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객은 유적보다 골프 더 좋아해요” 길에서 만난 사람

우즈벡 관광가이드 이 마리나

고려인 4세로 한국철학 전공해 한국말 유창

“지금도 어머니가 집에서 된장 등 직접 담가”

 

 

“한국 관광객들은 타슈켄트에 머물며 골프를 치다 돌아가는 분들이 많아요.”

 

Untitled-1.jpg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4세 관광가이드 이 마리나(23)씨. 그는 “유럽이나 일본 관광객들은 거의 사마르칸트·히바·부하라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를 둘러보러 오는 데 반해 한국인 여행자 중엔 그런 사람이 적다”고 말했다.

 

강제이주 고려인 3세인 어머니(57·이 넬리아)와 러시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 마리나씨는 가이드 경력 2년의 사회 초년생. 타슈켄트 동방대학교 한국철학과를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아주 매끄러운 편은 아니지만 대학 2년 때부터 국제결혼회사와 포클레인 회사에서 통역을 맡을 정도로 유창하게 한국말을 한다. 그는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유 마리아·77)는 고려말을 잘하셨다”며 “집에선 지금도 어머니가 된장 등을 직접 담근다”고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하고 그가 한국인 관광객 가이드 체험을 털어놓았다.

 

“한국 남자분들은 골프를 친 다음, 100이면 100명 다 밤에 아가씨가 나오는 술집 안내를 요구해요. 그러고는 욕을 합니다. ‘우즈베크는 호텔도 안 좋고, 음식도 안 좋고, 볼 것도 별로 없다. 그렇다면 아가씨라도 예뻐야지. 한국 탤런트 닮은 미인 많다더니 이게 뭐냐’ 하면서 화를 냅니다.”

 

그는 처음엔 한국 남자 관광객들의 이런 반응에 놀라고 당황했지만, 같은 일이 여러 번 되풀이되면서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한국엔 딱 한 번 일주일 동안 방문했다는 그는 “그게 원래 한국 문화 아니냐” 고 반문했다.

 

타슈켄트 시내에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가라오케들은 거의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우즈베키스탄엔 1차·2차·3차까지 가며 술 마시는 문화가 없었는데 이제 보편화되고 있다고 이씨는 말했다. 타슈켄트 근교에 있는 골프장은 우즈베크 유일의 골프장이다. 한국인이 운영하며, 주고객도 한국인이다.

 

“유럽인들의 경우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한 장소에만 3~4일씩 머물며 집중적으로 유적지들을 둘러봅니다.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 몇 시간씩 앉아서 사원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이들 많이 봤어요. 그런데 한국 분들에게 역사와 유적지에 대해 설명하면 ‘또 그 티무르제국 얘기냐. 이제 질렸다’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마리나씨는 힘들어도 수입이 좋은 가이드 일을 당분간 계속 할 예정이다. 일반 회사 월급이 300~400달러인 데 비해 가이드 일을 하면 600~800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귀는 남자 친구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가이드 일을 할 생각이에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요.”

 

이 마리나씨의 옛 이름은 제멘치에바. 그가 한 살 때 돌아가신 러시아 아버지 성을 따른 이름이었으나, 여권을 만들면서 어머니 성을 따르고 이름도 바꿨다.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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