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따라 솔숲·대숲 가을햇살 품었네 마을을 찾아서

‘하동 행복버스’ 안내도우미 설명 들으며 쌍계사 거쳐 의신계곡 보고 하동송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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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이 운영하는 완행버스 ‘하동행복버스’의 베테랑 안내도우미 박덕미씨.
경남 하동읍 버스터미널. 쌍계사행 완행버스에 오르면서 교통카드를 들이밀자 운전기사가 손을 내저었다.

“카드는 몬 씁니데이. 내릴 때 현찰로 하소.” 이미 전국 대부분 지역 버스에서 통용되는 교통카드의 사용 불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작년까지는 됐는데 고마 카드 단말기 회사가 망해뿟다. 시골 할마들이 카드 씁니꺼, 우데.” 교통카드 사용자가 거의 없으니 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운전기사는 그래도 “학생도 꽤 많고, 요즘엔 젊은 관광객도 늘고 있으니 앞으로 대책이 안 나오겠냐”며 시동을 걸었다.

쌍계사 쪽 버스노선은 하동군 10개 완행버스 노선 중,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노선으로 꼽힌다. <토지> 드라마 촬영지인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쌍계사 등을 돌아오는 노선이다. 물놀이 인파 몰리는 의신계곡(의신마을)도 이 노선의 연장선에 있다. 버스삯은 읍내 구간 1250원을 기본으로 거리에 따라 요금이 추가되는 방식이다.

‘1인3역’ 안내도우미가 반겨주는 완행버스

어르신들이 차에 오르기 시작하자, 갑자기 앞자리에 앉아 있던 40대 여성이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호호홋, 어서오세요. 하이고 덥지예? 이리 앉으시소.” 시골 장터 노래자랑 사회자처럼 밝고 우렁찬 목소리다.

하동군 완행버스 전 노선에서 활약중인 9명의 ‘하동 행복버스 안내도우미’ 중 한 명인 박덕미(49)씨의 출발 전 인사다. “자, 이 버스는 섬진강 따라 악양·화개 거쳐 쌍계사까지 갔다오는 버스이고요. 내리실 땐 버스가 완전히 선 뒤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다들 제대로 타셨지요?”

늘 밝은 표정의 버스 안내도우미 박덕미씨와 친절한 운전기사.
늘 밝은 표정의 버스 안내도우미 박덕미씨와 친절한 운전기사.
박씨는 2012년 하동에서 버스 안내도우미 제도가 시범운영될 때부터 일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베테랑 도우미’다. 운전기사가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모르는 기 있나. 뭐든 척 하면 바로 잘잘잘잘 나오니께네.”

좌석은 할머니·할아버지들 말고도, 계곡으로 놀러 가는 중학생·초등생 일행들로 메워져 지역 완행버스치곤 매우 붐볐다. 버스가 도심을 벗어나 하동송림 앞을 지나고, 섬진강 물길 따라 상류 쪽으로 천천히 달려 벚나무 가로수 터널 속으로 접어들 때도 박씨는 쉬지 않았다.

“어르신들~, 하동보건소에서 수요일마다 건강·진료 프로그램 운영하는 거 아시죠?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수요일 10시 반까지 꼭 보건소로 가보세요.”

박씨가 차에서 하는 일은, 내리는 마을 안내하며 타고 내리는 어르신 부축하고 짐 들어드리기, 거쳐가는 마을 볼거리 설명하기, 군청 행사 홍보하기에다 버스 노선·시간표 따라 관광객들 여행 일정 챙겨주기까지 끝이 없었다. 박씨는 각 버스 노선상의 크고 작은 볼거리들과 각 마을 도착 시각, 다음에 오는 버스 시각까지 훤하게 꿰뚫어, 곧바로 하루 일정을 짜게 해줬다.

관광지 안내하고 군청 공지사항도 전달
완행버스 노선마다 40~50대 도우미 탑승 활약
계곡엔 피서 인파 강변 송림엔 산책 주민들

“버스 시간표상, 쌍계사 먼저 둘러보고, 다음 차로 의신마을로 간 뒤, 그다음 차로 내려오며 화개장터·최참판댁, 그리고 하동송림을 마지막에 들르는 게 좋겠다”는 박씨의 조언에 따라 쌍계사로 직행했다.

하동(河東)이란 ‘섬진강의 동쪽’이란 뜻이다. 강 건너편은 전남 광양 땅이다. 흰 모래밭과 강변의 대나무숲이 어우러진 섬진강 물길 따라, 들르는 마을마다 우거진 벚나무숲·배나무밭과 진분홍 꽃을 피운 배롱나무(목백일홍)들이 반겨준다. 배 생산지로 이름난 만지마을 지나 평사리 들판 옆길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대축 내리세요.” 박씨는 “대축마을에선 600년 된 소나무인 ‘축지리 문암송’이 볼만하다”고 했다. 문암송은 거대한 바위를 쪼개고 또 감싸안으며 뿌리 내린 모습이 이채로운, 아름다운 소나무(천연기념물)다. 마을에서 감나무밭 사잇길을 따라 600m쯤 비탈길을 걸어오르면 만난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자란 축지리 문암송.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자란 축지리 문암송.

들르는 마을마다 고승 등 선인들 발자취

버스는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 들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섬진강변 19번 국도로 돌아와 화개장터 쪽으로 향한다. 화개버스터미널에서 어르신 대여섯 분이 내리고, 버스는 화개천 따라 봄이면 벚꽃 터널을 이루는 이른바 ‘십리벚꽃길’로 올랐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내렸고, 가방·배낭 이고 진 중학생들이 내릴 채비를 한다. “물놀이하러 가나, 어데 가는데?” “모암 가서 놀라꼬요.” “아, 그기 학생들 참 마이 가드라. 쌍계사 입구서 내려 쫌 걸어가야지.”

도우미 박씨는 정말 쉬지 않았다. “그래 갖고 바람이 드가나?” 여중생 셋이 튜브에 바람을 넣으려 애쓰는 모습을 웃음지으며 지켜보던 박씨는 회차 지점인 쌍계사 입구에 도착하자 운전기사와 함께, 먼지털기용 ‘압축공기 분사 장치’를 꺼냈다. 순식간에 2개의 튜브는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학생들은 탄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다음에 오는 의신마을행 11시 버스를 타려면 볼거리 많은 쌍계사 관람시간이 빠듯하다. 그다음 의신행 버스인 1시 차를 염두에 두고 여유 있게 고찰을 둘러보는 게 좋겠다. 절까지는 걸어서 10여분 거리. 신라의 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쇠지팡이로 썼다고 전해오는 ‘쌍계 석문’ 글씨 선명한 ‘석문’ 지나 걸어오르면, 울창한 숲길 안으로 그윽한 절집이 드러난다. 신라의 원효·의상대사, 고려의 보조국사, 조선의 서산대사 등 고승들의 발자취가 서린 절이다. 곳곳에 드리운, 진분홍 꽃무리를 뒤집어쓴 배롱나무 꽃그늘이 그림 같다. 대웅전 앞, 국보 제47호 ‘진감국사대공탑비’의 비문은 최치원이 쓴 것으로, 우리나라 금석문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고 한다.

쌍계사 들머리 숲길.
쌍계사 들머리 숲길.

쌍계사 팔영루 앞마당(천왕문 옆)의 배롱나무(목백일홍)가 꽃을 활짝 피웠다.
쌍계사 팔영루 앞마당(천왕문 옆)의 배롱나무(목백일홍)가 꽃을 활짝 피웠다.
다음 버스를 타고 신흥마을 거쳐 의신마을로 접어들었다. 신흥마을은 고찰 칠불사 들머리가 되는 마을이자, 의신계곡 산자락을 따라 의신마을까지 조성한 ‘서산대사 옛길’(1시간20분 소요)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무더위 물러가고 가을바람 불어올 무렵 서산대사 발자취 탐방에 나서볼 만하다. 최치원이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랐다고 전해오는 푸조나무(범왕리 푸조나무·실제 수령은 500년)도 신흥마을에 있다.

통일신라의 학자 최치원 이야기가 전해오는 신흥마을의 푸조나무(범왕리 푸조나무).
통일신라의 학자 최치원 이야기가 전해오는 신흥마을의 푸조나무(범왕리 푸조나무).
신흥마을부터 의신마을까지 맑고 깨끗한 계곡이 이어진다. 비좁은 도로는 주차 행렬로 더욱 비좁아져 있고, 계곡 물길엔 피서객들이 붐빈다.

가뭄에도 깨끗한 물길을 자랑하는 의신계곡.
가뭄에도 깨끗한 물길을 자랑하는 의신계곡.
의신마을엔 펜션·민박집이 즐비하다. 이른 봄 지리산 고로쇠 수액 채취 마을로 유명한데, 요즘엔 반달가슴곰 2마리를 들여놓은 ‘반달곰 생태학습장’이 문을 열어 탐방객의 발길이 늘었다. 버스 회차 지점은 의신마을 지리산역사관 앞이다. 역사관에선 한국전쟁 전후로 활동한 지리산 빨치산들의 행적과 지리산 화전민들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섬진강변 하동송림, 눈부신 숲그늘 걸어볼만

다시 읍내행 버스를 타고 화개장터·최참판댁 거쳐 내려와 섬진강변의 하동송림에 들렀다. 아름드리 노송들이 빼곡하게 우거져 솔향 가득한 숲그늘을 드리운 곳이다. 주민들의 쉼터요, 산책로요, 운동장이며, 데이트 장소다.

섬진강변 하동송림은 18세기 중반 조성된 방풍림이다. 주민들의 산책·운동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섬진강변 하동송림은 18세기 중반 조성된 방풍림이다. 주민들의 산책·운동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이 솔숲은 1745년(영조 21년), 강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만든 방풍림이다. 700여 그루 소나무가 모여 선, 넓이 2만1874㎡의 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 숲을 완행버스 여행의 마지막 볼거리로 잡아보라는, 안내도우미 박씨의 조언은 옳았다. 늦은 오후 햇살 받으며 숲 안으로 이어진 톱밥 깔린 산책로를 거닐어보면 안다. 굽고 휜 채로 서서 숲그늘을 떠받친 노송들 사이로 반짝이는, 섬진강 푸른 물빛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하동/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하동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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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하동버스터미널까지, 우등고속버스(28인승)가 하루 10회(22시 심야버스 포함) 1시간30분 간격으로 직행 운행한다. 3시간45분 소요. 요금은 2만4000원(심야 2만6400원).

△먹을 곳 하동송림 들머리 여여식당·동흥식당의 재첩국백반과 재첩비빔밥 등 재첩요리와 참게요리. 화개터미널 부근 설송식당의 재첩국·참게탕·은어회·황어회 등. 하동읍 신기리(섬진강로) 19번 국도변에 재첩요리 식당들이 모인 재첩특화마을이 있고, 하동읍 화심리 만지마을에도 먹거리타운이 형성돼 있다. 의신마을 주민들이 운영하는 식당 선학관에선 예약을 통해 산나물비빔밥·나물정식 등을 먹을 수 있다.

△묵을 곳 최참판댁 전통한옥체험관과 ‘토지’ 세트장 가옥에서 예약(군청 누리집 예약)을 통해 숙박할 수 있다. 한옥체험관의 경우 주중 3만5000원, 주말 5만원. 하동읍내에 잘 만한 모텔이 두세 곳 있고, 쌍계사 가는 도로변에도 모텔이 몇 곳 있다. 의신마을에 펜션·민박집들이 있다.

△하동 여행정보 하동군청 문화관광실 (055)880-2378, 악양 관광안내소 (055)880-2950, 의신마을(의신베어빌리지) (055)883-3580, 하동버스터미널 (055)883-2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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