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예술이 살아 숨쉬는 ‘문화 수도’ 길따라 삶따라

  노르웨이 여행(2) 베르겐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입센·뭉크의 발자취도
 길쪽 건물 화려하고 반듯, 골목 안은 고색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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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겐, 노르웨이 피오르의 관문’.
 베르겐시에서 발행한 관광안내 소책자의 제목으로 내세운 글이다. 베르겐은 그간 ‘위대한 자연유산’ 피오르 탐방의 전진기지 구실을 충실히 해온 도시다. 무수한 피오르를 인근에 거느린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자, 서남해안 최대 항구도시다. 그러나 요즘은 피오르 관광 성수기인 여름철이 아니어도 관광객이 몰린다. 베르겐 도시 자체를 즐기러 오는 이들이다. 베르겐시 관광가이드 카멜라 표르토프는 “베르겐은 유서 깊은 역사유적 도시일 뿐 아니라, 노르웨이 예술이 살아 숨쉬는 문화의 수도”라고 말했다.
 
 14세기 한자동맹 시절 중세 건물들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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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겐은 13세기 노르웨이의 수도였고, 최초의 국립극장이 지어진 곳이자, 자체 교향악단을 갖춘 예향이다. 이 교향악단을 지휘했던 노르웨이의 대표적 작곡가 그리그가 베르겐 출신이다. 극작가 입센과 화가 뭉크의 발자취도 서려 있다. 거리엔 젊음의 열기가 가득하다. 주말인 지난 4월10일 베르겐 부둣가 옆 광장에선 오슬로 지역에서 몰려온 대학생 100여명의 떠들썩한 춤판이 벌어졌다. 해마다 오슬로와 베르겐을 오가며 벌인다는 두 도시 대학생들의 친교행사다.
 문화유적 도시 베르겐 시내 여행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브뤼겐 지역이다. 색색의 옷을 입은 삐딱한 나무집들이 부둣가를 향해 나란히 늘어서 있다. 15채 가량의 중세 건물들이다. 이 건물들의 유래는 14세기 독일 무역상(한자)들의 도시연합인 한자동맹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상인들은 한자동맹의 일원인 베르겐에서 대구 등을 사들여 다른 도시로 수출하고 대구 기름을 짜는 일을 하면서 나무 창고들을 건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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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를 향한 건물 앞쪽은 붉고 노랗게 색칠한 뾰족지붕과 창문들로 화려하고 반듯해 보인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목재향이 스멀스멀 배어나온다. 생선 비린내가 풍길 듯한 목재들이 얽히고설킨 창고 건물의 고색창연한 이면을 만나게 된다. 당장이라도 상인들이 다가와 흥정을 벌일 듯한 느낌이다.
 지금도 카페와 식당, 술집, 액세서리상점으로 쓰이고 있는 이 목조건물들은 베르겐을 휩쓴 몇 차례의 대형 화재에서도 용케도 살아남은 것들이다. 1702년 전 도시가 화재로 불탔고, 1944년엔 부두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해 대형 화재를 겪었다. 당시 배는 브뤼겐 쪽 부두에 있었으나, 그쪽 일부 건물이 불탄 뒤 바람이 반대편으로 불면서 부두 건너쪽 도심이 완전히 소실됐다고 한다. 이때 그리그의 생가 등도 불탔다. 브뤼겐 동쪽 도로변의 건물들은 이때 불타 새로 지은 것들이다.
 화재를 피해 살아남은 건물들이 중심이 되어 베르겐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브뤼겐은 여행객들의 시내 관광 기점, 만남의 장소 등으로 이용된다.
 
 요정이 사는 언덕 아름드리 ‘노르웨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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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건물 말고도 부챗살 모습의 대리석 보도블록을 깔아놓은 뒷골목을 거니는 동안 100~800년 역사를 지닌 교회, 성채, 박물관, 극장 등 고풍스런 옛 건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문화유적은 보겐만에 접한 부둣가를 중심으로 몰려 있어 대개의 옛 골목과 건물들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부둣가 안쪽에선 상설 어시장이 열린다. 중세부터 이름을 떨친 대구와 연어·새우·게·바닷가재 등 싱싱한 해산물을 사려는 인파로 늘 붐비는 대형 포장 가판시설이다. 소시지·캐비아 등의 샌드위치를 즉석에서 사먹을 수도 있다.
 베르겐이 인구 25만명이 사는 대도시라는 사실은 부둣가 골목 산책만으론 실감하기 어렵다. 해발 320m의 플뢰위엔산 위로 오르면 노르웨이 문화수도의 규모가 보인다. 베르겐이 커다란 피오르의 안쪽에 자리한 도시라는 것도 알게 된다. 산에 오르려면 부둣가에서 북쪽 언덕길로 150m가량 걸어 시청 옆으로 가면 된다. 레일과 케이블로 움직이는 ‘푸니쿨라’를 타면 7분 만에 도시와 부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왕복 70크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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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남쪽 바닷가에 자리잡은 그리그 박물관은 베르겐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꼽힌다. 들머리의 아름드리 가로수 우거진 길을 잠시 걸으면 ‘트롤헤우엔’(Troldhaugen)이라 이름붙은 박물관 건물이 나타난다. ‘요정이 사는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그(1843~1907)가 1885년부터 소프라노 가수였던 부인 니나와 말년 22년간을 머물렀던 집이다. 사용하던 가구와 편지, 피아노와 악보, 가족사진, 그와 교류한 인사들과 찍은 사진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가 작곡하고 명상에 잠기던 바닷가 작업실로 내려가는 길, 콘서트홀 옆엔 그리그의 실제 몸집 크기로 만들었다는 높이 152㎝의 동상이 서 있다. 보랏빛 크로커스 꽃들이 만발한 길을 내려가 작업실을 들여다보니 맞은편 책상 앞 창문 가득 봄 햇살 받은 바다가 출렁였다. 바닷가 전망 좋은 언덕 바위벽엔 그리그와, 그보다 23년 뒤에 세상을 뜬 니나가 함께 잠들어 있다. 숲길을 따라 절벽 묘지로 내려가 바라보는 바닷가 풍경도 아름답다.
 

베르겐(노르웨이)/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베르겐 여행 쪽지
 
⊙ 노르웨이까지 직항편은 없다. 핀에어로 핀란드 헬싱키로 간 뒤 오슬로행 비행기를 갈아탄다. 인천~헬싱키 약 9시간30분, 헬싱키~오슬로 2시간. 헬싱키~베르겐은 1시간30분 소요.
⊙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통화는 노르웨이크로네. 1크로네는 210원 안팎. 물가는 세계 최고 수준. 무엇이든 매우 비싸다. 햄버거 하나에 1만5000원, 생수 1병 5000원, 오이 1개 5000원이다. 택시 한번 타면 3만~4만원은 금세 올라간다. 전기는 220V. 대부분의 호텔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하다.
⊙ 노르웨이 여행 성수기는 5~9월이다. 베르겐에서 시내 주요 볼거리를 둘러보는 버스투어가 있다. 5~9월 매일 오후 2시30분, 4시30분 관광안내소 출발. 1시간30분 소요, 150크로네. 작곡가 그리그가 살던 집 탐방 투어버스도 있다. 매일 오전 11시 출발, 300크로네. 바퀴열차로 시내를 도는 코스도 있다.
⊙ 오슬로~뮈르달~플롬~구드방옌~보스~베르겐 코스(역순도 가능)를 열차·산악열차·유람선·버스·열차 순으로 이용해 내뢰위 피오르와 하랑예르 피오르의 일부를 둘러보는 ‘노르웨이 인 어 넛셸’을 이용해볼 만하다. 투어 가격은 어른 2135크로네, 어린이 1080크로네. 인터넷(www.fjordtours.com)에서 예매할 수 있다. 오슬로 역이나 역앞 관광안내소 등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뮈르달~플롬 ‘플롬 산악열차’(플롬스바나)는 여름철 하루 9~10회, 겨울철 하루 4회씩 운행한다.  
⊙ 주한 스칸디나비아 관광청 (02)777-5943.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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