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고집들 옹기종기 모여 전통이 숨쉰다 길따라 삶따라
2010.10.14 15:45 너브내 Edit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
국내 최대 집산지…42개 국 참가 엑스포 열어
높이 2m30, 둘레 5m20, 0.7t 짜리 ‘세계 최대’

‘옹기’란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유약(잿물·나무를 태운 재와 낙엽 썩은 흙을 섞어 만듦)을 입히지 않고 구워 광택이 없는 것이 질그릇,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광택을 낸 단단한 그릇이 오지그릇이다. 질그릇 사용이 줄면서 옹기는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찰흙(점토)을 반죽해 무수히 치대고 늘였다가 겹쳐 다시 치대기를 반복한 뒤 항아리나 그릇을 빚어 잿물을 입히고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낸 토기가 옹기다.
한국전쟁 직후 자리 잡아 1960~70년대 전성기
옹기 문화는 세계 각국에 있으나, 대개 찰흙을 그냥 주물러 그릇을 만들고 굽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옹기와 차이가 난다. 옹기엔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어 공기가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숨쉬는 그릇’으로 불린다. 옹기 항아리에 음식물을 보관해 온 선조들의 지혜가 여기 숨어 있다.
전통 옹기의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울산시 온양읍 고산리 외고산 마을로 가을 여행을 떠나 보자.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옹기마을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곳이자 국내 최대 옹기 집산지다. 마을 빈터와 골목 거의 전체가 숱한 옹기 항아리들과 이색 옹기 작품, 옹기 굽는 가마, 현대식 옹기 제작 공장, 전시관 등으로 뒤덮이다시피 한 마을이다.
옹기 제작 경력 30~50년의 장인 8명으로 구성된 기능 보유단체 ‘울주외고산옹기협회’(울산옹기장·시 무형문화재 제4호) 주도로 한국 전통 옹기의 맥을 잇고 있다. 장인들은 전통가마와 현대식 가마를 이용해 생활용 그릇·항아리와 개성을 담은 옹기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이 마을이 옹기마을로 자리잡게 된 건 한국전쟁 직후 부산 일대로 몰려든 피난민들의 옹기 수요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옹기 장인들도 부산 주변에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울산 고산리엔 1957년 허덕만이라는 영덕 옹기장이 이주해 와 후진을 양성하면서 옹기마을로 발전했다. 1960~70년대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옹기 장인들이 몰려들어 최전성기를 이뤘다고 한다. 70년대엔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리해 나오면서 200여가구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을 이뤘다.

체험행사 열고 옹기 만들기 대회도
그러나 가볍고 값싼 플라스틱의 보급으로 옹기마을을 다시 쇠퇴하기 시작해, 장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100여가구만 남았고, 40여집이 옹기 제작에 참여해 옹기마을의 전통을 잇는다.
옹기가 다시 주목을 받은 건 90년대 들어 전통문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부터다. 최근엔 ‘숨쉬는 그릇’ 옹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 등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외고산옹기협회를 결성한 뒤 해마다 옹기축제를 열어 장인들의 솜씨를 발휘해 오고 있다.
올해엔 외연을 넓혀 세계 각국의 옹기쟁이들이 대거 참가하는 국제행사 ‘울산 세계 옹기문화 엑스포’를 선보였다. 제10회 외고산 옹기축제와 함께 여는 행사다.
10월24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에 참가하면 우리나라 옹기의 과학성과 그 원리는 물론, 일상생활에 쓰인 각종 옹기류, 장인들이 개성을 발휘해 만든 국내 현대 옹기 작품들과 뉴질랜드·네팔·우간다 등 각국 장인들의 작품들까지 둘러보며 옹기 문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곳곳에서 옹기 제작과정의 일부 체험행사도 진행된다. 초등생·대학생·가족들을 대상으로 옹기 만들기 대회(15~17일)도 열어 푸짐한 상품과 상금도 준다.

50년 경력 장인이 ‘5전 6기’ 끝에 성공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옹기문화관과 옹기로드관이다. 문화관에선 옹기의 역사와 기능성, 각 지역 옹기들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물을 채운 옹기 외벽에 공기압을 가하면 안에서 기포들이 무수히 발생하는 모습을 통해, 미세한 기공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옹기로드관은 일상생활용품으로서 쓰임새별로 다양한 옹기류를 만나보는 곳이다. 마야문명의 임신·출산의 여신 ‘익스첼’상 등 세계 각국의 전통 옹기 작품들도 살펴볼 수 있다.
옹기로드관을 안내하는 고성광(전통옹기 연구가)씨가 말했다. “이게 똥장군(밭에 인분을 담아 나르던 옹기), 이건 물항아리입니다. 지게로 져나르는데, 지게 다리 위에 알맞게 놓일 수 있는 모양과 크기죠. 생김새가 똑같지요? 손잡이 꼭지의 유무로 구별합니다. 똥장군엔 꼭지가 달려 있어요. 이거 착각하면 큰일 납니다.”
마을 옹기 가마 뒤쪽에선 높이 2m30, 최대 둘레 5m20, 무게 0.7t에 이르는 국내 최대 옹기도 전시돼 있다. 2009년 3월부터 6번의 시도 끝에 제작에 성공한 초대형 옹기 항아리다. 자체 무게 때문에 자꾸 무너져내려, 밑부분을 만든 뒤 숯을 넣어 일정한 시간 동안 굳힌 뒤 다음 부분을 쌓고, 전체적으로 섭씨 1200도 이상의 열을 가하는 소성(굽기)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제작을 맡아 ‘5전 6기’에 성공한 옹기 장인 신일성(67)씨가 말했다. “이건 기적이라예. 하중 때민에 자꾸 균열이 생겨노이께네 애 참 마이 먹은 옹기라예.” 신씨는 1963년 영덕에서 이 마을에 들어와 정착한 50년 경력의 옹기 장인이다.
울산시는 한국기록원의 ‘국내 최대 옹기 인증’을 거쳐 곧 영국 기네스협회에 관련 자료를 보내 ‘세계 최대 옹기 인증’을 추진할 예정이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국내 최대 집산지…42개 국 참가 엑스포 열어
높이 2m30, 둘레 5m20, 0.7t 짜리 ‘세계 최대’

‘옹기’란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유약(잿물·나무를 태운 재와 낙엽 썩은 흙을 섞어 만듦)을 입히지 않고 구워 광택이 없는 것이 질그릇, 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광택을 낸 단단한 그릇이 오지그릇이다. 질그릇 사용이 줄면서 옹기는 오지그릇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찰흙(점토)을 반죽해 무수히 치대고 늘였다가 겹쳐 다시 치대기를 반복한 뒤 항아리나 그릇을 빚어 잿물을 입히고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에 구워낸 토기가 옹기다.
한국전쟁 직후 자리 잡아 1960~70년대 전성기
옹기 문화는 세계 각국에 있으나, 대개 찰흙을 그냥 주물러 그릇을 만들고 굽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옹기와 차이가 난다. 옹기엔 미세한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어 공기가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숨쉬는 그릇’으로 불린다. 옹기 항아리에 음식물을 보관해 온 선조들의 지혜가 여기 숨어 있다.
전통 옹기의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울산시 온양읍 고산리 외고산 마을로 가을 여행을 떠나 보자. 전국에 몇 남지 않은 옹기마을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곳이자 국내 최대 옹기 집산지다. 마을 빈터와 골목 거의 전체가 숱한 옹기 항아리들과 이색 옹기 작품, 옹기 굽는 가마, 현대식 옹기 제작 공장, 전시관 등으로 뒤덮이다시피 한 마을이다.
옹기 제작 경력 30~50년의 장인 8명으로 구성된 기능 보유단체 ‘울주외고산옹기협회’(울산옹기장·시 무형문화재 제4호) 주도로 한국 전통 옹기의 맥을 잇고 있다. 장인들은 전통가마와 현대식 가마를 이용해 생활용 그릇·항아리와 개성을 담은 옹기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이 마을이 옹기마을로 자리잡게 된 건 한국전쟁 직후 부산 일대로 몰려든 피난민들의 옹기 수요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옹기 장인들도 부산 주변에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울산 고산리엔 1957년 허덕만이라는 영덕 옹기장이 이주해 와 후진을 양성하면서 옹기마을로 발전했다. 1960~70년대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옹기 장인들이 몰려들어 최전성기를 이뤘다고 한다. 70년대엔 고산리에서 외고산으로 분리해 나오면서 200여가구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을 이뤘다.

체험행사 열고 옹기 만들기 대회도
그러나 가볍고 값싼 플라스틱의 보급으로 옹기마을을 다시 쇠퇴하기 시작해, 장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100여가구만 남았고, 40여집이 옹기 제작에 참여해 옹기마을의 전통을 잇는다.
옹기가 다시 주목을 받은 건 90년대 들어 전통문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부터다. 최근엔 ‘숨쉬는 그릇’ 옹기에 대한 과학적 분석 등 재조명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외고산옹기협회를 결성한 뒤 해마다 옹기축제를 열어 장인들의 솜씨를 발휘해 오고 있다.
올해엔 외연을 넓혀 세계 각국의 옹기쟁이들이 대거 참가하는 국제행사 ‘울산 세계 옹기문화 엑스포’를 선보였다. 제10회 외고산 옹기축제와 함께 여는 행사다.
10월24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에 참가하면 우리나라 옹기의 과학성과 그 원리는 물론, 일상생활에 쓰인 각종 옹기류, 장인들이 개성을 발휘해 만든 국내 현대 옹기 작품들과 뉴질랜드·네팔·우간다 등 각국 장인들의 작품들까지 둘러보며 옹기 문화의 세계에 흠뻑 빠져볼 수 있다. 곳곳에서 옹기 제작과정의 일부 체험행사도 진행된다. 초등생·대학생·가족들을 대상으로 옹기 만들기 대회(15~17일)도 열어 푸짐한 상품과 상금도 준다.

50년 경력 장인이 ‘5전 6기’ 끝에 성공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 옹기문화관과 옹기로드관이다. 문화관에선 옹기의 역사와 기능성, 각 지역 옹기들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물을 채운 옹기 외벽에 공기압을 가하면 안에서 기포들이 무수히 발생하는 모습을 통해, 미세한 기공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옹기로드관은 일상생활용품으로서 쓰임새별로 다양한 옹기류를 만나보는 곳이다. 마야문명의 임신·출산의 여신 ‘익스첼’상 등 세계 각국의 전통 옹기 작품들도 살펴볼 수 있다.
옹기로드관을 안내하는 고성광(전통옹기 연구가)씨가 말했다. “이게 똥장군(밭에 인분을 담아 나르던 옹기), 이건 물항아리입니다. 지게로 져나르는데, 지게 다리 위에 알맞게 놓일 수 있는 모양과 크기죠. 생김새가 똑같지요? 손잡이 꼭지의 유무로 구별합니다. 똥장군엔 꼭지가 달려 있어요. 이거 착각하면 큰일 납니다.”
마을 옹기 가마 뒤쪽에선 높이 2m30, 최대 둘레 5m20, 무게 0.7t에 이르는 국내 최대 옹기도 전시돼 있다. 2009년 3월부터 6번의 시도 끝에 제작에 성공한 초대형 옹기 항아리다. 자체 무게 때문에 자꾸 무너져내려, 밑부분을 만든 뒤 숯을 넣어 일정한 시간 동안 굳힌 뒤 다음 부분을 쌓고, 전체적으로 섭씨 1200도 이상의 열을 가하는 소성(굽기)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제작을 맡아 ‘5전 6기’에 성공한 옹기 장인 신일성(67)씨가 말했다. “이건 기적이라예. 하중 때민에 자꾸 균열이 생겨노이께네 애 참 마이 먹은 옹기라예.” 신씨는 1963년 영덕에서 이 마을에 들어와 정착한 50년 경력의 옹기 장인이다.
울산시는 한국기록원의 ‘국내 최대 옹기 인증’을 거쳐 곧 영국 기네스협회에 관련 자료를 보내 ‘세계 최대 옹기 인증’을 추진할 예정이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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