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년 만에 환생한 애절한 ‘사랑과 영혼’ 생생 박물관 기행

안동대 박물관
지아비 무덤에 넣은 편지 아직도 눈물 ‘주르르’
머리카락 미투리도 함께…조선 복식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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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안동대학교 박물관
개관=1979년
주소=경북 안동시 송천동 388
주요 전시물=이응태 등 조선 중~후기 무덤 출토물, 임하사 전탑터 출토 사리구, 안동지역 구석기 유물 등
입장료=무료
휴관=토·일·공휴일(단, 10명 이상 단체관람 요청 예약 때는 수시로 관람 가능)
연락처=(054)820-7421.

 
숱한 박물관 중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곳이 대학 박물관이다. 일단 ‘대학’ ‘박물관’이란 이름에서 풍기는 학술적이고 교육적인, 뭔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인터넷에 상세 정보가 무수히 떠도는 여타 박물관들과 달리 소장품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고, 대체로 규모가 작다는 점도 한몫 한다. 그러나 들어가 살펴보면 말 그대로 보석같은 유물과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가득 품은 대학 박물관도 있다. ‘사랑과 영혼’ 이야기의 진수를 만나러,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대학교 박물관으로 간다.
 
“사랑, 사랑 해도 이렇게 애절하고 감동적인 얘긴 드물 겁니다.” 안동대 박물관 조규복 학예연구사는 “이 사랑 얘기가 깃든 유물을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안동대 박물관을 찾은 보람을 느끼실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널리 알려진 대로, 10년 전 한 무덤에서 발굴돼 큰 감동을 주었던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 이야기다. 420년 동안 무덤 속에 들어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빛을 보게 된 이 편지는, 가볍고 얕은 사랑이 일상화한 우리 시대에,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으로 다가와 가슴을 친다.
 
무덤의 주인공은 고성 이씨(固城 李氏) 이응태(李應台·1556~1586). 아이를 뱃속에 둔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부모·형제를 두고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이 안동대 박물관 3층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내용을 알고 가도 직접 만나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워늬 아바님께 샹백--병슐 뉴월 초하룬날 지비셔’(원이 아버님께 올림--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라는 제목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편의상 아래 아는 ㅏ로 표기해 옮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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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내 샹해 날다려 닐오대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쟈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 긔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난고.”(당신 늘 나에게 이르되, 둘이서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자식은 누구한테 기대어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시나요.)

 
가로 58㎝, 세로 34㎝의 한지에 붓으로 빼곡히 써내려간 한글 편지엔, 서럽고 쓸쓸하고 황망하고 안타까운 한 아내의 심정이 강물처럼 굽이친다.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뱃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심정, 꿈속에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절절하게 녹아 흐른다.
 
“함께 누워서 당신에게 물었죠. 여보, 남도 우리 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도 우리 같은가 하여 물었죠. 당신은 그러한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가득 쓰고도 모자라 위 여백까지 빽빽이…남편 호칭은 ‘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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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오른쪽 끝에서부터 써내려간 편지는, 왼쪽 끝까지 가득 채우고 모자라 위 여백으로 이어진다. 그러고도 모자라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나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다시 글 첫머리 쪽 여백에 거꾸로 씌어 있다. 뭉클해져 편지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조규복 학예연구사가 냉정하게 설명했다.
 
“여백을 활용해 쓰는 이런 편지 양식은 당시로선 일반적인 것이죠. 첫째 종이가 귀하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둘째 쓴 이의 마음, 즉 할 말이 이토록 많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백까지 활용해 글을 꽉 채웠으면서도, 읽는 이에게 풍성한 느낌을 주면서 지루하지 않게 읽히도록 한 방식이기도 하지요.”
 
더 감동적인 건 함께 출토된 미투리다. 미투리란 삼껍질 등을 꼬아 삼은 신발이다. 여기서 나온 미투리는 삼과 머리카락을 함께 꼬아 삼은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원이 엄마의 것으로 추정된다.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 한지엔 한글 편지가 적혀 있으나 훼손돼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 등 일부 글귀만 확인된다. 조 학예사는 “남편이 병석에 누운 뒤 쾌유를 빌면서 삼기 시작한 미투리”라며 “끝내 세상을 뜨자 함께 무덤에 넣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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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선 아들 원이가 입던 옷(저고리)과 원이 엄마의 치마도 나왔다. 형(이몽태)이 동생에게 쓴 한시 ‘울면서 아우를 보낸다’와 형이 쓰던 부채에 적은 ‘만시(輓時)’도 있었고, 이응태가 부친과 주고받은 편지도 여러 통 발견됐다. 발굴된 의복은 40여벌에 이른다.
 
부친과 나눈 편지엔 전염병 관련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당시 전염병을 앓다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과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건 이응태가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고 조 학예사는 말했다.
 
“당시(임진왜란 전)엔 결혼하면 시댁살이와 함께 처가에 가서 사는 것도 일반적이었습니다. 남녀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는 걸 뜻하죠. 임란 전엔 재산 분할도 아들·딸 차별이 없었습니다. 이런 인식은 편지에도 드러나 있어요.”
 
원이 엄마의 편지에 나오는 남편에 대한 호칭이 ‘자내’다. 지금은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자네)으로 바뀌었지만,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대를 높이거나 최소한 동등하게 대우해 부르는 호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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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에도 소개되고  국제 잡지 논문까지

 
이응태의 무덤은 1998년 우연한 계기로 발굴됐다.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 지정으로 주인 없는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안동대 박물관쪽의 지표조사가 계획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동 어느 문중에서 입향조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덤들을 파다가 명정(무덤에 덮는 천)에 ‘철성 이씨’라 적힌 무덤을 발견하고 고성 이씨 문중에 알렸다고 한다(고성 이씨는 본디 철성 이씨로 썼다). 발굴은 고성 이씨 문중 입회 아래 진행됐고, 무수한 부장물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발굴작업에 직접 참여했던 조규복 학예사가 말했다. “자료 정리중 이응태란 이름이 나와 고성 이씨 족보를 찾았죠. 그러나 이응태란 이름엔 생몰미상, 묘 미상으로 적혀 있었어요. 결국 한글편지와 한시 등을 통해 생몰연대 등을 비롯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쓴 한글편지의 “병술 유월” 그리고 형이 쓴 시의 “아우와 함께 부모를 봉양한 지 31년”이란 대목으로, 이응태가 1556년 태어나 서른 한살의 나이에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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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내용은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됐고, 2009년 3월엔 ‘원이 엄마 한글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표지논문으로 실리기도 했다.
 
이응태의 무덤과 같은 능선에 있던 이응태의 할머니 ‘일선 문씨’ 무덤에서도 미라와 함께 많은 옷가지 등 부장품이 쏟아졌다. 조 학예사는 할머니와 손자의 무덤에서, 모두 완벽한 상태의 미라와 생생한 부장품들이 발굴된 것은 희귀한 사례라고 말했다. 특히 할머니의 관은 일반 장비론 깰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은 회벽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무덤에선 수의 등 옷가지 60여점과 실타래, 조롱박 노리개, 향주머니 등이 나왔다. 안동대 박물관 삼층엔 이응태와 할머니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마주보고 전시돼 있다.
 
전시실 옆 영상관에선 이응태 무덤 발굴 과정과 한글편지 내용 등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7분 분량.
 
맞배지붕형 사리함은 국내 유일…역동서원도 ‘쫙~’
 
Untitled-10 copy.jpg안동대 박물관에 물론 이응태 관련 유물만 있는 건 아니다. 이응태 외에 다른 조선 중~후기 무덤에서 나온 의복 등을 통해 조선 복식의 변천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수의 앞에 붙였던 ‘흉배’의 동물 모양 수예장식들도 볼거리다. 마애리 유적 등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 출토 유물에서부터 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토기·청자·백자들까지 다양한 안동지역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1만2천여점의 소장품 중 300여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해마다 일부 유물을 교체전시한다.
 
조 학예사는 관심있게 볼 만한 전시물로 ‘임하사 전탑터 출토 사리구’를 꼽았다. 통일신라시대 절 임하사의 전탑터에서 나온 유물이다. 은으로 만들어 유리를 덧씌운 사리병, 금제 내함과 맞배지붕형 사리함(외함)을 볼 수 있다. 특히 맞배지붕형 사리함은 국내 유일의 것이라고 한다. 태화동 고분 출토 통일신라시대 금동귀고리, 정하동 출토 고려청자, 청화백자 용문호, 은입사담배합 등도 볼거리다. 박물관 앞마당에선 옛 안동향교터(통일신라시대 절터)에서 발굴된 석사자·석탑·불상들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벽을 뚫고 창을 내, 교내에 자리한 역동서원이 내려다보이도록 한 것도 특이하다. 역동서원은 고려말 유학자 우탁의 학문과 덕을 기려 조선 선조 때 세워진 서원이다. 1975년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는데, 1991년 안동대학교가 옮겨오면서 교내 서원이 되었다.
 
안동대 박물관을 찾는 이들 중엔 고성 이씨 문중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알음알음으로 찾아와 이응태 무덤 출토품을 보고 감동을 가슴에 담아가는 일반인들도 많다. 이응태 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이들이 남긴 유물을 하나하나 찬찬히 들여다볼 때 더 깊어진다. 여리고 짙은 붓자국을 따라 한획 한획, 420년 전 이 땅의 한 엄마가 남긴 한글 편지를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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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 전문
원이 아버지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 임세권 안동대 사학과 교수 풀어 씀.

■ 안동대 박물관 기획전시
-다달이 유물 한 점을 선정해 특별 전시한다. 10월 전시품은 조선 후기 이민형(1805~1877)의 무덤에서 출토된 수의 앞면에 장식된 ‘쌍학흉배’다.
-4층 특별전시실에선 해마다 한두번씩 특별기획전을 연다. 11월 중에 ‘나주 정씨 무덤 출토 유물’전’을 열 예정이다. 전시물엔 500년 묵은 볍씨와 기장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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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