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그고 여는 비밀의 안과 밖, 욕망의 경계 박물관 기행

<5> 서울 쇳대박물관
다양한 동식물 모양으로 권위·복·다산 상징
서양은 열쇠, 동양은 자물쇠 몸통이 더 발달
 
 
 박물관 정보
 
 위치=서울 종로구 동숭동 187-8
 개관=2003년
 주요 전시물=국내외 전통 자물쇠, 빗장, 열쇠패, 장석 등
 입장료=어른 3천원, 청소년 2천원, 어린이 1천5백원
 개관시간=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연락처=(02)766-6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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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것을 소유할 때 문을 닫아걸고 잠그는 일이 필요하다. 문과 자물쇠는 내것과 네것의 경계를 확실히 하기 위한 장치다. 소유욕과 지배욕, 지배계층과 부유한 사람들의 증대와 함께 발전해온 것이 자물쇠의 역사다. 소유한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자물통과 열쇠들이 필요해진다. 부자들의 소유욕이 커지면서 도둑들의 소유욕도 커지고, 감추는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도둑질 기술도 정교해지면서 자물쇠의 기술도 덩달아 발달했다.
 
서울 대학로 뒷골목에 쇳덩어리 금고 같은 건물이 하나 있다. 창문도 없고 지붕도 없는 녹슨 사각형 쇳덩어리 건물이다. 물샐 틈 없어 보이는 이 건물이 통장과 비밀번호, 지문이나 홍채 인식 장치 등에 밀려 사라져가는, 녹슨 자물쇠와 열쇠를 모아 전시하는 쇳대박물관인 건 썩 어울려 보인다(시커먼 바탕에 육중한 자물통 하나가 한가운데 턱 걸린 홈페이지(http://www.lockmuseum.org)도 어울린다).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한 건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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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형태 특색 뚜렷…고려는 조선보다 더 정교

 
쇳대는 열쇠의 사투리로 자물쇠와 열쇠를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최가철물점을 운영하는 ‘철물 장인’ 최홍규(51)씨가 수집해온 자물쇠·열쇠들을 모아 2003년 쇳대박물관을 열었다. 규모는 작지만, 4천 점에 이르는 국내외 자물쇠 관련 수집품 중 ㄷ자형·원통형·물상형·붙박이형·함박형 자물쇠들과 열쇠패·빗장 등 350여점을 3층에 상설 전시하고 있다. 철제 자물쇠의 경우 가로·세로 1㎝ 정도 크기에서부터 폭 30여㎝에 이르는 대형 자물쇠까지 다양하다. 큰 것들은 대개 성문 등을 잠글 때 사용했던 것들이라고 한다. 철제 또는 은입사 자물쇠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후기의 것들이다.
 
쇳대박물관 직원 김경미씨는 “서양에선 대체로 권위를 상징하는 열쇠가 발달한 반면, 우리나라 등 동양권에선 자물쇠 몸통이 다양한 형태로 발달해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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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물쇠 형태의 기본은 대체로 자물통 옆쪽에서 열쇠를 넣게 돼 있는 ㄷ자형이지만, 부분적으로 변형된 형태에 따라 아랫부분을 둥글게 만든 원통형, 열쇠 구멍이 정면에 있으면서 구멍 부분을 볼록하게 만든 함박형, 전체 모양을 동물이나 사물 형상으로 만든 물상형 등으로 나뉜다. 열쇠구멍은 전통적으로 자물통 옆쪽에 위치해 일자형 열쇠를 밀어넣어 여는 형태였으나, 실크로드를 통해 앞쪽에 열쇠구멍이 난 자물통 형식이 유입됐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자물쇠도 있는데, 금동제 자물쇠·열쇠가 주류를 이루고 조선시대 것에 비해 형태와 새겨진 무늬들이 정교한 게 특징이다. 조선-고려 시대 때 만들어진 용머리 모양의 자물쇠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고려 때는 용 형상을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으나, 조선시대엔 일반 사대부까지 쓸 수 있게 되면서 투박한 형식도 생겨난 까닭이다. 고려시대의 것은 용의 얼굴 표정까지 새겨넣은 듯 정교한 조각 기술이 구현된 아름다운 자물쇠·열쇠들이지만, 부분적으로 훼손된 것들이 많다. 고려 이전의 자물쇠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주로 가구 등에 장식용으로 썼던 데다, 낡은 가구를 폐기할 때 함께 버려졌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아프리카·중국·독일 등 다른 나라 자물쇠들과 빗장도 일부 살펴볼 수 있다. 여러 기계장치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한 독일 자물쇠, 티벳의 은입사 자물쇠, 터키·인도·중동 지역의 거북·물고기·소 등 다양한 동물 모습을 본뜬 물상형 자물쇠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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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씨가 건축 설계하고 법정 스님이 간판 글씨 써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물쇠나 빗장에 십장생 등 동물 형상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복과 행운을 불러들이고, 들어온 재물을 잘 지켜달라는 기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 형상은 눈을 뜨고 자는 물고기처럼 밤새 잘 지키라는 뜻과 다산을 기원하거나, 물고기가 변해 용으로 승천하라는 기원 등을 담고 있다. 박쥐 모양은 박쥐의 ‘쥐’ 중국 발음이 우리나라의 ‘복’과 비슷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박쥐는 5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하여 오복을 상징하기도 한다. 자물쇠를 통해 다산을 기원하는 것은, 구멍이 있는 자물쇠가 음과 여성을, 열쇠는 양과 남성을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물쇠의 발달은 제련·야금 기술 등 금속문화의 발달과 함께 한다. 조선시대 자물쇠의 경우 은입사 방식을 통해 동식물 무늬나 문자를 새겨넣은 것들도 많다. 주로 모란이나 연꽃 무늬, 복(福)·수(壽) 등으로 행운과 건강·장수를 기원하거나, 효(孝)·예(禮) 등 교훈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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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엔 작은 방 두 개가 딸려 있다. 하나엔 두석장(중요무형문화재 64호)이었던 김덕용 선생과 김극천 선생의 장석 작품, 두석(주석을 말함, 구리·아연 합금)과 백통(구리·아연·니켈 합금) 장식을 제작하던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다른 방에선 실제로 자물쇠가 사용된 조선시대 가구들과 여행가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쇳대박물관 건물은 건축가 승효상씨가 설계했고, 간판에 쓰인 ‘쇳대’ 글씨는 법정 스님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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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쇳대박물관 2층 매표소 옆 전시장에선 수시로 문화예술 작품 전시회가 열린다.
 -별도 체험행사는 없다.
 -예약하면 전시물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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