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이, 아마이…곰삭은 고향 맛이 그립소’ 마을을 찾아서
2008.07.14 11:37 너브내 Edit
[마을을 찾아서]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
실향민 마을로 유명…한때 ‘가을동화’ 촬영지로 반짝
건넛마을로 가려면 갯배를 타야 한다. 폭 50m의 물길을 네모난 배가 건넌다. 배는 두 지역을 연결한 쇠밧줄에 꿰어 있다. 배에 탄 이들이 힘을 모아 쇠밧줄을 당겨야 배가 움직인다. 아바이도 당기고 아마이도 당긴다. 군인도 처녀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초등생도 삽살개도 힘을 보탠다. 이들의 힘으로 배는 느릿느릿 짧지만 인상적인 항해를 한다. 나뉜 땅, 골 깊은 물길을 힘 합쳐 건너는 배다.
관광객들 몰리면서 떠오른 ‘명물갯배’
“이 봅세, 들어오기요.”
갯배 매표소 창문이 열렸다. “무스그 일로 사진을 그래 마이 찍슴메? 날래 들어와 커피 한잔 하오. 추운데.”
매표요원 김아무개(75·속초시 청호동 자치위원회)씨는 함경남도 홍원 출신 실향민이다. 17살 때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 김씨는 이름 알려지는 것을 꺼렸다.
“이 보오. 잘 드솝세(잘 들으시오). 이산가족 상봉인지 무스근지 우리느 모르는 사람들이오.” 주민 절반 이상이 실향민 가족인데, 단 한 명도 북의 가족을 만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상봉 신청해봐야 헛일이오. 만나게 해줄 텍이 없구마.” 북쪽이 싫어 국군 따라 내려온 이들에게 북측이 가족 상봉을 허용할 리 없다는 얘기다. 북쪽에 어머니, 큰형, 누나, 여동생을 두고 온 김씨는 오히려 “북에 남은 가족들이 해를 입을까 두려워 상봉신청 자체를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1세대드르느 발써 돌아가고, 고향 기억하느 우리 2세대도 멫 안 남았소.” 아바이마을 실향민들은, 답답하게 진행되는 상봉행사에서조차 소외된 채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었다.
청호동은, 아바이들이 정착하기 전까지 허허벌판이었다. 청초호와 바다 사이에 형성된 긴 모래밭. 함남 출신 피란민들이 고향 가까운 이곳에 알음알음으로 모여들면서 실향민 집단거주지가 됐다. “며칠 뒤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에, 출신 마을별로 움막집들을 짓고 임시 거처로 삼았다. 모래땅을 파내고, 나무판자를 이어붙여 벽과 지붕을 얹었다. 미군부대서 나온 기름종이를 덧씌워 빗물을 막았다.
“구두르는(구들은) 돌메이 깔고 도라무깡(드럼통) 짤라개지구 만들었습지비. 그래개지구 산에 가 낭구하고 검부르(검불) 긁어다 불 때고 쌀 빌어다 먹고 살지 않았슴메.” 그러고 50여년 세월이 흘렀다.
모래톱과 물길 구석구석 망향의 한과 상처가 녹아 있는 이곳에서 7년 전 드라마 ‘가을동화’가 촬영됐다. 실향민 집단거주지로만 알려졌던 아바이마을이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동남아 지역의 ‘한류 관광객’ 발길도 이어졌다.
이제 드라마를 추억하는 여행객들의 발길도 잦아들고, 촬영지임을 알리는 낡은 간판들만 또다른 낯선 모습으로 남아 있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떠오른 것이 아바이마을의 명물 갯배다. 부월리로 불리던 이곳은 본디 중앙동 쪽과 이어진 땅이었다. 왜정 때 물길을 뚫어 청초호와 외항을 연결했다. 그때부터 물길 건너는 교통수단으로 정착된 것이 갯배다. 두 척의 갯배가, 한 척에 관리인 두 명이 배치돼 교대근무를 하며 운항한다. 실향민들은 지금도 중앙동 쪽을 개건네(개 건너)라 부른다.
갯배가 오가는 청호동 쪽 아바이마을 일부는 몇 해 뒤 항만 개발사업으로 철거될 예정이다. 45년째 함경도 음식 식당을 해오고 있는 단천 출신 실향민 윤복자(69)씨가 말했다. “내 요 알에(아래) 살지마느, 우리는 여기르 떠날 수 없소. 못 나가. 연탄재 다져 밟아 일군 따인데, 어딜 가겄소.”
“고향땅이 눈앞에 훤한” 아바이·아마이들
아바이·아마이들의 마음을 2세·3세들은 안다. 마을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 젊은층이 모여 아사모(아바이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해 다양한 일을 펼치고 있다. 마을 유래와 현황을 소개하는 간판을 세우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고, 무료 자전거를 수십대 준비해 여행객들이 아바이마을을 둘러볼 수 있게 했다.
2세·3세들의 애틋한 마을 사랑이 “고향따이 눈앞에 훤한” 아바이 세대 실향민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청호동 노인회장 박재권(76)씨가 필터까지 타들어가는 담배를 다시 한번 빨아 내뿜으며 말했다. “고햐이 그리워도 가족이 그리워도 다 지난 일이지비. 어느 세월에 만내 주꾸마.”
홍원 출신 실향민 이고분(81)씨가 말했다. “무스그 소리르 그래 하소. 내 소워이 거 뭐인가 하모야. 거저 단수일 내루 고향 한번 가보는 거이지. 어마이도 보고 싶고 ….”
청호동 아바이마을 여행길 입맛은 다부지고 억세게 함경도식으로 다스려야 한다. 단천식당, 다신식당, 아바이식당, 돌샘식당 등 아바이순대와 함흥냉면, 가리국(갈비국), 가자미식해, 명태식해 들을 다루고 갖춰 내는 식당들이 갯배 나루터 뒷골목에 몰려 있다. 고향이 그리워, 고향 맛이라도 느껴 보고 싶은 이들에게 속초의 아바이마을은 따스한 앞마당의 기억을 손맛으로 열어주고 있다.
함흥냉면·가자미식해…함경도 맛이 궁금해
실향민들 손으로 재현돼 이어지고 있는 함경남도(특히 해안지역)식 음식과의 만남은, 아바이마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함남 해안지역 서민 가정에서 해먹던 거칠고 투박한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이곳 식당 음식은 어느 정도 남쪽 도시민의 평균적인 입맛에 맞게 순화된 것들이다.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가자미회냉면, 명태회냉면 등은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비린내가 살짝 끼치는, 큼직한 생선 토막이 든 가자미식해나 기름이 두껍게 깔린 얼큰한 순댓국 등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름난 순대식당들은 대개 직접 돼지창자를 사들여 집에서 세척한 뒤 속을 버무려 넣고 쪄낸다. 이곳 식당들이 아바이순대나 오징어순대를 공장에서 받아다 쓴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가자미식해나 명태식해, 도루묵식해 등 젓갈류는 직접 담가 숙성시킨 것들이다. 감자가루와 고구마가루로 만드는 함흥식 냉면도 대개 직접 면을 뽑아서 쓴다.
아바이마을 거리엔 젓갈, 식해 간판을 달고 함경도식 해산물 발효식품을 만들어내는 곳이 여럿 있다. 아바이·아마이들이 고향의 손맛을 재현하는 곳들이다. 북청 신창 출신 실향민 김송순(80)씨도, 빼어난 손맛으로 함경도식 각종 식해를 재현해 내고 있는 분이다. 옛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는 얘기를 듣는다.
“가자미식해구 명태식해구, 거저 친정 아마이가 해 주던 대로 만들어 먹는 거이지. 내 특별한 게 뭐 있가서.”
식해란 무엇인가. 각종 해산물을 숙성 발효시켜 저장해 두고 먹어온 우리 전통식품 젓갈의 한 종류다. 재료에 곡물과 야채 등을 섞어 삭힌다는 것이 일반 젓갈과 다른 점이다. 생선 따위를 토막내어 좁쌀밥이나 쌀밥 그리고 무, 마늘, 파 등 채소류를 썰어넣고 고춧가루와 버무려 숙성시킨다. 식해의 재료도 일반 젓갈의 재료만큼이나 다양하다. 가자미식해, 갈치식해, 멸치식해, 도루묵식해, 노가리식해, 명태식해, 오징어식해, 낙지식해 등 수십 종을 헤아린다. 밥알을 띄워 만드는 전통음료 식혜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김씨는 “식해를 담글 때 중요한 건 버무릴 때나 숙성 과정에서, 그때그때 손으로 만져보아 감촉을 느끼고 맛을 보면서 숙성 정도, 양념 등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각종 젓갈을 담글 때 고무장갑을 끼지 않는 이유도 “고무장갑 맛이 아닌 손맛”을 내기 위해서다.
식해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게 가자미식해다. 가자미를 토막내 메조밥, 고춧가루, 무, 생강, 마늘 따위와 섞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숙성시키면 잘 발효된 가자미식해가 만들어진다. 본디 참가자미를 썼으나, 어획량이 줄면서 값이 비싸져 요즘은 물가자미를 쓴다고 한다.
“매콤 새콤한 첫맛에 이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는 곰삭은 맛”이 김씨가 말하는 함경남도식 가자미식해의 맛이다.
명절 필수 음식 명태순대…명태 뱃속이 궁금해
또 하나의 함경남도식 별미 음식으로 명태순대가 있다.
실향민 이고분(81)씨가 말했다. “고향에서느 밍실에(명절 설에) 이거이 빠지모 실이 아이라 했소. 그랫젬메(그렇지 않으냐)?.”
옆에 있던 홍원 출신 실향민 이상옥(77)씨가 거들었다. “거럼. 지삿날도 이거이 일등품이라. 지삿상에 제일루 치는 음식이 바루 밍태순대라.”
명태순대란 명태의 내장과 뼈 등을 빼내고 두부, 된장, 녹두, 숙주나물, 배추 등과 명란, 애장 등을 버무려 속을 채워 만드는 독특한 순대다.
김송순씨가 말했다. “아가미 떼고 내장 빼고, 구영(구멍)에 손구락 넣어 뻬를 딱 뿌라뜨래 뽑아내야 하니 이거이도 다 요랑(요령)이 있기요.”
명태순대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싱싱한 명태가 필요하다. 명태의 영양덩어리라 불리는 애(간)를 따로 장으로 담가 속을 버무릴 때 섞어 넣어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명태가 싱싱한지 여부는 눈과 애의 상태로 판단하는데, 특히 잡은 지 오래된 명태는 지방성분인 애가 다 녹아버린다고 한다. “애가 들어가야 진짜지. 이거이 안들어가면 밍태순대가 아니오. 맛이 안 나지.”
지금 남한 동해안에선 명태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문을 받으면 갓들어온 일본산, 러시아산 등 수입된 명태 중에서 상태가 나은 것을 골라 소량씩 만든다고 한다.
김송순씨 둘째아들 정성수씨가 말했다.
“남쪽에서 이 명태순대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멫 없을 기래요. 명태순대를 한대이까는, 서울 사는 실향민들은 일부러 비행기 타구 와 사가는 사람두 있어요.”
명태순대는 하루 이틀 말린 뒤, 쪄 먹거나 기름을 살짝 두르고 구워 먹는다. 일반 순대처럼 깔끔하게 자르기가 어려워, 먹을 땐 그냥 통째로 펼쳐놓고 먹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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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