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불러내 알기 쉽게 풀어놓는 종합예술가 길따라 삶따라

   [여행길 도우미] ① 문화관광해설사
 고궁·고찰·박물관·기념관 등 이야기 속으로
 눈빛·표정·손짓 등 온몸 동원해 ‘시간 여행’
 
a5.jpg 볼 만한 문화유적지와 걷고 싶은 숲길에 이분들이 있다. 보고 느끼는 여행의 필수 아이템, 문화관광해설사와 숲해설가다. 외국여행이 대세인 요즘, 이들은 우리 땅 구석구석에 남은 문화유산과 풀·꽃 한 포기에서부터 감동을 느껴보라고 외친다. 면면을 보자. 대개 한쪽은 오랜 세월 풍상을 견딘 문화재를 닮았고, 또 한쪽은 연륜만큼 짙은 그늘을 드리운 나무를 닮았다. 주로 현직에서 물러난 뒤 해설사 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다. 문화유산해설사와 숲해설가들이 사는 세상의 안과 밖을 들여다본다.
 
 “중국인 통역을 하면서 해설사란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딱 제 일이었죠. 부족한 역사문화 공부에 도움 되죠, 중국어 실력 늘죠.”(김승희·26·동국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
 “네덜란드 한 박물관에 가니 장관 출신이란 사람이 박물관 해설을 합디다. 충격·감동이었죠. 돌아와 해설사 모집공고부터 뒤졌어요.”(이현이·68·서울시 교육연수원 강사)
 김씨는 올초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로 첫발을 내디딘 새내기, 이씨는 7년차의 숙련된 해설사다. 42년 차이. 세대와 성별, 하는 일이 다르지만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그래, 이거야!”를 외치며 마이크 잡고 나섰다.
 문화관광해설사. 2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가 전국 곳곳에서 관광객 안내하고, 역사문화 분야를 토론하며 보람과 자부심을 가꾸는 자원봉사자들이다.
 올해는 문화관광해설사(도입 당시는 문화유산해설사)가 운영된 지 만 10년이 되는 해다. ‘문화관광해설사’란 여행자들에게 역사와 문화, 유적·경관 등을 깊이있고 재미있게 설명함으로써 여행길 추억을 풍성하게 해주는 도우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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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70대 중·노년층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엔 20~30대 지망생이 늘고 있다. “역사문화 지식을 습득하면서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김씨는 서울시 230여 명의 문화관광해설사 중 최연소 해설사다. 지금까지 10여 번의 현장해설에 나섰지만, 여전히 “잘못할까 걱정되고 가슴이 떨린다.” 그래도 매번 해설을 마치면, 보람과 자부심으로 가슴이 뿌듯해온다. “만약 월급 받고 한다면 이런 느낌은 없을 거예요.”
a4.jpg이씨는 “수백 군중 앞에서도 끄떡 않고 조선왕조실록을 꿴다”는 베테랑이다. 60살 넘어서면서 개인사업을 접고, 뭔가 남을 위해 ‘머리 속’ 지식을 넘겨줄 일을 구상하다 ‘해설 봉사’로 새 인생을 찾았다. 그가 ‘머리 속’을 강조하는 건 이미 몸의 각 장기를 기증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해설하는 일은 품위있는 문화행위이면서 또 예술행위입니다. 눈빛·표정·손짓·목청 동원해 복잡한 역사 드라마를 알기 쉽게 풀어놓는 종합예술이죠.”
  오늘도 전국 곳곳에서, 해설사들이 선인들 자취를 따라 발을 옮기고 있다. 이번 주말 나들이·여행을 계획했다면, 당신과 일행을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 속으로 이끌 ‘종합예술 감독’ 한 분 만나보는 건 어떨까. 고궁·왕릉·고찰·정자·고택·박물관·기념관…이 땅의 역사가 깃들고 문화유산이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여행길을 알차고 풍요롭게 해줄  터이니.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문답으로 알아보는 문화관광해설사
 
 ▶관광가이드와 다른 점은?
 많이 다르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전문적인 수준을 갖췄다. 관광객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운영하는 것이 문화관광해설사다. 거의 향토사학자 수준에 이른 이들이 많다. 그만큼 해설사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과 역사인식이 깊다. 정부기관에서 인증한 교육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육도 받는다. 무엇보다 가이드와 달리 해설사는 자원봉사자, 최소한의 활동비만을 지원받는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활동비는 얼마나 받나?
 활동비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액수는 물론 지자체마다 다르다. 인원과 활동 여건이 다르니까. 서울시 해설사는 하루 활동비가 2만원, 지역에 따라 3만~4만원씩 받는 곳이 많고, 제주도나 경주는 많은 편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지자체 추가지원으로 6만원대까지 간다. 해설사들은 한달에 보통 10~14일 근무하므로 대부분 월 50만~60만원 수준이다. 논란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선 해설사를 자원봉사 활동으로, 고용노동부에선 일자리로 분류한다. 문화관광해설사들에겐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예전엔 명칭이 ‘문화유산해설사’였는데?
 문화유산해설사가 문화관광해설사로 바뀌었다. 2005년부터다. 문화유산해설사는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 관광객 수요에 대비해 2001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침으로 마련됐다. 여기에 관광자원개발 영역까지 포괄하면서 문화관광해설사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올해 3월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문화관광해설사는 법적 지위를 갖게 됐다. 지속적인 지원과 활동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역사·문화·문화재에 대한 실력향상은?
 풍부한 지식과 실력이 해설사의 기본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 ‘입만 번지르르한’ 해설사가 설 자리는 없어졌다. 100시간 교육을 받고 나서도 해마다 50시간의 보수교육과 답사·워크숍 등을 통해 전문지식과 현장 경험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또 매년 능력을 점검해 탈락시킨다. 자질 향상을 위한 개별적인 역사문화 지식 습득 노력은 기본이다.
 ▶해설사는 어떤 사람들이 하나?
 전직 공무원·교사·교수·회사원·군인, 대학원생·주부 등 다양하다. 공무원과 대학생은 해설사를 겸할 수 없다. 전국에서 약 3000명의 문화관광해설사가 활동하고 있다. 40~60대가 대부분이다. 남성은 50~60대, 여성은 40대가 많다. 60% 이상이 여성이다. 앞으로는 외국어 능력이 강화되는 추세여서 20~30대 해설사들이 늘 것으로 보인다. 젊은층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배우면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매력 때문에 최근 지원이 늘고 있다.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해설사를 사회경험 쌓기 기회로 활용하려는 젊은이들도 있다.
 ▶나이 제한이 있나?
 나이 제한은 논란거리다. 지자체마다 다르기도 하다. 대부분 30살 안팎부터 70살까지 제한하는 걸 원칙으로 하되, 건강과 능력이 있을 경우 제한을 풀고 있다. 70~80대 해설사들 중엔 “아직 팔팔한데 왜 제한을 두느냐”며 불만이 터뜨리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부 지자체가 해설사 연령을 65살까지로 제한한 것은 연령 차별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어 노령층의 활동 여지가 커질 전망이다.
  
 ◇ 나도 해볼까?
 
 문화관광부가 인정하는 문화관광해설사는 지자체별로 선발한다. 광역 시·도별로 연초에 수요 조사를 벌여, 예산과 전체 인원을 정한 뒤 시·군의 필요 인원 요청을 받아 지자체별로 모집공고를 낸다. 주로 봄철에 지자체별로 공고가 나가는데, 모집인원은 한자릿수인 경우가 많다.
 모집은 지역의 경우 한국어(내국인 대상 해설) 분야를 기본으로 선발하되,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외국어 회화 가능자를 우대하는 방식으로 한다. 서울시의 경우엔 모집단위를 영어·중국어·일본어 분야로 나눠 선발하고, 한국어 분야는 결원이 있을 경우에만 뽑는다. 최근 중국권 관광객이 늘면서 중국어 회화가 가능한 해설사 수요도 늘고 있다. 문화·역사·예술 관련 경력자를 우대하는 곳이 많다.
 나이 제한도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개 30~70살 사이의 건강한 국민이면 된다. 나이 상한선은 지금까지 별도 제한이 없다가, 최근 들어 70~75살로 정해지고 있는 추세다.
 대체로 먼저 서류로 일정 인원을 추린 뒤 면접과 실기를 통해 선발한다. 선발되면 100시간 안팎의 강의와 현장교육을 거쳐 해설 시연과 필기시험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리게 된다. 교육은 광역 시·도에서 위탁한 기관에서 한다. 한번 선발됐다고 지속적으로 해설사 지위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해마다 재교육과 시연 등을 통해 재임용 과정을 거친다. 이밖에 민간단체나 자원봉사단체 등에서 별도로 ‘문화유산 해설 자원봉사자’를 뽑기도 한다. 활동비는 없다.
 
 ◇ 문화관광해설사 활용법
 
 전국 중요 문화유적지엔 문화관광해설사들이 상주한다. 무료로 역사·문화,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설명해 준다. 상주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시간을 정해 인원이 모이면 해설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이미 다른 일행 해설을 나서버려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사전 예약은 필수다.
 서울시내 고궁 등 유명 유적들은, 관람객이 많은 곳이므로 미리 예약하는 게 좋다. 예약은 인터넷(www.visitseoul.net)으로 한다(무료 도보관광코스 예약안내). 방문하고자 하는 달의 전달 말까지 해야 한다. 방문지와 날짜, 시간대, 만나는 장소 등을 정해 신청하면 해당 날짜와 시간에 대기하고 있는 해설사와 연결된다.
 서울에서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주하는 곳은 남산골한옥마을, 인사동, 청와대 사랑채, 전쟁기념관 등이다. 4대 고궁과 종묘, 남산, 낙산성곽, 태릉 등은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이 밖의 유적지라도 서울시 관광과나 관광마케팅센터에 별도 신청을 하면 날짜와 시간을 정해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서울시내 유명 유적지엔 민간단체 자원봉사 해설사들도 상주한다. 서울시에서 최근 마련한 대표적인 도보 관광코스 13곳에 대한 안내와 해설도 가능하다. 서울시 관광과 (02)2171-2462, 서울관광마케팅 (02)6925-0777.
 먼거리 여행길이라면 예약은 더욱 필요하다. 지역 해설사들은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유적지 현장에 상주하지만, 유적당 근무자가 1명인 경우가 많고 변동 상황도 잦아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유명 유적지라면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다. 대개 해당 시·군 문화관광과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관광과에선 관할 지역 문화유적지 해설사 근무를 관리하므로, 해설사가 상주하는 곳, 해설이 가능한 곳 등을 미리 알아볼 수 있다.
 주요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은 예약 없이도 개관시간 안에 가면 언제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해설사가 자리를 비웠더라도 요청하면 학예사나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인증 교육을 받은 문화관광해설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설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거나 받지 않는다. 해설사들은 대개 경청하는 자세를 보고 해설의 수준을 정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진지한 경청과 적절한 화답은 해설의 수준과 재미를 높여준다.
 
 ◇ 꼴불견, 이런 사람 꼭 있더라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좋은 일, 나쁜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문화유산해설사와 숲해설가는 방문객을 상대로 설명하고 질문받고 대답하는 걸 기본으로 활동하는 이들이다. 해설사(해설가)들이 털어놓은 다채로운 ‘꼴불견 탐방객’ 행태를 유형별로 정리했다.
 ⊙ 잡담이 더 재밌어=해설사들이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이들. 목이 아프도록 설명하는데, 자기들끼리 큰 목소리로 웃고 떠들며 잡담하는 경우 해설하는 사람은 맥이 풀린다. 노래 한곡 뽑으란 요구도 심심찮게 나온다.
 ⊙ 내가 더 잘 알아!=며칠에 한번은 꼭 나온다는 유형이다. 아무리 해설사라도 모르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한 일. 이를 못 참고 해설 중에 끼어들어 자신의 지식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심지어 “저렇게 무식한 게 해설을 한다”며 모욕을 주는 일도 있다.
 ⊙ 예약해 놓고 기억상실=일단 예약을 받으면 해설사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장으로 출동한다. 연락 두절 상태로 나타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이럴 때 해설사들은 분통이 터진다.
 ⊙ ‘흐흐흐 멋진데’=해설하다 보면 술 취한 방문객도 많이 만난다. 여성 해설사가 많다 보니, 이들로부터 외모와 관련한 진한 농담과 음담패설을 듣는 경우가 있다.
 ⊙ 해설보다 만져봐야=손 대지 말고 보기만 하라고 강조해도, 문화재건 식물이건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도 있다. 돌부처와 탑의 일부분이 반질반질해진 게 이들 탓이다.
 ⊙ 아이 울리는 엄마들=자녀 공부시키러 데리고 와서 해설 안 듣는다고 큰 소리로 호통치며 분위기 썰렁하게 하는 엄마. 때리기까지 한다. 정작 자신은 제대로 경청하지 않는다.
 ⊙ 기도합시다~=조용한 국립공원·수목원·휴양림 숲길에서 갑자기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종교의식을 공공장소에서 벌이는 이들이다. 방문객이 눈살 찌푸리고, 관리인이 제지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 분들도 많다.
 ⊙ 꼴불견의 기초들=음주가무, 흡연, 노상방뇨, 고스톱, 식물 채취, 쓰레기 투기….
   
   ◇ 외국에선 어떻게?
 
 문화유산이 즐비한 유럽 나라들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형태의 문화관광해설사를 운영하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전형적인 관광안내인이 해설을 맡는다.
 한국관광공사 자료를 보면, 영국의 경우 정부에서 지원하는 해설사 제도는 없고, 여행사에 소속돼 일하는 민간 관광안내사(블루 배지 가이드) 단체가 있다. 이들은 노조를 구성해 여행사로부터 일당을 받고, 해설을 요청한 쪽으로부터도 일정액을 받는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민간단체인 국제투어버스협회에서 운영하는 관광안내인이 주요 관광지와 유적지에 배치돼 해설을 해준다.
 우리와 비슷한 문화유산해설사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프랑스다. 국가와 지역에서 운영하는 관광 통역 가이드와 별개로, 중앙 교육부의 위탁을 받아 각 광역지자체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문화유산해설사를 배출해 운영한다. 주요 유적지에 배치돼 해설 프로그램에 따라 안내와 해설을 해준다. 하루 260~280유로의 활동비가 지원된다. 일본도 국제관광진흥기구에서 자격증을 주는 통역가이드(4700명) 제도를 운영할 뿐, 정부 지원 아래 문화유산을 설명해주는 자원봉사자 제도는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과 김동욱 사무관은 “외국에선 대부분 민간단체들이 관광 안내와 문화유산 해설을 맡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 지원 아래 고급 교육과정을 이수한 해설사들이, 여행사 등에 소속되지 않고 자원봉사 형태로 활동한다는 데 우리 제도의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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