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대로 느릿느릿, 웃고 우는 삶 길따라 삶따라

100년 역사 광주 양동시장에는 없는 게 없고
20년 뒤를 기약한 나무엔 이야기가 주렁주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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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의 젖줄 광주천. 광주(빛고을)의 진산 무등산에서 흘러내려 시내 한복판을 적신 뒤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언제나 ‘격동기’였던 광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시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는 물줄기다.

노니는 물고기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광주천 물줄기를 넘나들며 광주시내 일부를 더듬어 본다. 광주 지하철 1호선 양동시장역에서 출발해, 양동시장·충장로·광주공원 거쳐 ‘문화유산의 보물창고’ 양림동까지 걷는다.

 

시내 한복판 적시는 광주천엔 갯버들 치렁치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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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만한 잉어도 겁나 많다”는 광주천 물가엔 갯버들이 치렁치렁 늘어졌다. 물길을 들어다보고 양동시장으로 들어간다. 100년 역사의 양동시장은 광복 이후 호남권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떠오른 곳이다. 일제강점기 광주천변에 있던 옛 큰장터·작은장터를 옮겨 합친 이곳엔 6개 단위시장, 1천3백여 점포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들 공세에 위기를 맞았던 이 시장이, 최근 다양한 행사로 고객 끌기에 나서면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양동신협 옆 상가 2층 옥상, 지난 9월초 문을 연 양동문화센터로 올라간다. 양동시장을 문화·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꾸려진 공간이다. 다문화가정에서 운영하는, 베트남·중국·일본 등의 음식을 내는 다문화 행복장터와 홍어 전문 식당인 홍애, 다문화 공방·상점 등이 들어서 있다. 건물 벽과 담은 설치미술 전시공간으로 쓰인다.

 
양동시장사업단 김지원 단장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양동시장에서 다 해결할 수 있다”며 “매주 토요장터에선 30~50% 할인, 경매행사, 재미있는 공연도 펼친다”고 자랑했다. 지금 문화센터에선 광주비엔날레(11월7일까지) 공식 프로그램의 하나인 ‘양동시장 장삼이사’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양동시장은 매월 세쨋주 일요일 휴무.

 
북적이는 시장길을 걷는다. 흑산홍어·영광굴비·완도김·기장다시마·진도돌미역 즐비한 수산물 시장 거쳐 닭전 쪽으로 향한다. 속초상회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동원상회 옆으로 비좁은 옛 골목이 나타난다. 수십년 전 모습 그대로인 골목이다. 상인·주민들이 식수로 쓰고 빨래·목욕도 하던 오래된 공동우물(한뎃샘·통샘)이 이곳에 있다. 철판으로 덮었지만, 지금도 모터로 끌어올린 물을 닭집들에서 나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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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골목, 도둑놈 꼬리도 못 잡아

 
“골목이 복잡해 도둑놈이 도망쳐 들어오면 절대 못찾았다”는 골목 모습은 그대로지만, 2층·3층까지 살림집으로 들어찼던 상가 건물은 대부분 비어 있다. 닭전거리 뒷골목에서 40년 넘게 살고 있다는 신승철(70·여)씨가 말했다. “아파트가 쌨는디 누가 여그서 살락 합디여. 냄새 나고 헌께, 다 나가 불고 인자 일고여덟 집밖에 안 남었서라.”

“즉석에서 골라 잡아 디리고 만오천 원서 이만오천 원 받는”, 닭똥 냄새, 꼬꼬댁 소리 자욱한 닭집·오리집 거리엔 염소고기·개고기를 파는 곳도 있다. 닭집이 줄줄이 이어지던 닭전머리(닭전길 들머리)도 하나 둘 그릇집·잡화점으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축구경기 때면 손님이 줄을 선다”는 통닭집 두 곳(양동통닭·수일통닭)은 명성을 잃지 않고 성업중이다.

케이디비생명(금호생명) 빌딩 앞으로 나와 복개천을 건넌다. 일제강점기에 광주천에서 가장 큰 나무다리(한다리)가 있었다는 곳이다. 지상 주차장 입구 옆에 “구두 닦는 법을 가르쳐줘 성공시킨 제자가 여덟 명”이라는 구두닦이·수선집이 있다. 부부가 함께 구두 닦고 고치며, 돼지저금통에 수입금의 10%를 꼬박꼬박 넣어, 석달에 한번 꼴로 결식아동·소년소녀가장을 돕는다는 신세계구두수선집이다.

 
길 건너 골목으로 들면 뼈다귀해장국·뻘낙지·곰탕·볼테기집 등 음식점이 이어진다. 광고·도안·문구용품 거리 지나 명문 광주제일고 정문 안으로 들어간다. 일제강점기 이 학교(당시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송홍(1872~1949) 선생 상을 보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으로 간다. 일제강점기 광주 지역에서 일어난 두 차례 학생독립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광주고보생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54년 세운 탑이다. 1차(1929년 11월3일) 때 157명이, 2차(1943년) 때 36명이 구속·퇴학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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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문 연 광주극장 아직도 살아남은 비결

 
img_05.jpg기념탑 옆의 역사관엔 학생독립운동 관련 사진과 기록물, 광주일고 역사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기념탑 옆 네거리로 간다. 이 일대가 누문동인데, 광주읍성 북문밖의 누각 공북루가 있던 데서 비롯한 이름이다. 둘레 2.5㎞에 이르던 광주읍성은 1900년대 초반 일제에 의해 헐렸다고 한다. 발굴된 성돌 일부와 우물 장대석 등이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1916년 헐린 공북루 터 표석 보고 길 건너 충장로 5가로 든다. 한복·완구·문구·귀금속 상가가 즐비한 도매상 거리다.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펼치는 ‘추억의 7080 충장축제’ 현수막이 거리를 덮고 있다. 42년째 한복집을 하고 있는 부영상회 박혜순씨는 “충장로 5가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던 30여년 전이 전성기”였다며 “지금은 대부분 소매상으로 돌아서고 찾는 이도 줄었다”고 했다. 금남새마을금고 건너편이 터미널 자리였다.

 
신한은행(옛 조흥은행) 네거리 거쳐 광주극장으로 걷는다. 1935년 문을 연, 호남지역 첫 한국인 자본 극장이다. 이 극장이 대형 상영관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킬링타임용 영화를 배제하고 예술영화나 실험성이 강한 문제작들을 고집스럽게 상영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극장 운영이사 김형수씨는 “일반 영화관에 안 걸리는 영화 위주로 1년에 150편 정도를 상영한다”면서 “하루 다섯 차례, 매회 각기 다른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입구에 내거는 영화간판을 옛날식대로 손으로 그리고, 주연·감독외에 간판 그린 이 이름을 써넣는 것도 ‘고집’의 일면이다. 오는 11월엔 ‘알랭 들롱 회고전’을 열어, ‘암흑가의 두 사람’ ‘태양은 가득히’ 등 10여편을 상영할 계획이다. 856석, 일반 8천원, 조조 6천원, 어르신 5천원. 5편 하루 패키지 3만원, 3편 패키지 2만1천원.
 

 
저물녘이 포장마차들하나 둘…, 밤새 불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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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맞은편 보성주차장 안엔 포장을 접은 포장마차들이 수십대 ‘주차’돼 있다. 저물녘이면 광주공원 입구 등에 늘어서서 밤새 불을 밝힐 포장마차들이라고 한다. 아치형 조형물이 높이 솟은 광주교 건너 물가의 석서정을 만난다. 석서정이란 고려 우왕 때 양림동 쪽 광주천 한가운데 물길에 석축을 쌓고 지었다는 정자다. 현재는 제자리 아닌 곳에 최근 새로 지은 것이지만, 이 정자에 걸린 편액 ‘석서정기’를 들여다볼 만하다.

 
목은 이색(1328~1396)이 지은 글로, ‘광주천 범람이 잦았으나 물길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키니 순조롭게 흘러 이를 기념해 물 가운데 정자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이 글의 첫머리가 ‘빛의 고을(光之州理)은 지세가 세 방면이 다 큰 산인데 북쪽만 평탄하다”로 시작된다. ‘빛고을’이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무등산을 형상화한 분수와 느티나무숲 울창한 광주공원(성거산·성구산)으로 올라 노인복지회관 앞에 선 고려시대 광주서오층석탑(보물 제109호)을 감상한다. 산 형세가 북쪽을 향한 거북 형상인데, 거북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거북 등엔 절(성거사)을 세우고, 발엔 향교를, 목 부분엔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일제는 성거산 터에 일본 신사를 세웠다. 지금 그 자리엔 전몰호국용사 1만5천867명을 기리는 현충탑(우리 위한 영의 탑)이 우뚝하다.
 

 
쉬고 거닐고 논쟁하는 어르신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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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원은 쉬고 거닐고 논쟁하는 어르신들 세상이다. 철거중인 시민회관 건물과 안기부 건물이었다는 무진회관 보고 내려와 은행나무 그늘 드리운 20여 기의 관찰사·목사 선정비 무리를 만난다. 크기와 모양새는 다양한데, 거북받침돌 장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빗돌이 웅장하기로는 광주향교 문 앞에 도열한 광주향교중수기 비들이다.

 
아담한 하마비 옆 비각 안에 9개의 커다란 중수비들이 들어 있는데, 맨 왼쪽 비(광주향교중신기)가 가장 오래되고, 또 멋진 머릿돌을 이고 있어 들여다볼 만하다. 앞뒤로 한마리씩만 돋을새김돼 있다. 앞쪽 용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뒤쪽 용은 옆을 바라본 모습이다.

길 건너 서현교회 지나고 도 무형문화재 20호(나전칠기) 김기복(71)씨 집 지나 양림산 사직공원길로 오른다. 광주 문화관광해설사 원근수(57)씨는 “지금은 산줄기가 끊기고 낮아졌지만, 애초엔 양림산·성거산과 양동 뒷산 자락이 다 광주의 진산인 무등산 줄기가 이어져 있던 곳”이라고 말했다.   

 
활쏘기로 마음을 다스리고 덕을 쌓는 어르신들이 모여드는 관덕정(300년전 북문 쪽에 있던 것이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 1960년대 이곳으로 왔다) 거쳐 사직단으로 간다. 관에서 토지·곡식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신성한 장소다. 조선 태조때 처음 이곳에 사직단을 설치했는데, 60년대엔 이 주변에 동물원이 들어서기도 했었다. 숲은 울창한데 차량이 드나들어 쾌적한 맛은 적다.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와 언덕 위에 자리잡은 양파정을 거친다. 일제강점기의 갑부 정낙교가 1914년 지은 정자라고 한다. 석서정이 있던 장소가 양파정 앞쪽 광주천 물길 한가운데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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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한옥 즐비, 근대문화유산의 보물창고

 
양림동은 멋진 한옥 즐비한 고택마을이기도 하고,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서양 선교사들의 봉사·선교활동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의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양림’은 옛날 버드나무가 많았던 데서 나온 이름이다. 옛 지명이 버드님이다. 양림동 문화재 사진 전시관(컨테이너박스)에서 근대문화유산 목록을 사진으로 살펴보고, 빛고을 문화재지킴이센터로 간다. 양림동 문화유산들을 지키고 홍보하는 민간단체인데, 이 사무실 안의 벽 문을 열면 길이 21m, 높이·폭 2m 안팎의 동굴이 나타난다. 일제강점기에 판 방공호다. 이전엔 동굴 안에 “탁자가 두 줄로 죽 깔려 있던” 막걸리집이었다. 길이 10m와 30m인 굴 두개가 주변에 더 있다.

 
정엄 효자비와 충견상(개비)을 만난다. 선조 때의 지극한 효자 정엄과 그가 기르던 총명한 개를 기리는 상이다. 광주와 한양을 오가며 문서수발 등을 빈틈없이 해냈다는 개다. 골목 안쪽에 이장우 가옥이 있다. 1899년 지어진 상류층 가옥으로 가옥 형태와 정원 등이 한식과 왜식이 뒤섞인 모습이다. 광주 근대역사문화 해설사 이춘홍(68)씨는 “남부지역은 보통 안채 형식이 ‘ㅡ’자 형인데, 중부지역 방식인 ‘ㄱ’자 형을 하고 있다”며 “중부지역 한옥을 옮겨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카페 105-28(양림동 떡볶이) 거쳐 사직도서관 앞 선교사비를 만난다. 나주·목포를 거쳐 1904년 광주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남장로교) 유진 벨(배유지·1868~1925)과 오웬(오기원·1867~1909)이 주민을 모아놓고 첫 예배를 드리던 장소라고 한다. 이것이 광주 첫 교회인 양림교회의 시초가 됐다. 호남신학대 운동장 옆 산으로 오르면 유진 벨과 오웬 등 선교사 22명이 잠든 선교사 묘원이 있다. 거대한 은단풍나무 2그루가 묘역을 지킨다. 선교사들이 가져온 은단풍나무의 2세 나무로, 어미가 되는 나무는 산밑 윌슨(우월순·우일선) 선교사 사택 옆에 잘린 고사목 둥치로 남아 있다. 선교사들은 당시 초분이 널려 있던 양림산 일대 5만6천여평을 사들여 선교와 교육·의료활동의 근거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때 그 여고생들 또 20년 뒤엔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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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숲 울창한 널찍한 산책로를 내려와 윌슨 선교사 사택을 만난다. 회색벽돌로 지은 미국 남부지역 건축형식의 2층 건물이다. 윌슨은 제중원(기독병원) 2대 원장으로, 특히 나환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피고 인격적으로 대우한 “성자에 가까운 분”으로 칭송되는 선교사다. 소록도 나환자마을의 모태가 되는 여수 애향원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분이기도 하다.

호남신학대 도서관 1층 ‘티 브라운’ 카페에서 차 한잔 하며 무등산 자태를 감상한 뒤 다형 김현승 시비에 들른다. 김현승은 6살 때 부친을 따라 양림동에 들어온 이래 양림산 기슭을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곤 했다고 한다. 시비는 애초 무등산이 조망되는 위치에 세웠으나, 최근 앞쪽에 거대한 기숙사 건물이 들어서면서, 시비도 무등산 전망대도 세워진 본뜻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400년 넘었다는 호랑가시나무를 보고 내려가 광주·전남 여성교육의 요람 수피아여중고 안으로 들어간다. 오른쪽 언덕 위에 배유지 기념예배당(1924년)이 있다. 아담한 규모의 이 건물은 지금도 예배당으로 쓰인다. 1911년 제니 스피어의 헌금으로 건축한 수피아홀로 간다. 네널란드 양식의 큰 건물로, 광주여학교가 광주수피아여학교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계단 내려와 본관 앞쪽으로 나서면 왼쪽에 1930년대에 세워진 옛 강당이 있고, 그 앞쪽 운동장가엔 1963년에 심어진 흥미로운 이야기를 간직한 낙우송 한 그루가 있다. 같은 반 학생들이 20년 뒤에 나무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심은 나무로, 1983년 이 나무에 모인 졸업생들은 다시 20년 뒤에 모이기로 했고, 2003년엔 같은 학년 전체가 모여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고 한다. 이 내용을 알리는 표석 두 개가 있고, 또다시 20년 뒤의 만남을 기약하는 내용도 적혀 있다.     
 

 
환자들이 힘을 모아 간호사 기리는 기념 빗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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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기념동상과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모 조아라 선생의 기념비를 보고 학교를 나와 광주 근대의료의 발상지 광주기독병원 뒤뜰로 간다.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윌슨과 포사이트 기념비, 간호사였던 ‘카밍 여사’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카밍 여사 송덕비’는 환자들이 힘을 모아 세운 빗돌이다. 오기원(오웬)기념각은 기독간호대학 안에 있다. 의사이자 선교사인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를 기념해 친지들의 성금을 모아 1914년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은 예술회관·전시관·교육시설로 활용돼 신문화·민족의식을 확산시키는 전당 구실을 했다.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활동하며 ‘중국 현대 3대 음악가’로 추앙받는 정율성의 생가 터로 간다. 집은 본디 모습은 아니나, 낡은 대문을 단 집 앞에 정율성의 삶을 기록한 팻말을 세웠다. 골목 안쪽 끝집은 김현승 시인이 한때 살던 집이다. 아파트단지 벽면을 활용한 정율성 거리 전시장에선 그가 작곡한 ‘연안가’ 등을 화면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시설, 그의 사진들과 악보, 동상 등이 있다. 여기까지 7.5㎞를 걸었다.

 
광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쪽지>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서광주나들목에서 나가 좌회전해 가다 1번 국도 만나 다시 좌회전해 간 뒤 동운고가 타고 광주버스터미널 쪽으로 간다. 터미널 신세계 앞 광천네거리에서 좌회전해 천변로 타고 양동시장으로 간다.
⊙ 현지 이동| 광주버스터미널에서 양동시장역까지 택시요금 2천원대(기본요금 2천200원). 양림동에서 양동시장 주차장까지 택시요금 4천원 안팎. 양동 복개시장 지하주차장 주차료 1시간 1천원. 하루 8천원. 복개상가 지상 주차장은 1시간 1천500원, 하루 8천원.
⊙ 먹을 곳| 누문동 한정식(1만5천~2만5천원) 수라(062-514-3600), 누문동 갈치조림전문 맛가(062-511-5122), 충장로5가 중국식당 신락원(062-223-6849) 신락원짬뽕.
⊙ 주변 볼거리| 광주를 이야기할 때 무등산(1187m)을 빼놓을 수 없다. 광주의 상징물이자 대표적인 볼거리다. 빛고을을 감싸고 시민을 품어주는 휴식처다. 입석대·서석대 등 기암괴석을 병풍처럼 두른 명산이다. 해발 1천m가 넘는 고봉을 도심에 둔 도시는 국내에서 따로 찾아보기 어렵다. 큰 산답게 깊은 골을 거느렸고, 골이 깊은 만큼 선인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서려 있다. 선인들이 오가던 무등산 옛길을 따라 거니는 트레킹을 즐겨볼 만하다. 기존의 무등산 등산로 외에, 세 노선의 옛길이 있다. 무등산 둘레를 도는 노선도 마련중이다. 옛길 1노선(수지사~잣고개~청풍쉼터~충장사~원효사)은 7.7㎞(3시간), 2노선(원효사~제철유적지~서석대)은 4.1㎞(2시간), 3노선(장원삼거리~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샘바위~풍암정~도요지~충효분교~김덕령 장군 생가~호수생태원~환벽당~가사문학관)은 11.3㎞(6시간).
여행문의| 광주광역시 관광진흥과 (062)613-3623, 남구청(양림동 근대문화유산) (062)650-8114, 광주종합관광안내소 (062)233-9370,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 (062)365-1187.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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