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에 레일 깔고 5가구 무농약 나물농사 마을을 찾아서

울릉군 사동 안평전마을
친환경 인증…고기맛 나는 삼나물 스님 단골
불에 환장하는 깍새 잡으려 뒷산 태워먹기도

 
 
“이만하면 평평하지예? 이기 비탈이모 어디가 평지고?”
 
성인봉 남동쪽 산자락, 일명 깍새산 밑 비탈진 동네 안평전(安坪田)에서 주민 김열수(57)씨가 말했다. 울릉읍 사동 안평전마을은 밭도 길도 산비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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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내륙의 나리분지·알봉분지를 제외하면 널찍한 평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산줄기 일부에 태하리 서달마을 같은 평지들이 있으나 매우 드물고 규모도 작다.
 
‘평안하게 살 만한 터전’인 안평전에선  5가구가 비탈밭에서 삼나물·참고비나물을 재배하며 살고 있다. 옛날엔 야산에서 채취하던 이 나물들을, 소비가 늘면서 농가에서 대량 재배한다.
 
수틀려 ‘콱 더덕농사나 해묵을란다’고 하면 질겁
 
Untitled-6 copy.jpg주민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친환경·무농약 재배 안 하모 누가 사겠노. 우린 똘똘 뭉쳐가가 친환경 인증 나물만 기른다.”
 
비탈밭에 모노레일을 설치해, 거름도 옮기고, 나물도 실어오고, 사람도 타고 다닌다. “다년생이니 함 모를 숨가놓으모 한 7~8년은 뜯어 묵지예.” 삼나물은 3월부터 4월초까지. 고비는 4월초부터 5월초까지 채취한다.
 
더덕은 농약을 쳐야 하기 때문에 이 마을에선 재배하지 않는다. 삼나물 밭 부근 100m 인에 더덕밭이 생기면 삼나물도 친환경 인증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10년 전 이 마을에 들어온 김열수씨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가, 이 마을서 누가 한나 수틀린다꼬 ‘내사 마 인자 콱 더덕이나 해묵을란다’ 카모 고마 삼나물이고 뭐고 다 끝장나 삐는 기라.”
 
나물은 말린 뒤 포장해서 농협 수매에 넘긴다. 육지의 절로 보내주기도 한다. “삼나물에서 고기맛이 나가 그런지 스님들이 마이 찾심더. 초파일 전에 주문 마이 와요.”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궁핍한 시절을 견뎌온 분들이다. 30~40년 전까지도 하루하루 먹을 걸 걱정하며 살았다고 한다.
 
갑상선을 앓아 목이 쉰, 47년 전에 안평전에 들어온 안원수(75)씨가 애써 입을 여셨다.
“그땐 칡뿌리 캐고, 옥수수·감자 숨가서 명이나물죽 쑤어 먹는 기 일인기라. 배고프면 몬 전딘다.”
 
옆에서 부인 김혜순(71)씨가 말을 받았다.
“그기 음식이가? 돼지죽이지. 요즘엔 돼지도 안 묵을기라.”
 
목숨을 이어주던 ‘징그러운’ 명이나물은 이미 울릉도를 상징하는 먹을거리의 하나가 됐다. 울릉도엔 쌀이 전혀 나지 않는다. 과거 태하리에 있던 논도 밭이 된 지 오래다. “과일도 다 벌거지 묵고 옳게 안 된다.” 감나무·밤나무가 있지만, 집에서 맛볼 정도만 열리고 만다.
 
마을 최고령인 구상댁 최순옥(86)씨가 말했다. “내가 현포서 나 가 스물 둘에 안평전으로 시집와 가, 몇십년을 옥수수·감자 숨거묵고 나물 캐 가 묵고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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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전은 성인봉 등산코스 출발지 중 한 곳이다. 안평전 코스는 성인봉 정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래선지 옛날엔 “싹쌔기(점쟁이)들도 이 길로 마이 다녔다”고 한다. 
 
안원수씨도 성인봉에 부지기수로 올랐다고 말했다. “몬살 지게 마이 갔지예. 묵고 살자모 조래기(조랭이) 지고 가망(걸망) 지고 가 가 명이도 하고 전호도 하고 약초도 캐 가 와야지. 그래야 돼지죽이라또 끼리 묵지예.”
 
그럼 그 흔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안씨·김씨 부부가 한입으로 말했다.
“그렇게들 생각하는데, 고기가 지천으로 나도 그래 몬해요. 고기로 주식을 하모 얼마 안가 얼굴이고 몸이고 다 부어올라요. 맛으로나 묵는 기지. 절대 몬한다.”
 
내친 김에 궁금했던 거 또 하나 물었다. 울릉도엔 정말 뱀이 없을까. 안씨가 단호하게 말했다. “뱀은 일부러 갖다 풀어놔도 몬 살아요. 그기 바다에서 파도칠 때 반짝반짝 하는 빛을 보모 뱀이 힘을 몬 쓰고 죽어삔다 하데요. 우리야 육지 동물원에나 가서 봤지, 여는 뱀 없어예.”
 
더덕향 나고 단맛 진한 고로쇠물도 짭짤한 부업
 
Untitled-5 copy.jpg안평전마을 뒷산 이름이 깍새산이다. “깍새도 마이 잡아묵었다.” 초여름 저녁 안개 낀 날이면 ‘깍새’가 깍새산으로 깍~깍 울며 떼 지어 날아들었다고 한다. 김씨가 말했다.
 
“안개가 꽉 낀 저녁나절에 이래 방에 호야불 켜놓고 있으모 유리창에 뭐가 ‘화다닥 탁’ 하고 부닥치는 기라. 그기 깍새라. 놀라서 나가 보모 시커먼 새가 골이 터져 자빠진 기라.”
 
안씨도 말했다. “호야불 밖에 내걸모 깍새들이 불 보고 환장해서 뎀빈다. 그라모 마당비로 고마 후려쳐갖고 잡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깍새 잡는 적나라한 방법이 드러났다.
 
“어예 잡나 하모, 저 깍새산에 가모 깍새 굴이 많다. 깍새 굴에다 불을 지르는 기라. 그라모 이기 튀 나오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라모 땅을 파 가 알도 묵고 새도 묵는 기라. 깍새 잡다가 저 깍새산 마이도 태워 묵었다. 홀랑 태운 적도 많다. 그라모 불 끄러 사람들이 오는데, 몇날 며칠 불 끈 적도 있다. 우리 집에서 밥 묵으며 불껐다. 물 길어와 가 끄는데, 그게 잘 꺼지나. 그래 저 산 별명이 불탄산이라.”
 
먹을 게 없던 때 주민들의 단백질 공급원 중 하나였던 깍새는, 이젠 희귀조가 된 슴새를 말한다. 조선 말에는 슴새 떼가 나리분지를 덮을 만큼 무수히 번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먹을거리 풍부해진 요즘, 안평전 주민들의 관심은 고로쇠 물 채취에 쏠려 있다. 울릉도 고로쇠 물은 더덕향이 나고 단맛이 진하다고 한다. 1월 말부터 경칩까지 물을 받는다. 울릉도 고로쇠 채취는 3~4년부터 시작됐다. 이젠 나리분지·알봉분지를 비롯한 산자락 대부분에서 고로쇠 물을 받는다. 김열수씨도 올해 처음 채취 행렬에 가세했다. “물 받아가 육지 친지들에게나 보내줘야지.”
 
2~3월 안평전마을에 들른다면 깍새 구경은 못해도, 비탈밭 눈경치와 함께 눈 속에서 싹튼 명이·전호 나물, 그리고 진한 고로쇠나무 수액을 맛볼 수 있다.
 
울릉군 농업기술센터에선 안평전마을 등 울릉군 특산물 재배 마을들을 선정해 조만간 나물 채취체험 행사등 농촌체험행사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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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 쪽지
 
가는길

포항 여객선터미널에서 매일 1회 여객선이 울릉 도동항을 오간다. 포항 오전 10시 출발, 도동항 오후 3시 출발. 매일 당일 아침 7시에 기상상황을 보아 출항 여부를 결정한다. 기존의 2400t급 썬플라워호가 정기점검을 위해 2월25일까지 운항을 멈추고, 이 기간에 대체 선박으로 기존 묵호~울릉 항로의 440t급 한겨레호(별도 화물칸 없음)가 포항에 투입된다. 일반석 5만8800원, 우등석 6만4400원. 3월부턴 동해 묵호항~울릉 여객선 운항이 재개(한겨레호)된다. 한겨레호는 매일 독도 운항(4만5천원)도 하게 된다. 대아고속해운 (054)242-5111.
 
안평전 마을은 도동에서 사동으로 넘어가다 도동터널 지나자마자 울릉마리나관광호텔 쪽으로 우회전해 올라가 오박골, 중평전 마을을 차례로 지나 10분 정도 오르면 나오는 마지막 마을이다. 2008년 지방도가 되면서 기존의 3.5m 시멘트길을 6m 시멘트길로 넓혔다(일부 구간은 아직 3.5m). 김열수씨 011-818-3527. 울릉군청 문화관광과 (054)790-6700.
 
묵을 곳
도동항, 저동항 등에 민박·여관들이 있다. 민박은 2만원, 모텔은 3만~4만원. 도동에서 도동터널 지나 사동리엔 대아리조트호텔이 있다. 겨울 비수기(12월1일~3월31일)엔 별관 121실만 운영한다. 한·양실(2인1실) 주중 6만5천원, 주말 9만5천원. 패밀리실 주중 9만5천원, 주말 14만5천원. (054)791-8800.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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