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불면 뽀얀 꽃 천국인 여인마을 마을을 찾아서

서천 앵두마을 가루골
50~100년 묵은 200여 그루 하늘 뒤덮어
6월 초면 빨갛게 익어 온 마을이 발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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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천 푸르고 햇살 나른한데, 길섶에 앉은 어르신은 하염없이 쑥을 뜯으신다. 천방산 신록 우거진 골짜기에서 떼구르르 굴러온 꾀꼬리 소리가 앵두나무 가지마다 알알이 맺혔다. 어르신은 해맑은 꾀꼬리·검은등뻐꾸기 소리보다 까마귀 울음을 먼저 듣는다. “까그매가 또 가자 어서 가자구 까악까악 하네.”
 
“어디로요?” 여든여덟 구복희 할머니가 웃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어디 것슈우. 저승 가자는 게지.” 주름지고 햇살에 그을린 얼굴이지만 앵두처럼 고운 미소가 번진다. 쑥을 한 보자기 뜯어 든 할머니가 느릿느릿 앵두나무 우거진 숲길을 걸어 집으로 가신다. 열여섯에 시집와 70여년을 하루같이 살아온 흙벽집이다.
 
 
“아따, 그걸 어느 세월에 따구 앉았대애 시바앙, 일두 바쁜디”
 
 “여긴, 여인국이여. 내외가 사는 집은 두 집뿐이니께.”(주민 양철애씨·70) 아래뜸·중뜸·웃뜸·집너머에 흩어진 열 집 중 여덟 집이 홀로 사는 할머니 집이다.
 서천군 문장면 북산리 가루골. 50~100년 된 앵두나무 200여 그루가 우거진 앵두마을이다. 서천 지역에 처음 정착했다는 안씨·조씨·송씨 중 진천 송씨가 400년 전 이 골짜기에 들어와 살며 집성촌을 이뤘다. 지금도 10집 중 2집만 타성이고 8집이 송씨 일가들이다.
 “앵두나무를 많이 심어야 마을이 번성한다” 해서 100여년 전부터 앵두나무를 심어 왔다고 한다. 집도 마을길도 산자락도 온통 앵두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묵밭이 된 옛 집터도 잡풀 우거진 빈집도, 갈래갈래 뻗어나온 앵두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나 시집와서두 마이덜 심었슈. 앵두나무 가지를 그저 찢어다간 심구면 잘 자라더먼유.”(구복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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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에 꽃 피면 말도 못혀. 온 동네가 기양 다 훠언혀 기야앙. 뽀얀한 게 아주 보기 좋다니께.”(주민 송순조씨·75)

5월 중순 무렵부터 앵두는 서서히 주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해 5월 말이나 6월 초면 빨갛게 익어 “온 마을이 벌그레”해진다. 마을 주민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할머니들이 한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지금은 덜 익어 먹덜 못히어. 다음주쯤에 앵두 따 먹으러 오라니께. 암 소리 안헐 틴께.”
 
주민들은 해마다 앵두가 익다 못해 검붉은 색으로 익어 터져 떨어지도록, 그 수많은 앵두나무를 그냥 내버려 둔다. 송흥식(71) 할머니가 말했다. “아따, 그걸 어느 세월에 따구 앉았대애 시바앙. 일두 바쁜디 누가 딴디야. 칠팔십 넘은 할머니들이 힘이 있간?” 
 
 
 “따 먹구 가문 누가 뭐랴, 가지째 차에 싣구 가는 겨 그냥”
 
먹을 만큼 따서 맛보곤 내버려 두는데, 이걸 이웃 마을에서도 와서 따 가고, 일부 도시 사람들도 알음알음으로 찾아와 따 먹고 간다. 과일이 귀하던 수십년 전에야, 온 주민이 앵두를 수확해 서천장에 이고 나가 팔았다. 그냥도 먹고, 앵두술도 담그는 이들이 꽤 많았다. 말려 가져가면 한약방들에서 많이 사갔다. “시방은 약재로 들여온 중국산 앵두가 판을 쳐 못 판디야. 말리면 아주 모양이 똑같디야.”
 
5년 전엔 군과 면의 권유로, 앵두 따기 체험 등 방문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앵두마을 축제를 열기도 했다. “근데 그게 아니더먼. 나서서 행사를 맡어 헐 사람이 절대적으루다가 부족히야. 늙은이 몇 사람이서 해보니께 하이구 힘이 부쳐서 못히야. 한 이태 하다간 치워버렸슈.”(송순조씨)
 
방문객들의 몰지각한 행태도 주민들을 실망시켰다. 비닐 씌운 밭에서 나뭇가지로 참깨 심을 구멍을 뚫던 송흥식 할머니가 말했다. “따 가라구 내버려 뒀디만, 아주 기양 나무가지를 찢어가지구 가는겨. 따 먹구 가문 누가 뭐랴. 가지째 차에 싣구 가는 겨 그냥. 그거 못쓰거덩.” 이래서 어르신들은, 축제도 포기하고 앵두 따기도 포기하고 “그냥저냥 참깨 고추 심궈 먹으며” 사신다.
 
축제야 열리든 말든 앵두알은 나날이 붉어져 5월 말이면 먹기 알맞게 익을 전망이다. “완전히 다 익었을 찍에 비가 오믄 끝장이야. 다 터져 부랴. 그 전에 와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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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골이 된 사연은 무덤에 가로로 관을 안치한 때문

 
이 마을 이름이 가루골이 된 사연이 재미있다. 330여년 전 이 마을에선 6형제가 모두 대과에 오르는 경사가 났다고 한다. 이분들이 하나둘 돌아가시면서 마을 뒷산에 묘를 쓰는데, 지관이 터를 잡았다고 한다. 6형제의 11대손이라는 송순조씨가 말했다.

“지관이 꼭 그 자리에 모이를 써야겠는데, 아무리 ‘쇠’를 놔서 재봐야 맞덜 안히야. 고민 고민하구 있자니까, 앞에서 밭을 갈구 있던 농부 목소리가 들려오더랴. ‘이놈에 소는 그저 세로로 갈 중만 알았지, 가로로 갈 중은 모르네그랴. 이놈에 소가.’ 이 말을 듣구선 지관이 무릎을 치면서 모이 자리를 가로로 쟀더니 아주 딱 맞더랴.”
 
관을 가로로 안치해 묘를 만들었던 데서 ‘가루골’이란 마을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당시 지관은 “마을에 꼽새가 셋 난 뒤에는 모이를 바르게 옮기라”고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꼽새가 300년 동안 셋만 났겠어. 그래설랑 전에 내가 집안 어르신들께 ‘이젠 모이를 바루 욈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구 상의를 했디만, 다들 그냥 두랴. 그래선, 말었지 뭐.”
 
마을 최고령자 구복희 할머니 집은 맨 윗집이다. 낡은 흙벽에, 마루도 반질반질, 봉당 바닥도 반질반질, 부엌 문턱도 반질반질 닳았다. 말라가는 쑥 향기 은은한 마루에 앉으니 앞마당 가에 무성한 앵두나무들 너머로 키다리 미루나무도 은행나무도, 선명한 보라색 꽃들을 피워올린 오동나무도, 무리지어 우거진 가죽나무들도 모두 연초록 새잎을 무성하게 거느렸다.
 
할머니는 모처럼 찾아온 이야기 상대를 놓치고 싶지 않은 눈치다. 묻지 않아도 옛날 얘기를 줄줄 풀어놓으신다. “저 우에두 집터, 그 우에두 집터, 요 건너도 집터, 그 아래두 집터, 거긴 부잣집 황서방 집터였는디, 사람이 안 사니께 다 무너져버리데유.” “내 시집왔을 땐 저 은행나무두 쬐깐했는데, 인젠 내 키보담 몇배나 커졌네.”
 
자리에서 일어서자 따라 일어서며 말씀하신다. “또 와유. 앵두 따 먹으러 꼭 와유. 낼모레면 잘 익을 테니께.” 앵두나무 숲 그늘까지 배웅하며 손으론 길섶의 풀들을 매만지신다. 마을을 내려오며 보니 할머니들 손길 발길 스쳤을 길섶마다 노란 애기똥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서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쪽지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서천나들목에서 나간다. 중부지역에선 논산~천안 고속도로, 또는 대전~당진 고속도로 타고 공주에서 공주~서천 고속도로로 바꿔타고 서해안고속도로로 간 뒤 서천나들목에서 나간다. 부여 쪽으로 우회전(판교 방향)해 4번 국도 타고 저수지 물길 보며 판교 쪽으로 가다 흥림리·에스케이주유소 지나 등고리·문고길 팻말 보고 우회전(천용사 방향)한다. 서천 생태전원마을 지나 고개 넘으면 왼쪽이 가루골이다. 작은 삼거리에 차를 대고 걸어오른다(마을 위론 차 댈 곳 없음). 철도 장항선 3시간30분 소요, 강남터미널 고속버스 3시간 소요.

⊙ 먹을 곳| 판교면 소재지(현암리)에 즉석에서 뽑는 냉면과 만두를 내는 수정냉면(041-951-5573), 삼성식당(041-951-5578)이 있다. 보신탕을 내는 우이식당·벌떼가든도 있다. 서천읍 특화시장은 해산물 중심의 2층 시장. 2층 식당에서 주문하면 아래층 시장에서 두레박으로 생선을 올려받아 요리한다.

⊙ 주변 볼거리| 판교면 소재지엔 정미소·상점 등 일제강점기 건물들이 여럿 남아 있어 둘러볼 만하다. 5번 국도변 종천면 지석리 옛 철도 기동역 부근엔 작지만 아름다운 조선시대 3층석탑이 있다. 희리산 절터에 있던 것을 일인들이 밀반출하다 걸려 현 위치에 남게 됐다.

⊙ 한산모시문화제| 6월11~14일 서천군 한산면 한산모시관 일대에서 제21회 한산모시문화제가 열린다. 모시 탄생 과정을 체험하는 모시제작체험, 모시풀을 활용한 공예체험, 옷감짜기 체험, 소곡주 제조체험 등을 할 수 있다. 길쌈시연·모시패션쇼 등도 진행된다.
 
⊙ 여행문의|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256, 문산면사무소 (041)950-4609.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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