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판에 있는 게 물건뿐이랴, 흥도 흥정도 질펀 길따라 삶따라
2009.01.22 15:31 너브내 Edit
포항 죽도 어시장
14만여㎡ 2000여 점포 빼곡, 골목골목 북새통
온갖 냄새·소리 범벅, 인정도 행복도 팔딱팔딱

한 지역의 특징을 빨리, 쉽게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재래시장 둘러보기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니, 재래시장 뒤지면 어지간한 건 다 나온다. 지역 대표 생산물과 전통문화·사람살이·맛과 멋을 한 줄에 꿰어 살필 수 있는 종합박람회장이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여 낮밤 없이 생존경쟁을 벌이는 적나라한 삶의 현장이자, 웃음소리·악쓰는 소리·욕지거리가 난무하는 목청 경연장이기도 하다.
사람냄새·비린내·밥냄새·땀냄새가 진동하는 재래시장 여행을 떠나 보자. 뜨끈한 인정 한 움큼, 자질구레한 행복 한 봉지 챙겨 올 수 있다.
앞사람 발뒤꿈치 보며 줄지어 이동
포항시 동빈내항 옆, 죽도시장은 경북 동해안 최대 상설시장이다. 죽도는 이름 그대로 섬이었다. 칠성천·양학천 등 하천이 복개되고 간척되면서 주변의 송도·상도 등과 함께 육지가 됐다. 해방 직후 천막촌 시장으로 형성된 작은 시장이 1960년대 어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모습을 갖췄다. 70년대 초 포항제철이 들어서면서 전국적인 대형 상설시장으로 도약했다.
14만8500㎡(4만5천평)의 터에 활어·건어물·농산물·혼수·의류·가구·생필품상가 등 2000여 점포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대부분 단층 점포여서 시장은 더욱 넓게 느껴진다.
죽도시장연합상인회 박세영(58) 회장은 “요즘 경기가 안 좋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면서도 “우리 시장은 그래도 빈 점포 하나 없을 정도로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점포들이 빈틈없이 들어선 격자형 골목들엔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인파가 들어찬다. 설 연휴를 앞둔 요즘 가장 활기 넘치는 곳이 어시장이다. 김·파래·매생이부터 상어·고래고기까지 동서남해안에서 나는 거의 모든 수산물이 거래된다. “여기 없으모 딴 데 있을 텍이 없다”는 게 상인들 말이다.
공식 점포만 200여개에 이르는 활어횟집, 1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선 건어물 상가도 붐비기는 마찬가지. 어느 곳이나 길바닥에 편 좌판들에다 손수레 이동좌판까지 몰려들어 시장 골목들은 북새통을 이룬다.
“자자, 쫌 가입시더.” “이기 뭐꼬? 발 쫌 밟지 마소.” “아재요, 대구 한 마리 사 가소. 참말 싱싱함미더.”
규모가 크고 다루는 품목이 다양한 만큼 볼거리·살거리·느낄거리가 풍성하다. 가게주인·손님·행인·노점상인·배달꾼이 서로 부닥치고 밀치고 밟고 넘어지고 다투는 말썽거리도 잦다. 주말엔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며 줄지어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만 오가는 게 아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크고 작은 손수레들이 끊임없이 오고간다.

몰라몰라 개복치 ‘맛 없어 맛있네’
“아지매요, 미주구리(물가자미) 한 마리 더 얹어 주소.” “안된다카이. 고기값이 엄매나 비싼데 그라능교. 하나 덜 자시소.”
인파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흥정하는 모습 구경하며 골목들을 순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질하는 생선좌판 아지매들, 대형 솥에 삶아 건져낸 커다란 문어, 전기톱날에 순식간에 토막나는 냉동 돔배기(상어고기) 등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죽도어시장을 상징하는 대표 어족들로 고래고기와 돔배기, 개복치, 과메기 등이 있다. 고래고기는 물론 그물에 걸려 죽은 것들이 유통돼 들어온 것이고, 상어고기는 가공공장이 있는 영천에서 주로 들어온다. 과메기는 꽁치 과메기뿐 아니라 본디 과메기의 유래가 된 청어과메기도 있다.
지역민들 경조사 때 빼놓지 않고 장만해 상에 올리는 해산물이 문어·돔배기·개복치다. 돔배기 토막에 칼집을 내던 아저씨가 말했다. “돔배기·개복치 이기 빠지모 재미없다 카는기라. 그카모 상 차린 기도 아이다.”
개복치 잘라놓은 토막은 마치 흰 묵처럼 생겼다. 무슨 맛이냐고 묻자 상인회장 박씨는 “아무 맛도 없는 맛”이라고 말했다. “무색·무미·무취 이 3무가 개복치의 특징인기라요. 이 ‘맛없는’ 고기를 여기 사람들은 무쟈게 맛있어하는 기라.”
개복치는 복어목에 속하는 길이 1m 안팎의 대형 온대성 어종인데,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몰라 몰라가 개복치 학명(Mola mola)이다. 라틴어로 맷돌을 뜻한다고 한다. 동서남해안에서 두루 잡히지만, 경북 중남부 해안지역 주민들이 유독 좋아해, 특히 잔칫상엔 빠지는 일이 없다. 삶아서 잘라 놓으면 청포묵을 빼닮았다. 초고추장에 찍어 술안주로 많이 먹는다.
3천원 수제비 한 그릇이면 뱃속까지 ‘뜨끈’
물건 사고 구경하다 허기가 느껴지면, 물회 골목으로 가거나 수제비 골목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200여곳의 횟집들이 빼놓지 않고 내는 대표 먹을거리가 물회다. 원하는 해산물로 즉석에서 시원한 물회를 만들어 준다. 갖가지 해산물 반찬에다 매운탕까지 곁들여진다. 광어나 가자미·우럭 물회는 1만~1만2천원, 해삼·전복 물회는 시세에 따라 다르다.
값싸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이 수제비 골목이다. 다양한 분식류를 내는 좌판식당들인데, 이곳 대표 종목이 수제비다. 감자를 썰어 넣은 다시국물에 밀가루 수제비를 뚝뚝 뜯어 넣고 끓여 김가루를 뿌려 내준다. 3천원.
딸·사위, 어린 손자·손녀와 함께 수제비·칼국수를 주문해 들던 박순자(60·흥해읍 학천리)씨는 “돔배기 등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러 시장에 왔다”며 “수제비가 맛있어 시장에 올 때마다 이 골목에 들른다”고 말했다.

죽도시장이 포항의 명물로 떠오르면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어시장 풍경을 찍으려는 사진동호회 회원들도 수시로 몰려온다. 대개 상인과 행인들은 환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거나, 덤덤한 표정으로 피사체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만, 생업에 바쁜 일부 상인들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찍지 마소. 고마.” “이 고기만 찍으면 어떨까요?” “고기도 안된다카이. 초상권 침해 모르요?”
대부분의 시장 주변이 그렇듯이 죽도시장 주변도 주말이면 교통체증이 상상을 넘어선다. 길옆의 대형버스 주차장, 3곳의 승용차 공영주차장, 10여곳의 사설 주차장들이 빈틈없이 들어차고, 체증은 주변 도로까지 이어진다. 공중화장실이 세 곳밖에 없는 것도 불편한 점이다.
죽도시장연합상인회 고객센터 1566-8253, 죽도어시장상인회 (054)247-0180.
포항/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14만여㎡ 2000여 점포 빼곡, 골목골목 북새통
온갖 냄새·소리 범벅, 인정도 행복도 팔딱팔딱

한 지역의 특징을 빨리, 쉽게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재래시장 둘러보기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니, 재래시장 뒤지면 어지간한 건 다 나온다. 지역 대표 생산물과 전통문화·사람살이·맛과 멋을 한 줄에 꿰어 살필 수 있는 종합박람회장이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여 낮밤 없이 생존경쟁을 벌이는 적나라한 삶의 현장이자, 웃음소리·악쓰는 소리·욕지거리가 난무하는 목청 경연장이기도 하다.
사람냄새·비린내·밥냄새·땀냄새가 진동하는 재래시장 여행을 떠나 보자. 뜨끈한 인정 한 움큼, 자질구레한 행복 한 봉지 챙겨 올 수 있다.
앞사람 발뒤꿈치 보며 줄지어 이동

14만8500㎡(4만5천평)의 터에 활어·건어물·농산물·혼수·의류·가구·생필품상가 등 2000여 점포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대부분 단층 점포여서 시장은 더욱 넓게 느껴진다.
죽도시장연합상인회 박세영(58) 회장은 “요즘 경기가 안 좋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면서도 “우리 시장은 그래도 빈 점포 하나 없을 정도로 여전히 활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점포들이 빈틈없이 들어선 격자형 골목들엔 평일·주말 가리지 않고 인파가 들어찬다. 설 연휴를 앞둔 요즘 가장 활기 넘치는 곳이 어시장이다. 김·파래·매생이부터 상어·고래고기까지 동서남해안에서 나는 거의 모든 수산물이 거래된다. “여기 없으모 딴 데 있을 텍이 없다”는 게 상인들 말이다.
공식 점포만 200여개에 이르는 활어횟집, 100여개의 점포가 들어선 건어물 상가도 붐비기는 마찬가지. 어느 곳이나 길바닥에 편 좌판들에다 손수레 이동좌판까지 몰려들어 시장 골목들은 북새통을 이룬다.
“자자, 쫌 가입시더.” “이기 뭐꼬? 발 쫌 밟지 마소.” “아재요, 대구 한 마리 사 가소. 참말 싱싱함미더.”
규모가 크고 다루는 품목이 다양한 만큼 볼거리·살거리·느낄거리가 풍성하다. 가게주인·손님·행인·노점상인·배달꾼이 서로 부닥치고 밀치고 밟고 넘어지고 다투는 말썽거리도 잦다. 주말엔 앞사람 발뒤꿈치를 보며 줄지어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만 오가는 게 아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크고 작은 손수레들이 끊임없이 오고간다.


몰라몰라 개복치 ‘맛 없어 맛있네’
“아지매요, 미주구리(물가자미) 한 마리 더 얹어 주소.” “안된다카이. 고기값이 엄매나 비싼데 그라능교. 하나 덜 자시소.”
인파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흥정하는 모습 구경하며 골목들을 순례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칼질하는 생선좌판 아지매들, 대형 솥에 삶아 건져낸 커다란 문어, 전기톱날에 순식간에 토막나는 냉동 돔배기(상어고기) 등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죽도어시장을 상징하는 대표 어족들로 고래고기와 돔배기, 개복치, 과메기 등이 있다. 고래고기는 물론 그물에 걸려 죽은 것들이 유통돼 들어온 것이고, 상어고기는 가공공장이 있는 영천에서 주로 들어온다. 과메기는 꽁치 과메기뿐 아니라 본디 과메기의 유래가 된 청어과메기도 있다.

개복치 잘라놓은 토막은 마치 흰 묵처럼 생겼다. 무슨 맛이냐고 묻자 상인회장 박씨는 “아무 맛도 없는 맛”이라고 말했다. “무색·무미·무취 이 3무가 개복치의 특징인기라요. 이 ‘맛없는’ 고기를 여기 사람들은 무쟈게 맛있어하는 기라.”
개복치는 복어목에 속하는 길이 1m 안팎의 대형 온대성 어종인데,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몰라 몰라가 개복치 학명(Mola mola)이다. 라틴어로 맷돌을 뜻한다고 한다. 동서남해안에서 두루 잡히지만, 경북 중남부 해안지역 주민들이 유독 좋아해, 특히 잔칫상엔 빠지는 일이 없다. 삶아서 잘라 놓으면 청포묵을 빼닮았다. 초고추장에 찍어 술안주로 많이 먹는다.
3천원 수제비 한 그릇이면 뱃속까지 ‘뜨끈’
물건 사고 구경하다 허기가 느껴지면, 물회 골목으로 가거나 수제비 골목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200여곳의 횟집들이 빼놓지 않고 내는 대표 먹을거리가 물회다. 원하는 해산물로 즉석에서 시원한 물회를 만들어 준다. 갖가지 해산물 반찬에다 매운탕까지 곁들여진다. 광어나 가자미·우럭 물회는 1만~1만2천원, 해삼·전복 물회는 시세에 따라 다르다.
값싸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이 수제비 골목이다. 다양한 분식류를 내는 좌판식당들인데, 이곳 대표 종목이 수제비다. 감자를 썰어 넣은 다시국물에 밀가루 수제비를 뚝뚝 뜯어 넣고 끓여 김가루를 뿌려 내준다. 3천원.
딸·사위, 어린 손자·손녀와 함께 수제비·칼국수를 주문해 들던 박순자(60·흥해읍 학천리)씨는 “돔배기 등 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장만하러 시장에 왔다”며 “수제비가 맛있어 시장에 올 때마다 이 골목에 들른다”고 말했다.

죽도시장이 포항의 명물로 떠오르면서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어시장 풍경을 찍으려는 사진동호회 회원들도 수시로 몰려온다. 대개 상인과 행인들은 환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거나, 덤덤한 표정으로 피사체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만, 생업에 바쁜 일부 상인들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
“찍지 마소. 고마.” “이 고기만 찍으면 어떨까요?” “고기도 안된다카이. 초상권 침해 모르요?”
대부분의 시장 주변이 그렇듯이 죽도시장 주변도 주말이면 교통체증이 상상을 넘어선다. 길옆의 대형버스 주차장, 3곳의 승용차 공영주차장, 10여곳의 사설 주차장들이 빈틈없이 들어차고, 체증은 주변 도로까지 이어진다. 공중화장실이 세 곳밖에 없는 것도 불편한 점이다.
죽도시장연합상인회 고객센터 1566-8253, 죽도어시장상인회 (054)247-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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