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년의 사랑이 빚은 돌기둥·섬기둥 숲 길따라 삶따라
2009.04.09 11:34 너브내 Edit
중국 쿤밍과 베트남 할롱베이
쿤밍, 수십 미터 송곳바위들 사방팔방 얼키설키
할롱베이 2000개 섬들 올망졸망, 겹겹이 수묵화

돌과 물의 사랑 얘기다. 오래 적시고 쓰다듬으며 사랑한 이야기. 서로 구석구석 매만지고 주고받아 마음결 몸결 아로새겼다. 닳고 닳은 이 지루한 사랑이 걸작을 낳았다. 참고 견디어 굳은 심지 간추려온 대자연의 사랑법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계자연유산이라 부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두 곳, 돌기둥 숲과 섬기둥 숲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베트남 북부 해안의 할롱베이와,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 남서쪽 윈난(운남)성 쿤밍(곤명)시의 거대한 돌기둥 숲 스린(석림·石林)을 둘러보는 4박6일 일정 내내 비가 오고 흐렸다. 사철 날씨가 봄처럼 온화해 ‘봄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도시 쿤밍의 스린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조선족 안내인이 위로하듯 말했다. “석림은 해가 날 때 봐도 좋지만, 이렇게 빗방울이 떨어지면 더 보기 좋습니다. 비에 젖은 바위 빛깔이 더 살아나기 때문이죠.”

북쪽 계곡엔 석회암 지형이 일군 ‘신의 밭’
안개비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대한 바위 전시장 풍경은 날씨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송곳 모양의 회색 바위들이 크기와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겹치고 얽혀 하늘을 찔러댔다. 이 거대한 돌기둥들은 때론 홀로 서서, 또 한몸으로 붙어 서서, 과장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깔려 관광객들의 입을 벌리게 했다. 사람들은 바위 틈새로 이어진 비좁은 골목을 따라가며 올려다보고 또 쳐다보며 악 소리를 낸다. 돌기둥들엔 ‘천하제일기경’ 등 붉고 푸른 대형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꼿꼿이 서고, 기울고, 쓰러진 돌기둥 틈새를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며 셔터를 누르노라면 견디기 어려운 세월의 무게가 발바닥에서 느껴진다.
대석림 한가운데 있는 망봉대 정자에 오르면 사방팔방 흩어져 깔린 엄청난 송곳바위 무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림은 쿤밍에서 동남쪽으로 120㎞ 떨어진 지역 350㎢에 걸쳐 형성된 석회암 지형을 말한다. 2억7천만년 전 지각운동으로 바닷속에 있던 지형이 융기한 뒤 물에 잠겼다 빠지기를 거듭한 끝에 현재의 모습은 7천만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널리 흩어진 7개의 석림 구역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밀집도가 높은 대·소석림 지역 11.3㎢를 개발해 탐방로를 내고 잔디를 깔았다. 비에 씻긴 듯 매끈하게 솟고 또 솟은 석림 돌무더기밭은 초대형으로 꾸민 일본식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바위기둥들마다 일정한 높이로 그어놓은 듯한 선이 보이는데, 이 금 간 부분이 바닷물 들어찼던 때의 지층을 나타낸다고 한다. 2006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규모가 큰 돌기둥들이 몰린 대석림과 약간 규모가 작은 소석림 구간을 대충 둘러보는 데만도 한나절이 걸린다. 우선 전동차를 타고 순환로를 따라가며 외석림 코스를 둘러본 뒤 대·소석림 속으로 들어가 골목골목 탐방할 것을 권한다. 13인승 전동차 삯이 대당 200위안(석림 입장료 150위안)이다.
석림에서 북쪽으로 34㎞ 떨어진 이량(의량)현의 계곡 속엔, 물이 수십만년 동안 바위 속을 구석구석 파고들어 이뤄낸 석회암동굴 주샹(구향·九鄕)동굴이 있다. 1989년 탐험대에 의해 발견된 이 동굴에선 종유석·석순·석주와 함께 계단식 논 모양으로 형성된 이른바 ‘신의 밭’으로 불리는 석회암 지형들이 눈길을 끈다. 거센 계곡물이 흐르는 동굴 속 비좁은 길을 따라 3.2㎞를 걸으며 동굴 안팎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2시간이 지나간다. 동굴 관람은 수직 엘리베이터를 타고 67m 계곡 밑으로 내려가, 10분 남짓의 계곡 탐방(보트)을 마치고 시작된다. 동굴 출구에선 리프트를 타고 입구 쪽으로 넘어오게 된다.
도승들도 바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집요한 애정을 쏟았다. 이들은 윈난성의 최대 호수 뎬츠(전지) 물가 절벽에 길이 20m, 지름 2m 가까운 굴을 파는 데 무려 78년 세월을 바쳤다. 호숫가 바위벼랑의 암자들을 잇는 지름길을 내기 위한 대공사였다. 쿤밍 남쪽 뎬츠 호숫가의 시산(서산) 룽먼(용문)석굴이다. 1781년 파기 시작해 1853년에야 공사가 끝났다. 이 동굴을 만나기 위해 탐방객들은 30분간 리프트를 타고 멋진 편백숲을 감상하며 미녀봉(여자가 누운 형상의 봉우리) 중턱까지 오른다. 걸어 내려가며 동굴을 통해 이어지는 오래된 암자들과, 아찔한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호수 경치는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30여 개 대형 바다동굴 속으론 시간이 들고 나고
스린의 돌밭이 드넓은 들판에 크고 작은 죽창을 깔아놓은 듯 거친 형상이라면, 할롱베이는 섬세한 필치로 그린 수묵화를 닮았다. 할롱만 바다에 돌기둥을 닮은 1994여개의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바다에 가득 찬 해무로 할롱베이의 섬무리를 온전히 감상할 순 없었지만, 짙고 여리게 겹쳐지며 다가오고 멀어지는 섬들의 모습은 오히려 황홀하기만 했다.
할롱베이(하룡만·下龍灣)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동쪽 해안도시 할롱 앞바다의 1500㎢에 이르는 해역, 또는 이곳의 무수한 바위기둥 섬무리를 이른다. 5억년 전 지각운동으로 솟고 가라앉기를 거듭하며 바닷물에 씻겨 형성된 석회암 지형이다. 물과 바위섬의 사랑의 추억들은 수억년 동안 해풍에도 견디고 미군 폭격에도 살아남아 세계자연유산의 이름을 얻었다. 유네스코는 1994년 할롱베이의 자연경관을, 2000년엔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섬들에 깃든 역사적 가치와 생물 다양성에 대한 세계유산 등록도 추진중이다.

할롱베이의 바닷물은 숱한 세월 드나들며 섬들을 다듬고 또 크고 작은 동굴도 뚫었다. 30여개의 대형 동굴이 발견됐고 이 가운데 ‘하늘궁전 동굴’, ‘놀라운 동굴’, ‘나무 감춘 동굴’ 등 세 곳을 개방하고 있다. 물이 드나들며 종유석과 석순들은 대부분 씻겨 나간 모습이지만, 거대한 지하동굴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할롱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무리 감상, 동굴 탐험과 함께 25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수상가옥촌 풍비엔을 둘러볼 만하다. 배를 타고 지나며, 빨래하고 밥 짓는 아낙과 대소변 보는 어린이들, 과일·생선 등을 팔러 다니는 상점 배 등 수상가옥촌의 일상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나뿐인 초등학교에서 수업중인 어린이들, 역시 하나뿐인 은행에서 거래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할롱베이 섬무리를 감상하며 선상에서 먹고 잘 수 있는 크루즈 여행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낮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세끼 뷔페식과 선상 요리실습 체험, 해넘이 감상, 카약 체험, 영화 감상 등을 즐기며 더블침대·샤워실이 있는 객실에서 잔다. 동굴 탐방, 풍비엔 수상가옥촌 방문도 포함해 2인1실 280달러.
쿤밍·할롱베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쿤밍, 수십 미터 송곳바위들 사방팔방 얼키설키
할롱베이 2000개 섬들 올망졸망, 겹겹이 수묵화

돌과 물의 사랑 얘기다. 오래 적시고 쓰다듬으며 사랑한 이야기. 서로 구석구석 매만지고 주고받아 마음결 몸결 아로새겼다. 닳고 닳은 이 지루한 사랑이 걸작을 낳았다. 참고 견디어 굳은 심지 간추려온 대자연의 사랑법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계자연유산이라 부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두 곳, 돌기둥 숲과 섬기둥 숲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베트남 북부 해안의 할롱베이와,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 남서쪽 윈난(운남)성 쿤밍(곤명)시의 거대한 돌기둥 숲 스린(석림·石林)을 둘러보는 4박6일 일정 내내 비가 오고 흐렸다. 사철 날씨가 봄처럼 온화해 ‘봄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도시 쿤밍의 스린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조선족 안내인이 위로하듯 말했다. “석림은 해가 날 때 봐도 좋지만, 이렇게 빗방울이 떨어지면 더 보기 좋습니다. 비에 젖은 바위 빛깔이 더 살아나기 때문이죠.”

북쪽 계곡엔 석회암 지형이 일군 ‘신의 밭’
안개비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대한 바위 전시장 풍경은 날씨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한 송곳 모양의 회색 바위들이 크기와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겹치고 얽혀 하늘을 찔러댔다. 이 거대한 돌기둥들은 때론 홀로 서서, 또 한몸으로 붙어 서서, 과장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깔려 관광객들의 입을 벌리게 했다. 사람들은 바위 틈새로 이어진 비좁은 골목을 따라가며 올려다보고 또 쳐다보며 악 소리를 낸다. 돌기둥들엔 ‘천하제일기경’ 등 붉고 푸른 대형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꼿꼿이 서고, 기울고, 쓰러진 돌기둥 틈새를 정신없이 헤집고 다니며 셔터를 누르노라면 견디기 어려운 세월의 무게가 발바닥에서 느껴진다.
대석림 한가운데 있는 망봉대 정자에 오르면 사방팔방 흩어져 깔린 엄청난 송곳바위 무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석림은 쿤밍에서 동남쪽으로 120㎞ 떨어진 지역 350㎢에 걸쳐 형성된 석회암 지형을 말한다. 2억7천만년 전 지각운동으로 바닷속에 있던 지형이 융기한 뒤 물에 잠겼다 빠지기를 거듭한 끝에 현재의 모습은 7천만년 전에 형성됐다고 한다. 널리 흩어진 7개의 석림 구역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밀집도가 높은 대·소석림 지역 11.3㎢를 개발해 탐방로를 내고 잔디를 깔았다. 비에 씻긴 듯 매끈하게 솟고 또 솟은 석림 돌무더기밭은 초대형으로 꾸민 일본식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 바위기둥들마다 일정한 높이로 그어놓은 듯한 선이 보이는데, 이 금 간 부분이 바닷물 들어찼던 때의 지층을 나타낸다고 한다. 2006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됐다.

석림에서 북쪽으로 34㎞ 떨어진 이량(의량)현의 계곡 속엔, 물이 수십만년 동안 바위 속을 구석구석 파고들어 이뤄낸 석회암동굴 주샹(구향·九鄕)동굴이 있다. 1989년 탐험대에 의해 발견된 이 동굴에선 종유석·석순·석주와 함께 계단식 논 모양으로 형성된 이른바 ‘신의 밭’으로 불리는 석회암 지형들이 눈길을 끈다. 거센 계곡물이 흐르는 동굴 속 비좁은 길을 따라 3.2㎞를 걸으며 동굴 안팎의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2시간이 지나간다. 동굴 관람은 수직 엘리베이터를 타고 67m 계곡 밑으로 내려가, 10분 남짓의 계곡 탐방(보트)을 마치고 시작된다. 동굴 출구에선 리프트를 타고 입구 쪽으로 넘어오게 된다.
도승들도 바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집요한 애정을 쏟았다. 이들은 윈난성의 최대 호수 뎬츠(전지) 물가 절벽에 길이 20m, 지름 2m 가까운 굴을 파는 데 무려 78년 세월을 바쳤다. 호숫가 바위벼랑의 암자들을 잇는 지름길을 내기 위한 대공사였다. 쿤밍 남쪽 뎬츠 호숫가의 시산(서산) 룽먼(용문)석굴이다. 1781년 파기 시작해 1853년에야 공사가 끝났다. 이 동굴을 만나기 위해 탐방객들은 30분간 리프트를 타고 멋진 편백숲을 감상하며 미녀봉(여자가 누운 형상의 봉우리) 중턱까지 오른다. 걸어 내려가며 동굴을 통해 이어지는 오래된 암자들과, 아찔한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넓은 호수 경치는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30여 개 대형 바다동굴 속으론 시간이 들고 나고
스린의 돌밭이 드넓은 들판에 크고 작은 죽창을 깔아놓은 듯 거친 형상이라면, 할롱베이는 섬세한 필치로 그린 수묵화를 닮았다. 할롱만 바다에 돌기둥을 닮은 1994여개의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바다에 가득 찬 해무로 할롱베이의 섬무리를 온전히 감상할 순 없었지만, 짙고 여리게 겹쳐지며 다가오고 멀어지는 섬들의 모습은 오히려 황홀하기만 했다.
할롱베이(하룡만·下龍灣)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동쪽 해안도시 할롱 앞바다의 1500㎢에 이르는 해역, 또는 이곳의 무수한 바위기둥 섬무리를 이른다. 5억년 전 지각운동으로 솟고 가라앉기를 거듭하며 바닷물에 씻겨 형성된 석회암 지형이다. 물과 바위섬의 사랑의 추억들은 수억년 동안 해풍에도 견디고 미군 폭격에도 살아남아 세계자연유산의 이름을 얻었다. 유네스코는 1994년 할롱베이의 자연경관을, 2000년엔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섬들에 깃든 역사적 가치와 생물 다양성에 대한 세계유산 등록도 추진중이다.

할롱베이의 바닷물은 숱한 세월 드나들며 섬들을 다듬고 또 크고 작은 동굴도 뚫었다. 30여개의 대형 동굴이 발견됐고 이 가운데 ‘하늘궁전 동굴’, ‘놀라운 동굴’, ‘나무 감춘 동굴’ 등 세 곳을 개방하고 있다. 물이 드나들며 종유석과 석순들은 대부분 씻겨 나간 모습이지만, 거대한 지하동굴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할롱 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무리 감상, 동굴 탐험과 함께 250여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수상가옥촌 풍비엔을 둘러볼 만하다. 배를 타고 지나며, 빨래하고 밥 짓는 아낙과 대소변 보는 어린이들, 과일·생선 등을 팔러 다니는 상점 배 등 수상가옥촌의 일상생활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하나뿐인 초등학교에서 수업중인 어린이들, 역시 하나뿐인 은행에서 거래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할롱베이 섬무리를 감상하며 선상에서 먹고 잘 수 있는 크루즈 여행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낮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세끼 뷔페식과 선상 요리실습 체험, 해넘이 감상, 카약 체험, 영화 감상 등을 즐기며 더블침대·샤워실이 있는 객실에서 잔다. 동굴 탐방, 풍비엔 수상가옥촌 방문도 포함해 2인1실 280달러.
쿤밍·할롱베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