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달빛만 건지다 마침내 “옳지 곰치다!” 길따라 삶따라

새벽 4시 배를 타다

장치에 가자미까지 딸려 와 기름값 빼고 짭짤
“뱃일 위험 엄척 줄어, 홍보 마이 돼야 장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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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치잡이는 일주일 만입니다. 그저 한 스무 마리만 건져 와도 좋겠네요.”

 

지난 14일 새벽 4시, 강릉 사천항. 해경에 출어 신고를 마치고 배에 오르며 3톤급 제천호 선장 장태공(35)씨가 말했다. 파고 0.5~1m, 물결 잔잔하고 달빛은 눈부셔 조업하기에 좋은 날씨다.

 

장씨는 전날까지 거의 매일 도루묵을 잡았다. 가끔씩 곰치(꼼치·물곰) 그물을 거두러 나간다. 최근 도루묵이 눈에 띄게 적어져, 깔아놓은 도루묵 그물을 놔두고 이날 곰치잡이로 방향을 틀었다. 요즘 곰치 잡는 배는 사천항에서 제천호 하나뿐이다. 사천항의 고깃배 20여척 가운데 15~16척이 요즘 한창 나오는 양미리를, 두세 척은 도루묵을 잡는다.

 

장화·헬멧·낚시도구…, “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

 

배가 출발했다. 장씨는 다른 배들과 교신을 시작했다. “제천호는 청진서애(바다 밑 바위 이름)로 갑니다.”

 

요즘 곰치잡이는 수심 120m 안팎의 바다에서 이뤄진다. 곰치는 보통 400~500m 밑에 살지만, 산란기(11월)엔 바위가 많이 깔린 다소 얕은 지역으로 이동한다.

 

30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깃대를 꽂은 부표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한동안 배를 몰며 라이트를 비추고 찾은 끝에 제천호 깃발을 단 부표를 찾았다. 어민들은 투망(그물 깔기) 때 부표에 배 이름을 적은 야광 깃대를 꽂아 표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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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씨가 부표를 건지고 밧줄을 끌어올려 전동 양망기에 걸고 그물을 당겨 올리기 시작했다. 폭 3m, 길이 1㎞에 이르는 그물이다. “이건 열일곱 닥짜리 그물입니다. 멀리 나갈 땐 스물다섯 닥도 펼치죠.” ‘닥’이란 수십 미터짜리 그물을 이은 매듭을 뜻한다.

 

한동안 양망기에 걸려 올라오는 건 빈 그물뿐이다. 그물이 배 한쪽에 두툼하게 쌓일 무렵, 가자미·소라 등이 딸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간간이 장화·헬멧·낚시도구 따위가 튀어나온다. 그물에 걸려 나온 어린 대게를 떼어 바다로 던지며 장씨가 말했다. “아시겠지만 바다 밑엔 고기보다 쓰레기가 더 많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장씨는 다소 초조해지는 표정이다. 손으로는 그물을 당겨 배 한쪽 구석에 쌓고, 눈은 올라오는 그물을 주시한다. “곰이 쏟아져 나올 때가 되긴 됐는데…좀더 지달려 봐이지 뭐” 하던 장씨가 갑자기 소리쳤다. “옳지, 곰치야!”

 

시커먼 빛깔의 큼직한 곰치 수컷이 먼저 올라왔다. 그물에 묵직하게 매달린 50~60㎝ 정도의 곰치를 장씨는 그물째 한쪽에 던졌다. “어허, 장치야!” 이번엔 길이 60~70㎝쯤 되는 장치(벌레문치)가 올라왔다. 몇 분 간격으로, 일그러진 고무공 같기도 하고 흐물흐물하게 늘어진 외계 생물 같기도 한 곰치들이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제야 장씨의 표정이 풀리며 그물 당기던 손도 가벼워지는 듯했다. 대충 헤아려 보니 곰치가 열두어 마리, 크고 작은 장치가 서너 마리, 자잘한 가자미가 20여 마리다.

 

GPS 주시하며 물살과 바위 방향 맞춰 새 그물 깔아

 

MOM.jpg“보통 곰치 20~30마리는 잡았는데…. 뭐 이 정도만 해도 괜찮은 편입니다.” 기름값 빼고도 짭짤하게 남는 정도란다.

 

그물을 다 끌어올리자 장씨는 배 뒤쪽에 쌓아두었던 새 그물을 펴기 시작했다. 배를 천천히 몰며 눈은 계속 지피에스(GPS)를 주시한다. “바다 밑 바위들이 붉은 선으로 표시됩니다. 물살 흐름과 바위가 깔린 방향을 봐가며 그물을 깔죠.”

 

일자형으로도 깔고 둥글게도 까는데, 일자형으로 까는 것이 여러 어종을 잡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그는 다시 다른 배들과 교신해 새 그물을 펼친 사실을 알렸다. 다른 배 그물과 겹치지 않기 위해서다.

 

해경에 귀항 보고를 하고 포구로 들어오는 길에 장씨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이건 좀 알아 두시래요. 옛날과 달라서 기상 정보 시스템이 아주 첨단화했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미래 배 타는 일도 위험성이 엄척 줄었어요. 근데 아직도 뱃사람이라면 목숨 내놓고 사는 줄 아니까는 이게 문제래요.”

 

이렇게 따로 떼어 ‘안전’을 강조해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선착장에 배를 댄 뒤 기다리던 어머니 권혁남(66)씨와 함께 그물에서 곰치·장치·가자미들을 떼어내며 장씨가 말했다.

 

“안전하단 홍보가 마이 돼야, 아가씨들이 어촌으로 시집을 마이 오지. 안 그래요? 그래야 나 같은 놈도 장가 좀 가볼 거 아녜요. 아니래요?” 사천항 최연소 선장인 장씨는, 사천진리 활어회센터에서 부모님과 자연산 활어를 다루고 있다.

 

권씨는 가자미 등을 모아 즉석에서 상인들에게 넘기고, 장씨는 곰치·장치들을 트럭에 싣고 주문진으로 향했다. 사천항에선 활어 경매가, 주문진에선 생선 경매가 이뤄진다.

 

강릉 사천항=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강릉 사천항

 

초겨울 강릉 사천항은 본디 양미리잡이로 이름난 포구다. 11월~12월 이곳에 들르면 어판장 가득 그물을 깔아놓고 주민들이 달려들어 양미리 벗기기(그물에서 양미리 떼어내기)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08년 12월12~15일 사천항에선 어촌계 주관으로 제3회 사천진 양미리 축제를 펼친다. 양미리 떼기 체험, 양미리 시식회 등 행사가 벌어진다.

 

포구 주변 식당들에서 양미리구이를 내는 곳이 많다. 포구 한쪽엔 20여곳에 이르는 활어 판매장들이 줄지어 있어 다양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제천호 선장 장태공씨도 이곳에서 자신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판매한다(14호점). 016-272-0295. 사천항 시내버스 종점 앞의 사천물회(033-644-0077)는 사천어촌계장이 직접 운영하는 물회전문식당이다. 전복·가자미·잡어물회 등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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