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선인지 신선이 나인지, 하늘도 탐내 걷고 싶은 숲길

[걷고싶은숲길] 울진 선시골
규모는 작지만 좁고 길어 소만 2백여 개
바위는 추상화 품고 물웅덩이는 색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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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암온천으로 이름난 경북 울진 백암산(1004m). 산 동남쪽 자락 온정리에 온천이 있고, 북쪽 사면 7.5㎞ 길이의 깊은 골짜기로 내선미천이 흐른다. 내선미천 상류의 좁고 긴 바위골짜기가 선시골(신선골)이다. 선구리를 거쳐 평해읍 앞바다로 흘러드는 남대천의 최상류 중 하나다.
 
웅장한 맛은 적으나 골짜기 전체가 거대한 암반으로 이뤄진, 보기 드물게 깨끗한 바위골짜기다. 들여다보는 이의 마음까지 투명하게 맑혀주는 짙푸른 물웅덩이(소)와 크고 작은 폭포들이 촘촘히 깔려 있다. 오염원도 없고 찾는 이도 드문, 이른바 ‘덜 알려진’ 골짜기다. 신선들이 노닐 만한 경치라 하여 신선골로도 불린다.
 

걸음 걸음마다 새로운 풍경, 산오리가 앞장
 
한여름에도 골짜기 들머리에만 물놀이객이 찾을 뿐, 상류 쪽으론 길이 험해 본격 산행꾼들만 간간이 찾던 골짜기였다. 대부분이 소나무 숲이어서, 곱게 물든 단풍은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산길 주변엔 노랗게 물들어가는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우거져 나름대로 가을 정취를 맛보며 걷기(왕복 서너시간)에 좋다. 비탈길·돌밭길이 포함돼 있어 등산화 등 산행복장 필수.

온정면 선구1리 내선미마을이 계곡 탐방 출발지다. 가장 먼저 만나는 널찍한 물웅덩이 매미소를 시작으로 깨끗한 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흐르거나 고이거나 물빛은 투명한 초록빛이다. 물 바닥에 깔린 다슬기들과, 바위자락을 굴러와 물가에 쌓인 도토리들과, 사람이 다가가도 놀랄 일 없다는 듯 노니는 굵직한 쉬리·버들치들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발을 담그자, 물소리에 놀라 잠시 달아났던 손가락 굵기의 쉬리들 10여마리가 다시 몰려들어 오가며 호기심을 보인다.

 
좁고 긴 골짜기여서 폭포나 물웅덩이는 대체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물살에 깎여 만들어진 바위 소들은 검푸른 빛을 띨 정도로 수심이 깊은 곳이 많다. 길을 안내한 정돌만(59·평해읍)씨가 말했다. “쏘가 쬐만한 것까지 근 한 이백개는 되지예. 용소(선연·기우제소)·가매소·매미소(마음소)·호박소(함박소)·숫돌바우(선돌바우) 빼곤 나머진 이름도 없는 기라.” 일부 소와 폭포, 바위는 주민들에 따라 위치나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산길은 물가에서 시작해 까마득한 절벽길까지 주로 물길을 왼쪽에 두고 오르내린다. 수시로 우렁찬 폭포 소리가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로 들려오는 산길이다. 발길은 비좁은 숲길 따라가면서도, 눈길은 자꾸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물길로 간다. 경치가 아름답기는 역시 물길을 만나 골짜기로 내려서서 걷는 쪽이 낫다. 그러나 바위에 막혀 다시 산비탈을 오르거나, 발을 적시며 물을 건너야 하는 곳도 있다. 발을 적셔도 숨이 차올라도, 오를수록 새롭고 또 새로워지는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발길이 자꾸 상류 쪽으로 이끌려간다. 다가가면 떼지어 날아올라 수십 미터 앞쪽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오르기를 되풀이하는 산오리들도 나그네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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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까지 너와집 한 채 있었으나, 이마저 헐려
 
정돌만씨가 물가의 바위 한쪽을 가리켰다. “산오리 놀다 간 자리요. 이기 산오리 똥인기라. 골짜기에 예닐곱 마리가 사는데 아주 토박이지예.” 산오리 똥 구르는 바위도 도토리들 굴러와 한데 모인 바위도, 모두 작은 돌들이 박힌 모습이다. 신생대에 용암이 흘러나와 다른 돌들과 섞여 형성된 화성암 지대다. 멋진 추상화를 품은 바위들이 수두룩하다.

바위에 앉아 잠시 쉬며 초록빛 물웅덩이를 들여다 본다. 바위 웅덩이에 가득 담긴 초록색 물. 햇살 받고 바람결에 떠밀리며 잔물살들이 한껏 주름을 잡아 현란한 색세상이 펼쳐진다. 손으로 물을 떠 한 모금 마시니 신선이 따로 없다. 물소리에 놀라 달아났던 손가락 굵기의 쉬리·버들치 10여마리가 다시 몰려들어 호기심을 보인다.

 
물길은 주령 쪽에서 흘러오는 물길과 백암산에서 내려온 물길이 만나는 합수곡까지 아기자기한 소와 바위의 연속이다. 백암산 정상을 넘어 백암폭포 거쳐 온천 쪽으로 내려갈 생각이 아니라면, 물길 중간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게 좋다. 골짜기 경관을 충분히 감상하는 데엔 매미소 기점으로 왕복 네시간 정도 잡으면 충분하다.

선시골 상류 쪽은 독실(독곡)이라 부른다. 1960년대까지 화전민 30여호가 살았다. 지류인 가매소골(가매싯골)에도 두세집이 있었다. “50~60년대엔 마을 동장이 술 받아 지고 올라가 동회의를 독실에서 열었다.”(선구1리 주민 라만억씨) 60년대 말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소개령이 내려져 터만 남게 됐다. 몇년 전까지 너와집 한 채가 남아 있었으나, 이마저 헐렸다. “너와집에 한 스님이 와 있었는데, 다른 스님들이 나타나 주도권 다툼을 하는 와중에” 공무원들에 의해 집은 헐리고 중들은 쫓겨났다고 한다. 희미하게 남은 산길은 독실마을 주민들이 평해장에 나물·버섯·메밀·도토리·장작 등을 내다 팔고 소금·해산물을 사올 때 오고가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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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장 신돌석 자취…마침내 개발의 손길
 
구한말엔 항일의병장 신돌석(1878~1908) 장군이 왜병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뒤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곳이다. 일찍이 조선 중기에 이 골짜기를 방문해 기록을 남긴 이도 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내다 임진왜란 발발 책임 문제로 탄핵돼, 평해로 유배왔던 아계 이산해(1539~1609)다. 유배 기간 그는 토정 이지함의 조카답게 곳곳을 여행한 뒤 그 감상을 기록으로 남겼다. <아계유고>에 실린 ‘서촌기’엔 주령(현재 구주령·구슬령·구질령) 밑 협곡의 경관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다.
 
“팔선대로부터 서쪽으로 수십리를 가면 바위산과 수석의 빼어난 경관이 있는데,…골짜기는 갈라져 세 가닥이 되는데 그중 하나는 곧바로 나아가 백암산 기슭에서 끝나고, 그중 하나는 조금 남쪽으로 완만히 휘어져 선암사 뒤에서 끝나고, 그중 하나는 조금 북쪽으로 멀리 가서 주령 아래에 다다른다. 이 세 골짜기를 모두 서촌이라 하는데, 주령 아래가 산이 기이하고 물이 더욱 맑고 골이 더욱 깊어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문득 은거하고픈 생각이 들게 한다….”(‘서촌기’ 일부)
 
선인들이 거닐었고, 또 바윗길·물길 타는 오지 산행꾼들이 즐겨 찾아온 이 아름다운 ‘미개발지’에 마침내 ‘개발’의 손길이 닿고 있다. 현재 선시골 초입에선 탐방용 나무데크 설치 공사가 진행중이다. 1차로 11월 말까지, 옛 광산터 부근에서부터 1.8㎞ 거리의 탐방로 공사가 완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골짜기 깊숙이까지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는 나무계단과 출렁다리 설치 공사. 청정 골짜기의 자연환경 파괴를 앞당기는 실마리일까, 아니면 훼손을 최소화하며 경관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유용한 편의시설일까.

정돌만씨가 말했다. “저거 설치해노모 뭐하노. 이래 해놔봐야 비 함 씨게 오모 다 떠내려가뿐다. 계곡만 망가지지. 게다가 이 골짜기를 깎아 야영장을 만든다카는기 말이 되는 소리가?” 탐방객들 편의를 위한 것이라지만, 인파가 몰려 청정 골짜기가 걷잡을 수 없이 오염될 수 있다고 정씨는 걱정했다.
 

신 받으러 온 무당도 센 기에 울고가
 
백암산 주변 주령(구주령)과 선시골 일대는 “기가 무자게 씬” 곳이다. “무당이 와서러 신을 받을라꼬 아무리 별 굿을 다 하고 공을 디리도 신을 몬 받고 그냥 가는기라. 기가 씨 갖고.”(주민 황선암씨·80) 주민들은 선시골을 신성시해 골짜기 안에선 부정 타는 짓을 하지 않고 개를 잡지도 않는다.

주민 라만억(65)씨가 말했다. “아연광산 할 때 외지서 온 광부들이 거서 멋도 모리고 개를 잡는데, 개 껍디기를 벗기는데 고마 껍디 벳겨진 개가 펄펄 뛰며 도망가뿐기라. 이 골짜기선 마 개 잡지도 몬하고 먹지도 몬한다.” 그러나 가물 때 용소(기우제소)에서 “돼지 잡아가 바우에 피를 묻히모 고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선시골엔 일제강점기부터 아연을 생산하던 광산(금장광산)이 있었다. 비포장도로 끝 물 건너편 부근이다. 광산 덕에 일제강점기에 이미 내선미마을(선구1리)엔 전기가 들어왔다. 50년대엔 주민·광원 1천여명이 마을에서 들끓었다고 한다. 음짓말에 사택들이 줄지어 들어섰는데, 동네 이름을 아예 ‘사택’으로 바꿔 부를 정도였다. 사택 건물 한 줄에 열 집이 살았는데, 건물이 열 줄이나 들어섰었다. 20여년 전까지도 광산이 운영됐고, 사택 건물 한 동이 지금도 남아 있다. 폐광된 뒤 “광산 할 땐 중·하류 물길의 중금속 오염 등으로 씨가 말랐던 물고기”들도 다시 돌아왔다.

 
멋진 경치엔 선인들의 발자취가 뚜렷하다. 골짜기 초입 매미소 옆 바위에 ‘한월주인’ ‘선연동천’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매미소(마음소)란 이름은 주변 산세가 ‘목마른 말이 엎드려 물을 마시는 형국’(갈마음수형)인 데서 비롯했다. 매미소 언덕 위엔 옛날 선연정이란 정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정자가 쇠락하자, 마을 한 주민이 정자 목재를 가져다 집 짓는 데 썼는데, 그 집마저 20여년 전에 헐렸다고 한다. 정자 헐리고 ‘한월주인’은 간데없어도, 깊고도 너른 매미소는 투명한 초록 물빛으로 탐방객을 맞고 또 보낸다.
 
울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울진 선시골 여행쪽지>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풍기나들목~5·36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 지나 직진~31번 국도 만나 일월·영양 쪽 우회전~영양 문암삼거리에서 평해·온정 쪽 좌회전~88국도~수비(발리)~구주령~울진 온정면 선구리. 선구리에 주차장이 따로 없다. 선구보건소 안이나 선구교 다리 주변에 차를 대고, 내선미천 물길 따라 걸으면 선시골이다. 차로 옛 광산 터 앞까지 갈 수 있지만, 비포장길이 좁고 주차공간도 매우 적다.
⊙ 먹을 곳| 선구리에서 88국도로 고개 넘어 차로 5분 거리에 온정리 백암온천관광지가 있다. 생선회와 대게 등 해산물, 버섯전골, 물곰탕 등을 내는 식당들이 많다. 20분 거리의 바닷가 후포 여객선터미널 옆 왕돌회수산(대게·생선맑은탕) (054)788-4959, 울진읍 근처 근남면 망양정해수욕장 옆 망양정횟집(해물칼국수·생선회) (054)783-0430.
⊙ 묵을 곳| 온정리에 백암온천관광단지에 콘도·호텔·여관이 많다. 백암 한화리조트(054-787-7001) 객실 23평 평일 7만원, 주말 10만원. 온천욕 9000원.
⊙ 여행 문의|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054)789-6902.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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