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바람처럼 오다가다 한잔에 정이 불콰 길에서 만난 사람

   500원 잔술 막걸리집 용안집 풍경
 40여 년간 집도 술도 사람도 시간이 멈춘 곳
 주모도 어르신들도 선 채로, 혹은 앉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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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군산에서 익산 거쳐 강경 가는 길. 23번 국도를 나와 익산시 용안면 용안사거리로 들어섰다. 길 옆에 앉은 한 무리의 어르신들께 차를 세우고 물었다. “여기 오래된 막걸리집이 있다면서요?” 불콰해진 얼굴로 보아, 낮부터 이미 한잔 걸치신 모습들이다.
 “막걸리? 막걸리 하면 여기지, 어디 또 있간.” 어르신들이 손짓, 눈짓으로 바로 옆 길모퉁이 허름한 집을 가리켰다.
 간판도 없는, 가게 같지도 않고 가정집 같지도 않은 낡은 집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가운데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
 비좁은 실내에, 옛날 대중목욕탕 바닥에서 보았던 타일이 다닥다닥 붙은 시멘트 구조물(?)이 버티고 있다. 이걸 앞에 두고 어르신 예닐곱 분이 ‘빈틈 없이’ 둘러앉거나 서 있다. 어르신들이 붙어앉은 ㄴ자형 시멘트 탁자 안쪽(주방)엔 주인 할머니가 앉으셨다. 일종의 ‘막걸리 바’인 셈이다.
 
 “여긴 말여, 익산 15개 읍·면에서들 막걸리 먹겠다고 오는 데여”
 
 “젊은양반, 막걸리 한잔 하실라우?” 일순 실내가 조용해지더니,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좌우로 밀착” 하시며 간이의자 하나를 비워주신다.
 할머니가 허리를 굽혀 안쪽 땅바닥 뚜겅을 열더니 땅속에 묻힌 항아리 안에서 막걸리를 퍼 사기그릇에 담아 주신다. “이거 한 잔에 500원이유.”
m5.jpg 한 어르신이 갑자기 잔을 들고 일어서더니 “자, 쭈우욱 건배” 하시며 잔을 부딪친다. 두어 모금 들이켠 뒤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나서 입을 열었다.
 “여긴 말여, 익산 15개 읍·면에서들 막걸리 먹겠다고 오는 데여, 여기가. 에, 웅포·함열·함라·용동·망성 이런 데서 사람들이 다 일루 와부러. 왜 일루 다 모이냐. 잉? 500원씩임 싸잖여어. 일다안.”
 “요 뒤에 산다는” 이 분 말씀을 요약하면, 다른 지역 막걸리집은 잔술도 잘 안 팔고, 분위기도 영 시원찮은데, 이 집은 막걸리값이 싼 데다, 주인 할머니도 맘에 들고, 가게 자체가 아주 옛날 그대로여서 정이 든 단골들이 많다는 얘기다.
 40여년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같은 주인(김순애·73)이 막걸리만을 팔아오고 있는 집이었다. 단골손님들은 50대 후반에서 60, 70대 어르신들. 다시 한번 “건배”를 한 뒤 멸치 한마리씩 된장 쿡 찍어 들고는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셨다.
 “세상에 이런 막걸리집이 읍지, 요샌. 나가 여기 1969년도에 처음 발을 딛었는디, 요 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고대로여. 이쁜 할머니도 고대로고.”
 “저 항아리도 옛날 고대로여. 여름엔 시원허고, 겨울엔 얼도 안혀.”
 “요런 게 시골 정서 아닌가베. 말하자면 아주 옛날 막걸리 먹던 방식이지. 말하자면.”
 “이 분위기에선 그러니께. 쏘주보단 막걸리라니께. 이런 분위기 딴데선 못찾아. 어림없지.”
 “쏘주여? 쐬주지.” “아무렴 워띠여. 마시고 나면 다 똑겉지.” “어따, 그럼 소고기는 왜 쇠고기가 됐가니?”
 어르신들 말투는 전라도식도 아니고 충청도식도 아니다. 뒤섞이고 꼬여 늘어지기도 하고 올려붙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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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어디냐. 익산시 용안면 성동인디. 여가 전라북도지만서두, 사실은 거나 충청도여. 여가 경계지역이라. 욜로 7~8킬로 가면 충남 강경땅인께. 말하자면 여가 아아주 애매허여. 말이 섞이구 생각두 섞여버린당께.”
 “아, 거기 잡소리 허덜말구, 술이나 먹어어.”
 “아, 놨둬봐아. 그러니께 에, 말하자면, 여긴 말여. 각계 부류가 말이지. 물 흐르듯이 와서 에,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떠나는 곳이여. 말하자면 물 흐르듯이 말이여.”
 
 “옛날식 막걸리 문화랑 순수 전통 인심을 지키는 인간 문화재여”
 
 말씀을 들어보니, 물 흐르듯이 모여들고 또 흘러가는 손님들은 대부분 꽃이나 과일 재배 비닐하우스를 돌며 일하시는 분들이거나 은퇴 뒤 집에서 소일하는 어르신들이었다. 일을 일찍 마친 날이면 이른 오후부터 이곳에 모여 잔을 기울이신다.
 “거긴 지금 뭐 하간?”
 “나? 난 국화지.” “장미는 저 밖에 저 양반이구.” “수박도 해야지. 즉은 인원으루다 원예 일 할래니 아주 힘들어유.”
 그때 밖에 나가 앉았던 얼굴이 불콰하던 어르신들이 와글와글 다시 몰려들어왔다. “에헤, 딱 한잔씩만 더 하자구.”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신다.
 “으히구, 이 인간들 또 왔네. 아, 인제 고만들 혀 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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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따 왜 이러시나아. 참 여보 젊은 양반, 저 할머니로 말할 것같으면 말여. 우리 옛날식 막걸리 문화랑 순수 전통 인심을 지키는 인간 문화재여, 문화재애. 알간.” 
 “얼레? 아, 인제 집어치우구 고만 마시라니께에.”
 손사래를 치며 질색을 하던 할머니는 그러나 어르신들 성화를 끝내 못이기고, 항아리 뚜껑을 다시 열었다. 국자를 휘휘 저어 막걸리를 떠 빈 잔을 채워 주신다.
 “이 짓두 인제 고만 해야지. 이 꼴 안 볼라구 작년에 닫아불라구 했디만, 아 이 영감들이 ‘아이구 딴 덴 비싸서 못먹겠다’고 성화를 부려 계속했잖우. 올해까지만 하고 문 닫아뻐려야지.”
 “그래? 그럼 우리가 인수하까? 인수하리?”
 “아주 그냥 시끄러워 주욱것네에, 그냐앙.”
 할머니는 언성을 높이면서도, 이런 대화에 이골이 난 듯, 말을 퍼부어가며 설겆이도 하고, 김치·양파·풋고추·번데기 안주도 새로 내놓고 하신다.
 
  김치·양파·풋고추·번데기…, 안주 무한제공
 
 40년 세월을 한자리에서 막걸리 잔술을 팔아 온 이 집 이름을 물으니 어르신들은 “그냥 할머니집이지” 하신다. 이 막걸리집 이름은 ‘용안집’이다. 바깥 문 위에 파란색 페인트로 ‘용안집’이라 쓴 글씨가 있으나 벗겨지고 떨어져나가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m3.jpg 다소 조용해진 틈을 타(어르신들끼리 언성을 높이는 틈을 타) 할머니와 겨우 몇마디 대화를 나눴다. 단골이 늘 바글바글해도 500원짜리 잔술에 안주는 무한제공이니, 수입은 소소하다. 익산서 이곳으로 시집왔다는 주인 할머니가 “자꾸 쑤셔서 불편하다”는 한쪽 다리를 주무르며 말했다.
 “하루에 만원두 벌구, 이만원두 벌구 그랴. 막걸리는 함라에서 가져오구. 페트병 가져오면 한통 담아주구 1600원 받지유.”
 실내를 둘러보니 벽에 낡아 빛바랜 ‘용안 시내버스 시각표’, ‘익산 열차시각표’가 붙어 있다. 버스를 기다리며 막걸리 한잔 시켜놓고 앉아 있었을 옛 손님들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있다. ‘용안중앙석유’ 달력, ‘전북농산품질관리원’ 벽시계, 벽걸이형 선풍기, 주방의 찬장과 수도꼭지 하나, 그리고 천장에서 길게 늘어진 ‘파리왕끈끈이’….
 “인저 가야여. 하우스 닫아야여.” 한 어르신이 일어서자, 몇몇 어르신이 따라 일어선다. 나가면서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젊은 양반 또 오슈. 여기같은 덴 딴데 읍다니께.” “낮에 와야여. 저녁엔 문 닫응께.”
 23번 국도를 지나게 되면 익산시 용안면에 한번 들러보시길. 덥고 좁고 후줄근하고 시끄럽고 파리도 많지만, 옛날 분위기 하나는 제대로 남아 있는 막걸리집이니.
 아침 8시부터 문을 열어 저녁 7시까지 영업을 한다. 용안사거리 부근 농협(함열농협 용안지점) 옆의 파란색 비료창고 옆 골목 모퉁이에 있다.
 
(용안)익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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