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저 일하고 나서 먹는 물맛이 최고야요” 길에서 만난 사람

[길에서 만난 사람] 양구 조선족 일꾼 한순금씨

 

남편·아들과 같이 한국 와 일하고 또 일하고
고향으로 돈 부치며 귀향 날까지 ‘행복 저축‘
 

   
 

untitled-1_copy.jpg


거대한 그릇을 닮은 강원도 양구 해안분지. 전체 모습을 사진에 담으러 만대리쪽 산 중턱으로 올랐다. 연무가 끼어 온 마을이 희미하다. 포도밭에 지천인 민들레꽃과 홀씨를 찍고 발을 옮겼다. 산자락과 밭 사이 나무그늘 밑으로 물통을 든 아낙네가 보인다. 거기 샘이 있었다.

 

"고저 일하고 나서 먹는 물맛이 최고야요." 연변에서 온 조선족 일꾼 한순금(59)씨다.

 

물통이 무거워 보여 들어주겠다고 하니 "일 없시요" 한다. 사양 끝에 "한국 사람들 정말 친절합네다"하며 물통을 넘겨준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쉬는 밭둑에 이르자 한씨가 "여러분들, 이 양반이 물통을 옮겨다 줬시요" 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20여명이 고추를 심기 위해 밭이랑에 비닐 씌우기 작업을 하다 쉬는 중이다.

 

중국 연변자치주 길림성 연길시에 사는 한씨는 6개월 전 남편 김장순(64)씨·아들(37)과 함께 5년 비자를 받고 한국에 왔다. 아들은 서울 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한씨 부부는 같이 온 조선족 일행 60명과 양구군 해안면에서 일하게 됐다.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하루 3만원씩 받는다. 40대 아주머니부터 70대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받는다.

 

"한달에 한번씩 신봉(월급)으로 받기도 하고 일당으로 받기도 하고 고저 원하는 대로 받습네다."


untitled-2_copy%255B.jpg한씨 일행은 지난 6개월 동안 무·배추 수확, 시래기 말리고 거두기, 재배한 나물 수확과 저장 일을 해왔다. 일행 모두가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밝은 표정이다. 몸이 아프면 쉬게 하는데, 하루치라도 더 벌려고 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한씨가 "노는 날은 없시요. 비가 쎄게 오면 놀지만 와 놉네까"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리옥선(65)씨가 거들었다. "돈 벌러 왔으니 일을 해야지, 하루라도 쉬면 손해가 많단 말입네다. 우리는 고저 돈 버는 재미로 일하는 거야요."

 

돈을 받으면 모아뒀다가 쉬는 날 고향으로 부친다. "돈 타서는 인제읍내 은행으로 가서 중국으로 디리 부칩네다."

 

마을 숙소에선 남녀 따로 큰 방 하나에 10~15명씩 잔다. 남편과 따로 자니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니 한씨는 "일 없시요. 늘그막에 무슨 한방 볼 일 있다구" 하며 웃는다.

 

이들은 가장 불편한 점으로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꼽았다. "맛도 다르고 음식 이름도 다르고 하니 우리끼리 숙소에서 직접 해먹는단 말입네다. 돼지탕국도 끓이고 무국도 끓이고, 또 사장님(밭 주인)이 해고기(바닷고기)도 사다주고 해서 잘 먹는단 말입네다."

 

돌아가며 물 한 잔씩 마시고 대화가 잠깐 멈춘 사이, 먼 산을 바라보는 일꾼들의 눈에는 얼핏 6개월 전 떠나온 고향 풍경이 스쳐가는 듯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밭 위쪽으로 이동하는 차량이 도착했다. 한씨 일행은 "고럼 일 보시라요"하며 차에 오르더니, 자꾸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모두 건강하게 돈 많이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시기를.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