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호수의 나라, 그 자연을 닮은 ‘디자인 명품’ 길따라 삶따라

핀란드 헬싱키와 피스카르스
절제된 아름다움의 도시…1시간 이내 도보 관광
탁자 다리도 휘어서 만드는 있는 그대로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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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핀란드 말로 ‘수오미’라고 한다. 늪지대(수오)가 많은 땅(미)을 뜻한다. 남한의 네 배 가까운 땅의 70%가 숲과 호수로 이뤄졌다. 6만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국토를 적시고 있다. 핀란드 여행을 떠나기 전, 머릿속엔 울창한 숲과 눈부신 호수, 자작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 호숫가 숲길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일정이 겹치면서 숲길은 멀어졌지만, 아름다운 도시 골목과 사람 이야기들이 배낭에 가득 찼다. 한밤중에도 훤한 백야 체험은 여름철 핀란드 여정에 기본으로 깔린다.
 
장식보단 기능…단조로워 보여도 멋을 아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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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의 골목 투어는 만족스러웠다.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로 ‘디자인 강국’이란 명성을 되새기게 해주는 다채로운 볼거리들이 넘쳤다. 수도 헬싱키는 유럽의 다른 옛 도시들에 비하면 짧은 역사를 지녔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신고전주의·신낭만주의·아르누보 양식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지금 도심의 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디자인 강국으로 통하는 북유럽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핀란드 디자인은 좀더 환경 친화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출입구 장식이나 창문 장식을 보면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개성적인 멋을 살린 건축물들이 많다.
 
생활용품에서도 장식보다는 기능이 강조되고, 원재료의 장점을 그대로 살린 것들이 많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도드라지는 이유다. 일본인들이 특히 이런 디자인을 선호해, 헬싱키의 아르테크나 이탈라 등 디자인매장에 줄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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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도심은 대부분 걸어다니며 둘러볼 만하다. 1시간 이내에 주요 도심의 볼거리들을 답사할 수 있다. 특히 헬싱키가 자랑하는 디자인 지구 탐방은 시내 중심거리인 에스플라나디 공원과 헬싱키 중앙역의 위치 정도만 파악하면 별 어려움 없이 도보 탐방이 가능하다. 남북 에스플라나디 거리와 여기서 남서쪽 거리의 골목에 디자인 명소들이 몰려 있다.
 
헬싱키의 디자인 명품 골목을 들여다보기 전에 알아둬야 할 인물이 있다. 핀란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르 알토(1898~1976)다. 그는 건축뿐 아니라 생활용품 디자인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나 꽃병 등은 지금까지도 핀란드인 일상생활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쉰다. 특히 입구를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한 꽃병은 다양한 제품으로 변형 생산돼 어딜 가나 눈에 띌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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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매장 즐비, 앉았던 의자 사갈 수 있는 식당도

 
알바르 알토의 체취가 살아 있는 디자인 매장이 ‘남 에스플라나디’ 거리의 아르테크다. 1935년 알바르 알토의 주도로 만들어진 디자인숍이다. 가구·유리제품·시계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전시·판매한다. 핀란드에 5개의 매장이 있다. 아르테크 제품의 특징은 부드러운 곡선미다. 의자 다리도 탁자 다리도 나무를 잘라 붙이지 않고 휘어서 만든다. 이런 곡선미는, 알바르 알토가 개발한 독특한 목재 구부리기 방식에서 나온다. 나무 중간을 잘게 여러 겹을 켜내어 쉽게 구부린 뒤 켜낸 부분에 다시 얇은 나무판을 끼워넣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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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크 매장 벽엔 ‘의자 하나면 충분하다’란 글이 적혀 있다. 아르테크의 매니저 리나 툴리아(35)가 말했다. “모든 가구는 목재만을 쓴다. 한 번 사면 평생을 쓸 수 있게 만든다. 70년 전에 만든 의자가 지금도 세련된 멋을 자랑하는 이유다.”
 
에스플라나디 거리엔 북유럽 최대의 백화점인 스토크만백화점과 유명 패션브랜드인 마리메코, 그릇·유리 브랜드인 이탈라, 목재 액세서리 매장인 아리카 등을 만날 수 있다. 스토크만백화점 별관 서점과 ‘카페 알토’는 알바르 알토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Untitled-22 copy.jpg핀란드 디자인 산업을 이끌고 지원하는 곳이 디자인포럼이다. 2005년 설립된 일종의 ‘디자인 발전소’라 할 만하다. 해마다 우수 디자인을 선정·발표한다. 새 아이디어를 발굴해 기업과 연결해 주기도 한다. 현재 170개에 이르는 호텔·식당·패션몰·갤러리 등 디자인 명소가 선정돼 관광객 발길이 몰린다. 건축양식·실내장식·상품 제조방식 등에서 모두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곳들이다.
 
카르마 식당과 이바나헬싱키 매장도 흥미롭다. 카르마에선 식사한 뒤 앉았던 의자가 마음에 들면 바로 사서 가져갈 수 있다. 이바나헬싱키는 이름난 디자이너 수호넨 자매의 의류·소품 브랜드다. 생태윤리 소비를 강조해 가죽·모피는 쓰지 않는다. 도심에서 북쪽으로 다소 떨어진 곳에 있긴 하지만, 도자기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아라비아 공예품점으로 가면 다양한 도자기·유리 생활용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이탈라 매장도 있다.
 
거대한 암반을 깨내고 지은 템펠리아우키온 교회(암석교회), 시벨리우스 공원의 파이프오르간을 형상화한 조형물 등도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볼거리다.
 
600명주민 중 150명이 아티스트
 
Untitled-27 copy.jpg핀란드 디자인의 중심에서 명성을 떨치는 한국인들도 있다. 아무송씨와 홍순환씨 등이 그들이다. 디자인 포럼의 매니저 한나가 디자인 책자를 펼쳐 보여줬다. 무대 한가운데 붉은 드레스를 입은 가수가 노래를 하고, 주변에 둘러앉은 관객들은 가수의 거대한 드레스 자락을 덮고 있는 사진이다. 한나가 말했다. “아무송의 ‘레드 드레스’란 작품이죠. 촉망받는 디자이너입니다.”
 
아무송(한국이름 송희원)씨는 중앙역 부근 우체국 모퉁이에서 ‘살라 카우파’(비밀 가게)란 작은 디자인숍을 운영한다. [관련기사] ‘아무 거나 그의 손 거치면 짠!, 누구나 아하!
홍순환씨는 입구가 두 개인, 물 높이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꽃병 등을 개발했다고 한다.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85㎞ 떨어진 곳에 피스카르스란 소도시가 있다. 지하자원과 핀란드의 실용적 디자인의 특성을 결합해 관광객들이 몰리는 마을이다. 인구 600명 중 150여명이 아티스트라고 한다. 어린이·청소년을 빼면 성인의 대부분이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가 마을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이 마을은 1649년 제련공장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8세기엔 구리가 발견되면서 구리 제련으로 마을이 크게 부흥했다. 1822년 요한 율린이 핀란드 최초의 증기기관차 회사를 설립했던 곳이기도 하다. 쟁기와 가위 등 생활용품 생산지로 이름났던 이 마을이 핀란드 현대 디자인의 명소로 자리잡게 된 건 1967년부터다. 주홍색 플라스틱 손잡이를 단 가위가 세계적인 히트상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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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부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연을 만드는 디자인

 
주로 19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옛 집들과 공장들의 일부는 지금 디자인매장, 미술관 등으로 쓰인다. 세련된 디자인과 내구성을 자랑하는 가위와 칼, 수저 등 주방용품들이 특히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끈다. 피스카르스포럼 옆 물가의 옛 공장 건물은 각종 섬유작품을 선보이는 미술관이다. 수공예품부터 광섬유제품까지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Untitled-25 copy.jpg피스카르스 여행의 매력은 첨단 디자인매장이나 전시관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림 같은 마을 풍경이 한몫한다. 피스카르스란 이름은 물고기가 많다는 뜻의 스웨덴식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피스카르스 호수와 연결된 물줄기가 마을을 관통한다. 물길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울창한 숲 사이를 굽이돌며 그림 같은 경치를 보여준다. 물가엔 붉은 벽돌로 지은 옛 방앗간 건물과 주민이 살던 주택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에서 숲길을 30여분 걸으면 피스카르스 호숫가에 이른다. 호숫가 숲에서 자그마하게 복원된, 자작나무 장작을 쓰는 전통 사우나도 만날 수 있다. 핀란드는 500만 인구에 사우나가 100만개나 있는 사우나의 나라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매력인 피스카르스 마을 풍경은, 나무 베내고 시멘트 둑 쌓고, 물길 펴고 땅 파고 건물 신축하는 게 능사인 우리나라식 ‘관광지 개발’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피스카르스는 2007년 핀란드의 ‘지속 가능한 여행지’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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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여행쪽지
 
핀란드 여행정보는 핀란드관광청 누리집(www.visitfinland.co.kr)에서 얻을 수 있다. 핀란드 항공사 핀에어가 인천~헬싱키 직항편을 주 4회 운항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서머타임 적용 때 6시간) 느리다. 통화는 유로. 호텔·식당에서 팁은 필요 없다. 여름 여행 차림은 반팔·반바지가 기본이지만, 아침저녁으론 기온이 내려가므로 긴팔옷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바닷가를 여행할 경우 겉옷을 챙기는 게 좋다. 한여름엔 밤 11시 이후까지도 늦은 오후처럼 환한 백야가 이어지므로, 수면시간 조절에 유의해야 한다.
 
헬싱키 도심 여행의 경우 ‘북에스플라나디’ 거리의 관광안내소에서 지도와 관광정보를 얻을 수 있다. 헬싱키 카드를 사면 시내버스·지하철·트램(전차) 이용 때 편리하다. 박물관·미술관 입장료도 카드로 가능하다. 1~3일 동안 쓸 수 있는 33유로·43유로·53유로짜리가 있다. 헬싱키 시내엔 지하철 1개 노선과 11개의 트램 노선이 있다. 요금 2유로. 택시 기본요금은 4.7유로. 디자인 관련 정보는 디자인포럼(www.designforum.fi)에서 얻는다.
 에스플라나디 거리엔 140여년 된 식당 카펠리가 있다. 식당 앞쪽에 각종 공연이 벌어지는 무대가 설치돼 있다. 끝 바닷가 광장(마켓스퀘어)에선 과일·기념품 등을 파는 시장이 열린다. 여기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오멘린나 섬으로 가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섬 전체가 요새로, 스웨덴·러시아 지배 시절의 성곽·대포 등 유적이 남아 있다. 피스카르스 여행정보는 마을 누리집(
www.fiskarsvillage.fi) 참조. 
헬싱키·피스카르스(핀란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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