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에서 황혼까지, 어르신들 추억 따끈따끈 길따라 삶따라

온천 천국 아산
백제 이래 따뜻한 물의 고장…왕들도 줄줄이 행차
된장골목, 깡통골목, 니나노골목 등 옛번화가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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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온양온천은 60년대까지 대표적인 국내 신혼여행지. 최근엔 수도권 어르신들이 전철 1호선을 타고(어르신 무료!) 와 온천 즐기고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돌아가는, 당일치기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산엔 이름난 온천이 세 곳 있다. 온양온천역 부근에 13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온양온천이 있고, 도고면에는 200년 역사의 도고온천이, 음봉면엔 20여년 전 개발된 아산온천이 있다.

 
아산은 어디이고 온양은 어딘가. 현재 아산의 중심거리 온양동(온천동)이 온양시였던 지역이다. 본디 삼국시대 이래로 불려온 온주(온양)는 시내 남쪽 고개 넘어 현재의 온양6동 지역을 말한다. 일제강점기 장항선(옛 충남선) 철길이 만들어질 때 온주동 쪽으로 노선이 계획돼 있었으나, 온주동 유림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반대하면서 현재 온양온천역 자리로 철길이 놓였다고 한다. 그 뒤 온주동 쪽은 쇠퇴하게 된다.

온양은 백제시대 이래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고장이라 하여 온정·탕정·온주·온양 등으로 불렸다. 아산은 아술현·아주현으로 불리다 조선 태종 때 아산이란 지명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이후 최근까지 아산과 온양은 여러 차례 통합·분리·재통합 과정을 거쳤다. 지난 95년 온양시·아산군을 다시 아산시로 통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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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후 아산과 온양은 여러 차례 통합·분리·재통합


아산시청에서 출발해 옛 시장골목을 돌아 조선시대 온궁 자리, 어의정 거쳐 온양전통시장까지 걷는다. 아산장날(4, 9일)을 택한다면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아산시청 앞 주차장에서 걷기 시작한다. 시청공원에 두 기의 동상이 있다. 2006년 기세를 떨쳤던 조류인플루엔자 방역활동 중에 순직한 최종곤 사무관 흉상과 조선 초의 청백리 정승 고불 맹사성(1360~1438)의 동상이다. 어질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는 재상,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고불의 고향이 온양이다. 아산시 배방면 중리, 6백년 된 두 그루 은행나무(맹씨행단) 옆에 그가 살던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고택이 남아 있다.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그가 지은 ‘강호사시가’를 우물거리며 공원을 나와 시민로사거리 쪽으로 걷는다. 은행나무 가로수들은 샛노란 가을옷을 입었다. 대형 가전제품 매장 즐비한 네거리 지나 온양천(온천천)을 건넌다. 상류쪽은 복개되고, ‘살진’ 고기들 노닐었을 하류쪽 물길에선 생활오수가 흘러간다.

 
장날이면 강아지·토끼·오리·닭들이 나오는 동물시장이 열리는 주차장 지나, 밀냉면을 잘 하는 신정식당·강원냉면을 거쳐 옛 시장 골목으로 든다. 온갖 장류를 팔았다는 된장골목, 미군부대에서 나온 깡통들을 펴 양철지붕을 만들어 팔던 깡통골목, ‘니나노 술집’으로 이름난 ‘장미골목’이 있던 옛 번화가다. 도로확장 공사로 된장골목은 사라지고, 나머지 골목들도 쇠퇴해갔으나, 일부에서나마 옛 전성기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낫 하나는 전국에서 알아준다”는 대장간을 만난다.
“아니, 물건을 갖구와야 곤치지, 보지두 않구서니 말루다 워치게 곤친디야.” ‘창구대장간’ 주인 허창구(66)씨가 두 손으론 불꽃을 튀기며 삽날을 갈고, 귀로는 농기구 수리 문의를 받고 있다.

12살 때부터 대장간 일을 해온 50여년 경력의 장인(충남 무형문화재 대장장 기능보유자)이다. 대장간 바닥과 벽엔 그가 만든 낫·쇠스랑·도끼·호미·곡괭이 들이 빼곡하게 깔리고 걸렸다. 허씨는 지금도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려 하루 30개씩의 낫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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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도 없이 30여년 간 ‘뻥~’
 
‘장미골목’ 지나 다시 복개천으로 나선다. 동일목재 앞 길 양쪽에 옥수수·쌀·보리를 튀겨주는 ‘뻥튀기 집’ 두 곳이 있다. 할머니 대여섯 분이 들고온 곡식을 깡통에 담아 두고 차례를 기다린다. 시커먼 무쇠기계가 불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뜸을 들인 뒤, 마침내 ‘뻥’ 소리를 내며 터지고 뜨거운 열기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번져온다.

 
가게 이름도 없이 30여년간 고소한 냄새를 터뜨려 온 김영선(61)씨는 “20년 전엔 주변에 너댓 집이 모여 전성기를 누렸다”며 “먹을 게 워낙 많아지니 손님이 점점 줄어든다”고 말했다. 한 깡통 튀기는 데 3천원.

 
농약·종묘사·그릇가게 골목으로 든다. 장날이면 골목에 흰 천막을 치고 옷가게들이 줄지어 들어선다. “여가 원래 온양장(재래시장)인데 저짝(온양전통시장)에 비하면 상권이 팍 죽었지.”(그릇가게 주인 홍종구씨·73) 그래도 상인들의 의욕은 대단하다. 길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아주머니 두 분이 말했다.

 
“우리두 복지센터 상인대학 다 나온 사람이유. 두달 코스루다가 컴퓨터·친절교육에다 장사하는 법, 시장 견학까지 다 배웠슈.” “근디 이짝은 왜 라디오방송두 안해준디야? 방송 선도 안 깔아주고.” 시장 홍보 프로그램이 풍성하고, 시장 전용 라디오방송까지 개국하는 등 날로 번창하고 있는 길 건너편의 온양온천전통시장과 비교해 뒤처진 재래시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다.

옛날식 온천 목욕탕 신정관 앞을 지난다. 온양온천관광호텔, 신천탕과 등과 함께 일제강점기부터 운영돼온 목욕탕이다. 서울 신길동에서 전철 타고 왔다는 할머니 두 분이 온천욕을 마치고 나왔다. “물이 차암 좋아요. 일주일에 두번씩 와요, 목욕하러.” 온양온천역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다. 온천욕 2천8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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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밑 자전거 전용도로, 신분증만 맡기면 공짜
 
네거리에 정문이 있는 온양온천관광호텔로 들어간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이 온천욕을 하기 위해 찾던, 온양 행궁 터가 이곳이다. 행궁이란 임금이 휴양·전란·참배 등의 이유로 지방에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거처를 말한다. 온양 행궁엔, 임금이 머물던 내정전과 집무를 보던 외정전, 목욕을 하는 탕전이 있었고, 국정에 차질이 없도록 다른 행정기관과 호위기관들도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태조 때 첫 임시행궁이 지어진 뒤 세종 때 규모를 갖춘 행궁이 완성됐다. 세종은 안질 때문에 이곳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세조 행차 때(1476년)는 온천 옆에서 새로운 샘(신정)이 발견돼 기념비를 세우기도 했다. 성종 때 다시 세운 신정비(1483)를 호텔 정원 한쪽에서 만날 수 있다.

본관 앞 오른쪽엔 ‘영괴대비’와 고사목들이 있다. 영괴대란 영조가 왕세자(사도세자)와 함께 행차했을 때(1760년), 세자가 활쏘기 등 무예를 연마하던 장소에 3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게 했던 곳을 말한다. 정조 때는 나무 둘레에 대를 쌓고, 기념비를 세웠다. 비 앞면의 ‘영괴대비’ 글씨는 정조 친필이다.

 
영괴대비 비각 앞쪽에 담쟁이덩굴을 뒤집어쓰고 선, 줄기만 남은 아름드리 고사목 두 그루를 볼 수 있다. 박노을 전 아산문화원장은 “온천관광호텔 운영주가 여러 차례 바뀌며 관리가 안돼 죽었지만, 두 고사목이 바로 영조 때 심은 그 느티나무”라고 말했다. 신창면 쪽에서 옮겨온,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든 온천리 석불도 옆에 있다. 호텔 본관에는 온양행궁과 관련한 자료와 사진을 볼 수 있는 ‘온양행궁 전시관’이 있다. 온천욕 5천5백원.

호텔을 나와 길 건너 고가철길 쪽으로 간다. 철길 기둥들은 온양행궁 관련 옛 글과 조각상들로 장식돼 있다. 철길 밑은 자전거 전용도로다. 온양온천역에서 신정호수(둘레 4㎞)까지 이어진 3㎞ 가량의 자전거도로다. 역과 신정호에 각각 100대의 자전거가 마련돼 있다. 신분증을 맡기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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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행사·단체·모임 이름 앞엔 ‘어의정’
 
한 자리에서 50년 가까이, 3대째 젓갈을 팔고 있다는 굴다리식품을 들여다 본다. 새우젓·황석어젓 사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전용 토굴을 갖추고 있어 “서울에서 전철 타고 젓갈 사러 온다”는 집이다.

남산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00m 가면 왼쪽 골목에 아산문화원이 있다. 온양 역사·문화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제일타워 뒷골목으로 오른다. 제일타워 자리는 옛 동방극장 터다. “동방극장도 사라지고 온양역 앞에 있던 온양극장도 없어지고, 인구 27만의 도시 아산에 극장이 하나 없어요. 영화 보려면 천안까지 나가야 하죠.”(아산시청 홍보기획팀장 권경자씨)

 
어의정(御醫井)을 만나러 간다. 섹시다방·꿀벅지클럽 등 자극적인 간판들 즐비한 유흥가 거리를 한동안 걷는다. 옛 물길을 덮어 만든 복개천 도로다. 어의정은 세종대왕이 눈병 때문에 온양에 행차했을 때 이 우물물로 씻어 눈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우물이다. 어천·어정수로도 불린다. 밭 가운데 방치돼 있던 우물로, 89년 조사를 거쳐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재를 모아 우물을 복원하고 주변을 공원화했다. 물이 흘러나와 우물 주변을 한바퀴 돌도록 했으나, 5~6년 전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물이 완전히 말라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실제로 어의정이 이 곳에 있었는지에 대해선 확인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구전되는 얘기로, ‘어천’(御泉)이란 글씨가 새겨진 석재도 있었다고 하나 찾지 못했다. 김용호 온양2동 자치위원장이 말했다. “그래도 어의정은 동네의 자부심이자 상징물입니다. 웬만한 행사·단체·모임 이름 앞에 어의정이 따라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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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카페’에선 상인들이 직접 라디오방송
 
온양온천역까지 내려가는 길은 “새로 구획정리한 주택가”여서 단조롭다. 일부 주택 담벽은 벽화 그림으로 장식돼 있다. 온양온천역 옆 고가철길 밑은 장날(4, 9일)이면 대형 풍물시장이 떠들썩하게 펼쳐진다. 야채·나물·과일에서부터 삼태기·키·광주리·싸리비 등 생활용품까지 주로 어르신들이 펼치는 좌판이 촘촘하게 깔린다. 대광주리 3만원, 키 5천~4만원.

역 앞 공원 한쪽엔 1951년 세운 ‘이충무공사적비’(정인보 글, 김충현 글씨)와 비각이 있다. 현판은 이시영 전 부통령이 썼다. 주민 홍기표씨는 “50~60년대 온양온천이 최고의 신혼여행지였을 때, 이곳을 찾은 신혼부부들이 꼭 들러 사진을 찍던 장소가 이 사적비”고 말했다.

길 건너 ‘온양전통시장’으로 들어선다. ‘온양의 명동’으로 불리는 첫 골목(온궁로)은 의류·화장품·패션용품 가게 즐비한 젊음의 거리, 두번째 장옥시설이 된 골목은 음식점 거리, 세번째 골목은 잡화점 거리다. 잡화점 거리 끝 시민문화복지센터 지하 극장에선, 어르신들의 사랑과 재혼 문제, 자녀들과의 갈등 등을 다룬 악극 ‘아빠의 청춘’이 공연되고 있다(11월27일까지 목·금·토요일).

 
 
색색의 복분자·흑미·녹차 호떡을 파는 수레 앞을 지나는데 장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상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날씨도 좋고, 장날이고, 또 상인 씨름대회도 열리고,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서툴지만 정감 넘치는 아주머니 목소리. 상인들이 운영하는 시장내 라디오방송(온궁미니방송국)이다. “화합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웃끼리 서로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해 줍시다.…다음 들려드릴 곡은, 나훈아의 ‘사랑’입니다.”
 

65살 이상 음식은 2천원, 차는 1천원 할인
 
img_06.jpg생방송이 진행되는 곳은 온양상설시장 건물 2층 ‘유유자적 카페’. 평소엔 음악을 방송하고 하루 2시간씩은 상인 8명이 번갈아가며 진행자로 나서 시장 소식과 정보를 전한다. 초기엔 시끄럽다며 반발하는 이도 있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분위기가 가라앉는 노래를 틀면 즉각 ‘거센’ 전화 항의가 들어온다. “저기 말이여, 너무 처지네그랴. 뭐 좀 신나는 거 읍디야?”

유유자적 카페는 방치돼 있던 옛 고시원 자리를 새단장해 지난 10월초 문을 연, 상인과 고객들을 위한 공간이다. 한식·분식을 내는 식당 온궁수랏간과 카페, 모임방·창작공방·컴퓨터실·유아방 등이 마련돼 있다. 65살 이상 어르신에겐 모든 음식값에서 2천원, 커피 등 차는 1천원을 깎아준다.

 
 
카페 총괄매니저 조규현씨는 “온양온천역과 가까워 서울에서 계모임을 하러 오겠다는 어르신들도 있다”며 “음식 할인율을 높이고 소량씩의 주류 판매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카페 아래층엔 소머리국밥집 15곳이 모인 먹거리장터다. 매월 둘쨋주 목요일 점심(12~3시)엔 5천원짜리 국밥을 3천원에 판다. 아산시청에서 온양온천시장의 유유자적 카페까지 4.5㎞를 걸었다.

그리고, 더 볼 것이 있다. 본디 온양을 보려면, 시내에서 39번 국도(공주 방향)를 따라 고개 넘어 온양6동(옛 온주동)으로 가야 한다. 온양이란 지명이 유래한 본토가 바로 이곳 온주동이다. 조선시대 관아건물인 동헌과 그 문루인 온주아문, 온주향교 그리고 이곳이 옛날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읍내리 당간지주(보물 537호)를 볼 수 있다. 2만점의 민속품을 소장한 국내 최대의 민속박물관 온양민속박물관도 코스에 넣을 만하다.
 
아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 쪽지

⊙ 가는 길| 경부고속독로 천안나들목에서 나가 1번국도 타고 가다 21번 국도로 갈아타고 아산시내로 간다. 박물관네거리 지나 좌회전하면 아산시청이다. 시청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다. 서울역에서 1호선 전철로 온양온천역까지 2시간16분 소요. 청량리역~온양온천역은 2시간32분 소요. 1시간에 1~3편이 운행되는 신창행 전철을 타면 된다. 2900원.
⊙ 먹을거리|
일신족탕(설렁탕·도가니탕) (041)545-2696, 강원냉면(밀냉면·짬뽕) (041)545-4634, 신정식당(밀냉면·우동) (041)545-7500, 온양온천시장 유유자적 카페·식당(둘째·넷째 주 일요일 휴무) (041)541-7080, 굴다리식품(젓갈) (041)545-3027.
⊙ 여행 문의| 아산시청 문화관광과 (041)540-2631, 아산문화원 (041)545-2222, 온양온천관광호텔 (041)540-1200.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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