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에서 ‘물개’ 총각 할아버지 모르면 ‘간첩’ 길에서 만난 사람

잠수부 성평전씨
미끈한 검은 차림으로 바다 누비며 배 ‘구조’ 
산소통 없이도 날랜 몸짓이 영락 없는 ‘청년’

 
 
포항시 구룡포읍 장안동 뒷골목에 허름한 해물칼국수집이 있다. 탁주대리점을 겸하는, 40여년 전통의 ‘까꾸네 모리국수’다(모리는 보통보다 많다는 뜻의 일본어). 내건 간판도, 차림표도 없이 국수 하나만 내는 뒷골목 식당이지만, 지역 주민 치고 이 집에서 해물국수 한 냄비, 막걸리 한 사발 안 해본 이 없을 정도로 이름난 집이다. 뱃사람도 선생님도 농사꾼도 시인도 예비군중대장도 잡상인도 나그네도 찾아와, 푸짐하고 걸죽하고 얼큰한 냄비칼국수에 술 한 잔 곁들이며 몸과 마음을 녹인다.
 
바닷속 40년, 배 위보다 배 밑 사정에 ‘빠삭’
 
Untitled-5-copy-2.jpg몹시 춥고 술 안 깨는 구룡포의 겨울 아침. 한 세숫대야 분량은 됨직한 국수 한 냄비(2인분)를 앞에 놓고, 물메기·아귀 토막, 대게 넙적다리, 홍합, 미더덕…, 이리 저리 살피고 있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며 시커먼 그 분이 쑥 들어왔다.
 
“하이고 마, 아침부터 일 했능교? 식사는?”
“배 쪼매 봐돌라캐싼는데 우야노, 라면 끼리 무찌. 소주 한 잔 주소.”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물개 등허리처럼 검게 빛나는 잠수복 차림의 남자다. 언 손을 들어 일단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주인 아주머니 이옥순(66)씨가 내온 뜨거운 국물을 들이켰다.
 
잠수 경력 40여년의 칠순 잠수부 성평전씨. 아침부터 바닷물에 뛰어들어, 배의 스크류에 감긴 통발 그물과 밧줄을 쇠톱으로 잘라 걷어내 주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 양반이 그 머꼬 구룡포 최고 잠수부 아잉교. 배 프로펠라 곤치는 덴 이 양반 따라갈 사람 읍다카이. 젊은사람 몬하는 일 다 해치워삔다.”
 
구룡포 토박이로 20대 중반부터 잠수부 일을 해왔다. 구룡포 사람치고 성씨를 모르면 간첩이라는데, 간첩 쯤 되면 성씨를 모르고 침투할리 없다는 게 또한 중론이다. 성씨는 구룡포항 바다 밑 사정은 안 보고도 꿰뚫는다고 한다. “배 위의 일은 잘 몰라도, 배 밑에서 일어나는 일은 빠삭하다”는 분이다. 그물이나 밧줄에 얽혀 꼼짝 못하는 배들을 구조하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산소통도 없이 들어간다.
 
돌아가신 모친 그리나…흘러간 옛 노래 ‘흥얼흥얼’
 
Untitled-6-copy.jpg“내가 와 칠십잉교. 인자 육십이라카이.” 나이를 묻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주인 아주머니의 “칠십”이라는 귀띔에 즉시 반박하는 말씀이다. “또 나이 쭐일라카네. 나이 많다꼬 일 안 주능교. 십년 전에도 육십이라카드만.”
 
선박 응급구조와 함께 배 청소, 잡다한 고장 수리까지 도맡아 한다. 해양구조대의 젊은 다이버들이 며칠씩 매달리다 두 손 드는 고난도 작업도, 그가 나서면 두어 시간만에 해치운다고 한다. 동·남해안 포구로 출장도 많이 다녔다. “울진·영덕도 가고, 마산·여수도 갔다왔고.”
 소주 석 잔을 마신 성씨가 잠수복 갈아입으러 간다며 일어섰다. “가시이더.” 그가 떠난 뒤 주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짝살도 참 잘 쓰니더. 1등 명사수라. 고기를 보기만 봤다카믄 칵 찍어 올리는기라.”
 불어가는 해물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덧붙였다.
 
“저 양반 낙이 뭐나카모, 흘러간 옛날 노래 부르는기라요. 혼자 노래방 가가꼬 고마 두시간 세시간씩 불러제끼는기라. 그래가꼬 골목 왔다갔다 하면서도 또 불러요. 그기 뭐꼬 고복수·남인수 이런 노래 안 있능교.”
 
물메기 덩어리를 뜯으며 국수를 반도 넘게 남길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또 말했다. 
 
“마 밥이래또 제때 묵으모 참 일도 더 마이 할텐데. 김치 담가가 여주고 반찬 맹기러 가가 묵으라캐도 잘 안 묵는기라. 자기 어매 담근 김치만 몬하다꼬.”
 
성씨는 모친을 모시고 둘이 살다 모친을 여읜 뒤 혼자 사는, 총각 할아버지다.
 
구룡포(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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