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꽃의 바다 축제, 맘 담그면 '피서의 꽃' 길따라 삶따라

[길따라 삶따라] 정선 꽃길 여행

 

3만여 평 함백산 만항재 ‘여름의 향기’ 진동

태백엔 150만 송이 해바라기…산상 공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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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포인트

 

강원 정선~태백을 잇는 고개 함백산 만항재. 8월 강원도 내륙과 동해안 여행길에 들를 만한 곳으로 강추! 고산지대 야생화 꽃길을 거닐며 '여름 향기'에 흠뻑 젖을 수 있다. 충북 제천~영월~정선~태백~삼척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변이다. 정선·태백 일대 고산지대는 한여름에도 비교적 서늘한 날씨가 이어진다. 8월 함백산 자락 만항재에선 둥근이질풀꽃·동자꽃 등 야생화가 만발하고 태백시 고원자생식물원에선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룬다. 만항재 야생화축제 기간에는 폐광된 정선 고한의 삼척탄좌 정암광업소를 개방한다. 옛 광원들의 탄가루에 범벅이 된 생활상과 애환이 가슴을 때린다. 고한의 정암사는 적멸보궁·수마노탑으로 이름난 고찰이다. 하이원리조트 뒷산의 운탄길(석탄을 나르던 옛길)에도 여름 야생화들이 볼 만하다. 스키장에선 잔디밭 스키와 함께 최근 개장한 알파인코스터 등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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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은 길을 즐기는 데 있다. 동해안 여행길 오가는 길에 즐길 만한 꽃길이 함백산 만항재에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본디 야생화가 만발하는 고갯길이다. 정선 고한읍 주민들은 삼년 전부터 야생화밭에 산책로 등을 만들어 8월에  함백산 야생화축제(8~17일)를 열고 있다. 

 

낙엽송과 각종 활엽수들이 우거진 3만여평의 산자락에 조성된 야생화공원이다. 자녀들 자연공부에도 좋고, 연인들 사랑 키우기에도 좋은 숲길에 반짝이는 여름 야생화들이 깔려 있다. 8월 이 숲길을 장식하는 꽃으로는 분홍색 둥근이질풀꽃, 주황색 동자꽃, 잎에서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는 노루오줌꽃, 참나물꽃, 물양지꽃, 구릿대, 말나리 등이다.

 

정선 국유림관리소 소속의 숲해설가 김옥화씨는 "만항재 일대는 200여종에 이르는 야생화들이 철을 바꾸며 피어나 꽃동산을 이룬다"며 "여름에만 60여종의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만항재는 해발 1330m의 높은 고개다. 한여름 평균기온은 서울과 섭씨 10도 이상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야생화공원 관리인 권상철(64)씨는 "꽃구경을 한 뒤 나무그늘에 앉아 쉬면 피서가 따로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축제 주행사장인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마당(삼탄광장)에선 산상음악회·해동검도 시연·뮤지컬 등이 펼쳐지고, 야생화·석공예품·광산유물전 등 전시회와 연날리기·당나귀타기·야생화 압화·나무목걸이 만들기·천연비누 만들기 등 각종 체험행사가 곁들여진다. 함백산 야생화와 정선 관광사진 공모전도 열린다.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엔 광원들 일상 고스란히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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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태백을 잇는 만항재는 탄광개발 바람이 불면서 1948년 길이 뚫렸다. 이 고갯길 주변으로 무수한 석탄운반길(운탄길)이 뚫려 있다. 1970년대까지 함백산 자락은 갱도와 운탄길, 광원들의 사택 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고 한다. 고한 지역 탄광이 2001년 문을 닫으면서, 황폐화됐던 산은 조금씩 제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고한이란 지명은 옆 동네에 붙어있는 고토일마을과 물한리에서 한 글자씩 따 지은 것이다. 고한에서 만항재 고갯길로 오르다 정암사 못 미쳐 못골마을에서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면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있다. 1962년 문을 연 삼척탄좌에서 1979년에 지은 건물이다. 흉물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4층짜리 건물과 수갱(수직갱도)탑, 갱도, 철길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곳이 함백산 야생화축제 본행사장이다. 문을 닫아두던 건물을 손질하고 꾸며 축제기간에만 방문객들에게 개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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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등에 있는 잘 꾸며진 석탄박물관과 달리, 이 곳에선 옛 광원들의 땀냄새, 탄가루 냄새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광원들의 엑스레이 사진들과 건강기록부, 출근일지, 개인들의 도장, 등사기로 찍은 단식농성 일지, 작업장면 사진, 벽면의 옛 구호, 사무실과 샤워장 등 광원 지원시설 들이 그대로 보전돼 있다. 복도와 계단 벽면은 지역 화가들이 그린 벽화들로 장식돼 있다.

 

우중충한 건물 내부의 각 방들을 둘러보노라면, 이제 막 작업을 끝내고 돌아온 광원들이 와글와글 들이닥칠 듯하다. 폐갱도 입구 위엔 광원들이 드나들며 마음에 새겨 담았을 글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

 

creditcard.jpg사무실에 전시된 광원들의 근무복 이름표 옆엔 스마일배지와 함께 도장이 매달려 있다. 고한읍번영회 최동순 회장이 말했다. "당시 광원들의 개인 인감은 신용카드 구실을 했어요. 시내의 음식점·술집·상점 어디서든 이 도장 하나면 현금 없이 결제할 수 있었죠."

 

고한읍에선 각 층마다 본모습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손질하고 꾸며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김수복 고한읍장은 "폐광 뒤 건물이 방치되면서 고물상 등이 몰려들었지만 주민들이 나서서 막아냈다"며 "앞으로 근대문화유산 지정 신청 등 보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원리조트 뒷산 운탄길 10㎞ 야생화길 원시림 방불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정선 일대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내국인 출입 카지노인 강원랜드다.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 주변 산에도 거미줄처럼 얽힌 옛 석탄운반길이 남아 있다. 하이원리조트  쪽은 운탄길 일부를 야생화 트레킹 코스로 다듬어 개방하고 있다.

 

백운산 자락 강원랜드 호텔 매립지 폭포주차장에서 시작해 두위봉 산자락을 따라, 해발 800m의 완만한 산길을 걷는 코스다. 총길이 10㎞, 3~4시간짜리 숲길이다. 곳곳에 폐갱구와 탄광 침출수 여과시설 등 탄광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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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2㎞ 구간은 밋밋한 돌밭길로 걷는 재미가 적지만, 해발 970m의 폐갱구를 지나면서부터 걸음이 즐거운 숲길이 시작된다. 채탄작업으로 한때 다 파헤쳐졌을 산자락이,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숲으로 돌아와 있다. 놀라운 자연 복원력을 실감케 해준다. 곳곳에서 숲속 연못(함몰 습지)도 만날 수 있다. 탄광 갱도 침하로 생긴 웅덩이에 물이 고여 이뤄진 연못이다. 갱도 지지목으로 쓰기 위해 심어진 낙엽송 숲과 연못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8월 이 숲길의 주인공은 둥근이질풀꽃과 동자꽃들이다. 야생화 전문가인 하이원리조트 안전관리팀의 이경미씨는 "이 숲길은 봄부터 가을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토종 야생화들이 피고 지는 꽃길"이라며 "적당히 걷기운동을 하며 숲과 꽃을 즐길 수 있는 코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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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 탐방객들을 위해 갈림길 등 곳곳에 위치와 방향·거리 등을 적은 길안내 표지판을 세우고, 쉴 수 있는 정자도 설치했다. 숲길은 하이원리조트 골프장 옆으로 이어진다. 하이원CC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면 호텔이나 콘도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안전관리실 엄선관 실장은 "평균 고도가 1천~1천200m로 평지보다 기온이 4도 이상 낮아, 한여름에도 트레킹을 즐기는 데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573m 정상까지 포장…들머리 정암사 계곡 ‘거울 같은 물’

 

top.jpg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에 걸쳐 있는 함백산(1573m)은 설악산(1708m)·태백산(1567m)·오대산(1563m)과 함께 백두대간의 중심을 이루는 고봉이다. 남한에서 한라·지리·설악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높은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이 포장돼 있어 차를 타고 오를 수 있다. 겨울엔 체인 없이는 오르기 힘든 급경사 길이다. 고한에서 만항재로 오르다 꼭대기 못 미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대한체육회 태백선수촌 들머리 지나 정상 주차장에 이른다. 송신탑 주변에 차를 세우고 잠깐 걸어 오르면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이른다. 세찬 바람 속에서 좌우로 펼쳐진 태백산·매봉산 산줄기들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태백시 쪽 매봉산 줄기에 늘어선 풍력발전기들도 볼거리다. 산 중턱 길 옆엔 30~700년생 주목 600여 그루가 자생하는 주목 군락지도 있다.

 

함백산 북서쪽 사면, 그러니까 앞서 고한에서 만항재로 오르는 길 초입엔 고찰 정암사가 있다.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양산 통도사 등과 함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사찰의 한 곳이다. 신라시대 창건된 절로 뒷산 중턱엔 보물 410호인 수마노탑이 있다. 절 계곡은 천연기념물 열목어 서식지다. 적멸궁 마당 옆엔 자장율사의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전설을 가진 주목이 있다.

 

정선 고한에서 38번 국도를 따라 두문동재를 넘으면 태백시다. 태백 시내에 이르기 전 팻말을 따라 왼쪽 길로 들어가면 황연동 구와우마을에 태백고원자생식물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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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면 50만㎡ 넓이의 드넓은 산자락에 펼쳐진 해바라기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150만 송이에 이르는 해바라기가 심어진 능선을 따라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탐방로엔 해바라기뿐 아니라 여름 야생화들과 코스모스 등도 깔려 있다. 8월 한 달 간 이곳에서 해바라기축제가 벌어진다. 축제장에선 야생화전·조각전·미술전 등 전시회와 함께 매주 토요일 저녁엔 음악회·뮤지컬 등 공연행사도 열린다. 해바라기를 이용한 음식들도 맛볼 수 있다. 주변에 용연동굴과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 등 볼거리가 많다.     

 

<여행 쪽지>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고 안동 쪽으로 가다 제천나들목에서 나가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을 거쳐 정선으로 간다. 여름 휴가철엔 영동고속도로의 여주~문막 구간이 자주 정체를 빚는다. 이럴 땐 여주휴게소 지나자마자 우회전해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감곡나들목에서 나가 38번 국도를 타고 제천·영월 쪽으로 직진하는 게 더 빠르다. 

 

함백산 야생화축제(033-592-5455)장이나 태백 해바라기축제(033-553-9707)장에는 곤드레나물밥·메밀부침·산나물·두부 등 특산물을 이용한 향토음식들을 파는 먹거리장터가 마련돼 있다. 만항재 중턱 만항마을(고한1리)의 '함백산 토종닭집'(033-591-5364)은 옛 군대 막사를 이용해 차린 토종닭 전문음식점이다. 토종닭백숙·닭매운탕·오리백숙·오리매운탕 등을 판다.

 

kjㅗ copy.jpg함백산 야생화축제 주행사장인 정암광업소 전시장 입장료는 어른 2천원, 어린이 1천원. 고한읍 누리집(www.gogohan.go.kr)에서 여행정보를 얻을 수 있다. 태백 해바라기축제(www.sunflowerfestival.co.kr) 입장료 어른 5천원, 어린이 3천원.

 

강원랜드 하이원리조트에선 여름에도 각종 활강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최근엔 2.2km 길이의 알파인코스터를 개장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1인승 코스터를 타고 레일을 따라 질주해 내려오는 놀이시설이다. 최고 속도는 시속 40㎞로, 탑승자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스키와는 또다른 짜릿한 속도감을 사철 즐길 수 있다. 1회 이용권 곤돌라 탑승료 포함 어른 1만5천원, 어린이 1만원. 둥근 튜브를 타고 250m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터비썰매도 있다. 3회 이용권이 어른 1만원, 어린이 5천원. 잔디스키(서머스키)는 길이 250m, 폭 30m의 슬로프를 즐길 수 있다. 2시간에 어른 1만원, 어린이 8천원. 하이원리조트 1588-7789.

 

정선/글·사진 이병학 한겨레 여행전문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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