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풀 새 곤충에 막힘 없는 ‘걸어다니는 나무’ 길에서 만난 사람

[길에서 만난 사람] 축령산 숲해설가 김현태·류광수씨

 

“아직도 유원지로 여기는 분들 있어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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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 축령산(문수산·620m) 자락에 펼쳐진 258ha의 편백나무·삼나무·낙엽송 숲. '조림왕'으로 불리는 춘원 임종국(1915~1987) 선생이 1956년부터 20여 년간 맨손으로 심고 가꿔온 숲이다. 대부분 팔려나가 관리되지 않던 것을 2002년 정부에서 사들여 국유림으로 보전해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림 숲으로 꼽힌다.

 

이 숲에서 '걸어 다니는 나무'들을 만났다. 푸른 재킷을 걸치고 나무 지팡이를 들었다. 모자로 작은 그늘을 드리우고 숲의 정령처럼 돌아다닌다. 한 자리에 오래 서서 새소리를 듣고, 쪼그려 앉아 풀내음·흙내음을 맡는다.

 

이들은 어둠침침한 편백나무 숲을 탐색하거나 삼나무 곧은 줄기를 매만지고 있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꿈틀'한다. 눈빛을 반짝이며, 숲의 내음에 취해 거니는 사람의 뒤를 쫓는다. 따라가 흰 이를 드러내며 말한다.

 

"하하하, 숨 쉴 만 하십니까. 지금이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내뿜는 시간이죠."

 

탐방객들은 잠시, 누구시더라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이들이 숲의 일원이라는 걸 알아챈다. "호호호, 정말 좋아요. 거닐기만 해도 숨이 저절로 쉬어지네요." 그러면 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일'을 시작한다. "숲과 나무에 대해 설명해 드릴까요? 따라오세요. 저 기슭에 더 숨쉬기 좋은 산길이 있어요. 청딱따구리도 검은등뻐꾸기도 좋아하는 곳이죠."

 

축령산의 편백나무·삼나무 숲에서 하루 종일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상주하는 숲해설가 김현태(59)씨와 류광수(39)씨다.

 

김씨는 28년간의 산림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한 뒤 지난해 3월 숲해설가로 변신했다.

 

평소 숲과 나무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오던 류씨는 지난해 산림청 숲해설가 공모에서 선발되자,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동의를 얻어 직장생활을 팽개치고 숲으로 들어왔다.

 

숲 전체가 두 사람(등산 안내인까지 치면 세 사람)의 일터이자 여행공간이고 휴식공간이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untitled-8_copy.jpg이들이 하는 일은 정처(사무실) 없이 숲을 떠돌면서 탐방객에게 숲과 나무와 피톤치드, 지저귀는 새와 곤충들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이다. 단체 방문객들에겐 숲을 안내하며 피톤치드 체험, 나무·풀 이름 알아맞히기 등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김씨가 말했다. "안타까운 일은 아직도 숲을 유원지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는 거죠. 두릅·고사리 채취하고 꽃 꺾는 걸 예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어요." 류씨도 말했다. "차에 버너와 고기를 싣고 와서 몰래 구워먹는 사람도 있었죠. "

 

이들을 더 안타깝게 하는 일은 따로 있다. 숲길이 시멘트로 포장돼 있는데다, 숲길 들머리에 주차공간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숲 한가운데까지 차가 드나드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숲을 오래 보전하려면 숲 들머리 양쪽에 하루빨리 주차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차를 두고 걸어 올라와 산책하며 쉬는 숲으로 가꿔야 해요." "숲길도 시멘트를 걷어내고 자갈을 깔아야 합니다." 위쪽에 몇 차례 보고를 했으나 아직 해결이 안됐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이와 같은 인상적인 견해들은 "앉으나 서나 나무 처지에서 생각하고 숲의 처지에서 행동하려고 노력"한 결과로 얻어진 것임이 틀림없었다.


 일당 4만5천원의 '박봉'으로 일년 넘게 숲에서 일해 온 두 사람. 김씨와 류씨는 "어렵긴 하지만, 늘 나무와 함께 숨 쉴 수 있어 정말이지 행복하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한 식구로 맞아준 이 '미래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2000년 생명의숲 선정)에서 '몸에 좋은 숲그늘'을 가꾸고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은 편백나무 그늘에 앉아 류씨와 나눈 '숲속의 농담' 한 마디.

 

"지금 저 새소리 들립니까? '홀딱 벗고'하고 울지요. 시어머니의 등쌀에, 밤에 신랑과 잘 때 늘 옷을 입고 자야 했던 며느리가 한이 맺혀 새로 태어났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죠. 바로 검은등뻐꾸기입니다." "그렇다면 '호올~애비×' 하고 우는 저 새 이름은 뭔가요?" "아…, 이름이 뭐더라. 제가 공부가 부족해서.^^;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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