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야 보이는 섬,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길따라 삶따라

<국외 여행기> 인도네시아 롬복
제주도와 닮은꼴…‘길리 삼총사’섬은 ‘3무도’
시간은 고무줄, 도마뱀이 친구처럼 잠 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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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마나?”(어디서 왔나요?) “코리아.” “오, 코레아! 안정환! 박지성! 연평도!”
국내에 ‘덜’ 알려졌다는 인도네시아의 휴양섬 롬복. 현지 주민들에게 우리 ‘국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알려져 있었다. 일부 상인들은 “감사합니다” “싸게 팔아요”를 외치기도 한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가 방영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래도 롬복은 국내 여행자가 연 2000~3000명 정도에 불과한 ‘덜 알려진 휴양지’임엔 틀림없다. 최근엔 대형 호화 리조트들도 잇따라 들어서며, 신혼여행객들의 발길도 급속히 늘고 있는 섬이다.
 

덜 알려졌지만 더 강렬한 볼거리·느낄거리 천국
 
‘롬복’은 인도네시아 지역말로 ‘고추’를 뜻한다. 작고 매운 고추다. 유명 관광지 발리의 그늘에 가려 있지만, 볼거리·느낄거리는 매운 고추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짙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은 강렬한데, 거기 깃들여 사는 주민들은 야자수 그늘 밑 바람결처럼 부드럽고 순하다. 숙소를 나서면 곧바로, 환하게 웃으며 스스럼없이 말 걸어오는 원주민(사삭족)들의 일상과 맞닥뜨리게 된다. 발리의 동쪽 35㎞ 거리. 발리에서 비행기로 20분이면 닿는다.

섬 크기는 제주도의 2.5배에 이르는데, 제주도와 닮은 데가 많다. 화산 분출로 이뤄진 섬 한가운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발 3726m의 린자니산이 솟았고, 정상 부근엔 거대한 화구호가 형성돼 있다. 산자락엔 울창한 원시림이, 해안으론 눈부신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롬복 해변의 모래는 화산재 성분이 많아 대개 검은빛을 띠는데, 철마다 모래 빛깔이 바뀐다고 한다. 롬복 섬의 푸리마스 리조트 매지저 사라 샌더스가 말했다. “대체로 겨울철엔 파도가 흰 모래를 날라와 밀어올리고, 여름철엔 다시 파도에 씻겨나갑니다.” 이 리조트의 스파
센터에선 피부미용을 위해 검은모래를 사용한다고 한다.

유럽인이 대부분인 관광객들은 주로 섬의 동북쪽 해안으로 몰린다. 검은모래 해변이 펼쳐진 승기기(Senggigi) 지역과 ‘길리(섬) 삼총사’로 불리는 휴양섬, 트라왕안·메노·아이르 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롬복이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떠오르기 전까지 이 섬의 매력은 린자니산 등산이었다. 2박3일, 3박4일 코스로 전세계 산악인들이 울창한 숲과 화구호 경관을 즐기러 찾아들었다고 한다. 해변이나 섬들을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은 해변에서의 ‘게으른 휴식’을 즐기려는 유럽·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다. 최근 들어선 “한국인 여행객을 비교적 덜 마주친다”는 이유로 롬복을 찾는 국내 여행객의 발길도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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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촌은 밤을 잊고 강태공은 점점이
 
섬의 서쪽 해안도시 승기기 거리는 마차와 차량, 오토바이들이 줄을 잇는다. 3~4년 전만 해도 대표적인 이동수단이 조랑말이 끄는 마차였다. 길들은 비좁고 마차들이 넘치다 보니 교통이 혼잡한 편이다. 마차를 몰려면 따로 운전면허를 따야 한다. 그러나 최근엔 오토바이 회사들이 무이자 할부판매 경쟁을 벌이면서, 오토바이가 급속하게 쏟아져 들어와 마차를 압도하고 있다.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전통시장이다. 승기기 남쪽 ‘끄본로에’ 시장은 주민들의 의식주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대형 상설시장이다. 우리 재래시장처럼 과일·두부(따후)·옥수수(자궁) 등의 보따리를 들고와 좌판을 벌인 할머니들, 닭 두세마리나 낫·칼 등의 연장 몇개를 앞에 놓고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할아버지들이 앉아 있는 시장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물건을 들춰보다 말아도, 한참을 옆에 서서 구경해도 상관 않는다. 웃으며 먼저 말 걸고 맛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실내외 시장을 한바퀴 돌며 사람살이와 정을 만나고 맛보는 데는 한두 시간이면 족하다.

 
주민들의 일상사를 만날 수 있는 또다른 곳으로 ‘와룽’이라 부르는 포장마차들이 있다. 주인이 틀어놓은 당둣(‘뽕짝’과 비슷한 대중음악) 카세트 음악을 들으며, 소토아얌(닭고기를 곁들인 일종의 카레 수프)·나시고렝(볶음밥)·박소(오뎅국)·에스참푸르(과일빙수) 등 토속 먹을거리를 맛볼 수 있다. 한두가지 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모여 있는데, 한곳에 자리잡은 뒤 옆에서 다른 음식을 사다놓고 함께 먹을 수도 있다. 밤늦게까지 영업을 한다.
 
승기기에서 북서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울창한 야자수 숲들과 전망 좋은 언덕들이 번갈아 이어지는 멋진 드라이브길이다. 바닷가엔 물놀이하는 주민들 말고도 삿갓을 쓴 채 가슴까지 잠기는 깊은 곳까지 들어가 늘어선 이들을 볼 수 있다. 인조미끼를 매단 낚싯대를 휘두르며 돔 등을 잡는 낚시꾼들이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저 사람들 정말 한심하다”며 혀를 찼다. “집안일은 다 부인에게 시켜놓고 온종일 낚시질만 하는 사람들”이란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 낚시를 즐기는 주민들이라고 한다. 취미든 생업이든, 점점이 떠서 긴 낚싯대를 들고 휘두르고 당기며 마치 물속에서 떼지어 펜싱 경기라도 벌이는 듯이 보이는 꾼들의 행렬이 나그네에겐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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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늘어선 원숭이떼, ‘영업’ 목 좋은 곳 영역다툼도
 
해변가 경치 좋은 곳들은 오토바이를 몰고 나와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남녀들 차지다. 전망 좋은 언덕 길옆엔 어김없이 오토바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오토바이들 옆으로 덩달아 장사진을 치는 것이 옥수수 좌판들이다. 연인들은 구운 옥수수와 재스민향이 나는 음료수인 테보톨을 한병씩 들고 먹고 마시며 데이트를 즐긴다. 옥수수 좌판들은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한다.

말라카 마을로 접어들어, 길 양옆으로 가득 앉고 서서, 요란한 전통악기 연주소리 속에 웃고 떠드는 남녀노소 주민들을 만났다. 빈터 천막 아래에선 십여 명의 연주자들이 열정적으로 북의 일종인 ‘알리알리’ 등 전통악기와 기타를 치고 또 두드리고, 몇몇 젊은이와 아이들은 온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흰 이를 드러내고 흐뭇하게 웃는데, 모두 어린아이를 업거나 안은 모습이다. 마을 총각·처녀가 결혼식을 하는 날이다. 신랑 친구들은 모두 검은 전통예복을 입고 진행을 돕는다. 길 모퉁이에 외벽을 화사한 초록색으로 새단장한 집이 눈에 띈다. 새신랑·신부가 신방을 차릴 집이라고 한다.

 
결혼식 날이면 보통 아침부터 악기 연주로 흥을 돋우며 사람들을 불러모은 뒤 따가운 햇살이 한풀 꺾이는 오후 서너시 무렵 예식이 시작된다고 한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직전엔 신랑·신부가 악기 연주 속에 온 주민들과 함께 거리행진을 하는데, 이 때문에 몇시간씩 도로정체가 빚어지기도 한다. 미니버스도, 마차도, 승용차도 행진이 다 지날 때까지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이때 오토바이가 유용하다.     

드라이브길에 ‘푸숙’ 지역 산길로 올라볼 만하다. 승기기 북쪽 차로 1시간 거리 산속에 있다. 원숭이 무리가 길가에 늘어서서 관광객을 기다린다. 사람이 차를 멈추고 내려서면 숲속에 있던 원숭이들이 하나둘 길가로 나와 눈치를 살핀다. 던져주는 과자나 과일을 받아먹기 위해서인데, 관광객이 자주 차를 멈추는 장소를 차지하려는 원숭이 집단 간의 다툼이 치열하다고 한다. 원숭이들은 경계심 없이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손으로 입으로 받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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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으면 1m나 되는 장수거북이 느릿느릿 ‘안내’
 
트라왕안과 메노, 아이르 등 ‘길리 삼총사’ 섬으로 가기 위해선 트룩 코덱 포구 등에서 여객선이나 리조트 전용 보트를 타야 한다. 세 섬 중 유럽인이나 호주·뉴질랜드 여행자들이 많이 몰리는 섬이 가장 바깥쪽의 트라왕안섬이다. 리조트에서의 편안한 휴식과 때묻지 않은(개발되지 않은) 청정 해변을 동시에 즐기기 위해서다.

세 섬은 모터차량·경찰·개가 없는 ‘3무의 섬’으로도 불린다. 공해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섬 안에서의 교통편을 마차나 자전거로 제한한다. 개가 없는 것은 본디 ‘고양이들’의 섬이었기 때문인데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고양이들이 들끓었던 섬”이라고 한다. 경찰은 왜 없을까. ‘마을 자치위원회’에서 치안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섬 안의 물가 조정도 담당하고 환경 보호도 담당한다. 개와 경찰이 섬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때는 ‘마약 소지 혐의’가 있는 관광객 조사를 할 때라고 한다.

 
본섬인 롬복의 거리가 차량과 오토바이들로 덮였다면, 트라왕안섬의 비포장길을 지배하는 건 마차와 자전거들이다. 트라왕안섬은 해안 비포장길을 따라 마차나 자전거로,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데 40분이면 족한 작은 섬. 가장 높은 곳이 해발 72m다. 리조트나 상점, 식당·카페들은 섬의 동쪽 해안에 몰려 있고 나머지 지역은 미개발지다.

관광객들은 낮엔 리조트에서 쉬거나 바다에서 해수욕과 스노클링 등을 즐기다가 밤이면 거리 식당·카페로 쏟아져나와 먹고 마신다. 요트를 타고 나가 주변 섬들을 돌며 스쿠버다이빙이나 스노클링, 낚시를 즐기도 한다. 스노클링으로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을 감상할 때 운이 좋이면 몸길이가 1m 가까이 되는 장수거북이의 유영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이리저리 거북 뒤를 따라가도, 거북은 놀라 달아나지 않는다. 롬복 섬이 내건 표어처럼, 게으르고 여유롭게 헤엄치다 깊고 푸른 물 저편으로 천천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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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면대 샤워기 등 수도꼭지마다 바닷물, 민물은 금쪽
 
롬복 여행 때 알아두면 좋을 몇 가지.
먼저 느긋한 마음으로 휴식을 즐길 것. 롬복 주민들은 다른 열대지역이 그렇듯이 시간 개념엔 둔감하고 느긋한 편이다. 시간 약속을 해도 잘 지켜지지 않아 ‘잠 카렛’(고무줄 시간)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식사 중이나 티브이 시청 중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도 놀라지 말 것. 전기 공급이 달려 하루에 한번쯤은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정전되면 곧바로 자체 발전기를 가동하므로 2~3분 안에 다시 들어온다.

트라왕안섬에선 민물이 귀하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고급 숙소라도 세면대, 샤워기, 욕조 등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다 바닷물이다. 민물은 욕조 한옆에 마련된 ‘프레시 워터’ 수도꼭지 밑 물통에 들어 있다.

 
그리고 대개 아시겠지만, 숙소 실내 벽과 천장에 붙은 도마뱀에 놀라지 말 것. 해충들을 잡아먹으며 집 안팎에 사는데 사람에겐 다가오지 않으니 안심하고 잠을 자도 좋다. 잠이 들면, 길이 30센티 안팎에 이르는 왕도마뱀이 잠을 깨운다. 잠에서 깨어나도 또 깨운다. “또또또또 또깨!”
 
롬복(인도네시아)/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쪽지
 
⊙ 가는 길| 인천~롬복 직항편은 없다. 보통 자카르타·발리·싱가포르를 경유해 롬복으로 간다.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의 경우 월·수·목·토·일요일에 인천~자카르타를 운항한다. 6시간50분 걸림. 자카르타~롬복은 매일 1편씩 운항. 2시간 소요.

⊙ 기본정보| 한국과의 시차는 자카르타가 2시간 늦고, 롬복은 1시간 늦다. 여행 제철은 건기인 6~9월이다. 11~4월은 우기에 속한다. 통용 화폐는 루피아와 미국달러. 1만루피아는 1300원 안팎. 전기는 한국과 같은 220V.

⊙ 묵을 곳| 롬복 섬 승기기에 호텔식 객실에서부터 풀 빌라까지 객실 154개와 전용해변을 갖춘 셰러턴 리조트, 풀 빌라를 포함한 객실 30개가 있는 푸리마스 리조트, 풀 빌라 등 객실 10개를 갖추고 내년 초 90개의 객실을 새로 선보일 마나끄븐 리조트 등이 신혼부부들을 맞고 있다. 트라왕안 섬에는 빌라옴박이 대표적이다. 지붕을 길게 늘어뜨린 전통식 오두막과 풀 빌라를 포함한 객실 115개를 갖췄다. 민물 수도꼭지가 객실당 하나라는 게 단점.

⊙ 여행상품| 롬복 전문 여행사 해피즌 투어와 인니 투어는 ‘풀 빌라 3박5일’ 여행상품을 170만~190만원(1인 기준)에 내놓았다. 60분 아로마 마사지와 100분 발마사지 1회씩 포함. 선택 사항으로 아이르 섬 스노클링 투어(5시간), 롬복 요트세일링 투어(4~5시간), 매직 아일랜드 트라왕안 투어, 승기기 워터스포츠 등 6가지 당일 프로그램 중 두 가지를 고를 수 있다. 문의 JW컴퍼니 인니투어(www.innitour.com) 1599-1278. 
 
롬복(인도네시아)/글·사진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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