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음택 명당…숲은 조선 건축 ‘버팀목’ 걷고 싶은 숲길

삼척 준경묘·영경묘
속리산 정이품송과 결혼한 100살 미인송 일품
숭례문 복원 소나무 벌채…눈 덮이면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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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 숲길에 헬기 소리가 요란하다. 지난해 말 이 숲에서 베어낸 20그루의 금강소나무를 헬기가 오십천 둔치로 옮기는 중이다. 불탄 숭례문 복원에 쓸 소나무다. 아름드리 황장목(속이 누렇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들을 베어내 길이 20m 안팎으로 다듬었다. 오십천 둔치에서 다시 일정한 길이로 잘라 강릉 목재소로 옮긴 뒤 손질한 다음 서울로 옮겨지게 된다.
 
“숭례문이 불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준경묘 숲해설가 이분희(43)씨는 숭례문 화재 뒤, 준경묘 숲의 자랑거리인 아름드리 소나무들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지역엔 100~200년생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조선말 경복궁 중수 때도 이곳의 황장목을 사용했다고 한다.
 
갈 봄 여름 없이 철 따라 새 옷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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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인 목조(이안사)의 아버지 이양무의 묘로 전해 온다. 고종 때인 1899년 묘를 정비하고 주변 숲을 보호·관리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활기리 쪽으로 탐방로가 나 있지만, 본디 준경묘로 드나들던 옛길은 신기면 서하리 쪽에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 초반 묘소와 재실, 비각 등을 중수하느라 새 길을 냈다.
 
활기리에서 준경묘로 오르는 숲길 첫머리는 활엽수림 울창한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다. 준경묘 숲의 주인공은 금강소나무지만 이분희씨의 일은 숲 해설이다. 이씨가 자작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작나무는 목질이 단단해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이용됐습니다.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 마구장식 그림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입니다. 유럽 고대인 유적에선 자작나무로 만든 불씨통도 발견됐습니다.”
 
한동안 비탈 급한 굽잇길을 오르면 앞이 트인 평지가 나타난다. 잠시 땀을 식혀 가는 쉼터이자, 비로소 널찍하고 완만한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준경묘 1㎞’ 팻말 옆에 서자 맞은편에서 불어 닥친 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이씨는 “여름철 땀을 빼고 이곳에 올라오면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솔향 물씬한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며 “그 맛에 여기까지 온다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흙길은 왼쪽 가파른 사면의 활엽수림과 오른쪽 산 위의 울창한 소나무숲을 좌우로 거느리고 1㎞가량 이어진다. 잎 떨군 활엽수 빈 가지들만 바람에 흔들릴 뿐, 겨울 가뭄으로 쌓인 눈도 없는 산길이다. 그러나 걸어 들어갈수록 소나무숲은 빽빽해지고 푸른 기운은 짙어진다.
 
봄이면 산기슭으로 보라색·흰색 노루귀, 노란 산괴불주머니, 제비꽃들이 꽃밭을 이루고, 여름엔 진한 솔향이 진동하는 숲길이다. “가을 단풍도 아름답지만, 눈 펑펑 내려 쌓이면 정말 그림이에요. 지금 겨울 가뭄으로 눈이 없어 아쉽네요.”  이씨의 결론은 준경묘 숲길은 사철 아름답다는 얘기다.  
 
백살에 결혼해 아들·딸 200 그루 낳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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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소나무들 사이로 묘역이 모습을 드러낼 무렵, 오른쪽 산기슭 흙계단을 오르면 유난히 늘씬하게 뻗어 오른 이른바 ‘미인송’을 만난다. 지난 2001년 속리산 정이품송과 전통혼례식을 치른 소나무다. 정이품송의 품종 보전 교배용으로 전국을 뒤진 끝에 찾아냈다는, 수령 100년의 곧게 자란 소나무다. 이래서 얻은 2세 소나무 200여 그루가 보은의 산림과학원에서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씨는 “준경묘 미인송을 시집 보냈다고 하는데, 실은 이 나무 수술 꽃가루를 정이품송 암술에 뿌려줬으니 장가를 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묘역으로 들어서면 홍살문이 먼저 맞아준다. 왕족의 묘 앞에만 세우는 홍살문을 6대조의 묘 앞에 세웠으니, 후대에 왕의 배출을 기약한 명당에 쓴 묘로서 예우를 갖춘 것이다. 묘역은 좌우전후가 모두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봉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좌우 소나무들이 모두 가지를 묘 쪽으로 뻗고 있는 모습이다. 마치 문무백관이 왕을 향해 조아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지만, 실은 소나무가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숲 바깥쪽으로 가지를 뻗었기 때문이다. 다른 얘기도 있다. 이씨는 “묘 위에서 볼 때 좌청룡을 우백호가 누르는 형상인데, 이 때문에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아 조선시대 맏아들이 왕위를 계승한 사례가 일곱 차례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전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준경묘 터는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 국내 최고의 음택 명당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곳 형세는 여인이 누워 무릎을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무릎 사이 언덕에 묘를 썼다. 명당으로 알려지면서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명당의 본모습을 알고자” 오거나  “기를 받으러 온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묘 앞으로 펼쳐진 널찍한 터는 비각의 뒤쪽에서 완만하게 솟아 언덕을 이루는데, 이는 명당의 기가 흘러내려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장치라는 얘기도 있다.
 
이씨는 “비 온 뒤 묘 앞 소나무숲길에 서면, 짙은 안개가 숲을 가득 메우고 넘실거려 마치 딴 세상에 온 듯이 느껴진다”며 “그게 바로 기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성계 5대조 묘, 조선 말 고종 때 비로소 ‘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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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 옆엔 물을 마시면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는 샘이 있다. 샘물은 애초 묘 아래쪽 돌 밑에서 솟았으나, 묘 훼손을 우려해 물길을 현재 위치로 돌렸다.
 
준경묘엔 얽힌 이야기가 많다. 목조 이안사는 고려시대 전주에 살다 모함을 피해 아버지를 모시고 삼척으로 이사해 1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때 세상을 뜬 아버지를 삼척의 명당에 장사 지내고 함경도로 떠났다고 알려진다. 이때 목조는 “백우금관(100마리의 소와 금관)을 써서 장사 지내면 5대손 안에 왕이 날 것”이란 도승의 예언을 듣고, 소 100마리 대신 흰소(백우)와 황금빛 나는 귀릿짚으로 만든 관을 쓰고 장사 지냈다고 한다.
 
조선 왕실은 태조 때부터, 소실된 이양무 장군 묘를 찾고자 애쓰다 수소문 끝에 지금의 묘를 찾았다. 그러나 묘의 진위를 두고 고심해 오다 고종 때 이르러 묘역을 정비하고 제각과 비각을 세웠다. 이때 ‘준경’(濬慶)이라는 묘호를 내리고 묘지기·산지기를 두어 숲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강원대 사회과학대 차장섭(51) 교수는 “이양무의 묘가 다른 곳이라는 일부 설이 있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기록과 전해 오는 이야기, 당시의 풍수지리적 판단 등을 고려할 때 지금 터가 맞다”고 말했다.
 
준경묘 들머리에서 고개 하나 넘으면 나오는 하사전리엔 이양무 장군 부인의 묘 영경묘가 있다. 찻길로 2.5㎞ 거리. 작은 물길 건너 산길을 100m 오르면 제각과 비각이 나오고, 왼쪽 소나무숲길로 다시 100m를 걸으면 영경묘에 이른다. 이곳도 명당으로 꼽히는 곳으로 역시 울창한 소나무숲이 둘러싸고 있다. 고종 때 준경묘와 함께 정비됐다.
 
삼척/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쪽지
 
△ 가는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3시간30분~4시간 걸린다.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 넘어 강릉 거쳐 동해나들목에서 나간다. 7번국도 따라 내려가다 삼척 못미처 단봉삼거리에서 38번 국도로 우회전, 미로면 소재지 지나 10여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영경묘 들머리(영경묘 입구까지 3㎞)가 먼저 나오고, 국도 따라 잠시 더 가면 천기1교 건너자마자 오른쪽에 준경묘 들머럿길이 나온다. 여기서 4㎞ 들어가면 활기리 ‘구판장’ 정자 앞에 작은 주차장이 있다. 차를 세우고 맞은편 산길을 1.8㎞ 걸어 오르면 준경묘다. 왕복 1시간30분. 영동고속도로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우회전해 단양 쪽으로 가다 제천 나들목에서 나와 38번 국도 따라 영월~태백 거쳐 통리재 넘고 도계~환선굴 입구 지나 준경묘 팻말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도 된다. 영경묘는 활기리에서 더 올라가 두메관광농원 앞에서 우회전해 산길을 따라 고개 넘어 하사전리로 가면 된다. 영경묘 표지판 앞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작은 다리 건너 산길을 200m 오르면 된다. 왕복 30분.
 
△ 먹을거리
삼척 등봉동(평전동 부근)의 부일막국수(033-572-1277)의 막국수와 돼지고기 수육, 삼척 정하동 정라항 바다횟집(033-574-3543)의 곰치국, 태백시 황지동 태백한우골(033-554-4599)의 한우 연탄구이, 태백시 삼수동 허생원먹거리(033-552-5788)의 감자수제비·감자손칼국수 등이 먹을 만하다.
 
△ 주변 볼거리
환선굴·대금굴, 이승휴 유허지인 천은사, 삼척 죽서루, 삼척해수욕장~정라항 4㎞ 해안드라이브 등.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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