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맨들의 옛 산길로 ‘오프로드족’ 천국 길따라 삶따라

[길따라 삶따라] 남아공 드라켄즈버그 사니패스

 

고원 선술집엔 각국 여행객들의 흔적
요동치는 돌밭길은 ‘아프리카 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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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남동부에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드라켄즈버그가 있다. 남북으로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져 뻗은, '용의 산'이란 뜻을 가진 산맥이다. 길이 180㎞에 이르는 이 산줄기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웅장한 풍광과 함께 아프리카의 원주민 샌족(San·부시맨)이 남긴 암벽화 등 선사시대 유적들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샌족은 2만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살아 오면서 곳곳에 흔적들을 남겼다. 드라켄즈버그 지역엔 4천년 전부터의 거주 흔적들이 무수히 남아 있다. 주로 동굴 또는 바위벽에 그린 그림들이다. 부족의 생활 모습과 함께, 아프리카 사슴 중 가장 몸집이 큰 일런드를 많이 그렸다. 산줄기의 중북부 캐시드럴피크 자연보호구역 안 디디마에 세워진 '디디마 샌 아트센터'에서 이들이 남긴 암벽화들을 사진 찍은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남아공 안의 독립국가 레소토는 드라켄즈버그 산줄기 서쪽에 에워싸여 있다. 산줄기 동쪽 도로를 따라 달리면, 케이프타운의 이름난 관광지 '테이블 마운틴'을 닮은 탁자형 암벽들이 줄지어 나타나 장관을 이룬다.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캐시드럴피크(3004m), 최고봉인 샴페인캐슬(3374m), 자이언츠캐슬(3314m) 등이 이어진다.

 

‘12사도 봉우리’ 등 깎아지른 절벽들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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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켄즈버그 산줄기 남부에 남아공의 콰줄루나탈 주에서 레소토로 넘어가는 비포장도로가 있다. 샌족들이 넘나들던 옛 산길로 '사니 패스'(Sani Pass)라 불린다. 레소토 쪽을 향해, 이 험로를 4륜구동 차량으로 달리며 드라켄즈버그  남부 산줄기의 웅장한 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사니패스는 레소토의 바소토족이 나귀에 양털·면화 등을 싣고 남아공 쪽으로 넘어와 생필품들을 바꿔서 돌아가던  교역로이기도 하다. 길 중간에 물물교환이 이뤄지던 '굳호프 숍'이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1960년에 폐쇄돼 옛 건물의 흔적만 남아 있다.

 

요즘은 이 산길로 오토바이나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험로를 즐기려는 '오프로드족'들이 몰려든다. 스웨덴에서 두 딸, 친구 부부와 남아공으로 여행 와, 사륜구동 차량을 빌려 타고 사니패스를 넘던 커트(59)·토스비타(50) 부부는 "길이 험하지만 경치가 아름다워 전혀 힘들지 않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돌밭길을 달리는 동안 몸은 차와 함께 심하게 요동친다. 전직 경찰관으로 4년째 사니패스 관광안내를 하고 있다는 네덜란드계의 가이드 겸 운전사 라시(62)는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 마사지'"라고 말했다. 거의 매일 '아프리카 마사지'를 받는다는 그는 곧은 길만 나타나면 '마사지' 강도를 높여 탑승자의 '피로'를 풀어주려 애썼다. 결국 차는 두 번이나 멈춰섰다. 한 번은 펑크가 나 타이어를 갈아끼워야 했다. 라시가 타이어를 교체하는 동안 일행은 차에서 내려 경치를 감상하며 낯선 '마사지'로 쌓인 '피로'를 풀었다.

 

남아공 쪽의 산밑 도시 언더버그(해발 1900m)를 출발해 3시간 동안 굽이도는 돌밭길을 달려 오르면 고개 정상인 레소토 영토 '사니 톱'(해발 2873m)에 이른다. 45㎞ 거리다. 오르는 동안 '12사도 봉우리' 등 깎아지른 절벽들의 행렬과 그 밑으로 급경사를 이루며 펼쳐진 초원지대, 깊게 파인 계곡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장쾌한 산줄기 작은 언덕 사이로 그림같은 마을

 
5980_untitled-3_copy.jpg사니 패스의 평원엔 레소토의 국경마을이 있다. 바소토족 90여명이 산다. 관광안내인의 안내로 돌과 흙으로 지은 주민들의 집을 견학할 수 있다. 원뿔형 지붕을 얹은 둥근 집에 방이 하나 있고 방 한가운데 화덕을 놓아 난방을 한다. 바소토족은 태어나면 남녀 모두 담요를 하나씩 받아 평생 몸에 두르고 다닌다고 한다. 남자는 모두 할례를 해야 한다. 그 증거물로 각자 다른 무늬를 새긴 지팡이를 평생 들고 다닌다.

 

마을 옆 산장 겸 휴게소에서 보는 산줄기와 계곡 쪽의 전망이 좋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고지대의 선술집'이라는 팻말을 단 식당 겸 카페의 바람 부는 야외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남아공 쪽 산줄기와 계곡을 감상해볼 만하다. 카페의 벽엔 여행객들이 남기고 간 각국의 화폐와 명함들이 빼곡이 붙어 있다.

사니패스를 내려오다 보니 도로에서 공사 하는 곳이 보였다. 가이드 라시는 "길이 너무 험해 언더버그에서 굳호프 숍 구간은 앞으로 포장공사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라시는 그러나 "굳호프숍에서 고갯길 구간은 포장하지 못할 것"이라며 "오프로드 마니아들과 환경단체에서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갯길을 포장한다면 겨울에 미끄러져 사고위험이 많다"고 덧붙였다.

 

사니패스로 가는 길에 만나는 드라켄즈버그 주변 풍경들도 매우 아름답다. 장쾌하게 펼쳐진 산줄기를 배경으로 크고 작은 언덕들이 포개지고 그 사이에 마을이 그림처럼 들어앉아 있다.

 

드라켄즈버그(남아공)/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드라켄즈버그 여행정보>

 

남아공까지의 직항편은 없다. 홍콩에서 남아프리카항공(02-775-4697)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인천공항~홍콩 3시간3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20분. 요하네스버그에서 드라켄즈버그 북부의 로얄나탈 국립공원까지 차로 4시간. 여기서 사니패스 들머리인 언더버그까지 다시 4시간이 걸린다.

 

사니패스 정상 사니톱의 레소토 마을로 들어가려면 길 중간에 있는 남아공 쪽 출입국사무소와 정상의 레소토 쪽 사무소에 차례로 여권을 내고 출입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남아공 화폐는 란드. 1란드는 125원쯤이다.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 언더버그에 오토바이와 사륜구동 차량을 빌릴 수 있다. 사륜구동 비이클로 1회 정상 왕복에 55달러.

 

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인터아프리카(www.interafrica.co.kr)는 남아공 일주(7일·259만원부터), 동·남부 아프리카 허니문 패키지와 가족여행 등 다양한 아프리카 여행상품을 판매중이다. (02)775-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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