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담은 호수·침엽수림에 넋을 잃다 길따라 삶따라
2010.07.15 13:06 너브내 Edit
'캐나디안 로키의 보석'캐나다 밴프국립공원 탐방

거울 같은 호수들을 품은 설산 자락으로 황홀한 숲이 깔렸다. 이끼인 듯 잔디밭인 듯 바위산 자락을 부드럽게 에워싼 초록 풀밭. 이끼들이 이룬 평원처럼 보이는 이 숲은 실은 키가 30~40m에 이르는 전나무·소나무·가문비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모습이다. 쪽빛 하늘과 흰 뭉게구름, 구름을 닮은 설산과 설산을 담은 호수, 호수를 안은 침엽수림이 펼쳐 보이는 장관에 탐방객들은 자주 할 말을 잃는다. 물가에서나 숲길에서나 산 위에서나, 눈 가는 곳이 모두 사진으로 봐오던 눈부신 풍경들이다.
로키산맥은 멕시코에서부터 미국·캐나다를 거쳐 알래스카까지 남북으로 장장 4500㎞를 뻗은 북미대륙 중서부 지역의 거대한 산줄기. 캐나다 쪽 로키 중에서도 앨버타주 남서부 산줄기는 눈 덮인 바위산들과 설봉이 품은 크고 작은 호수들이 어울려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펼쳐 보이는 곳이다. 산골짜기마다 거대한 거울을 깔아놓은 듯 보이는 이 호수들은, 빙하가 쓸고 내려간 자리에 다시 빙하 녹은 물이 고여 이뤄진 것이다. 캐나디안 로키는 밴프·요호·쿠트니·재스퍼 등 4개의 국립공원과 4개의 주립공원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서 세계 10대 절경으로 꼽히며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루이즈 호수를 품은 밴프국립공원은 ‘캐나디안 로키의 보석’으로 불린다. 1885년 캐나다의 첫 국립공원이면서 세계에선 3번째로 국립공원이란 명칭을 얻은 곳이다.
인구 8천명 소도시 밴프…연간 400만명 관광객 넘쳐
인구 8천여명에 불과한, 깜찍한 소도시 밴프. 50개의 호텔과 상가들로 구성된 밴프는 밴프국립공원의 중심이자 탐방의 출발점이다. 해발 1400m에 자리한 고원도시다. 거리는 늘 인파로 넘친다. 전세계에서 해마다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작은 소읍을 찾아온다. 청춘남녀에서부터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 지팡이를 짚은 노부부까지 함께 어울려 거리를 수놓는다. 남북으로 뻗은 밴프애비뉴를 중심으로 1시간이면 도심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밴프란 지명은 1886년 이곳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당시 ‘캐나디안 퍼시픽 철도’ 총감독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밴프셔 지방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밴프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그해 한 의사가 이곳 유황온천의 물치료 효과에 대해 발표하면서라고 한다. 캐나디안 로키엔 재스퍼의 마이엣 온천, 비시 주의 라디움 온천, 밴프의 어퍼 온천 등 이름난 온천이 세 곳 있다. 밴프 도심에서 10분 거리 설퍼산(유황산) 자락에 옛 온천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노천탕을 갖춘 어퍼 온천이 있어 탐방객들이 피로를 풀 수 있다. 온천에서 기념품가게를 운영하는 성기용(58)씨는 “5월부터 눈 녹은 물과 지표수가 섞인 미지근한 온천수가 솟기 시작해, 6월부터 9월까지 섭씨 47도의 뜨거운 물이 솟는다”고 말했다.

온천 옆에서 8분 동안 곤돌라를 타고 설퍼산(2285m) 정상에 오르면 빼어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밴프 거리와 보우 강, 밴프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인 미네완카 호수, 120여년 역사의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그리고 눈을 뒤집어쓴 바위봉인 캐스케이드산(2998m), 브루스터산(2859m), 에일머산(3162m)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밴프 거리를 감싸고 흐르는 보우 강에선 카누·카약·래프팅을 즐긴다. 울창한 숲 사이로 굽이치는 강을 따라 새소리를 들으며 노를 저어볼 만하다. 밴프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는 미네완카 호수다. 1941년 댐을 건설하며 생긴 길이 27㎞, 폭 1~2㎞의 호수다. 물은 평균 섭씨 7도 이하로 늘 차갑고 깨끗하다. 1m를 훌쩍 넘는 송어를 낚으러 꾼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보트를 타고 물길을 따라 에일머산과 캐슬산 등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을 감상해도 좋다. ‘미네완카’란 인디언인 스토니 부족 말로 ‘물의 정령’이란 뜻이다.
밴프국립공원의 보석 중 보석은 두말할 것 없이 루이즈 호수다. 캐나디안 로키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이다. 빙하 녹은 물에 침식작용으로 바위들이 깎여서 물에 녹아들어 뿌연 초록 물빛을 지녔다. 바라보기만 해도 부드럽기 그지없는 질감이 느껴지는 호수다. 거대한 빅토리아 설산이 잠긴 호수를 바라보며 방문객들은 앉고 서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이 호수는 1882년 인디언 부족의 안내로 철도를 건설하던 윌슨이란 백인의 눈에 띄며 알려졌다. 인디언이 ‘작은 물고기 호수’로 부르던 이곳에 윌슨은 에메랄드 호수란 이름을 붙였으나, 뒤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이자 1870년대 캐나다 총독을 지낸 론 공작의 부인 이름을 따 루이즈로 바꿨다. 루이즈 호수 주변은 트레킹 천국이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뻗은 숲길을 따라 이어진 미러 호수, 아그네스 호수 등 또다른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고, 장쾌하게 펼쳐진 로키의 전망을 즐기는 트레킹이다. 어느 방향, 어느 각도로 시선을 던져도 황홀한 경치가 펼쳐진다.
루이즈 호수 트레킹을 마치고 밴프국립공원 탐방의 관문인 캘거리로 돌아와 카우보이 축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때마침 로데오 축제 ‘스탬피드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날이다. 해마다 7월, 열흘 동안 펼쳐지는 세계 카우보이들의 축제다. 티브이 화면을 통해서만 보던 야생마·야생소 타고 길들이기, 도망가는 송아지 붙잡아 묶기, 역마차 경주 등을 볼 수 있다. 지난 7월9일 막을 올린 올해 스탬피드 페스티벌은 18일까지 계속된다.
보석 중 보석은 루이즈 호수…주변은 트레킹 천국
4박6일의 짧은 일정으로는, 지도 펴들고 차를 몰아, 밴프국립공원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한 일정에서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강렬한 인상으로 뇌리에 남았다.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려면 비교대상이 있거나 객관적이어야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최근 <캐나디안 로키>라는 책을 쓴 캠핑 전문가 김산환씨. 세계 각국의 국립공원 100여곳을 캠핑으로 먹고 자고 걸으며 섭렵해온 그는 밴프국립공원을 비롯한 캐나디안 로키를 “모든 것을 갖춘 국립공원”이라고 주장한다. 밴프를 세번째 방문했다는 그가 단언했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완벽한 국립공원은 지상에 없다.” 루이즈 호수를 백인으론 처음 만난 윌슨도, 당시 이 호수 앞에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에게 맹세컨대, 내가 탐험했던 모든 것들 중에 이처럼 아름다운 장면은 없었다.”
처음 가본 이도 많이 둘러본 이도 가장 아름답다 느꼈으니, 밴프국립공원이야말로 실로 ‘절경’이란 이름 붙일 만한 곳 아닐까?
밴프·캘거리(캐나다)/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회색곰 출현하는 '북쪽의 할리우드'
세계 톱스타들 무수히 영화 찍은 캐나다 '루이즈 호수' 트레킹

키다리 전나무숲이 갈라지고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숫가에 늘어선 방문객들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멈춰 서 있다. 그들 앞으로 펼쳐진 잔잔한 수면에 눈부신 설산이 거꾸로 박혀 있었다. 눈을 드니, 거대한 눈덩이를 조각해놓은 듯한 빅토리아산 봉우리가 푸른 하늘을 치받고 솟았다. 흰 구름과 흰 눈이 겹쳐지고, 물속 산 그림자가 겹쳐져 산과 물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물가에 앉아, 유키 구라모토 피아노곡 ‘레이크 루이즈’를 떠올린다. 몇 소절 따라갈 무렵, 10살 안팎 소년 둘이 키보다 세 배는 큰 카누를 메고 다가왔다. 배를 띄우자 물속 설산은 이내 가볍게 몸을 떨며 부서져버렸다.
카누들이 점령한 호숫가를 따라 완만한 숲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각국의 유명인들과 귀족들이 단골로 찾는다는 세계 최상급 호텔(1890년 건립)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 옆이 출발점이다.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들른 빵집 주인이 소식 하나를 전해줬다. “회색곰의 출현으로 아그네스 호수 주변 트레일은 폐쇄됐다.”
곳곳으로 뻗은 루이즈 호수 주변 트레킹 코스 중 산 중턱의 아그네스 호수 둘레를 도는 8시간짜리 트레킹을 할 예정이었다. 밴프국립공원엔 늑대·엘크·흑곰·회색곰 등이 서식하는데, 공격성이 강한 회색곰(80여마리가 산다)이 다가올 경우 산길은 즉시 폐쇄된다고 한다. 차라리 곰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폐쇄된 코스를 걷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고 다른 코스를 찾았다. 빅토리아 빙산 한 자락까지 볼 수 있는 그 코스를 포기하고, 미러 호수와 아그네스 호수를 거쳐 루이즈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리틀 비하이브’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쉬고 먹으며 서너 시간이면 족히 왕복하는 코스다.
송진 내음 깔린, 침엽수림 빽빽한 흙길을 걷는 기분이 들머리부터 상쾌하다. 가끔씩 건초 냄새를 짙게 풍기는 말똥 무더기를 만난다. 산행길과 승마용 산길이 가끔 겹치기 때문이다. 로키 산행에선 말을 타고 둘러보는 트레킹이 일반화돼 있다. 말을 타고 며칠씩 걸려 캐나디안 로키 일대를 탐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키다리 숲은 오를수록 나무가 굵어진다. 수종의 대부분은 ‘로지폴 파인’(천막 지주로 쓰기 좋은 곧은 소나무)이라는 소나무 종류와 전나무류, 가문비나무류의 나무들이다. 모두 옆으로 가지를 뻗지 않고 위로만 길게 자라오른 모습이다. 간벌한 나무들이 이끼에 덮인 채 숲에 방치돼 있어 숲 향기는 한결 짙은 느낌이다.
탐방객들은 대개 걸으면서 짤랑짤랑 소리를 낸다. 회색곰 등 야생동물의 접근을 예방하기 위해 안내소에서 권하는 방울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나타나는 루이즈 호수 한 자락을 보며 한동안 오르면, 마이산의 한 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절벽 앞으로 자그마한 호수 ‘미러 호수’가 나타난다. 루이즈 호수에서 2.6㎞ 지점. 말 그대로 거울처럼 맑은 수면에 산봉우리가 잠겨 있다. 말 타고 온 사람도 개 끌고 온 사람도 여기서 쉬며 말과 개에게 물을 먹인다.
800m쯤 산길을 오르면 눈에 확 띄는 또다른 호수가 자태를 드러낸다. 역시 눈 쌓인 봉우리를 담고 있는 ‘아그네스 호수’다. 탐방객들이 호숫가 나무의자들에 앉아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호수 옆엔 차와 간식을 파는 ‘티하우스’가 있어, 호수 전망을 즐기며 싸가지고 온 점심을 드는 이들이 많다. 폐쇄된 아그네스 트레킹 코스 갈림길을 버리고, 리틀 비하이브 전망대까지 1.4㎞ 숲길을 걷는 동안,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미러 호수와 아그네스 호수 물빛은 점점 더 투명한 초록빛으로 바뀐다. 멀리 루이즈 호수 물빛 또한 초지일관 우유를 탄 초록빛이다. 점점이 떠 있는 카누 떼까지 선명하다.
리틀 비하이브 전망대에선 루이즈 호수와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 좌우로 아득하게 멀리 펼쳐진 로키 설산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아그네스 호수 옆 티하우스 시설 보수를 위해 오가는 헬기가 저만치 발 아래로 장난감처럼 떠간다. 빅토리아 설산과 초록빛 루이즈 호수, 거울처럼 빛나는 미러 호수, 그 위쪽의 아그네스 호수 일부까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올려다본 바위절벽 모습이 벌통을 닮아 비하이브란 이름을 얻었는데, 빅 비하이브는 미러 호수 위쪽 절벽을 가리킨다. 멋진 풍경에 빠져 있는 동안 금세 땀이 식고 몸도 식는다. 트레킹 전에 긴팔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하산길엔 팻말을 잘 보아, 말들이 다니는 길로 들어서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환경 훼손과는 무관하다지만, 말똥이 뒤범벅된 젖은 흙길을 걸어내려오는 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루이즈 호수는 1920년대부터 ‘북쪽의 할리우드’라 불렸다. 할리우드 스타 수백명이 이곳에서 무수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앨프리드 히치콕, 마릴린 먼로, 크리스토퍼 리브, 앤지 디킨슨 등 영화인들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덴마크 마르그레테 여왕, 요르단 후세인 왕, 모나코 왕자 등 유명인들이 이곳을 찾아 쉬거나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이들이 묵어간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은 몇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
밴프(캐나다)/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인구 8천명 소도시 밴프…연간 400만명 관광객 넘쳐
인구 8천여명에 불과한, 깜찍한 소도시 밴프. 50개의 호텔과 상가들로 구성된 밴프는 밴프국립공원의 중심이자 탐방의 출발점이다. 해발 1400m에 자리한 고원도시다. 거리는 늘 인파로 넘친다. 전세계에서 해마다 4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작은 소읍을 찾아온다. 청춘남녀에서부터 어린 자녀와 함께 온 가족, 지팡이를 짚은 노부부까지 함께 어울려 거리를 수놓는다. 남북으로 뻗은 밴프애비뉴를 중심으로 1시간이면 도심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 밴프란 지명은 1886년 이곳에 철도가 건설되면서 당시 ‘캐나디안 퍼시픽 철도’ 총감독의 고향인 스코틀랜드 밴프셔 지방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밴프가 유명세를 타게 된 건 그해 한 의사가 이곳 유황온천의 물치료 효과에 대해 발표하면서라고 한다. 캐나디안 로키엔 재스퍼의 마이엣 온천, 비시 주의 라디움 온천, 밴프의 어퍼 온천 등 이름난 온천이 세 곳 있다. 밴프 도심에서 10분 거리 설퍼산(유황산) 자락에 옛 온천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노천탕을 갖춘 어퍼 온천이 있어 탐방객들이 피로를 풀 수 있다. 온천에서 기념품가게를 운영하는 성기용(58)씨는 “5월부터 눈 녹은 물과 지표수가 섞인 미지근한 온천수가 솟기 시작해, 6월부터 9월까지 섭씨 47도의 뜨거운 물이 솟는다”고 말했다.

온천 옆에서 8분 동안 곤돌라를 타고 설퍼산(2285m) 정상에 오르면 빼어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밴프 거리와 보우 강, 밴프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인 미네완카 호수, 120여년 역사의 페어몬트 밴프 스프링스 호텔, 그리고 눈을 뒤집어쓴 바위봉인 캐스케이드산(2998m), 브루스터산(2859m), 에일머산(3162m)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밴프 거리를 감싸고 흐르는 보우 강에선 카누·카약·래프팅을 즐긴다. 울창한 숲 사이로 굽이치는 강을 따라 새소리를 들으며 노를 저어볼 만하다. 밴프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호수는 미네완카 호수다. 1941년 댐을 건설하며 생긴 길이 27㎞, 폭 1~2㎞의 호수다. 물은 평균 섭씨 7도 이하로 늘 차갑고 깨끗하다. 1m를 훌쩍 넘는 송어를 낚으러 꾼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보트를 타고 물길을 따라 에일머산과 캐슬산 등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을 감상해도 좋다. ‘미네완카’란 인디언인 스토니 부족 말로 ‘물의 정령’이란 뜻이다.
밴프국립공원의 보석 중 보석은 두말할 것 없이 루이즈 호수다. 캐나디안 로키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방문객이 많은 곳이다. 빙하 녹은 물에 침식작용으로 바위들이 깎여서 물에 녹아들어 뿌연 초록 물빛을 지녔다. 바라보기만 해도 부드럽기 그지없는 질감이 느껴지는 호수다. 거대한 빅토리아 설산이 잠긴 호수를 바라보며 방문객들은 앉고 서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이 호수는 1882년 인디언 부족의 안내로 철도를 건설하던 윌슨이란 백인의 눈에 띄며 알려졌다. 인디언이 ‘작은 물고기 호수’로 부르던 이곳에 윌슨은 에메랄드 호수란 이름을 붙였으나, 뒤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딸이자 1870년대 캐나다 총독을 지낸 론 공작의 부인 이름을 따 루이즈로 바꿨다. 루이즈 호수 주변은 트레킹 천국이다. 울창한 침엽수림 사이로 뻗은 숲길을 따라 이어진 미러 호수, 아그네스 호수 등 또다른 아름다운 호수를 만나고, 장쾌하게 펼쳐진 로키의 전망을 즐기는 트레킹이다. 어느 방향, 어느 각도로 시선을 던져도 황홀한 경치가 펼쳐진다.
루이즈 호수 트레킹을 마치고 밴프국립공원 탐방의 관문인 캘거리로 돌아와 카우보이 축제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때마침 로데오 축제 ‘스탬피드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날이다. 해마다 7월, 열흘 동안 펼쳐지는 세계 카우보이들의 축제다. 티브이 화면을 통해서만 보던 야생마·야생소 타고 길들이기, 도망가는 송아지 붙잡아 묶기, 역마차 경주 등을 볼 수 있다. 지난 7월9일 막을 올린 올해 스탬피드 페스티벌은 18일까지 계속된다.


보석 중 보석은 루이즈 호수…주변은 트레킹 천국
4박6일의 짧은 일정으로는, 지도 펴들고 차를 몰아, 밴프국립공원의 진면목을 들여다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부족한 일정에서도 대자연의 아름다움은 강렬한 인상으로 뇌리에 남았다. 아름다운 경치를 표현하려면 비교대상이 있거나 객관적이어야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
최근 <캐나디안 로키>라는 책을 쓴 캠핑 전문가 김산환씨. 세계 각국의 국립공원 100여곳을 캠핑으로 먹고 자고 걸으며 섭렵해온 그는 밴프국립공원을 비롯한 캐나디안 로키를 “모든 것을 갖춘 국립공원”이라고 주장한다. 밴프를 세번째 방문했다는 그가 단언했다. “내가 아는 한 이렇게 완벽한 국립공원은 지상에 없다.” 루이즈 호수를 백인으론 처음 만난 윌슨도, 당시 이 호수 앞에서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신에게 맹세컨대, 내가 탐험했던 모든 것들 중에 이처럼 아름다운 장면은 없었다.”
처음 가본 이도 많이 둘러본 이도 가장 아름답다 느꼈으니, 밴프국립공원이야말로 실로 ‘절경’이란 이름 붙일 만한 곳 아닐까?
밴프·캘거리(캐나다)/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회색곰 출현하는 '북쪽의 할리우드'
세계 톱스타들 무수히 영화 찍은 캐나다 '루이즈 호수' 트레킹

키다리 전나무숲이 갈라지고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숫가에 늘어선 방문객들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멈춰 서 있다. 그들 앞으로 펼쳐진 잔잔한 수면에 눈부신 설산이 거꾸로 박혀 있었다. 눈을 드니, 거대한 눈덩이를 조각해놓은 듯한 빅토리아산 봉우리가 푸른 하늘을 치받고 솟았다. 흰 구름과 흰 눈이 겹쳐지고, 물속 산 그림자가 겹쳐져 산과 물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물가에 앉아, 유키 구라모토 피아노곡 ‘레이크 루이즈’를 떠올린다. 몇 소절 따라갈 무렵, 10살 안팎 소년 둘이 키보다 세 배는 큰 카누를 메고 다가왔다. 배를 띄우자 물속 설산은 이내 가볍게 몸을 떨며 부서져버렸다.
카누들이 점령한 호숫가를 따라 완만한 숲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각국의 유명인들과 귀족들이 단골로 찾는다는 세계 최상급 호텔(1890년 건립)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 옆이 출발점이다. 간식을 준비하기 위해 들른 빵집 주인이 소식 하나를 전해줬다. “회색곰의 출현으로 아그네스 호수 주변 트레일은 폐쇄됐다.”
곳곳으로 뻗은 루이즈 호수 주변 트레킹 코스 중 산 중턱의 아그네스 호수 둘레를 도는 8시간짜리 트레킹을 할 예정이었다. 밴프국립공원엔 늑대·엘크·흑곰·회색곰 등이 서식하는데, 공격성이 강한 회색곰(80여마리가 산다)이 다가올 경우 산길은 즉시 폐쇄된다고 한다. 차라리 곰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폐쇄된 코스를 걷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고 다른 코스를 찾았다. 빅토리아 빙산 한 자락까지 볼 수 있는 그 코스를 포기하고, 미러 호수와 아그네스 호수를 거쳐 루이즈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리틀 비하이브’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쉬고 먹으며 서너 시간이면 족히 왕복하는 코스다.
송진 내음 깔린, 침엽수림 빽빽한 흙길을 걷는 기분이 들머리부터 상쾌하다. 가끔씩 건초 냄새를 짙게 풍기는 말똥 무더기를 만난다. 산행길과 승마용 산길이 가끔 겹치기 때문이다. 로키 산행에선 말을 타고 둘러보는 트레킹이 일반화돼 있다. 말을 타고 며칠씩 걸려 캐나디안 로키 일대를 탐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키다리 숲은 오를수록 나무가 굵어진다. 수종의 대부분은 ‘로지폴 파인’(천막 지주로 쓰기 좋은 곧은 소나무)이라는 소나무 종류와 전나무류, 가문비나무류의 나무들이다. 모두 옆으로 가지를 뻗지 않고 위로만 길게 자라오른 모습이다. 간벌한 나무들이 이끼에 덮인 채 숲에 방치돼 있어 숲 향기는 한결 짙은 느낌이다.
탐방객들은 대개 걸으면서 짤랑짤랑 소리를 낸다. 회색곰 등 야생동물의 접근을 예방하기 위해 안내소에서 권하는 방울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나타나는 루이즈 호수 한 자락을 보며 한동안 오르면, 마이산의 한 봉우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절벽 앞으로 자그마한 호수 ‘미러 호수’가 나타난다. 루이즈 호수에서 2.6㎞ 지점. 말 그대로 거울처럼 맑은 수면에 산봉우리가 잠겨 있다. 말 타고 온 사람도 개 끌고 온 사람도 여기서 쉬며 말과 개에게 물을 먹인다.
800m쯤 산길을 오르면 눈에 확 띄는 또다른 호수가 자태를 드러낸다. 역시 눈 쌓인 봉우리를 담고 있는 ‘아그네스 호수’다. 탐방객들이 호숫가 나무의자들에 앉아 잠시 쉬어 가는 곳이다. 호수 옆엔 차와 간식을 파는 ‘티하우스’가 있어, 호수 전망을 즐기며 싸가지고 온 점심을 드는 이들이 많다. 폐쇄된 아그네스 트레킹 코스 갈림길을 버리고, 리틀 비하이브 전망대까지 1.4㎞ 숲길을 걷는 동안, 숲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미러 호수와 아그네스 호수 물빛은 점점 더 투명한 초록빛으로 바뀐다. 멀리 루이즈 호수 물빛 또한 초지일관 우유를 탄 초록빛이다. 점점이 떠 있는 카누 떼까지 선명하다.
리틀 비하이브 전망대에선 루이즈 호수와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 좌우로 아득하게 멀리 펼쳐진 로키 설산들이 한눈에 조망된다. 아그네스 호수 옆 티하우스 시설 보수를 위해 오가는 헬기가 저만치 발 아래로 장난감처럼 떠간다. 빅토리아 설산과 초록빛 루이즈 호수, 거울처럼 빛나는 미러 호수, 그 위쪽의 아그네스 호수 일부까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올려다본 바위절벽 모습이 벌통을 닮아 비하이브란 이름을 얻었는데, 빅 비하이브는 미러 호수 위쪽 절벽을 가리킨다. 멋진 풍경에 빠져 있는 동안 금세 땀이 식고 몸도 식는다. 트레킹 전에 긴팔옷을 준비하는 게 좋다.
하산길엔 팻말을 잘 보아, 말들이 다니는 길로 들어서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환경 훼손과는 무관하다지만, 말똥이 뒤범벅된 젖은 흙길을 걸어내려오는 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루이즈 호수는 1920년대부터 ‘북쪽의 할리우드’라 불렸다. 할리우드 스타 수백명이 이곳에서 무수한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앨프리드 히치콕, 마릴린 먼로, 크리스토퍼 리브, 앤지 디킨슨 등 영화인들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덴마크 마르그레테 여왕, 요르단 후세인 왕, 모나코 왕자 등 유명인들이 이곳을 찾아 쉬거나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이들이 묵어간 페어몬트 샤토 레이크 루이즈 호텔은 몇달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
밴프(캐나다)/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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