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메로 얼음 치면 환장할 맛이 ‘파다닥~’ 길따라 삶따라

영월 주천강 전통 겨울천렵
언 강 뚫어 곡괭이로 돌 들추고 포크작살로 콱!
꺽지·동자개 등 술안주 삼아 추억도 ‘노릇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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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강을 걷는다. 투명한 얼음 밑 깊은 강바닥이 훤하다. 유리판 위를 걷는 느낌이다. 쩡, 뚜두둥, 따닥, 텅 …. 멀리서 가까이서 얼음판을 울리는 청아한 소리. 얼음 갈라지는 소리다.
 
“어이, 여서부터 시작해 볼까? ”
 
강원 영월군 주천면 주천강. 주민 넷이 섶다리 상류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모였다. 모처럼 나선 겨울 천렵, 모두들 다소 흥분된 표정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밥 먹듯이 물고기잡이를 함께 즐겨온 초·중·고교 동기동창들이다.
 
마흔다섯 중년 넷, ‘잃어버린 30년’ 속으로
 
Untitled-3 copy.jpg마흔다섯 중년 넷은 오랜만의 겨울 천렵을 위해 전날 세 가지 도구를 준비했다. 굵직한 나무 밑둥을 잘라 만든 떡메, 식사용 포크의 끝을 날카롭게 갈아 물푸레나무 장대 끝에 붙들어맨 작살, 그리고 역시 장대에 낀 곡괭이다.
 
“야야, 니 일루 와서 여 함 찍어봐라. 여 돌 밑에 꺽지 안 나오면 내 책임진다.”
 
영월읍 자동차 판매회사에 다니는 한태영씨가 물속의 커다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천리에서 다하누촌 정육점을 하는 박상준씨가 능숙하게 떡메를 내리쳐 얼음을 뚫었다. 얼음 파편이 튀며 지름 10여㎝의 구멍을 뚫리자, 박씨는 곡괭이로 구멍을 넓히고 손으로 얼음조각을 걷어냈다.
 
“돌 살살 일쿼봐라!”(들어올려라)
 
한씨가 얼음구멍에 곡괭이를 집어넣어 돌을 들자, 숨어 있던  크고작은 물고기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움직임이 둔해 멀리 달아나지는 못한다.
 
“야, 저 동자개 어디 가는지 잘 봐둬. 꺽지부터 작살 들어간다.”
 
Untitled-4 copy.jpg휴가를 내 고향을 찾은 부천 사는 홍사근씨가 작살을 들고 가장 큰 꺽지를 쫓았다. 도망다니던 꺽지가 멈춘 곳에 한씨가 다시 떡메를 내리쳐 얼음구멍을 뚫고, 홍씨는 작살 끝의 날카로운 포크로 꺽지를 겨눴다. 지친 꺽지는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작살 끝에 찍혀 올라왔다.
 
“불쌍해라. 어릴 때나 지금이나 느이들 잔인한 건 똑같다니까!”
홍씨의 부인이자 동창인 주영희씨가 혀를 차자 홍씨가 맞받았다.
 
“얼레, 궈 놓으면 젤 먼저 대들어 먹어치울 사람이 누군데? 고기나 줘 담으셔.”


네 명의 동기동창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얼음판 위를 오가며 고기잡이에 푹 빠져들었다. 강물도 얼음판도 물고기도 네 친구도 모두 30년 세월을 거슬러 오른 듯했다. 넷은 웃고 떠들고 말다툼하며 옛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 주씨의 비닐봉지엔 어느새 꺽지·동자개·돌고기·돌마자·모래무지 등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가득 찼다.
 
박상준씨가 나뭇조각들을 모아 불을 지피며 말했다.
“옛날엔요. 양은솥에 강물 퍼서 고기 넣고 고추장 풀고, 파·양파·김치·감자·라면 뭐 기냥 가져온 건 다 때려 쳐넣고 끓여먹었대니까요. 그래두 술안주론 나뭇가지에 껴서 구워먹는 게 최고래요.”
 
박씨가 나무를 태워 숯을 만드는 동안, 홍씨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와 고기에 꿰어 손잡이를 만들었다. 모닥불 가에 둘러앉은 네 친구의 입에선 흐뭇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언 강에선 끊임없이 깊고 낮은 울림의 청아한 선율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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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1m 넘는 잉어나 50~60㎝ 날치도 흔했는데”
 
고기 잡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소줏잔을 돌리던 한씨가 말했다.
 
“지금 얼음 두께 5~6㎝ 정도인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수심도 얕고요. 강 전체가 얼어 있어 좀처럼 깨지지 않아요. 만약 강물 한쪽이 덜 얼었다면 들어가선 안 됩니다.”
 
투명하면서도 두꺼운 얼음은 흐르던 강물이 처음 얼어붙을 때 주로 나타난다. 녹다가 얼기를 반복하며 여러 차례 얼어붙은 얼음은 기포가 생기면서 탁해진다고 한다.
 
주천강 주민들이 첫얼음이 얼 무렵 주로 하던 고기잡이가 잉어몰이, 누치몰이였다. 투명한 얼음 밑에서 잉어나 누치를 발견하면 얼음판을 두드려, 추위로 움직임이 둔해진 고기가 지칠 때가지 몰아붙인다. 지친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떡메로 구멍을 뚫고 작살을 던져 잉어나 누치를 잡아올렸다. 이때는 외양간에서 두엄 쳐내는 큼직한 삼지창을 그대로 작설로 사용했다고 한다.
 
“여름에 잠수부 애들이 작살질로 싹쓸이해 가니, 고기가 남아나나 어디. 잉어는 이제 저 아래 3급수에나 가야 나온다래대. 누치·끄리는 여기도 있고.”
 
박씨가 정육점에서 가져온 쇠고기 등심을 물고기와 함께 구우며 푸념처럼 말하자, 친구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했다.
 
“얘들하고 겨울마다 이런 농기구로, 얼음판에서 물고기 몰고 구멍 뚫어 고기를 잡았걸랑요. 대대로 전해온 겨울놀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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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 전만 해도 깊은 물에선 1m 넘는 잉어나 50~60㎝ 되는 날치(끄리)도 흔하게 잡혔다니까요.”
 
“그걸 칡덩굴에 꿰 허리춤에 매면 땅바닥에 질질 끌렸댔어요.”
 
“니들 ‘섶’으루 고기잡던 거 생각나니? 돌로 보 막아놓구 도랑 맨들어 그 끝에 솔가지 덮어두면 고기가 거기 떨어져 쌓였잖아.”
 
네 친구들은 구운 물고기와 쇠고기를 안주 삼아 추억을 더듬었다. 강바닥에 앉아 술잔을 돌리며 마을의 전통놀이가 점차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언 강물이 맞장구치듯 요란하게 얼음 풀리는 소리를 냈다. 
 
영월/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주천강 주변 볼거리>
 
△ 법흥사
영월군 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기슭에 있는 절.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사찰 중 한 곳이다. 주천리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법당을 가리킨다. 신라 고승 자장이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들여와 다섯 곳에 봉안했다고 한다. 여러번 화재와 산사태 등을 겪으며 중건을 거듭했다. 법당에서 600m 떨어진 산기슭에 적멸보궁이 있고, 진신사리를 넣어 싣고 왔다는 석분과 사리를 봉안했다는 부도, 흥녕사(법흥사의 옛이름) 징효대사탑비, 징효대사 부도, 흥녕선원터 등의 문화재가 있다. 들머리인 법흥천 골짝도 수려하다.
 
△ 요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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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법흥사 쪽에서 흘러온 법흥천이 주천강에 합쳐지는 지점 인근 절벽에 앉은 아름다운 정자다. 부근 주천강변 청허루에 있던 있던 조선시대 숙종이 하사한 어제시를 봉안하고자 주민들이 힘을 모아 1915년 지은 아담한 정자다. 주천강변의 미륵사란 최근 생긴 절 마당에 차를 대고 5분가량 숲길을 오르면 정자에 이른다. 정자 옆 절벽 위 커다란 바위엔 고려시대에 새긴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마애불 뒤 바위에 서면 주천강 물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자 옆 주천강 물줄기엔 울퉁불퉁 굴곡이 심한 거대한 암반이 깔려 있다. 이것이 요선암이다. 요선암이란 이름은 이 부근 바위에 조선 중기의 여행가 양사언이 邀仙岩(요선암)이란 글씨를 새긴 데서 비롯했다고 알려지나, 글씨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주천리에서 차로 10분 거리.
 
△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
영월군 서면 옹정리 선암마을 앞 평창강이 심한 물굽이를 이룬 곳에 형성된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다. 평창강은 한반도 모양 만든 다음 주천강과 합쳐 서강 물줄기를 이룬다. 약간 높은 지대인 동해안 쪽은 숲으로 덮이고, 서해안 쪽은 얕은 모래밭으로 이뤄져 동고서저의 한반도 모습을 빼닮았다. 주천리에서 88번 지방도를 따라 영월읍 쪽으로 가다 책박물관 지나 우회전한 뒤 팻말 따라 가면 한반도 지형 가는 길이 안내판이 나온다. 숲길을 600m쯤 걸어오르면 전망대에 이른다.
 
△ 주천리·판운리 섶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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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면 소재지 옆 주천강과 판운리 평창강엔 해마다 늦가을 주민들이 섶다리를 놓는다. 섶다리는 늦가을에 놓아 이듬해 봄까지 사용하는 한시적인 나무다리로, 통나무와 솔가지로 만든 다리에 흙을 덮어 완성한다. 특히 눈 오는 날 섶다리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033)370-2061.
 
<주천강 여행쪽지>
 
△ 토종한우·토종물고기 주천강 천렵체험
주천강 주민에게 미리 연락하면 주민의 안내를 받아 주천강에서 전통방식(떡메·작살)의 토종 물고기잡이 체험을 할 수 있다. 잡은 물고기는 즉석에서 불을 피워 토종 한우를 곁들여 구워먹는다. 물고기잡이 체험+한우 600g+된장찌개 식사 포함해 3인가족 기준 5만7천원. 진행 박상준(011-9409-2677·다하누촌 사거리정육점), 함형구(011-371-8065·정보화마을 담당)씨.
 
△ 다하누촌
주천면 소재지인 주천리는 한우 쇠고기로 유명해진 ‘다하누촌’ 마을이다. 다하누촌 간판을 단 다섯 곳의 정육점에서 쇠고기를 산 뒤 부근 다하누촌 지점 식당으로 가면 1인당 2500원에 각종 밑반찬을 곁들여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다.
 
△ 가는길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제천 쪽으로 가다 치악산휴게소 지나 신림·주천나들목에서 나간다. 88번 지방도를 따라 주천 쪽으로 20여분 가면 신일사거리 지나 주천면 소재지가 나온다.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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