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길 따라 그리움 흐르고 곳곳 곰 전설 자취 길따라 삶따라

공주 공산성과 도심 걷기
백제와 조선 흔적 고스란히…인절미 탄생 비밀도
‘빌 공’에 ‘술 주’, 일단 공짜 술 한 잔은 기본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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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금강에 고마나루(곰나루)가 있다. 한자말로 웅진(熊津)이다. 금강(웅수)의 ‘금’, 공주의 ‘공’도 ‘곰’이 바뀐 말로 여겨진다. 금강변의 공산성(公山城)도 그렇다. 공산성이 백제의 고도(475~538년) 웅진성(熊津城)이다. 곰나루는 ‘금강변 연미산에 살던 암곰이 총각을 붙잡아 자식을 낳고 살았는데, 어느날 남자가 강을 건너 달아나자 암곰이 자식을 안고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질서정연’하게 모아놓은 비석, 제자리가 아니니 ‘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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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은 공주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자 산책 공간이다. 입장료 1200원. 울창한 숲 사이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적들이 즐비하다. 공산성 서쪽 문 금서루 앞 관광안내소에서 출발해 산성을 둘러본 뒤 제민천 주변의 공주 옛 도심으로 간다.
 
금서루 앞에서 무령왕릉 가는 차도 쪽을 보면 거대한 사각형 문이 세워져 있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왕의 발받침대를 본떠 만든 ‘무령왕릉연문’이다. 여기서 1.5㎞ 거리에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이 있다.
 
금서루로 오르는 길옆엔 비석들이 즐비하다.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관찰사·암행어사·목사·군수들의 행적을 기리는 선정비·불망비·영세비 등 43개의 비석을 한데 모아 놓았다. 일목요연하고 질서정연해 보이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역시 처음 섰던 자리가 제자리란 걸 깨닫게 해준다.
 
금서루 안으로 들면 본격적인 숲길이 펼쳐진다. 참나무류와 오리나무·서어나무·리기다소나무들이 햇빛을 가리고 우거졌다. 숲 안에 벽돌을 깔아 산책로를 만들었다.
 
공산성은 금강변 남쪽 해발 110m 야산에 자리한 둘레 2.6㎞의 장방형 성곽이다. 동서 폭 800m, 남북 폭은 400m 정도다. 애초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인조 때 석성으로 고쳐쌓았다. 서문인 금서루와 남문 진남루, 북문 공북루, 동문인 동문루 네개의 문이 있고, 성 안엔 웅진시대 왕궁터로 추정되는 자리와 수많은 건물터, 임진왜란 전 승병이 합숙하며 훈련하던 영은사 등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 복원한 임류각(백제 동성왕이 연회를 하던 곳)과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와 머물던 쌍수정 유적지도 만난다.
 
인절미란 떡 이름은 인조가 공산성에 머물 때 비롯했다고 알려진다. 한 신하가 임금을 위해 민가에서 준비해온 떡을 바쳤다고 한다. 떡 맛이 기가막혀 무슨 떡이냐고 물으니, 임씨가 만들었다는 것외엔 아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임씨가 만든 절미(絶味·뛰어나게 맛있는 음식)’라는 뜻으로 임절미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 인절미가 됐다는 얘기다.
 
‘미나리 천지’ 미나리꽝길…하숙집 반찬도 미나리김치·미나리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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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은 전망도 빼어나다. 곳곳에서 굽이치는 금강 물줄기를 굽어볼 수 있다. 공주 강북 신시가지가 한눈에 잡히고, 곰 전설이 깃든 연미산도 보인다. 백제가 망한 뒤 당의 장수 유인원 주도 아래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백마를 잡아 피를 나눠 마시며 동맹을 서약했던 취리산(취리산 회맹지)도 보인다. 산성 안을 둘러보는 데는 1시간 안팎이면 된다. 그러나 유적지들을 찬찬히 보려면 2시간 정도 여유를 갖는 게 좋다.
 
진남루(남문)를 내려와 24시찜질방 지나 옛 도심의 중심도로인 웅진로로 나선다. 오른쪽 고속버스 정류장(옛 터미널) 지나 길 건너면 이른바 미나리꽝길이다. 1980년대 초까지 제민천 하류 지역인 이 일대가 모두 미나리밭이었다. 수십년 전 이 근처 하숙집들의 반찬은 미나리무침·미나리김치·미나리국·미나리부침개 등 미나리 일색이었다고 한다.
 
배수장 못미처 널찍한 터에 고물상이 있다. 폐지더미 사이로 고물 라디오·전축·재봉틀·솥단지 등 오래된 생활용품과 온갖 쇠붙이들이 마치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Untitled-9 copy.jpg초가을 햇살 따가운 제민천변 느티나무길. 배수장 모퉁이 나무 그늘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어르신 둘이 흰구름을 올려다보고 계신다. 한 어르신이 말했다.
 
“신관 땅 한 평이 쌀 되가웃 값이니까 둬 마지기 사 두라 그러드라구. 아, 못 샀지. 그란디 그 논빼미들이 젠장 천정부지로 뛰는 겨어.” 20여년 전, 공주의 새 시가지인 강북 신관동 땅값 이야기였다.
 
“웬걸. 얼마 안 가 폭락했지. 그게 다 서울 눔들이 올려놓구 도망간 겨. 즈덜끼리 사구팔구 하드니 막판에 공주 사람들헌티 팔아넹기구 기양 내뺀 겨어.”
 
한쪽 다리가 의족인 어르신(85)이 전동휠체어에 시동을 걸었다. 느닷없이 ‘노무현’ 이야기를 꺼낸다.
 
“이거 말유. 이게 참 좋은 거유. 넘들은 노무현이 다 욕해두 나겉은 장애인들은 욕 못히야. 병들고 힘든 사람들헌티 이게 다 노무현이가 마련해준 겨어. 그런 대접 평생 츠음이여. 잊을 수가 없지이.”
 
‘못잊어·오는정가는정·약속‘ 간판마다 그리움 ‘뚝뚝’
 
배수장 옆 둑길 포장마차촌엔 그리움이 가득하다. 못잊어·그리움·오는정가는정·약속 같은, 얕고도 깊은 옛 이름 간판을 단 포장집들이 즐비하다. 일부는 문을 닫아걸었다. 7~8년 전까지도 불야성을 이루며 번성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온갖 과일 가득 쌓인 농협 공판장과 밤 선별·포장작업으로 바쁜 알밤상회 지나 산성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오일장(1·6일)과 상설시장이 섞인 대형 시장이다.
 
시장 안쪽에 들어선 널찍한 시내버스 터미널이 눈길을 끈다. 보따리를 이고 진 어르신들과 교복 차림 학생들이 뒤섞여 차를 기다린다. 실은 터미널이 시장에 들어선 게 아니라, 제민천 상류 쪽에 있던 재래시장이 새 상권에 밀려 터미널 쪽으로 내려온 것이다.
 
산성시장과 관련해, 친일파이자 일제 때 전국 최고 땅부자였던 ‘공주 갑부’ 김갑순(1872~1960)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구한말까지 제민천변 재래시장은 현 우체국 상류 쪽에 있었다. 하류 쪽은 온통 미나리꽝이었다. 1918년 시가지 정비계획이 실행되자 김갑순이 미나리꽝을 매립하고 200여 점포를 갖춘 사설시장을 만들었다고 한다(<공주시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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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시장2길 모퉁이에 떡집이 있다. 인절미·송편·영양떡 등 30여 가지 떡을 만드는데, 단체로 신청하면 인절미 등 떡만들기 체험(3천원)이 가능하다. 시장 안 골목엔 구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기름 짜는 집이 아니더라도, 수십년간 잔치국수·보리밥·해장국(이상 3천원)을 해온 집들, 순대·머릿고기 집들이 모여 있다.
 
순댓국밥 점심을 먹으며 문화관광해설사 임재준(63)씨가 술 한 잔을 권했다. “이 잔은 일단 받아야여. 왜냐. 공주 사람덜은 술 마실 땐 ‘빌 공’ 자에 ‘술 주’ 자를 쓰잖여. 손님한테 일단 공짜 술을 한 잔 줘야는 겨.”
 
전국 최고 갑부 김갑순, 재산도 자손도 ‘모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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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벗어나 제민천 둑길로 나선다. 시멘트 벽 사이의 제민천 물길엔 수초도 있고 돌다리도 있다. 수량은 적지만 물은 깨끗하다. 좌우에 산책로 겸 자전거길도 있다. 공주 옛 도심을 관통해 금강으로 흘러드는 제민천은 30년 전엔 빨래도 하고 고기잡이도 하던 도심의 젖줄이었다. 물이 마르고 오염이 심해지면서 시궁창이 되다시피 했으나, 최근 금강 물을 끌어다 상류에서 흘러내려보내면서 수질을 회복해 물고기가 뛰노는 하천으로 돌아왔다.
 
반죽교 건너면 공주문화원과 공주우체국이 좌우로 있고 그 앞길 왼쪽에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 서 있다. 1920년 건립돼 초기엔 금융조합회관으로, 1989년까지는 공주읍 사무소와 공주시 청사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개인 소유로 넘어간 뒤 지금은 방치돼 있다.
 
감영길에서 우회전해 봉황산 기슭 공주사대부고로 간다. 정문 안 왼쪽 담 옆에 주춧돌 등 석재를 모아 놓은 곳이 있다. 조선 후기 충청감영이 있던 자리다. 대전으로 도청소재지가 옮겨가는 1932년까지 충남도청사로 쓰였다. 도청을 옮기기 전 대전에 미리 대규모로 땅을 사뒀다가 엄청난 부를 챙긴 이도 김갑순이다. 도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과 동헌은 곰나루관광지로 옮겨 복원했다.
 
공주사대부고를 나와 오른쪽 첫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왼쪽에 공주향교 유림회관이 있고 대각선 쪽으로 풀 나무 우거진 소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한쪽에 당간지주(절 들머리에 세웠던 깃대 받침기둥)가 우뚝해 절터였음을 알게 해준다. 527년 양나라 무제를 위해 창건했다는 대통사 터로 알려진다. 당간지주 옆에 주춧돌 등 석재들을 모아놓았다.
 
당간지주 앞 주택은 공주 갑부 김갑순이 살던 집이다. 김갑순 사후, 그 많던 재산도 자손도 종적을 찾기 어렵다고 알려진다. 김갑순 집터임을 알리는 검은 표지석에선 세월과 물욕의 무상함이 묻어난다. 공산성에서 여기까지 쉬며 먹으며 4시간, 4.5㎞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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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주 여행쪽지
 
◎ 손수운전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 타고 가다 천안~논산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공주분기점에서 대전~당진 고속도로 유성 쪽으로 갈아탄 뒤 공주나들목에서 나간다. 시청 방향으로 가다 금강교(일방통행)나 백제큰다리 건너면 공산성 앞으로 간다. 참고로 대전~당진 고속도로에 이어 공주~서천 고속도로도 개통됐다.
◎ 대중교통 서울 강남 및 남부터미널에서 공주까지 20~30분 간격으로 우등고속버스가 운행된다. 1시간30분 소요. 공주고속터미널 가기 직전, 공산성 앞의 공주 구터미널에도 선다.
공산성 금서루에서 매주 토·일요일(4~10월, 혹서기 제외) 11~16시 매시간 수문병 교대식이 열린다. 공주는 이름난 밤 생산지다. 10월 중순까지 밤농가들에서 알밤 줍기 체험을 할 수 있다. 3㎏ 1만원. 공주시청 산림녹지과 (041)840-2818. 밤묵·밤해물파전·밤묵채밥·밤된장찌개·밤밥·밤막걸리를 내는 우성면 한천리 밤음식 농가(오흥찬 이장 010-3845-6107), 알밤막걸리를 만드는 사곡주조 (041)841-3541.

 
공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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