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는 “집안 대소사나 절기에 맞게 희망과 꿈을 담아 그려낸 장식용 그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옛날 사대부 집안에선 부엌엔 화기를 다스리는 해태 그림을 그려 붙였고, 대문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호랑이와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는 까치를 함께 그린 작호도(鵲虎圖)를 그려 붙였죠. 또 중문엔 잡귀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닭 그림을, 다락방엔 물고기 그림(언제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잘 지켜야 한다는 뜻)을 붙였어요. 이렇게 필요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조선 중반기 이후 일반 서민들에게로 퍼져나간 것이지요.”
 
새·꽃·잉어 등 그려진 사물 하나하나가 꿈꾸고 소망하는 바를 담은 상징물들이다. 대표적인 유형으로 가정의 화목을 위해 꽃과 새 등을 그린 화조도(花鳥圖), 부부 금슬이나 출세 등을 바라며 붕어·메기·잉어 등 물고기류와 게·거북 등을 그린 어해도(魚蟹圖),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이 있다. 문자도(文字圖)는 다양하게 변용시킨 글자와 상징적인 사물을 함께 그려넣어 한자의 뜻을 강조한 교훈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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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만 해도 민화에 대한 관심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고물상을 통해 나오는 민화들을 일부 전문가들이 수집해 오다, 1980년대 들어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민화의 가치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최근엔 민화 연구자가 늘면서 민화 관련 강좌가 수시로 열리고, 민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화가들도 크게 늘었다. 민화 저변 확대를 위한 전국민화공모전이 생겼고, 2007년엔 전문 연구자들의 모임인 민화학회도 만들어졌다. 일부 대학에선 민화 관련 학과 개설도 추진중이라고 한다.
 
민화란 명칭을 두고 일부 논란도 있다. 민화란 명칭은 일본의 미술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가 일본의 민속화를 부를 때 쓴 이름이다. 우리의 민족 정서를 담은 새 우리말 이름을 지어 불러야 한다는 주장과 서민화, 민속화란 점에서 민화란 이름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있다.
 
등장인물과 마루·마당 등 배경도 다양…일본 중국 춘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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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화박물관은 2층 건물에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1층에 조선 후기부터 일제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전통 민화 160여점과 고가구 60여점을 전시했고, 뒤쪽 2층 건물 약리성룡관(잉어가 도약해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뜻)과 일월곤륜관 등엔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현대 민화작가들의 작품 등 현대 민화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2009년 8월엔 증축공사를 벌여 단체 체험관과 휴식 공간, 학예연구실을 새로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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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를 묘사한 그림인 춘화도 민화에 속한다. 조선민화박물관 2층엔 19살 미만 출입금지 표시가 붙은 작은 전시장이 마련돼 있다. 2008년 여름 문을 연 춘화방이다. 오 관장이 그동안 수집한 200여점 춘화와 춘화첩 중 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Untitled-1 copy 3.jpg조선시대 후기와 구한말, 일제시대에 그려진 것들과 중국, 일본의 춘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다양한 체위와 상세한 묘사에 놀라게 된다. 양반, 기생, 하인, 하녀, 노부부의 관계, 여성 동성애 등 등장인물도 다양하고 체위도 다양하다. 그림의 배경도 안방, 사랑방, 마루, 마당 등 다채롭다. 일본 춘화들은 묘사가 훨씬 노골적이고 세밀하다. 성기 크기도 과장되게 그려진 것들이 많다.
 
어르신들도 젊은 남녀도 “횡재한 기분”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아버지 오 관장을 도우며 문화재 공부를 하고 있는 오솔길(28·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과정)씨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이 춘화방”이라며 “얼굴 붉히는 여성 분들도 있지만, 생활풍속도의 한 분야로 담담하게 감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고 작품은 구한말 어진화가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Untitled-6 copy.jpg박물관 창고엔 각종 민화들이 가득 쌓여 있다. 오 관장이 가장 아끼는 소장품은 ‘삼국지연의도’다. 구한말 최고의 어진화가(임금 초상을 그리는 화가)로 꼽히던 채용신(1850~1940)의 1912년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 줄거리를 가로 2m, 세로 1.9m의 화폭 8개에 그린 8폭짜리 대형 그림이다. 오 관장은 “관우를 모신 사당에 걸렸던 그림으로 본다”며 “등장 인물들 중 주인공들은 중국 옷차림, 일반인은 조선 옷차림을 한 점이 특이하다”고 말했다.
 
민화박물관에선 상설 전시말고도 민화축제와 특별기획전을 수시로 마련해 선보인다. 테마별 민화 특별전이나 현대 민화작가들의 작품 전시회 등 기획전, 공모전을 해마다 2~3회 연다. 지난해엔 현대 민화 작가들의 부채특별전, 고가구 특별전을 열었다. 2009년 10월10~18일 열리는 제4회 민화축제에선 민화와 생활가구를 접목한 리빙아트 민화전, 민화를 주제로 한 서각 전시회, 올해 전국민화공모전 입상 작품 전시회를 동시에 연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조선민화박물관 체험행사
ㆍ판화 찍기=20여종의 민화 판화와 등사용 잉크를 이용해 한지에 판화를 찍어 코팅하는 체험. 까치와 호랑이, 어변성룡도, 효제문자도 등이 인기다. 3000원.
ㆍ부채에 민화 그리기=준비된 부채에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민화를 그려 가져간다. 7000원.
ㆍ민화 타일 체험=민화 밑그림이 그려진 타일에 채색해서 코팅. 1만원.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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