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거닐며 천년고도 되돌아볼까 길따라 삶따라

상주시청에서 중앙시장·왕산·벽화산책로 따라 옛 도심 한바퀴 4.5km
 
img_01.jpg

곶감 고을 경북 상주는 자전거 도시이기도 하다. 출퇴근·등하교 시간이면 동그라미들이 거리를 지배한다. 어린이·학생·주부·공무원·어르신할 것없이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교통분담률이 전국 최고인 21%에, 가구당 평균 2.7대의 자전거를 갖고 있다. 낙동강변 평지 도시여서 자전거 타기에 알맞은 곳이기도 하다. 그렇긴 해도 옛 도심의 선인 발자취를 둘러보는 데는 ‘걷기’만한 게 없다.
 
상주란 지명은 신라 때부터 등장한다. 고려 때 전국 8목의 하나로 상주목이 설치된 이래 조선 땐 상주목사가 경상감사를 겸할 정도로 중요한 거점도시였다. 일제 때 격자형으로 도심 구획정리가 이뤄지면서 상주성과 4대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청(남성 청사)에서 걷기 시작해 중앙시장·왕산·향청 등 옛 도심의 일부 선인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중앙시장 낡은 천장 뚫고 나무 전봇대 우뚝
 
상주시청은 본관인 남성청사와 별관 무양청사로 나뉘어 있다. 일제 때 농잠(양잠)학교 자리였다는 남성청사에 차를 대고, 웃고 재잘거리는 소리 가득한 중앙여중 옆길을 걸어 자전거 대리점 골목으로 걷는다. 자전거 도시답게 자전거 대리점 10여곳이 도심에 몰려 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 쉼터인 보성다방과 “저짝(중앙시장쪽)서 10여년, 이짝서 20여년째 막걸리를 팔아온다”는 시장대포집, 주점 딸어라마셔라 앞을 지나 곶감거리로 들어간다. 11~2월엔 발디딜 틈 없이 붐빈다는 상주 곶감 거래의 본거지다.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전병순 계장이 대로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뿐 아이고 큰길 주변까지 고마 곶감 난전이 쫙 깔립니더.”
 
네거리 건너 70년 됐다는 해장국집 남천식당에 들른다. “왜정 때 시어머니가 밥집을 시작해” 1977년 며느리 이계순(69)씨가 이어받았다. 식탁 하나 없이 “바 맨쿠로 주방을 둘러싼 탁자”와 플라스틱 의자 열 두개가 식당 시설 전부인데, 아침이면 장꾼·술꾼·공무원들이 줄을 선다. 달걀이 들어가는 시래기해장국을 먹기 위해서다(2천원·새벽 4시~오후 5시 영업).
 
큰길 건너 중앙시장 철물점 골목으로 들어서자, 무쇠솥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솥전이 기다린다. 대형 가마솥에서부터 냄비만한 아기솥까지 시커먼 솥들이 골목을 점령하고 있다. 20여년엔 4곳의 솥전이 있었으나, 한 집만 명맥을 이어오다 지난해 한 집이 새로 생겼다. 가장 큰 가마솥 40만원.
 
img_02.jpg

시장 골목은 현대식 지붕시설이 돼 있으나, 한 골목에 낡은 목재로 된 60~70년대식 옛 덮개가 그대로 남아 있다. 간판들도 낡았다. “간판 띠고 싶어도 못 띠. 천장 내리앉을까베.”(화령상회 주인)
 
이곳엔 오래된 나무전봇대가 하나 남아 있어 흥미를 끈다. 덮개지붕의 기둥 중 하나로 쓰이는데, 갖가지 슬리퍼들이 걸려 있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상인들은 한목소리로 “상주서 이래 낡은 시장골목은 여기 하나뿐이고, 옛날 전봇대도 이기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화령상회 앞에서 왼쪽으로 걸으면 네거리에서 옛날식 2층 건물 둘을 만난다. 육이오 직후에 지었다는 제일약국(옛 완설당 금방) 건물과 상주철물점 건물인데, 일제강점기 건물을 닮았다. 네거리에서 삼강당약국에 이르는 골목과 옛 명성극장 골목은 20년전까지 가장 붐비던 시장 중심거리였다고 한다.
 
뿌시시공주 옷가게 지나 우회전하면 명성극장 자리다. 왕산 옆 상주극장(20년전 문닫음)과 함께 상주의 2대 극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이 극장은 지난해까지 버텨오다 결국 문을 닫고 명성다방으로 남았다. 큰길로 나와 옛 상주우체국 건물을 만난다. 외부 장식이 독특한 일제강점기의 3층 건물인데 이동통신업체가 1층을 쓰고 있다. 길 건너 옛 버스터미널 자리였던 국제서림 건물 골목으로 들어가 도심 속의 쉼터 왕산 앞에 선다.
 
왕산(王山·해발 100m)은 도심 한복판에 솟은 상주의 진산이다. 임진왜란 전까지 이 산 주변에서 장원급제자 68명이 나와, 장원봉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19세기 말까지 이곳에 상주 관아가 있었다. 옛 상주목성도를 보면 왕산 주변으로 관아 건물이 들어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왕산은 상처투성이 산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 점령으로 훼손된 데 이어 일제강점기 땐 산봉우리를 깎아내고 쇠말뚝을 박는가 하면, 이름마저 앙산(央山)으로 바꾸고 신사를 설치하는 등 훼손을 거듭했다. 50여년전엔 산 주변이 개인들에게 넘어가면서 마구잡이 개발이 이뤄진 뒤 방치돼 지금은 작은 언덕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왕산 자락에 즐비한 거대한 느티나무·팽나무들과 14개의 크고작은 관찰사·목사 선정비·애민비들이, 이곳이 옛 상주목의 중심지였음을 더듬게 해준다. 가장 큰 비가 ‘목사이후청간애민비’인데, 길게 목을 빼고 웃는 듯한 받침돌 거북의 표정이 해학적이다. 이 귀여운 거북의 턱밑으로 시멘트축대가 지나간다.
 
img_04.jpg

 
보호수 팻말이 있는 400년 된 팽나무 옆 계단을 오르면 특이한 석불좌상을 만나게 된다. 애초 도심의 북동쪽 복룡동 마을에 있던 것을 1975년 왕산으로 옮겼다. 머리와 양 어깨, 앞쪽의 손과 양 무릎이 모두 칼로 자른 듯 떨어져나간 모습이다. 고려 초기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돼 있다. 정상 평지의 한쪽엔 뿌리를 드러낸 느티나무와 화재감시 망루를 세웠던 흔적이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어르신(85)가 느티나무 뿌리에 대해 말했다. “어데요. 내 어릴 땐 뿌리가 땅속에 있었는 기라. 자꾸 산을 까내고, 이래 비 오고 하니 뿌리가 드러난 기요.” 그는 “내 일곱살 때 엄청난 홍수가 났는데, 이 왕산만 남고 고을 전체가 물에 잠겼었다”며 “피신한 주민으로 왕산이 발디딜 틈도 없었다”고 전했다.
 
구한말 <황성신문>에 사설 ‘시일야방성대곡’을 써 민족적 분노를 분출시킨 항일지사였다가 만년에 친일로 돌아선, 상주 출신 언론인 위암 장지연(1864~1921) 기념비를 보고 왕산을 내려간다. 짙푸른 나무그늘 밑 정자 백우정에선 어르신들이 심심풀이 화투가 한창이다.
 
백우정 앞을 지나 시계방향으로 산밑을 한바퀴 돌 수 있다. 잘린 나무 밑동들과 놀이기구 이어진 산 옆길을 거닐면서 내려다보면, 옛 산자락을 깎아내고 냈을 도로변으로 밤비·꽃잎·부초·은하수 등 ‘맥주·양주’ ‘주류·안주일절’ 작은 술집 간판이 즐비하다. 20년 전엔 상주문화원이 자리해, 문화원 골목으로 불렸다는 곳이다.
 
다시 선정비 무리 앞으로 나와 큰골목길 따라 옛 상주극장(지금은 나이트클럽) 앞길을 걷는다. 작은 옷가게·술집들 지나 소주집 몰린 ‘소주 골목’을 거쳐, 주전자막걸리집 2층 커피가게에 들러 찬 주스 한잔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힌다.
 
조계종 포교당인 상락사 앞을 지나 옛 조향주조 터의 낡은 창고건물을 보고 향청(향사당·풍헌당)으로 간다. 지역 인사들이 지역발전을 꾀하면서 지방행정 보조 구실도 담당했던 곳이다. 일제때 군청 건물로 쓴 이래 지난 95년까지 군수의 관사로 이용돼 왔다. 상주 도심에 남은 유일한 조선시대 건물이다.
 
널찍한 옛 상주주조 터엔 옛 일본식 가옥(상림제대소 앞)과 굴뚝 등이 거의 방치돼 있는 모습이다. 담쟁이덩굴이 덮인 일본식 집을 보고 사진을 찍자, 골목 안 양장수선집 아주머니가 말했다. “여도 저도 쌔고 쌔발려삐린 게 왜식집들이구마. 먼 사진을 그래 찍노. 그걸 찍어 상 줄라카요?” 옛 도심 구석구석엔 낡고 무너져가는 일본식 집들이 꽤 남아 있다.
 
춘광여인숙·희망미용실 지나, 이발 경력 65년에 한자리서 44년간 주민 머리를 매만져왔다는 신성이발관 김성희(81) 어르신을 만났다. 구식 의자 두개가 전부인, “노인정 가서 소일하는 심정으로, 오천원도 받고 육천원도 받으며 머리 깎아준다”는 곳이다. 이 어르신이 평생 이발을 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들려줬다.
 
“자, 머리가 동글동글한 사람은 옆머리를 팍 쳐주고, 길쭉한 사람은 양쪽을 도톰하게 남겨줘야 해. 그래야 욕 안먹어. 뒷머리? 어떻게 생겼든지간에 뒷머린 도톰하게 죄 살려 줘야지. 헤유, 그래봤자 인전 손님두 별루 없어.”
 
 
팔순의 이발사 바리캉 들고 반기는 신성이발관
 
img_03.jpg

자연산 버섯만을 쓴다는 산버섯식당과 서울방앗간 지나 네거리 모퉁이에서 동문 터 표석(수목이발관 앞)을 만난다.   상주성 동문인 돈원문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상주 도심의 성곽과 문루를 헐고 격자형으로 구획해 도로를 내버려, 4대문이나 성곽 흔적 등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곽 돌은 북천 제방을 쌓는데 썼다고 한다.
 
길 건너 원일공업사 옆 철길 골목으로 걷는다. 경북선 철길 담벽 따라 이어진, 담장도 지붕도 대문도 나직한 골목이다. 빈집이 수두룩한데 개 짖는 소리가 골목을 흔든다. 어르신들 즐겁게 화투치고, 장기 두는 성동경로당 앞길로 나와,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랏” 노래 흘러나오는 피아노학원 지나 다시 철길쪽 골목으로 든다.
 
꽃그림 즐비한 철길쪽 벽을 따라 걸어 굴다리에 이르면, 악취 진동하는 쓰레기장 옆으로 새로 조성한 소공원이 나타난다. 낡은 집들을 철거하고 만든 공원이다.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 낡은 주택가 벽은 철거한 담벽 흔적이 뚜렷한데, 이 벽을 멋진 벽화로 장식해 거닐면서 구경할 만하다.
 
img_05.jpg

신흥철공소 앞으로 나오면 상주역 거쳐 특별한 볼거리 없이 출발점인 시청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도심 속에 살아남은 제재소(상주임업사)를 만난다. 40여년간 이곳에서 나무 켜는 일을 해왔다는 주인은 “10년 전까지 상주 도심에 제재소가 다섯군데였는데 이제 여기 하나 남았다”고 말했다.
 
시청 앞으로 걷는 길. 하교시간이 되자, 재잘거리는 소리를 내는 학생들 자전거가 줄줄이 쏟아져나와 골목길을 누비기 시작했다. 4.5㎞를 걸었다.
 
상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img_map.jpg
 
 
<상주 여행쪽지>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상주나들목에서 나가 3번 국도 따라 상주시내로 간다.
⊙ 먹을 곳| 산버섯식당(054-531-9225) 싸리버섯전골·산능이무침 등, 까치복집(054-533-6010) 복어탕, 남천식당(054-535-6296) 시래기해장국.
⊙ 도심주변 볼거리| 상주박물관·자전거박물관·경천대·상주향교·복룡동당간지주 등. 시청(남성청사), 자전거박물관, 각 동사무소에 무료 자전거가 마련돼 있다. 신분증을 맡기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여행 문의| 상주시청 (054)533-2001, 상주문화원 (054)535-2339.
         
이병학 기자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