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거리마다 유적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길따라 삶따라

맛과 멋의 항구 목포
옛시가지 눈물의 역사 넘어 빛의 거리로 재탄생
유달산 꽃안개에 취하고 ‘목포의 5미’에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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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유달산 ‘목포의 눈물 노래비’. 스피커에서 목포 출신 가수 이난영(1916~1965)의 애절한 목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온다. ‘목포의 눈물’. 흐릿한 축음기 소리 너머로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의 설움과 한이 느껴진다. 목포항을 개방(1897년)한 지 112년, 4·8 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린 지 90년. 설움도 딛고 핍박도 견뎌낸 목포항이 다시 봄을 맞았다.
 
유달산이 새봄 꽃잔치를 시작했다. 동백은 발치에 붉은 꽃송이를 떨구기 시작했고, 매화가 한창 고고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유달산은 본디 개나리 산이다. 손가락 모양의 일등바위·이등바위를 떠받치듯 둘러싼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벚나무들도 분홍빛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3월 말이면 산자락 대부분이 노랗고 흰 꽃안개에 휩싸일 전망이다.
 
줄을 잇는 옛 건물들, ‘영화 세트장’을 방불
 
유달산 봄꽃 감상 포인트는 순환도로를 달리며 개나리·벚꽃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꽃길을 걸어올라 산등성이 대학루·달선각·유선각 등에서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는 것이다. 봄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조망되는 거리와 항구, 앞바다를 둘러볼 수 있다. 오포대나 노적봉 주변만 올라도 시내를 내려다보기 좋다. 유달산 일대에선 4월3~5일 ‘유달산 봄꽃 축제’가 벌어진다. 꽃길걷기·꽃장식대회·꽃노래공연, 정명여중고에서 목포역까지 행진하는 4·8 만세운동 재현행사 등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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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꽃길은 자연스럽게 목포 옛도심 거리로 이어진다. 목포 여행길에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근대사 흔적들이다. 목포시내 번화가는 크게 유달산 주변 옛시가지와 바닷가를 메워 새로 개발한 하당 새시가지로 나뉜다. 옛 시가지와 유달산 자락 골목에 문화재로 등록된 근대 유적들이 즐비하다. 근대문화유산 박물관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거리다. 골목마다 줄을 잇는 옛 건물들이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한다. 일제 수탈의 대명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현 목포근대역사관)와 옛 은행 건물들, 일인들이 살던 2층 주택과 상점들을 만날 수 있다. 일본식 정원(이훈동 정원)도 남아 있다.
 
목포근대역사관 안엔 일본인들이 활보하는 목포 옛 거리와 관광지 풍경 사진들, 체포된 대한독립군과 군대위안부들에 가한 일제의 만행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처참하게 유린된 어린 군대위안부들의 모습이 담긴 희귀 사진들은 가슴을 쥐어짠다.
 
목포시청 관광기획과 장일례씨는 “옛 일본인 거리 모습을 보려고 목포를 찾는 일본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일제 만행 사진이 전시된 근대역사관도 일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말했다.
 
처참한 사진들을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일본인들도 있다고 한다. 역사관 안에 일제가 금고로 사용하던 방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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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거리란 당시 유달산 동남쪽 자락과 바다 사이 유달동 일대의 평지에 바둑판식으로 조성한 거리를 가리킨다. 당시 일제는 호남평야의 곡식을 반출하기 위해 호남선 철길을 놓고 목포 항만시설을 확충하는 등 목포를 ‘개발’했다. 그 흔적들이 유달동 일본인 거리다. 유달산 자락 남동쪽 평탄한 지역을 일본인들이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인들은 밀려나 산비탈 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유달동 격자형 거리에 일본인 집들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 치욕의 역사가 깃든 거리도 이젠 차분히 뒤돌아봐야 할 역사학습장으로 다가왔다. 동양척식주식회사, 호남은행 목포지점, 청년회관, 양동교회 등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만 9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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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 문화예술 전시관 골라보는 재미…유람선 야경도 명물

 
암울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목포 옛시가지는 최근 ‘빛의 거리’로 거듭났다. 3년 전 목포역 부근 중앙로 오거리 일대에 형형색색의 불빛을 밝힌 조형물을 설치해 화려한 야경을 선보였다. 매일 밤 불을 밝혔으나 에너지 절약을 위해 요즘엔 주말과 휴일 밤에만 점등한다. 목포 야경을 바다에서 감상하는 유람선은 매일 운항한다.
 
자녀동반 가족여행 길이라면 남항 부근 입암산 자락 남농로로 발길을 돌려볼 만하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목포자연사박물관·남농기념관·생활도자박물관·문예역사관·목포문학관 등 8개의 대형 문화예술 전시관이 몰려 있는 곳이다. 관심 분야의 전시관을 찾아 진귀한 유물과 작품들을 만나 보자. 해양유물전시관·생활도자기박물관 등은 2009년 말까지 무료로 개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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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거리 끝에서 오른쪽 바닷가로 들면 최근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된 갓바위(중바위)를 만난다. 입암산(갓바위산)을 비롯한 바닷가 주변의 많은 바위들이 풍화·해식작용으로 삿갓 형상을 하고 있다. 주민들은 갓바위가 삿갓을 쓴 중을 닮았다 해서 ‘중바우’로 불러왔다. 갓바위 앞바다 위로 물에 뜨는 나무다리를 설치해 바다 쪽에서 갓바위 정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갓을 쓴 두 사람이 함께 앉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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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0여분 거리의 외달도는 여름 휴양지로 이름높다. 대형 풀 등 물놀이시설과 산책로, 한옥 숙박시설을 갖춘 섬이다. 23가구의 집들이 모두 민박집이다. 지금은 다소 썰렁한 풍경이지만, 여름이 가까워지면 찾는이가 급증한다. 7월~8월 물놀이시설을 개장한다. 갯바위낚시 포인트도 많다. 4월엔 섬 일주 산책로가 개통될 예정이다. 
 
앞바다에 섬이 지천인 목포엔 해산물도 지천이다. 목포 주민들이 대놓고 자랑하는 ‘다섯 가지 맛’ 모두가 해산물이다. 홍탁삼합·민어회·세발낙지·먹갈치·꽃게무침을 ‘목포의 5미’라 부른다. 곳곳에 각 해산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식당들이 널려 있다. 취향대로 골라 드시길. 연안여객선터미널 부근에 목포종합수산시장과 건어물시장이 있고, 북항 쪽엔 활어횟집들이 즐비하다. 수산시장 큰길가엔 홍어를 파는 집들이 많다. 흑산도 홍어와 칠레산 홍어를 구분해 썰어서 판다. 덜 삭힌 것, 푹 삭힌 것을 골라 살 수 있다.
 
◈ 여행쪽지
○ 가는 길
Untitled-3 copy.jpg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끝까지 가면 목포나들목이다. 호남고속도로 타고 내려가 광주 산월나들목에서 나가 순환도로 요금소 지나 팻말 보고 광주~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서해안고속도로와 만나(함평분기점) 목포로 내려간다. 목포시청 관광과 (061)270-8431.

○ 먹을 곳
목포 옥암동의 인동주마을 본점(061-284-4068)은 홍탁삼합과 꽃게장으로 유명하다. 홍어삼합 1만5천원, 꽃게장백반(간장게장+홍어삼합) 4인분 3만원, 가오리찜 1만원, 인동초로 담그는 인동주 5천~1만원. 주인 우정단씨는 혼자 찾아오는 손님에겐 밥값을 받지 않고 대접해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만호동 영란횟집(061-243-7311)은 사철 민어회를 내는 집. 민어 어란·부레·뼈다짐·껍질도 맛볼 수 있다. 2~3인분 한 접시에 4만5천원, 탕 한그릇 5천원. 온금동의 선경준치횟집(061-242-5653)은 준치회를 비롯해 다양한 생선요리를 내는 식당. 준치·병어·송어(밴댕이) 회부침 각각 1인분 8천원, 조기·갈치·아구(아귀)·우럭을 굽고 탕도 끓인다.

○ 묵을 곳
하당 신시가지 일대에 새로 지은 깨끗한 호텔과 모텔들이 몰려 있다. 모텔 1박 2만5천~5만원.
목포/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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