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메로 얼음 치면 환장할 맛이 ‘파다닥~’ 길따라 삶따라
2009.01.08 16:59 너브내 Edit
영월 주천강 전통 겨울천렵
언 강 뚫어 곡괭이로 돌 들추고 포크작살로 콱!
꺽지·동자개 등 술안주 삼아 추억도 ‘노릇노릇’

얼어붙은 강을 걷는다. 투명한 얼음 밑 깊은 강바닥이 훤하다. 유리판 위를 걷는 느낌이다. 쩡, 뚜두둥, 따닥, 텅 …. 멀리서 가까이서 얼음판을 울리는 청아한 소리. 얼음 갈라지는 소리다.
“어이, 여서부터 시작해 볼까? ”
강원 영월군 주천면 주천강. 주민 넷이 섶다리 상류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모였다. 모처럼 나선 겨울 천렵, 모두들 다소 흥분된 표정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밥 먹듯이 물고기잡이를 함께 즐겨온 초·중·고교 동기동창들이다.
마흔다섯 중년 넷, ‘잃어버린 30년’ 속으로
마흔다섯 중년 넷은 오랜만의 겨울 천렵을 위해 전날 세 가지 도구를 준비했다. 굵직한 나무 밑둥을 잘라 만든 떡메, 식사용 포크의 끝을 날카롭게 갈아 물푸레나무 장대 끝에 붙들어맨 작살, 그리고 역시 장대에 낀 곡괭이다.
“야야, 니 일루 와서 여 함 찍어봐라. 여 돌 밑에 꺽지 안 나오면 내 책임진다.”
영월읍 자동차 판매회사에 다니는 한태영씨가 물속의 커다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천리에서 다하누촌 정육점을 하는 박상준씨가 능숙하게 떡메를 내리쳐 얼음을 뚫었다. 얼음 파편이 튀며 지름 10여㎝의 구멍을 뚫리자, 박씨는 곡괭이로 구멍을 넓히고 손으로 얼음조각을 걷어냈다.
“돌 살살 일쿼봐라!”(들어올려라)
한씨가 얼음구멍에 곡괭이를 집어넣어 돌을 들자, 숨어 있던 크고작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움직임이 둔해 멀리 달아나지는 못한다.
“야, 저 동자개 어디 가는지 잘 봐둬. 꺽지부터 작살 들어간다.”
휴가를 내 고향을 찾은 부천 사는 홍사근씨가 작살을 들고 가장 큰 꺽지를 쫓았다. 도망다니던 꺽지가 멈춘 곳에 한씨가 다시 떡메를 내리쳐 얼음구멍을 뚫고, 홍씨는 작살 끝의 날카로운 포크로 꺽지를 겨눴다. 지친 꺽지는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작살 끝에 찍혀 올라왔다.
“불쌍해라.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느이들 잔인한 건 똑같다니까!”
홍씨의 부인이자 동창인 주영희씨가 혀를 차자 홍씨가 맞받았다.
“얼레, 궈 놓으면 젤 먼저 대들어 먹어치울 사람이 누군데? 고기나 줘 담으셔.”
네 명의 동기동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음판 위를 오가며 고기잡이에 푹 빠져들었다. 강물도 얼음판도 물고기도 네 친구도 모두 3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른 듯했다. 넷은 웃고 떠들고 말다툼하며 옛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 주씨의 비닐봉지엔 어느새 꺽지·동자개·돌고기·돌마자·모래무지 등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찼다.
박상준씨가 나뭇조각들을 모아 불을 지피며 말했다.
“옛날엔요. 양은솥에 강물 퍼서 고기 넣고 고추장 풀고, 파·양파·김치·감자·라면 뭐 기냥 가져온 건 다 때려 쳐넣고 끓여먹었대니까요. 그래두 술안주론 나뭇가지에 껴서 구워먹는 게 최고래요.”
박씨가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드는 동안, 홍씨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와 고기에 꿰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네 친구의 입에선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언 강에선 끊임없이 깊고 낮은 울림의 청아한 선율이 이어졌다.

“예전엔 1m 넘는 잉어나 50~60㎝ 날치도 흔했는데”
고기 잡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소줏잔을 돌리던 한씨가 말했다.
“지금 얼음 두께 5~6㎝ 정도인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수심도 얕고요. 강 전체가 얼어 있어 좀처럼 깨지지 않아요. 만약 강물 한쪽이 덜 얼었다면 들어가선 안 됩니다.”
투명하면서도 두꺼운 얼음은 흐르던 강물이 처음 얼어붙을 때 주로 나타난다. 녹다가 얼기를 반복하며 여러 차례 얼어붙은 얼음은 기포가 생기면서 탁해진다고 한다.
주천강 주민들이 첫얼음이 얼 무렵 주로 하던 고기잡이가 잉어몰이, 누치몰이였다. 투명한 얼음 밑에서 잉어나 누치를 발견하면 얼음판을 두드려, 추위로 움직임이 둔해진 고기가 지칠 때가지 몰아붙인다. 지친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떡메로 구멍을 뚫고 작살을 던져 잉어나 누치를 잡아올렸다. 이때는 외양간에서 두엄 쳐내는 큼직한 삼지창을 그대로 작설로 사용했다고 한다.
“여름에 잠수부 애들이 작살질로 싹쓸이해 가니, 고기가 남아나나 어디. 잉어는 이제 저 아래 3급수에나 가야 나온다래대. 누치·끄리는 여기도 있고.”
박씨가 정육점에서 가져온 쇠고기 등심을 물고기와 함께 구우며 푸념처럼 말하자,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얘들하고 겨울마다 이런 농기구로, 얼음판에서 물고기 몰고 구멍 뚫어 고기를 잡았걸랑요. 대대로 전해온 겨울놀이래요.”

“한 20년 전만 해도 깊은 물에선 1m 넘는 잉어나 50~60㎝ 되는 날치(끄리)도 흔하게 잡혔다니까요.”
“그걸 칡덩굴에 꿰 허리춤에 매면 땅바닥에 질질 끌렸댔어요.”
“니들 ‘섶’으루 고기잡던 거 생각나니? 돌로 보 막아놓구 도랑 맨들어 그 끝에 솔가지 덮어두면 고기가 거기 떨어져 쌓였잖아.”
네 친구들은 구운 물고기와 쇠고기를 안주 삼아 추억을 더듬었다. 강바닥에 앉아 술잔을 돌리며 마을의 전통놀이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언 강물이 맞장구치듯 요란하게 얼음 풀리는 소리를 냈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언 강 뚫어 곡괭이로 돌 들추고 포크작살로 콱!
꺽지·동자개 등 술안주 삼아 추억도 ‘노릇노릇’

얼어붙은 강을 걷는다. 투명한 얼음 밑 깊은 강바닥이 훤하다. 유리판 위를 걷는 느낌이다. 쩡, 뚜두둥, 따닥, 텅 …. 멀리서 가까이서 얼음판을 울리는 청아한 소리. 얼음 갈라지는 소리다.
“어이, 여서부터 시작해 볼까? ”
강원 영월군 주천면 주천강. 주민 넷이 섶다리 상류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모였다. 모처럼 나선 겨울 천렵, 모두들 다소 흥분된 표정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밥 먹듯이 물고기잡이를 함께 즐겨온 초·중·고교 동기동창들이다.
마흔다섯 중년 넷, ‘잃어버린 30년’ 속으로

“야야, 니 일루 와서 여 함 찍어봐라. 여 돌 밑에 꺽지 안 나오면 내 책임진다.”
영월읍 자동차 판매회사에 다니는 한태영씨가 물속의 커다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천리에서 다하누촌 정육점을 하는 박상준씨가 능숙하게 떡메를 내리쳐 얼음을 뚫었다. 얼음 파편이 튀며 지름 10여㎝의 구멍을 뚫리자, 박씨는 곡괭이로 구멍을 넓히고 손으로 얼음조각을 걷어냈다.
“돌 살살 일쿼봐라!”(들어올려라)
한씨가 얼음구멍에 곡괭이를 집어넣어 돌을 들자, 숨어 있던 크고작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움직임이 둔해 멀리 달아나지는 못한다.
“야, 저 동자개 어디 가는지 잘 봐둬. 꺽지부터 작살 들어간다.”

“불쌍해라.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느이들 잔인한 건 똑같다니까!”
홍씨의 부인이자 동창인 주영희씨가 혀를 차자 홍씨가 맞받았다.
“얼레, 궈 놓으면 젤 먼저 대들어 먹어치울 사람이 누군데? 고기나 줘 담으셔.”
네 명의 동기동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음판 위를 오가며 고기잡이에 푹 빠져들었다. 강물도 얼음판도 물고기도 네 친구도 모두 3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른 듯했다. 넷은 웃고 떠들고 말다툼하며 옛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 주씨의 비닐봉지엔 어느새 꺽지·동자개·돌고기·돌마자·모래무지 등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찼다.
박상준씨가 나뭇조각들을 모아 불을 지피며 말했다.
“옛날엔요. 양은솥에 강물 퍼서 고기 넣고 고추장 풀고, 파·양파·김치·감자·라면 뭐 기냥 가져온 건 다 때려 쳐넣고 끓여먹었대니까요. 그래두 술안주론 나뭇가지에 껴서 구워먹는 게 최고래요.”
박씨가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드는 동안, 홍씨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와 고기에 꿰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네 친구의 입에선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언 강에선 끊임없이 깊고 낮은 울림의 청아한 선율이 이어졌다.

“예전엔 1m 넘는 잉어나 50~60㎝ 날치도 흔했는데”
고기 잡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소줏잔을 돌리던 한씨가 말했다.
“지금 얼음 두께 5~6㎝ 정도인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수심도 얕고요. 강 전체가 얼어 있어 좀처럼 깨지지 않아요. 만약 강물 한쪽이 덜 얼었다면 들어가선 안 됩니다.”
투명하면서도 두꺼운 얼음은 흐르던 강물이 처음 얼어붙을 때 주로 나타난다. 녹다가 얼기를 반복하며 여러 차례 얼어붙은 얼음은 기포가 생기면서 탁해진다고 한다.
주천강 주민들이 첫얼음이 얼 무렵 주로 하던 고기잡이가 잉어몰이, 누치몰이였다. 투명한 얼음 밑에서 잉어나 누치를 발견하면 얼음판을 두드려, 추위로 움직임이 둔해진 고기가 지칠 때가지 몰아붙인다. 지친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떡메로 구멍을 뚫고 작살을 던져 잉어나 누치를 잡아올렸다. 이때는 외양간에서 두엄 쳐내는 큼직한 삼지창을 그대로 작설로 사용했다고 한다.
“여름에 잠수부 애들이 작살질로 싹쓸이해 가니, 고기가 남아나나 어디. 잉어는 이제 저 아래 3급수에나 가야 나온다래대. 누치·끄리는 여기도 있고.”
박씨가 정육점에서 가져온 쇠고기 등심을 물고기와 함께 구우며 푸념처럼 말하자,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얘들하고 겨울마다 이런 농기구로, 얼음판에서 물고기 몰고 구멍 뚫어 고기를 잡았걸랑요. 대대로 전해온 겨울놀이래요.”

“한 20년 전만 해도 깊은 물에선 1m 넘는 잉어나 50~60㎝ 되는 날치(끄리)도 흔하게 잡혔다니까요.”
“그걸 칡덩굴에 꿰 허리춤에 매면 땅바닥에 질질 끌렸댔어요.”
“니들 ‘섶’으루 고기잡던 거 생각나니? 돌로 보 막아놓구 도랑 맨들어 그 끝에 솔가지 덮어두면 고기가 거기 떨어져 쌓였잖아.”
네 친구들은 구운 물고기와 쇠고기를 안주 삼아 추억을 더듬었다. 강바닥에 앉아 술잔을 돌리며 마을의 전통놀이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언 강물이 맞장구치듯 요란하게 얼음 풀리는 소리를 냈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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