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촌티’ 간판 위에 ‘흰구름’도 내려앉아 마을을 찾아서

진안 백운면 흰구름마을
가게 주인 손글씨 위에 미술가들이 붓질 ‘살살~’ 
‘용이다~’ 승천하지 못한 용이 흘린 서러운 눈물 

 
 
Untitled-9 copy.jpg

‘흰구름 마을’로 간다. 골목마다 지붕마다 구름이 걸렸다. 어르신도 아이도 흰구름에 한가윗달 가듯 마실 가고 학교 다닌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소재지 원촌마을은 ‘흰구름 마을’로 불린다. 그저 백운(白雲)을 한글로 풀어쓴 이름인데, 뜬구름 잡으러 바삐 오고 가던 나그네들도 이 마을에 들어서면 차를 멈추지 않는 이가 드물다. 여기저기서 범상찮은 기운이 느껴진다. 가게 간판들 때문이다. 풍년방앗간·백운기름집·백운약방·대광만물상회….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름의 간판이지만, 뭔가 좀 다르다.
 
‘제 이름은 토종닭이네요. 바로 잡아가세요’에서 착안
 
백운약방 지붕엔 ‘흰구름’이란 커다란 글씨가 먼 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다. 철 따라 날씨 따라 배경을 달리하는 간판이다. 건강원 지붕엔 철판으로 만든 염소 한 마리가 올라가 있다. 마을 어귀엔 ‘바람을 느껴요’ ‘하늘을 보아요’와 같은 덧없어 보이는, 그러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귀를 쓴 간판들이 내걸렸다. 촌스러운 듯하면서도 개성적인 간판들이 흰 구름과 함께 골목마다 떠 흐른다.
 
전진기(55·풍년방앗간 주인) 이장이 빨갛게 익은 고추 한 양푼을 ‘고추 빻는 기계’에 들이부으며 말했다. “말도 마시요. 처음엔 주민 설득허고 회의허고 정신없었다니께. 간판 바꿔다는 데만 회의를 스무번도 더 했을 것이요.”
 
Untitled-10 copy.jpg

이 마을이 흰 구름 위에 앉은 듯 환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마을로 거듭난 건 2년 전이다. 문화관광부 지원으로 2007년 ‘지역 통째로 박물관(에코 뮤지엄)’ 사업이 추진되면서 첫번째로 시작한 사업이 ‘간판 개선과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간판 개선사업은 전주대 미대 교수들이 이 마을에 있던 ‘제 이름이 토종닭이네요. 바로 잡아가세요. 네?’란 간판을 내건 닭집을 보고 착안해 간판 바꿔달기를 제안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주민 40여가구에 140여명이 사는 원촌리에서 모두 24곳의 가게 간판이 새롭게 바뀌었다. 이렇다 할 동네 가게 간판은 거의 다 바꾼 셈이다.
 
전진기 이장이 간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간판들 글씨가 본은 다 그 집 주인들 글씨여. 우리 집 간판도 내가 썼고.” 간판 이름은 본디 쓰던 이름을 사용하되, 글씨는 주인이 직접 쓴 손글씨를 바탕으로 프로젝트 참여작가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녹여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가게와 미닫이·여닫이문은 옛것이요, 간판은 말끔하게 다듬어진 새것인데, 거기에 주인의 마음 한 자락도 담아 넣은 셈이다.
 
간판 바뀌니 마을 분위기도 달라져 활력 ‘철철~’
 
Untitled-5 copy.jpg

희망건강원과 가보세이용원 사이 골목길로 들어서자 널찍한 주차장이 나온다. 한옆으로 간판에 홍어·꽃게·조개 그림이 그려진 육번집, 온갖 연장 그림이 배경인 대광철물점, 그리고 식료품점인 덕태상회가 로얄미용실 쪽으로 이어진다. 육번집은 본디 간판 없이 장사하던 식당 겸 술집이다. 간판을 달 때 “옛날 딸딸이 전화기(수동전화기)를 쓸 때 전화번호가 6번이어서 불리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다.
 
지금 주차장으로 바뀐 빈터는 20년 전까지 오일장(5·10일)이 열리던 자리다. 이웃 면·군 주민들까지 약초와 산나물들을 이고 지고 몰려와 제법 큰 장이 서던 곳이었다. 진안장(4·9일)·마령장(3·8일)과 함께 진안의 3대 오일장이었다. 원촌리 지명은 옛날 원(백암원)이 있던 마을(또는 원님이 머물고 간 마을)이란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원촌마을의 행정지명은 백암리(흰바우)다. 오일장이 설 때만 해도 백암천 상류인 윗흰바우에 80여가구, 아래흰바우(중백이)에 30여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Untitled-6 copy.jpg

지금 마을이 한산해졌다지만, 북적이던 시절도 따지고 보면 몇십년 되지 않는다. 마을 정자에서 만난, 아랫마을 범바우(번바우)에 사는 손성춘(82) 어르신이 말했다. “왜정 땐 집이라곤 요기 삼거리에 약방, 주막까지 해서 세 집밖에 없었어. 해방되구 인자 면소재지가 동창리서 이리로 욈기면서 장도 생겼지. 인공땐 빨치산도 와서 드글거리고.”
 
한때 오일장이 번성하면서 원촌마을 주민은 300여명에 이르렀다. 다시 주민이 줄고 장이 사라지면서 썰렁해진 원촌마을이,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마을로 거듭난 것이다.
 
마을은 간판만 바뀐 게 아니다.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게 자전거도로도 내고, 무인 자전거 대여소도 만들었다. 컨테이너박스에 마을을 상징하는 무인가게도 차렸다. 최근엔 보건소 자리에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흰구름 작은도서관’도 만들었다. 인구 140여명의 작은 마을로는 드물게 마을 소식지도 낸다. 마을의 행사, 구석구석 바뀐 점, 각 집안의 대소사 등 시시콜콜한 내용이 실린다.
 
관광객 위한 무인 자전거 대여소와 무인가게까지 
 
Untitled-4 copy.jpg

흰구름마을엔, 일부러 불러모으는 것도 아닌데, 지난해 3000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다녀갔다. 그러나 방문객의 증가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소득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40년 역사의 삼산옥은 백반을 잘 차리고, 육번집은 콩나물국밥이 일품이며, 우리회관은 묵은지찌개가 훌륭하지만” 정작 머물며 먹고 마시는 이들은 적다.
 
하지만 주민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주영미 원촌마을 간사는 “여느 마을처럼 단순히 체험행사만 진행하는 마을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라며 “주민들이 힘을 합해, 장기적으로 환경·생태·문화·역사가 함께 어우러진 자립형 농촌문화마을의 전형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진기 이장도 변화가 일고 있는 것 자체로 흐뭇해했다. “외지인들 와서 들여다보고 하니께로 주민들이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살게 된 게 사실이고, 또 말하자면 마을 전체 분위기도 느슨하던 옛날과는 확실히 달라진 것도 사실이라요.”
 
이런 마을 주민의 희망을 백운면 일대의 다양한 볼거리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Untitled-8 copy.jpg

먼저 이웃마을 운교리 상원산마을엔 150년된 방앗간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본디 물을 이용한 디딜방아였다가 물레방아를 들인 정미소다. 붉은색으로 칠한 커다란 건물 안에 소나무로 만든 큼직한 물레방아와 정미시설이 들어서 있다. 10여년전 정미소 구실은 접었지만, 지금도 물을 흘려보내면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연결된 기계들이 작동한다. 정미소 건물 안엔 디딜방아도 있다(내부 견학은 마을 간사를 통해야 한다).
 
멀지 않은 마령면 계서리에도 고색창연한 옛 방앗간 건물이 남아 있다. 방치돼 있던 계남정미소를 사진작가 김지연씨가 사들여 2006년 ‘공동체박물관’란 이름의 사진전시장을 열었다. 정미시설들을 그대로 둔 채 실내 한쪽에 전시실을 꾸며 다양한 전시회를 연다. 현재 태극기를 주제로 한 근·현대 사진 70여점을 모아 ‘태극기로 읽는 한국현대사-아! 태극기’전을 열고 있다(10월15일까지).        
 
풍년 바라는 마음에 거북바위는 물 속으로
 
Untitled-7 copy.jpg원촌마을 뒤 범바우(번바우)마을의 커다란 두 그루의 느티나무 밑엔 넙적한 바위(번바우) 두 개가 놓여 있다. 바위 윗면엔 성혈(선사시대 다산신앙의 흔적) 10여개가 보인다. 마을앞 백암천엔 거북을 닮은 거북바위가 있다. “비가 와서 바위가 물에 잠기면 풍년이 들고 물이 말라 거북이 다 드러나면 마을에 풍파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아예 “거북바위 아래 보를 막아 물을 채워”뒀다.
 
백암리 상류는 용오름폭포가 있는 백운동계곡이다. 물이 마르면 폭포의 위용은 대단치 않으나, 폭포 가는 길에 집채만한 바위들이 깔린 바위계곡과 거닐 만한 휴양림이 있다. 용오름폭포엔 “용이 하늘로 오르는데 이를 발견한 처녀가 ‘용이다’ 하고 외치는 바람에 떨어져 승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폭포 이야기에 곁들일 게 있다. 지도엔 용오름폭포를 전진폭포라고 적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백운동의 한 주민은 “웬 등산객이 잘못 알고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용오름폭포가 전진폭포로 둔갑했다”며 “말도 안되는 이름”이라고 분개했다. 사정은 이렇다. 폭포 옆 길을 따라 화장실 지나 한굽이 돌아오르면 왼쪽(덕태산등산로 표지판 부근 길 옆)에 ‘점바위’가 있다. 커다란 바위 밑에 7~8센티 정도의 틈이 있는데, 옛날부터 여기에 나뭇가지를 꺾어 끼워보고, 딱 맞으면 아들, 안 맞으면 딸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바위다. 점바위가 등산객들 사이에 ‘점치는 바위’로 불리고 이것이 ‘점진바위’, ‘전진바위’로 잘못 전해진 뒤 아예 폭포 이름까지 전진폭포가 돼버린 것이다.
 
이웃한 골짜기엔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도 있다.
 
‘개발’이 곧 ‘발전’이라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 불도저식 개발 아래 수많은 전통마을들이 사라져갔다. 원형 보전과 새로운 실험을 통해 발전을 꾀하는 흰구름마을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한산하던 마을에 간판 하나로 시작된 변화의 바람이 조용히, 또 흥미로운 모습으로 불어오고 있다.
⊙ 진안 여행 쪽지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가다 전주에서 익산~장수고속도로로 바꿔타고 진안으로 간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전에서 대전~통영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무주나들목에서 나가 30번 국도를 따라 가도 된다. 원촌마을에서 상원산마을 물레방아와 계남정미소는 차로 5~10분 거리에 있다. 물레방아 내부를 보려면 주영미 간사에게 연락(010-2906-2538). 진안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마이산. 말의 귀를 닮은 두 봉우리가 압권이다. 금당사~탑영제를 거치며 두 봉우리 사이를 걸어 넘어볼 만하다. 용담댐 드라이브도 좋다. 진안이 자랑하는 먹을거리는 ‘애저찜’이다. 금복회관(063-432-0651). 부귀면 봉암리의 동몽원(063-433-9618)은 직접 담근 장류와 재배한 농산물을 쓰는 된장음식 전문점이다. 진안읍 단양리엔 올해 문을 연 고급 홍삼한방타운 홍삼스파(063-432-5200)가 있다.
 
진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Leave Comments


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