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구비 설산 협곡, 100만년의 자연 세공 길따라 삶따라
2010.04.15 17:01 너브내 Edit
노르웨이 여행 (1) 오슬로~베르겐 피오르 여행
산도 물도 길도 없고, 땅과 하늘 맞붙은 설원
200㎞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빙식 골짜기

100만년 전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눌러앉아, 오래 미끄러지며 놀다 간 미끄럼틀. 피오르(피오르드)는 최대 두께 3㎞에 이르는 육중한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바다로 미끄러져 이동하며 남긴 흔적이다. 차고 무거운 얼음이, 비비고 긁고 할퀴며 지나간 쓰라린 자리를 지금은 바닷물이 들어와 찰싹이며 매만지고 핥아준다. 최고 수심 1300m. 물속엔 푸르고 깊은 하늘의 사연이 다 담겨 있다. 백발의 산할아버지도 솜털 뽀송한 애기 구름도 다가와 정신없이 들여다본다. 관광객들은 이들이 유람선 물살에 놀라 흩어지기 전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
‘북방으로 가는 길’은 선 굵은 여행길
피오르를 만나러 떠난 ‘북방으로 가는 길’(Norway)은 선 굵은 여행길이다. 굵직한 스칸디나비아반도는 아직 한겨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유럽 대륙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산도 들도 온통 설원이다. 비틀스 노래가 흘러나올 듯한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고봉설산과 푸른 초원의 현란한 조화를 꿈꾸며 떠나온 여정. 그러나 엎질러진 물처럼 흩어진 호수들마저 두꺼운 얼음에 덮여 있다.
대서양을 향해 무수히 내리뻗은 노르웨이의 피오르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예이랑에르·송네·하르당에르 피오르다. 송네 피오르는 길이 200㎞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빙식 협곡이다. 예이랑에르 피오르와 송네 피오르의 일부 구간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피오르 관광은 유람선과 열차로 이뤄진다. 보통 ‘피오르 여행의 관문’으로 불리는 서남부의 도시 베르겐과 좀더 북쪽에 위치한 올레순에서 출발한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선 송네·하르당에르 피오르를, 올레순에선 가장 웅장하다는 예이랑에르 피오르를 유람선으로 둘러본다.
협곡과 설산의 풍광들의 핵심만 만나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셸’을 이용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경관을 압축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여행코스다. 티켓 한 장으로, 열차·유람선·버스 등 교통편을 무수히 갈아타며 표를 새로 끊어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 수도 오슬로에서 열차로 출발해 산악열차와 유람선, 버스를 갈아타며 유서 깊은 도시 베르겐까지 이동하는 코스다.
열차로 출발해 산악열차와 유람선, 버스 갈아타

아침 8시11분, 오슬로역에서 베르겐행 열차에 올랐다. 산악열차로 갈아타는 뮈르달까지 약 5시간, 초반엔 평범하고 지루한 풍경이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녹다 남은 눈과 잎 진 잡목들이 뒤섞인 누룽지빛 경치들에 날씨까지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열차는 겨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갈수록 산과 들이 눈 속에 파묻히더니, 마침내 온 세상이 하얘졌다. 산도 강물도 길도 보이지 않고, 땅과 구름과 하늘이 구별되지 않는 설원이 펼쳐졌다. 열차 승객 절반이 스키어들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다. 대규모 스키리조트가 자리잡은 예일로역에서 스키어들이 우르르 내린 뒤 가이드가 말했다. “5월까지 스키를 타죠. 고산지대에선 한여름에도 스키를 즐깁니다.”
열차가 뮈르달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은 아름다웠다. 삼나무숲 무리 사이로 붉은색 2층 목조주택들이 점점이 이어지고, 구름 사이로 간간이 푸른 하늘이 눈부신 빛기둥을 눈밭에 내리꽂았다. 집들은 비어 있다. 여름 별장용 주택들이 대부분이다. 철길을 따라 산악자전거길이 마련돼 있어 여름이면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몰린다고 한다.
해발 866m의 뮈르달에서 ‘플롬스바나’로 갈아탄다. 송네 피오르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포구마을 플롬까지 오가는 산악열차다. 산비탈과 절벽을 터널과 다리로 연결한 평균경사도 55도의 철길로, 20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했다고 한다. 터널만 20개가 이어지는 지그재그 절벽길을 시속 40㎞ 속도(뮈르달로 올라올 땐 30㎞)로 50분 가량 달린다.
터널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만, 일단 굴을 나서면 좌우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와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폭포들이 번갈아 나타나 눈을 떼기 어렵게 한다. 관광객들은 터널을 벗어날 때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몰리며 셔터를 눌러댄다. 그러곤 열차는 순식간에 다시 터널로 빨려들어간다.
가장 볼만한 경치가 뮈르달 산을 향해 절벽길 스물한 굽이를 지그재그로 치달아 오른 ‘랄라르베옌’ 도로 모습과, 높이 99m의 웅장한 폭포 쇼스포센이다. 가이드는 “여름이면 물보라가 열차까지 튈 정도로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가수가 저 절벽 중간에서 환영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했지만, 늦겨울에 만난 폭포는 평범한 빙벽만을 보여줄 뿐이다.
지그재그 구빗길, 마침내 무지개 거느린 웅장한 폭포에
플롬은 인구 350명의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여름철엔 하루 1000여명의 관광객이 열차로, 유람선으로 찾아든다. 1870년 개업한 프레테임 호텔 뒷길로 오르면 빙하가 밀려내려간 좁고 긴 협곡의 면모가 확 다가온다. 물줄기만 보면 영락없는 호수다. 선착장 투명한 물바닥에 흩어진 큼직한 별들, 불가사리가 바다임을 말해준다.
유람선을 타고 가며 2시간 동안 송네 피오르 끝자락의 한 지류인 네뢰위 피오르를 감상한다. 웅장한 대협곡의 면모를 만날 수는 없으나, 굽이마다 포개지며 엇갈리며 다가오는 설산과 절벽들이 바라볼 만하다. 물가 산기슭엔 작은 모형집들처럼 앙증맞은 색색의 나무집들이 그림 같이 앉아 있다.
구드방엔 선착장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보스로 향한다. 굽이굽이 멋진 절벽들과 그 밑 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들, 급물살을 이뤄 흘러내리는 깨끗한 계곡물이 인상적이다. 구빗길을 지그재그로 내려가다 모처럼 무지개를 거느린 웅장한 폭포를 만난다. 높이 50m가량의 샬베폭포다. 여름철엔 수량이 갑절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셸’ 중에서도 핵심 코스는 뮈르달~플롬~보스 구간이다. 보통 보스에서 열차를 타고 베르겐까지 가거나 다시 오슬로로 돌아간다. 일행은 코스를 빠져나와 버스로 하르당에르 피오르 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과와 사과주(애플 사이다) 마을로 이름난 울비크, 그리고 하르당에르 자연센터를 보고, 1846년 문을 연 호텔이 자리잡은 로프투스를 거쳐 하르당에르 피오르를 따라 베르겐으로 향했다.
하르당에르 국립공원의 자연과 생태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하르당에르 자연센터는 배를 타고 하르당에르 피오르의 지류를 건너야 한다. 20분간 상영되는 영상물을 통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하르당에르 피오르 일대의 웅장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로프투스의 울렌스방 호텔은 5대째 대를 이어 운영중인 호화호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작곡가 그리그도 가족들을 데리고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개업 당시의 부엌 등 일부 건물 구조를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로비엔 100~160년 묵은 고가구들이 즐비하고 벽엔 빌리 브란트, 헨리 키신저, 인디라 간디 등 이곳을 찾았던 명사들의 옛 사진이 걸려 있다. 이 호텔은 헬기 골프 투어로도 유명하다. 보유한 3대의 헬기로 피오르와 빙하, 폭포, 고원 등을 샅샅이 둘러본 뒤 인근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돌아와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투어다. 해마다 5월이면 하르당에르 뮤직페스티벌이 이 호텔에서 열린다.
오슬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산도 물도 길도 없고, 땅과 하늘 맞붙은 설원
200㎞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빙식 골짜기

100만년 전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눌러앉아, 오래 미끄러지며 놀다 간 미끄럼틀. 피오르(피오르드)는 최대 두께 3㎞에 이르는 육중한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바다로 미끄러져 이동하며 남긴 흔적이다. 차고 무거운 얼음이, 비비고 긁고 할퀴며 지나간 쓰라린 자리를 지금은 바닷물이 들어와 찰싹이며 매만지고 핥아준다. 최고 수심 1300m. 물속엔 푸르고 깊은 하늘의 사연이 다 담겨 있다. 백발의 산할아버지도 솜털 뽀송한 애기 구름도 다가와 정신없이 들여다본다. 관광객들은 이들이 유람선 물살에 놀라 흩어지기 전에 셔터를 눌러야 한다.
‘북방으로 가는 길’은 선 굵은 여행길

대서양을 향해 무수히 내리뻗은 노르웨이의 피오르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 예이랑에르·송네·하르당에르 피오르다. 송네 피오르는 길이 200㎞가 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빙식 협곡이다. 예이랑에르 피오르와 송네 피오르의 일부 구간은 2005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피오르 관광은 유람선과 열차로 이뤄진다. 보통 ‘피오르 여행의 관문’으로 불리는 서남부의 도시 베르겐과 좀더 북쪽에 위치한 올레순에서 출발한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에선 송네·하르당에르 피오르를, 올레순에선 가장 웅장하다는 예이랑에르 피오르를 유람선으로 둘러본다.
협곡과 설산의 풍광들의 핵심만 만나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셸’을 이용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경관을 압축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여행코스다. 티켓 한 장으로, 열차·유람선·버스 등 교통편을 무수히 갈아타며 표를 새로 끊어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 수도 오슬로에서 열차로 출발해 산악열차와 유람선, 버스를 갈아타며 유서 깊은 도시 베르겐까지 이동하는 코스다.
열차로 출발해 산악열차와 유람선, 버스 갈아타

아침 8시11분, 오슬로역에서 베르겐행 열차에 올랐다. 산악열차로 갈아타는 뮈르달까지 약 5시간, 초반엔 평범하고 지루한 풍경이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녹다 남은 눈과 잎 진 잡목들이 뒤섞인 누룽지빛 경치들에 날씨까지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열차는 겨울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갈수록 산과 들이 눈 속에 파묻히더니, 마침내 온 세상이 하얘졌다. 산도 강물도 길도 보이지 않고, 땅과 구름과 하늘이 구별되지 않는 설원이 펼쳐졌다. 열차 승객 절반이 스키어들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다. 대규모 스키리조트가 자리잡은 예일로역에서 스키어들이 우르르 내린 뒤 가이드가 말했다. “5월까지 스키를 타죠. 고산지대에선 한여름에도 스키를 즐깁니다.”

해발 866m의 뮈르달에서 ‘플롬스바나’로 갈아탄다. 송네 피오르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작은 포구마을 플롬까지 오가는 산악열차다. 산비탈과 절벽을 터널과 다리로 연결한 평균경사도 55도의 철길로, 20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했다고 한다. 터널만 20개가 이어지는 지그재그 절벽길을 시속 40㎞ 속도(뮈르달로 올라올 땐 30㎞)로 50분 가량 달린다.
터널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만, 일단 굴을 나서면 좌우로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와 까마득히 올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폭포들이 번갈아 나타나 눈을 떼기 어렵게 한다. 관광객들은 터널을 벗어날 때마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몰리며 셔터를 눌러댄다. 그러곤 열차는 순식간에 다시 터널로 빨려들어간다.
가장 볼만한 경치가 뮈르달 산을 향해 절벽길 스물한 굽이를 지그재그로 치달아 오른 ‘랄라르베옌’ 도로 모습과, 높이 99m의 웅장한 폭포 쇼스포센이다. 가이드는 “여름이면 물보라가 열차까지 튈 정도로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가수가 저 절벽 중간에서 환영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했지만, 늦겨울에 만난 폭포는 평범한 빙벽만을 보여줄 뿐이다.
지그재그 구빗길, 마침내 무지개 거느린 웅장한 폭포에

유람선을 타고 가며 2시간 동안 송네 피오르 끝자락의 한 지류인 네뢰위 피오르를 감상한다. 웅장한 대협곡의 면모를 만날 수는 없으나, 굽이마다 포개지며 엇갈리며 다가오는 설산과 절벽들이 바라볼 만하다. 물가 산기슭엔 작은 모형집들처럼 앙증맞은 색색의 나무집들이 그림 같이 앉아 있다.
구드방엔 선착장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보스로 향한다. 굽이굽이 멋진 절벽들과 그 밑 기슭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들, 급물살을 이뤄 흘러내리는 깨끗한 계곡물이 인상적이다. 구빗길을 지그재그로 내려가다 모처럼 무지개를 거느린 웅장한 폭포를 만난다. 높이 50m가량의 샬베폭포다. 여름철엔 수량이 갑절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셸’ 중에서도 핵심 코스는 뮈르달~플롬~보스 구간이다. 보통 보스에서 열차를 타고 베르겐까지 가거나 다시 오슬로로 돌아간다. 일행은 코스를 빠져나와 버스로 하르당에르 피오르 쪽을 둘러보기로 했다. 사과와 사과주(애플 사이다) 마을로 이름난 울비크, 그리고 하르당에르 자연센터를 보고, 1846년 문을 연 호텔이 자리잡은 로프투스를 거쳐 하르당에르 피오르를 따라 베르겐으로 향했다.
하르당에르 국립공원의 자연과 생태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하르당에르 자연센터는 배를 타고 하르당에르 피오르의 지류를 건너야 한다. 20분간 상영되는 영상물을 통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하르당에르 피오르 일대의 웅장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로프투스의 울렌스방 호텔은 5대째 대를 이어 운영중인 호화호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작곡가 그리그도 가족들을 데리고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개업 당시의 부엌 등 일부 건물 구조를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로비엔 100~160년 묵은 고가구들이 즐비하고 벽엔 빌리 브란트, 헨리 키신저, 인디라 간디 등 이곳을 찾았던 명사들의 옛 사진이 걸려 있다. 이 호텔은 헬기 골프 투어로도 유명하다. 보유한 3대의 헬기로 피오르와 빙하, 폭포, 고원 등을 샅샅이 둘러본 뒤 인근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돌아와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는 투어다. 해마다 5월이면 하르당에르 뮤직페스티벌이 이 호텔에서 열린다.
오슬로/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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