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하는 ‘교장쌤’, 서류 결재는 운동장에서 길에서 만난 사람
2009.11.28 10:25 너브내 Edit
양촌초등학교 정석중 교장
맨발로 축구하는 학생 발 다칠까 비질로 돌 골라내

낙엽도 다 져가는 늦가을 아침. 곶감마을로 이름난 논산 양촌면 인천리(인내)를 찾았다. 울타리마다 차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황색 홍시 몇개가 보석처럼 빛나는 마을이다.
면사무소 옆으로 펼쳐진 양촌초등학교 운동장. 수업이 시작돼 운동장은 텅 비었는데, 운동장 한쪽에 늘어선 느티나무 아래, 싸리비로 낙엽을 쓸어 모으는 사람이 보인다. 느티나무도, 청소하는 사람도, 싸리비도, 길고 선명한 그림자 하나씩을 끌고 있다.
마을 이야기라도 들어볼 생각에 다가가니, 놀랍게도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의 노신사다.
“내가 제일 한가하니까 청소하죠”
“나요? 학교 직원이죠.” 머리엔 서리가 자욱하게 내린 인자한 표정의 청소부는 흰 운동화를 조심조심 옮겨 딛으며 낙엽을 쓸어 느티나무 밑둥으로 모았다.
“지금은, 경치 좋고 인심 좋은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죠.” 옛날엔 살기 안좋았다는 얘기. 한국전쟁 막바지 양촌면 일대는 낮엔 국방군이 지배하고, 밤엔 대둔산 빨치산들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쌀도 퍼가고 소도 끌고갔다. 낮에 끌려가 추궁받고 밤에 끌려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당한 당시 주민들의 상처와 고통은 최근에서야 겨우 아물어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화합이 잘 되고, 소득도 높은 마을입니다. 온 지 얼마 안돼 잘은 모르지만, 다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디다.”
청소부는 지난 3월 부임해 온 교장(정석중·60) 선생님이었다.
“청소야 아무나 하면 어떤가요. 선생님들은 수업하느라 바쁘시고, 내가 제일 한가한 편이죠.”
지켜보니 싸리비로 나뭇잎만 쓰는 게 아니다. 흙속에 섞인 잘디 잔 돌까지 골라내 쓸어 모은다.
이게 굵은 모래처럼 보여도 실은 아주 위험한 돌조각입니다. 석분이라는 돌 폐기물이죠. 인위적으로 부순 돌이어서 날이 서 있는 게 많아요.”
오래전 땅이 질어서 깔아놓은 듯한데,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를 하거나 뛰어놀다 발가락을 찢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을 청소하는 동안, 결재판을 든 직원이 찾아와 결재를 받아 가고, 까치 몇 마리가 느티나무에 앉았다가 감나무 쪽으로 날아갔다. 첫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몰려 나왔다.
비질을 마친 청소부는 짧아진 싸리비 그림자를 데리고 교실 쪽으로 향했다. 곱게 비질이 된 운동장에, 그가 딛고 간 운동화 발자국이 또렷이 남았다.
논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관련기사]
▶ 햇살 저민 꿀단지 800만개, ‘떫은 마음’도 방그레
맨발로 축구하는 학생 발 다칠까 비질로 돌 골라내

낙엽도 다 져가는 늦가을 아침. 곶감마을로 이름난 논산 양촌면 인천리(인내)를 찾았다. 울타리마다 차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황색 홍시 몇개가 보석처럼 빛나는 마을이다.
면사무소 옆으로 펼쳐진 양촌초등학교 운동장. 수업이 시작돼 운동장은 텅 비었는데, 운동장 한쪽에 늘어선 느티나무 아래, 싸리비로 낙엽을 쓸어 모으는 사람이 보인다. 느티나무도, 청소하는 사람도, 싸리비도, 길고 선명한 그림자 하나씩을 끌고 있다.
마을 이야기라도 들어볼 생각에 다가가니, 놀랍게도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의 노신사다.
“내가 제일 한가하니까 청소하죠”
“나요? 학교 직원이죠.” 머리엔 서리가 자욱하게 내린 인자한 표정의 청소부는 흰 운동화를 조심조심 옮겨 딛으며 낙엽을 쓸어 느티나무 밑둥으로 모았다.
“지금은, 경치 좋고 인심 좋은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죠.” 옛날엔 살기 안좋았다는 얘기. 한국전쟁 막바지 양촌면 일대는 낮엔 국방군이 지배하고, 밤엔 대둔산 빨치산들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쌀도 퍼가고 소도 끌고갔다. 낮에 끌려가 추궁받고 밤에 끌려가면 돌아오지 않았다. 양쪽에서 번갈아가며 당한 당시 주민들의 상처와 고통은 최근에서야 겨우 아물어가고 있다고 한다.

청소부는 지난 3월 부임해 온 교장(정석중·60) 선생님이었다.
“청소야 아무나 하면 어떤가요. 선생님들은 수업하느라 바쁘시고, 내가 제일 한가한 편이죠.”
지켜보니 싸리비로 나뭇잎만 쓰는 게 아니다. 흙속에 섞인 잘디 잔 돌까지 골라내 쓸어 모은다.
이게 굵은 모래처럼 보여도 실은 아주 위험한 돌조각입니다. 석분이라는 돌 폐기물이죠. 인위적으로 부순 돌이어서 날이 서 있는 게 많아요.”
오래전 땅이 질어서 깔아놓은 듯한데,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를 하거나 뛰어놀다 발가락을 찢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을 청소하는 동안, 결재판을 든 직원이 찾아와 결재를 받아 가고, 까치 몇 마리가 느티나무에 앉았다가 감나무 쪽으로 날아갔다. 첫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몰려 나왔다.
비질을 마친 청소부는 짧아진 싸리비 그림자를 데리고 교실 쪽으로 향했다. 곱게 비질이 된 운동장에, 그가 딛고 간 운동화 발자국이 또렷이 남았다.
논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관련기사]
▶ 햇살 저민 꿀단지 800만개, ‘떫은 마음’도 방그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