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녹음 풀꽃향 더불어 동강 용틀임 한눈에 걷고 싶은 숲길

[걷고 싶은 숲길] 정선 칠족령과 고성산성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탁 트인 전망 천하일품
22㎞ 강줄기 따라 ‘가수 8경’, 드라이브 ‘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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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굽이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동강. 유려한 물길과 울창한 숲길을 함께 즐기러 간다. 장쾌하게 굽이치는 동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숲길 여행이다.

 

동강은 정선~영월 땅을 흐르는 남한강 상류 물줄기의 한 구간이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오대천이 정선을 거치며 조양강이 되고, 정선 가수리에서 동남천이 합쳐지며 동강이 된다. 동강은 영월읍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의 상류를 이룬다.

 

동강 주변은 험한 석회암 지형으로, 물줄기가 숱한 산과 산을 감싸고 돌며 마치 뱀이 기어가듯 굽이쳐 흐르는, 이른바 사행천의 모습을 보인다. 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수많은 희귀 동식물들의 서식하는 '생태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한때 댐 건설 추진으로 수몰 위기를 맞았던 곳이다.  

 


 

동강의 멋진 경관과 생태를 배우고 즐기려면 산을 타야 한다. 영월 거운리의 잣봉과 정선~평창의 백운산이 굽이치는 동강 물줄기를 한눈에 감상하는 코스로 많이 알려져 있다. 각각 4시간가량 걸리는 다소 험난한 산행 코스다.

 

그러나 힘을 덜 들이면서도 숲길과 동강 경관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들도 있다.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과 정선 고성산성 숲길이다. 녹음 짙은 숲길을 잠깐 걸어 오르면, 탄성이 절로 터지는 강 풍경이 발밑으로 펼쳐진다. 동강을 따라가며 물줄기와 절벽들을 감상하는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도 가까운 곳에 있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숲길 부문 공존상’

 

◇ 칠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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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족령은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과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을 잇는 고개다.

 

정선 주민들이 '배비랑산' '배구랑산' 등으로 부르는 백운산(882m) 줄기의 뾰족한 봉우리를 안고 넘는 고갯길이다. 굴참나무·신갈나무 무리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길과 약간의 가파른 바윗길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산길이다.

 

제장마을 잠수교를 건너 포도밭 왼쪽 길로 오르면 곧바로 울창한 숲길이 시작된다. 백운산 등산로의 하산길이다. 한동안 칡꽃·마타리 등 꽃들이 널린 완만한 숲길이 이어지다 가파른 바윗길이 나타난다. 10여분 바윗길을 타면 '위험 경고' 팻말이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바윗길은 칠족령 봉우리 꼭대기와 더 멀리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다. 왼쪽 완만한 산길로 접어들어 10여분이면 칠족령 전망대에 이른다.

 

탁 트인 전망대에 서면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서너번 용틀임을 하며 흐르는 짙푸른 동강 물줄기가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든다.

 

앞서 올라온 제장마을을 감싸고 돌아온 물줄기가 하늘벽·하방소를 거친 뒤 다시 가파른 절벽에 막혀 바새마을을 에워싸고 멀리 연포마을로 굽이쳐 돌아나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멀리 연포마을 건너편은 영월, 칠족령 고갯길 너머는 평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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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장마을은 '장이 설 만한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고, 바새마을은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바새'는 일제 때 행정 편의를 위해 한자를 갖다붙여 소사(所沙)로도 불린다. 연포마을도 본디 베리메(베르메·베루메) 마을이다. '베리·베루'란 벼리·벼랑을 말하는데, 일제 때 한자를 잘못 붙여, 먹을 갈 때 쓰는 도구인 벼루 연(硯)자를 쓰는 연포로 만들어버렸다.

 

칠족령이란 이름에도 전설이 얽혀 있다. 제장마을에 가구 옻칠로 먹고 사는 선비가 있었는데, 이 집 개가 옻을 발에 묻히고 산길을 올랐다고 한다. 발자국을 따라가 보니 동강의 멋진 경치를 발견했고, 이 때부터 이 고개를 칠족령(漆足嶺)으로 부르게 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민들 중엔 칠죽령(七竹嶺)으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백운산에서부터 칠족령까지 예닐곱개의 뾰족한 봉우리가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갓자란 죽순을 연상케 한다.  

 

좌우간 40분가량 산길을 걸어 동강의 이런 장관을 만날 수 있는 곳도 따로 없다. 여기서 잠시 산길을 올라 20~30분 숲길을 내려가면 평창군 미탄면 문희마을에 닿는다. 숲길은 평창 쪽이 더 완만하다. 평창쪽 숲길엔 위치와 거리를 표시한 등산로 팻말이 곳곳에 있어 편리하다.

 

(사)생명의숲국민운동은 칠족령 숲길의 경관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해,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8회)에서 '숲길 부문 공존상'을 수여했다. 칠족령 정상에서 문희마을 쪽 1.5㎞, 제장마을 쪽 1.5㎞의 숲길이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선 제장마을 땅 일부를 사들여 보존운동을 펼치고 있다.

 

칠족령 평창 쪽 동강 절벽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룡동굴이 있다. 현재는 폐쇄돼 있으나 올해 안으로 개방이 추진되고 있다. 동굴까지 뱃길로 다가가는 방안, 길을 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삼국시대 축조됐다는 석성 네 곳에 우뚝

 

◇ 고성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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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장마을 들머리인 고성리 고방마을의 고성산성에 올라도 운치있는 숲길과 굽이치는 물줄기의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높이 425m의 낮은 산으로, 전망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제장마을·바새마을 쪽의 절벽들이 겹쳐지며 그 사이로 흘러나가는 물줄기를 한눈에 둘러보는 전망대로 손색이 없는 장소다.

 

고성리 고성안내소 지나 고성분교 못 미쳐 왼쪽으로 고성산성 들머리가 있다. 숲길은 짤막하지만 야생화들을 감상하며 거닐 만하다. 20분쯤 오르면 성곽이 있는 평지가 나온다. 개망초와 달맞이꽃들이 무성한 평지를 가운데 두고 네 곳에 탄탄하게 축조된 석성이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가 신라와 대립하던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둥글게 이어진 성곽이 아니라 전망이 좋은 네 곳에 따로 따로 축조된 성벽이다. 반듯하게 복원된 부분과 비스듬히 축조된 옛 성곽 부분이 뚜렷이 구분된다. 좌우로 성벽을 따라 한바퀴 돌며 동강 물길과 산들을 둘러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전망대는 제4산성이다. 돌틈을 딛고 성 위에 올라서면 제장마을쪽 물줄기와 칠족령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고성리 주민들이 해마다 가을 이 산성에 올라 산성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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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리 덕천리 일대엔 선사시대 유적들도 많다. 고성산성 아래 예미초교 고성분교 옆 밭에는 청동기시대 유적인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 덮개돌 위엔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팠다는 여러 개의 성혈도 볼 수 있다. 고인돌은 소사마을에도 있다.

 

고성리 창말에 사는 주민 오대근(76)씨가 말했다. "내가 젊었을 때 그 장군묘(고인돌) 옆에 학교 터에서 지다란 돌로 된 칼을 찾았지. 군대 대검보다 좀 즉지. 그걸 학교에 전시하라고 교장한테 줬는데, 그게 인제 어디루 갔는지 모르겠어."      
  
구비구비 짙푸른 물줄기, 높푸른 산·절벽 파노라마

 

◇ 동강~조양강 드라이브

 

고성리에서 동강 상류 쪽으로 강변길을 거슬러 오르면 구비구비 멋진 강경치가 펼쳐진다. 신동읍 고성리~운치리~정선읍 가수리~귤암리를 거쳐 광하교에 이르는 22㎞ 거리의 강변길이다.

 

최근 길이 포장되고 이어지면서 차를 몰며 동강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오른 곳이다. 동강댐 건설계획이 백지화된 뒤 동강자연휴식지로 지정해 각종 동식물과 경관을 보호하고 있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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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줄곧 강 오른쪽을 따라 이어지는데 그림 같은 마을과 절벽, 수량 많은 짙푸른 물길의 연속이다. 깊고 푸른 물줄기, 높고 푸른 산과 절벽들이 쉬지 않고 나타난다.   

 

백운산 등산길 들머리인 점재마을과 해매마을, 옷바우마을 등 물이 불면 물에 잠기는 잠수교가 놓인 강마을 풍경이 훌륭하고, 깎아지른 절벽들, 다리가 놓이지 않은 강마을의 줄배, 오래된 느티나무와 소나무 들이 모두 구경할 만하다. '가수 8경' 등 이색적인 경치들마다 길옆에 내력을 적은 팻말을 세워놓았다.


◇ 백운산 산행

 

더 수려한 동강 경치를 즐기고 싶다면 본격 백운산 산행을 하면 된다. 백운산 산행은 평창쪽 문희마을~정상~칠족령~문희마을 코스나,  정선쪽 점재마을~정상~칠족령~제장마을 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모두 4시간 안팎 소요. 백운산 정상에서 칠족령으로 이어지는 뾰족한 봉우리들을 타며 왼쪽으로 굽이치는 동강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정상~칠족령 구간은 바윗길이 매우 험하다. 특히 비올 때나 비온 직후엔 산행을 피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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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평창/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동영상 이규호 피디

 


 

◈ 여행쪽지

 

<가는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안동쪽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제천나들목에서 나가 영월 방향 38번 국도를 타고 직진한다. 영월 지나 정선 예미교차로에서 유문동 팻말 보고 좌회전 구레기재를 넘거나 비좁은 차량 전용 터널을 통과해 고성리로 간다. 동강 고성안내소에서 관광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여름철 성수기엔 입장료도 받는다. 제장마을은 고성분교 지나자마자 나오는 삼거리에서 소골길로 좌회전해 골덕내길로 가다 잠수교를 만나 건너가면 된다. 다리 건너 직진하면 포도밭이 나오고 포도밭 왼쪽길로 오르면 칠족령 숲길이 시작된다. 주차는 다리 건너 강변이나 길가에 해야 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예미행 시외버스가 하루 10회 운행한다. 4시간 소요. 청량리역~예미 열차 하루 5회 운행. 3시간40분 소요. 예미에선 함백~예미~운치리를 오가는 공영버스가 고성리의 제장마을 들머리(고성분교 옆)까지 하루 5회 운행한다.

 

칠족령 숲길은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문희마을과 제장마을로 이어지는 찻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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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을곳>

 

정선 제장마을에 정희농박(033-378-3838) 등 민박집들이 있고, 평창 문희마을에도 동강 백운산장(033-334-9891) 등 민박집들이 있다. 고성리~광하리 동강 드라이브길에도 민박집·산장들이 있다. 여관은 예미에 한 곳(약수장)이 있고, 영월 석항으로 가면 허브모텔(033-378-0664)이 있다.

 

<먹을곳>

 

신동읍 예미리 38번 국도 옛길가의 정원광장(033-378-5100)에서 청국장·곤드레밥 등을 한다. 곤드레나물밥을 잘 하는 곳은 예미 농협 근처 뒷길에 있는 허름한 식당 본가(033-378-3636)다. 미리 예약을 하면 염장한 곤드레나물을 써서 솥밥을 차려낸다. 몇 년 전까지 정원광장에서 곤드레나물밥을 해오다 계약기간이 끝나 지금의 자리로 옮긴 식당이다.   
  
정선·평창/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043--제장마을의 동강유역   copy.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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