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동냥 길손 곁 무심한 듯 유심한 듯 얘기꽃 길에서 만난 사람

[길에서 만난 사람] 고령 안화리 정자쉼터 두할머니


60년 동행, 오다 가다 쉬엄 쉬엄…당산나무도 ‘쫑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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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안림천변 ‘안화리 암각화’ 보러 가는 길. 안화골 들머리에 나란히 선 고목 두 그루가 정겨운데, 두 나무 밑 정자에 할머니 두 분이 정답게 앉으셨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를 물으니 바로 “천방” 이라는 말이 나온다. 두 분이 앞 다퉈 말을 이었다. “그기를 내나 천방이라카는데, 옛날 바우 아래 깊은 쏘가 있어가가 그래 부르는기라.” “그림 본다꼬 배운 사람들 많이 찾아옵디더.” ”우린 잘 모리고 요기 버섯 하는 아저씨가 잘 알기라예.” ”오늘은 안 나왔능가.”

 

두 분의 대화는 유채꽃으로 바뀌었다. “보소 꽃대가 저래 솟아뿠네.” “즈짝 밭도 다 핐드라.” 한 분이 물었다. “내사 드갈라카는데 인자사 말라꼬 나왔노.” 다른 분이 답했다. “호박밭에 안 갔나.”

 

한 분은 지팡이를 짚고, 다른 분은 갈퀴·삽을 실은 유모차를 밀고 지나가다 방금 당산나무 밑 쉼터에서 만난 참이다. 무릎이 안 좋은 이경자(75)씨는 걷기운동을 하고 돌아가던 중이고, 백영순(78)씨는 밭에 호박을 심어놓고 오던 중이다.

 

“요건 귀목나무고 이짝은 팰구나무 아잉교. 둘 다 참 오래 산 당산나무라예.” 이씨는 합천에서 열일곱에, 백씨는 건너 마을 안림에서 열여덟에 시집와 이 마을에서 60년을 살았다.

한때는 50여가구나 살던 마을인데 지금은 20가구만 남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아 “버섯 키우고, 호박 심가묵고” 사는 마을이다.

 

“우린 인자 그 뭐라. 자슥들 애멕이는 인간들이라. 이래 늙어농께 아무 쓸모 없는기라. 그저 안 아프고 밥 잘 묵고 잘 놀고 하는기 자슥 도와주는기지.”

 

트럭이 한 대 들어오더니 확성기로 “산불 조심합시다”를 외치며 지나간다. 백씨가 마을 뒷산을 가리켰다. “산불 감시할라카마 즈 산우에 올라가야 안되나. 하모 고령읍이 다 보이니께네. 연기만 나기만 나모 그래 빨리 방송이 나와뿌데.”

 

이씨도 산을 보며 말했다. “저 산꼭대배기를 버시방이라 안카나. 거가 태끌바우라카는 바우가 있그등. 쇠말뚝이 백여 있든걸 빼뿌릿다카데. 바우서 피가 솟았다카드라.” 백씨가 말을 받았다. “왜놈들이 박았는기라. 산 주름 끊어뿐다꼬.” 이씨가 덧붙였다. “그기 똑똑한 사람 나지 몬하구러 박아논기라. 나지오 들으니께네 그카데.”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받아 적자, 두 분은 “젊은 양반이 더 잘 알끼구만. 말라꼬 받아 적노 적기는” 하며 깔깔 웃음을 터뜨리신다.

 

“그럼, 가입시데이.” 다시 밭에 핀 유채꽃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을 뒤로 하고 ‘천방’으로 향했다. 30여분 뒤 돌아와 보니 정자는 비고 봄 햇볕에 물 오른 당산나무 가지들만 푸릇푸릇했다.  

 

고령/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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