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 누비며 뜨끈한 ‘정’ 말아 콩국 한그릇 길에서 만난 사람

포항 죽도시장 ‘외환아재’ 이일혁씨
여기서도 “아재” 저기서도 “아재”, 아지매 단골
최고 오카리나 만들고, 최고 연주자 되는 게 꿈

 
 
Untitled-1 copy.jpg포항 죽도시장 콩국장수 이일혁(36)씨는 ‘외환아재’로 불린다. 지난해 말까지 이른 새벽시장으로 나가 콩국을 팔고, 아침엔 시장 옆 외환은행으로 출근해 경비 일을 했었다. 경비 일이 너무 고되어 사직하고 올해부터는 콩국 장사에 ‘올인’하고 있다. 14만㎡ 드넓은 죽도시장 골목골목을 밤낮으로 누빈다.
 
“외환아재 왔네. 아재야, 여기 콩국 하나 말아주소.” 한복집 아지매가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부른다.
 
“예 어머니, 뜨끈한 콩국 금방 갖다 드리죠. 도너츠 많이 넣어 드릴까요?” 이씨가 시원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환하게 웃는다.
 
손수레에 실은 아담한 스테인리스 통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어 뜨거운 콩국을 1회용 그릇에 담고, 콩알보다 조금 큰 튀긴 찹쌀떡 조각과 땅콩을 한 숟가락씩 떠 넣는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을 살짝 뿌리면 먹음직스런 즉석 콩국이 만들어진다.
 
은행경비 일과 ‘투잡’하다 아예 ‘올인’
 
“우째 이래 길이 비잡나 했다. 이 멋재이 아재가 이래 와 있으니 안비잡겠나?”
 
물곰 등 생선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손수레를 밀고 오다, 손님들에 둘러싸여 콩국을 말고 있는 이씨에게 말을 건다.
 
“아이구, 죄송. 요번엔 물곰 아지매가 수레 좀 먼저 빼주이소. 하하.”
 
이씨는 죽도시장의 웬만한 가게와 상인들의 사정을 대충은 꿰고 있다. 은행 경비로 일하면서 시장을 돌며 수금하는 일과 현금을 전달해 주는 일에 숱하게 따라 다녔기 때문이다.
 
Untitled-2 copy 3.jpg“시장분들 절반 가량은 알고 지내는 사이죠.”
 
가만히 지켜보니 시장 아지매들은 콩국도 콩국이지만, 누가 불러도 시원시원하게 대답하고 편하게 대해주는 이씨의 출현 자체를 반기는 모습들이다. 항상 웃는 얼굴, 밝고 쾌활한 표정, 서글서글한 성격이 시장골목 아지매들에게 인기를 끄는 비결인 듯하다.
 
그는 “하루에 4시간 가량만 잔다”고 했다. 새벽 2시면 일어나 수레를 챙겨 시장골목으로 나온다. 오전·오후 내내 골목을 누빈 뒤 저녁 6시쯤 퇴근한다. 다음날 팔 콩국을 준비하고 10시면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일해  2천원짜리 콩국을 하루 평균 50그릇을 판다.
 
왜 그렇게 빠듯한 생활을 하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 시원하고도 간결하다. “열심히 일해서 돈 뫄야죠.”
 
그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이다. “집사람하고 애들한테 미안할 따름이에요. 함께 놀아줄 시간이 적으니.” 그가 쉬는 때는 일요일이다. 교회에도 가고 집안일도 돕고 아이들도 챙긴다.
 
청아한 음악소리처럼 “자 왔습니다, 왔어요오”
 
“아재요. 여기 콩국….” 한 아지매가 부른다.
 
그가 큰 소리로 대답하며 말했다. “예 어머니. 어이쿠, 벌써 서울까지 왔네.” 그 아지매 가게 상호가 서울아동복인 걸 빗대어 능청스럽게 하는 소리다. 서울아동복 아지매가 이씨에게 다가오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재, 콩국 하나 말아서, 저어기 미역 좌판 아지매 갖다 드리소. 계산은 내 하께.”
 
라면상자 두개 크기의 작은 좌판을 벌인 미역 아지매는, 놀라고 고맙고 기쁜 표정으로 콩국을 받아 든다. 한겨울 시장 골목 추위가 뜨거운 콩국 한 그릇으로 한결 누그러졌다.
 
Untitled-2 copy 2.jpg”시장분들, 참 정이 많아요. 하루하루 시장에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의 말투엔 사투리가 별로 섞이지 않았다. 울릉도 출신인 그는 해군 하사관 생활 7년을 하면서 수도권지역 말을 배웠다고 했다. 사투리 쓴다고, 고참한테 번번이 깨지고 나서였다.
 
그가 가진 꿈도 단순하고 시원했다. 돈 벌어 멋진 오카리나 연주자가 되는 것. 그는 외환은행 경비로 일하기 전에는, 입으로 부는 악기인 오카리나를 만들어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동료들과 연주회를 할 만큼 연주 솜씨도 ‘꽤 높은 수준’이라고 자랑했다.
 
“지금은 접고 있지만요. 언젠가는 최고의 오카리나를 만들고, 최고의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경기 부진, 재래시장 침체, 일자리 부족…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 30대 가장 이일혁씨의 콩국 손수레가, 시장 골목에 드리운 춥고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 돌파해 나가고 있다.
 
“자아, 콩국 왔습니다아. 뜨거운 콩국이요오.”
 
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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