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머루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길따라 삶따라
2008.09.16 18:04 너브내 Edit
[길 따라 삶 따라] 토종 가을맛
송이째 ‘와자작’, 입 안 가득 가을향기 새콤달콤
피부미용ㆍ피로회복에 탁월…와인으로도 생산
먹을거리 풍성한 9월. 새콤달콤한 먹빛 열매, 머루가 제철이다. 큼직한 알과 높은 당도를 자랑하는 포도에 눌려 잊혀져가던 토종 가을 과일이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멀위랑 다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의 그 '멀위'다.
요즘 청소년들에겐 낯선 과일이지만, 일찍부터 조상들이 식용과 약용으로 이용해 온 야생 과일이다. 참살이(웰빙)와 토종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머루를 재배하는 농가가 부쩍 늘었다.
머루는 생과일로도 먹고, 짜서 즙으로도 먹고, 숙성시켜 와인으로도 만들어 마신다. 식욕 촉진·피로 회복·허약체질 개선·신경쇠약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머루는 포도과에 속하는 덩굴식물로, 머루·섬머루·새머루·왕머루·개머루 등으로 나뉜다. 현재 농가들이 재배하는 머루는 야생종은 아니다. 야생 새머루나 왕머루를 포도와 교잡시켜 개발한 개량종 머루라고 한다.
전북 무주를 비롯해 임실, 강원 원주·고성, 경남 함양 등이 머루를 많이 재배하는 지역들이다. 임실·무주·함양 등에선 '산머루 와인'을 생산해 인기를 끌고 있다.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서원마을 머루밭에서 수확을 하던 '부론 산머루 작목반' 반장 정해용(52)·원순애(50)씨 부부는 "머루는 당도가 높아 맛도 좋지만 피부 미용·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며 "우리 작목반 머루는 밭에서 따서 곧바로 먹을 수 있는 무농약·친환경 재배 머루"라고 자랑했다.
제초제는 전혀 쓰지 않고, 병해충 방제를 위해선 한약재로 만든 약을 뿌린다고 한다. 정씨가 머루를 한 송이 들고는 "머루는 이렇게 먹는 거래요" 하더니, 송이째 입에 넣고 훑어 '와자작' 소리를 내며 씨째 씹어 먹는 시범을 보였다.
13개 농가가 10㏊의 밭에서 머루를 재배하는 부론면의 머루밭은 밭이랑마다 모기장을 쳐놓았다. "벌과 새들이 달가들어 다 쫘먹으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생산한 머루는 생과일로도 팔고 즙을 내어 팩으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껍질이 얇고 알이 잘 떨어지는 까닭에 농협 공판장을 통한 대량 유통이 안돼, 일반 소비는 적은 편이라고 한다.
부론면에선 8동의 저온저장고와 착즙시설을 마련해 머루를 가공해 팔고 있다. 곧 와인 제조 시설을 들여놓고 본격적인 와인 생산도 시작할 예정이다. 해마다 9월 중에 '치악산 산머루 체험행사'도 벌인다. 올해는 9월 중순에 추석 휴일이 걸려, 지난 6일 앞당겨 행사를 치렀다.
정씨는 "행사 때가 아니더라도 도시민들이 미리 연락해 오면 머루따기 체험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만원을 내면 현장에서 마음껏 머루를 따 먹고 2㎏ 가져갈 수 있다.
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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