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이여, 꿀이여? “아주 그냥 끝내주어유” 길따라 삶따라

서해 천수만
‘바다의 우유’, 구이·전·칼국수로 ‘무한 변신’
고소하고도 얼얼한 특산 어리굴젓은 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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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안에 초겨울 큰 눈이 내렸다. 기름으로 얼룩진 한 해를 닦아내고 맞는 새 겨울 서설이다. 통통배도 조각배도 닻을 내리고 눈세례를 받는다. 찬바람 불고 눈발 날려도 갯벌은 변함없이 기름지다. 얼고 녹고, 물 머금고 내뱉으며 굴·조개를 키우고 갯지렁이를 살찌운다. 추울수록 부드러운 속살 깊이 품었던 야문 갯것들을 어민들 손길에 내어주는 해산물의 자궁이다.
 
태안 앞바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참사 1년. 서해안, 특히 충남 바닷가 주민들은 힘겨운 한 해를 보냈다. 된서리를 맞은 식당·숙박업소들은 아직도 ‘기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해안 일대에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많은 곳이 직간접 피해를 봤다. 천수만도 그런 지역이다. 안면도가 방파제 구실을 한 덕에 개펄이 살아남았지만, 관광객 발길은 뜸했다. 그런 천수만이 1년 만에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어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서해바다가 제 모습을 찾았고, 기름유출의 직접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이 꾸준히 알려진 덕분이다.
 
영양가 높고 맛 좋은 ‘바다의 보양식’ 굴이 지금 제철이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천수만 개펄 맛의 고갱이는 굴이다. 자연산 굴도 나오고 양식(지주식) 굴도 나온다. 천수만은 서산·태안·홍성·보령 해안과,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놓인 안면도 사이에 이뤄진 내해다. 수심이 낮고 간만의 차가 커 푸짐한 개펄이 발달했다. 1980~90년대 간척사업과 방조제 건설로 겪은 개펄 생태 변화 와중에도 풍부한 해산물 생산지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천북 굴단지>
포구 주변 대형 포장집 92곳 줄줄이…축제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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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포구에 겨울 천수만의 대표적 ‘굴맛 체험장’으로 자리잡은 ‘천북 굴단지’가 있다. 울긋불긋한 대형 포장집 92곳이 장은3리 포구 주변에 길게 늘어서 있다. 대표 종목인 굴구이를 비롯해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내는 굴칼국수, 시원하면서 매콤한 굴물회, 굴밥, 굴전 등 갖가지 굴 음식을 한자리에서 골고루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천북 굴구이촌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건 10여년 전. 장은리 옛 포구 바닷가에서 어민들이 추위 속에 불을 피우고 굴을 구워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데서 비롯했다. 10여년 전 홍성 방조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포구 주변 곳곳에 굴구이 포장집이 흩어져 있었으나 90년대 말 지금의 자리로 터를 잡아 뭉쳤다.
 
Untitled-3 copy.jpg주민들은 ‘굴단지’를 ‘꿀단지’라고 부를 정도로 맛과 향과 영양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천수만 개펄에서 난 굴은 알은 작지만서두, 맛은 그냥 아주 끝내주어유.”
 
굴은 껍데기 길이가 6~7㎝는 돼야 구워 먹을 만하다. 양식 굴은 1년 남짓이면 이 크기에 이르는 데 반해, 자연산은 2년 반~3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천북 굴단지에선 자연산과 양식산을 같은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알이 굵고 먹음직스워 양식산을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세숫대야만한 크기 한 바구니에 2만5천원이다.
 
연료는 몇 해 전까지 번개탄을 썼으나 유해가스 발생 문제로, 지금은 대부분 가스불로 바꿨다. 굴 바구니를 옆에 놓고는 장갑과 칼로 무장하고 익은 굴을 골라 공략해 들어간다. 먹을수록 고소한 굴맛에 빠져들면서, 껍질 까서 굴 꺼내 먹고, 껍질 버리는 동작이 한결 부드럽게 이어진다.
 
천수만 개펄에선 자연산 굴을 따기도 하고, 양식해 거두기도 한다.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천수만에서 난 굴이 모자라면 통영에서 수하식(굴껍질을 매단 밧줄을 바다에 내려 키우는 방식)으로 생산한 굴을 가져다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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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북 굴단지에선 지난 6일부터 제8회 보령 천북 굴축제를 시작했다. 내년 3월까지 매주 토·일요일에 굴요리 시연, 굴 바로알기 퀴즈대회, 굴과 음식 궁합맞히기, 민속놀이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37년이나 천수만에서 굴과 함께 살았다는 박상원(55·제8회 천북굴축제추진위 위원장)씨는 “지난 1년 주민들 마음고생·몸고생이 심했다”며 “천북 굴단지를 찾으면 오염 없는 깨끗한 굴을 2년 전 가격으로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간월도 어리굴젓>
천일염장해 고춧가루 팍팍…영하 5도로 두 달 숙성
 
Untitled-8 copy.jpg어리굴젓은 발효·숙성 과정을 거친 굴에 고춧가루를 듬뿍 섞어 매운맛을 강조한 서산 지역의 특산 젓갈이다. 서산시 부석면 천수만 A지구 방조제의 간월도리가 어리굴젓의 본고장이다. 간월도는 본디 섬이었으나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간만의 차가 큰 천수만 개펄에서 자란 굴은 물에 잠기고 햇볕에 드러나기를 되풀이하며 크는 까닭에 성장 속도가 느리다. 굴은 햇빛을 받으면 성장을 멈춘다고 한다. 이렇게 성장한 굴을 ‘강굴’이라 부른다. 간월도 강굴은 알은 작으나 굴 둘레에 돋은 이른바 ‘날개’가 7~8겹(보통 굴은 5겹)으로 많아 양념이 고루 잘 밴다고 한다. 이런 특성이 고소하고도 얼얼한 어리굴젓 탄생의 밑바탕이다.
 
간월도 어촌계에선 간월도 앞바다 개펄에서 채취한 강굴을 전량 어리굴젓 생산에 사용한다. 해마다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봄까지 물때를 보아가며 한 달에 20일 정도씩 굴을 채취한다. 채취작업은 어촌계 소속 68명 여성들 몫이다. 평생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온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굴 채취에 이력이 난” 할머니들은 한번에 40명씩 개펄에 투입돼 ‘조세’라 부르는 쇠꼬챙이로 굴을 곧바로 까서 채취한다. 1인당 10~15㎏ 정도씩 채취해, 하루 보통 500㎏의 굴이 어촌계에 들어온다.
 
Untitled-7 copy.jpg계원들은 정해진 값에 채취한 굴을 어촌계에 넘긴다. 어촌계에선 바닷물 세척과 껍질 제거 과정을 거쳐 천일염으로 염장해 보름 동안 발효(섭씨 10~15도)시킨 뒤 영하 5도 상태로 두 달 동안 둔다. 숙성되면서 굴의 단맛이 강화된다고 한다. 여기에 태양초 고춧가루를 버무려 어리굴젓을 완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무학표 간월도 어리굴젓’은 연 80t에 이른다. 간월도 어촌계 김덕신(42)씨는 “굴에 첨가되는 것은 물과 소금·고춧가루뿐으로 조미료도 일체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리굴젓은 간월도 주변 식당이나 안면도 쪽 식당들에서 밑반찬으로 제공된다.
 
<영양굴밥>
밤 대추 호두 등에 굴 넣는 돌솥밥 영양 만점 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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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여행길에 영양굴밥을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간월도와 안면도 초입에 굴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있다. 굴과 함께 밤·대추·호두·잣·은행 등 견과류들을 곁들여 돌솥에 밥을 지어내는 ‘영양돌솥밥’이다. 다양한 해산물이 포함된 밑반찬, 구수한 청국장이 따라 나온다. 1인분에 1만원 안팎. 일부 식당에선 굴전을 곁들여 내기도 한다. 간월도의 큰마을 영양굴밥(041-662-2706), 맛동산(041-669-1910) 등이 붐비는 집이다.
 
보령·서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또 하나의 맛, 남당리 새조개
 
‘나는 듯이’ 살짝 데쳐 술 한 잔에 “캬~”
 
Untitled-5 copy.jpg보령 천북 굴단지에서 북쪽으로 홍성 방조제 건너 5분쯤 가면 또 다른 포장촌이 미식가들을 기다린다.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다. 봄엔 주꾸미, 가을이면 큰새우(대하)를 주종목으로 내걸던 포장집들이 겨울엔 새조개 샤브샤브집으로 변신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지난해까지 남당리 해안도로를 따라 양쪽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던 일백여 포장집들은 지난해 가을 포구 한쪽 매립지로 새 터를 잡아 옮겼다. 바닷가 쪽 무허가 포장집들이 철거되면서 신청·추첨을 통해 56집만 옮겨왔다고 한다. 몇 해 뒤엔 뒤쪽의 또 다른 매립지로 장소를 넓혀 더 많은 포장집들이 입주하고 수산물센터도 건설될 예정이어서, 대규모 해산물 장터가 형성될 전망이다.
 
어쨌든, 지금 이 사각형 광장(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빼곡하게 들어선 포장집들이 내는 대표 먹거리는, 한겨울이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는 새조개 샤브샤브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제철인, 껍질 너비 5~7㎝의 중형 조개다. 알이 꽉 차고 맛도 좋은 시기는 1~3월. 본디 남해안 쪽에서 많이 나던 조개였으나, 천수만 방조제 건설 뒤 조금씩 나기 시작해, 요즘은 천수만 일부 바다 밑바닥엔 촘촘히 깔려 살 정도가 됐다. 새조개란 이름은 길쭉한 속살 생김새가 새의 부리를 닮았다 해서 붙었다. 이동할 때 부리를 길게 내뻗어 지렛대처럼 쓰며 ‘나는 듯이’ 몸을 움직인다 해서 새조개로 부른다는 이도 있다.
 
포장집에선 껍질 깐 새조개를 1㎏(3~4인분)당 4만원씩에 주문해 먹을 수 있다. 3~4년 전까지 2만원대였으나, 최근 값이 많이 올랐다. 바지락에다 무·양배추·부추 등 야채를 넣어 끓인 물에 새조갯살을 살짝 데쳐 초장이나 겨자·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는 방식이다. 살집이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졸깃해 술을 곁들여 먹는 이들이 많다. 이 국물에 끓여 먹는 칼국수 맛도 아주 좋다. 포장해 가면 1㎏에 3만5천원이다. 1월엔 포장촌 광장에서 새조개 잔치를 열 예정이다.
 
◈ 여행쪽지
 
122889400901_20081211dd.jpg△ 천수만 가는길
천북 굴단지는 서해안고속도로 광천 나들목에서 나가 천북면 소재지로 간 뒤 40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해 장은리로 간다. 남당항은 천북 굴단지에서 홍성 방조제 건너 신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있다. 간월도는 여기서 계속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 궁리 교차로에서 96번 지방도 만나 안면도·천수만 쪽으로 좌회전해 A지구 방조제 건너 간월도 팻말 보고 좌회전하면 된다. 간월도에 먼저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나들목에서 나간다. 굴다리 밑에서 29번 국도로 좌회전(서산·안면도쪽), 700m쯤 가다 40번 국도 만나 안면도 쪽으로 좌회전한 뒤 직진해 96번 국도 따라 방조제 건너서 간다.      
 
△주변 볼거리들
보령 오천항의 충청 수군절도사영이 있던 오천성, 갈매못 성지, 도미부인 사당, 보령 석탄박물관, 홍성의 한용운  생가, 김좌진 장군 생가, 서산 간월도리의 간월암, 안면도 휴양림 소나무숲 등이 있다.
 
△묵을곳
천북면 장은리 바닷가 산기슭에 뷰호텔(041-641-7890)이 있다. 평일 4만원, 주말 6만원. 남당항과 부근 도로변, 간월도리에 여관이 몇 곳 있다. 안면도엔 다양한 펜션들이 몰려 있다.
 
△연락처
천북 굴축제추진위원장 박상원씨(천북수산 대표) (041)641-7223. 천북면사무소 (041)641-8716. 보령시청 관광과 (041)930-3822. 간월도 어리굴젓 (041)662-4622. 홍성 서부면사무소 (041)630-9609.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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