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과 전통이 숨쉬는 드라이브코스 길따라 삶따라

빼어난 경치, 전통이 숨쉬는 드라이브 코스
강풍경이 수려한 북한강 청평호반과 금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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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연속이다.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홀로 떠나는 여행도, 떼로 떠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꺼워하고 즐길 수 있다면, 아무리 북새통을 이루는 휴가철 여행길이라 해도 짜증스러움을 한결 덜 수 있지 않을까. 볼거리 많고 즐길거리도 많은 북한강 청평호반길의 한 농촌마을로 간다. 주변은 온통 쉬고 즐기러 온 관광객들로 북적여도, 주민들은 오가는 인파·차량 행렬은 아랑곳없이 논일 밭일 하며 쉬고 또 즐긴다.
 
청평댐에서 남이섬 들머리에 이르는 길은 강 풍경 수려한 드라이브 코스다. 수도권에서 46번 경춘국도를 타고 가다 청평 못미처, 청평댐 쪽으로 호명리 팻말 보고 우회전하면 363번 지방도, 75번 국도를 번갈아 타며 남이섬 들머리에 이르게 된다. 펜션·별장·식당들로 덮이다시피한 이 북한강변길에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있다. 가평군 가평읍 금대리다. 강변의 요지는 거의 외지인들 손에 넘어가고, 물길 산길이 모두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이 마을은 대대로 내려온 마을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쇠터가 본디 마을이름…수몰 전 북한강은 ‘사금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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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령대·잔디고개·쇠터·하금대 등 서너개 단위마을에 70여가구가 논밭 일구며 산다. 특히 비령대와 잔디고개 주변은 고즈넉한 농촌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1942년 청평댐이 생기기 이전의 북한강과 마을 내력을 소상히 기억하는 팔구십대 어르신들이 정정하게 살아 계시는 마을이기도 하다. 
 
이 마을은 인동 장씨 집성촌이다. 밭에서 만난 아주머니도, 느티나무 정자에 앉아 부채질하는 어르신도, 자전거 탄 아저씨도, 경로회관에 둘러앉은 어르신들도 대개 장씨 성을 가졌다. 500여년 전 예조참의를 지낸 장씨 선조가 복장리 학익동으로 낙향한 이래, 가평 일대에 장씨들이 번성했다고 한다.
 
금대리란 마을이름은 쇠터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쇠터란 이름은 마을 북한강에서 사금이 많이 생산되던 데서 나왔다. 일제강점기 청평댐이 생기기 전까지 하루 사오백명씩 마을 앞으로 몰려들어 사금을 채취했다고 한다. 마을 앞 강변 전체가 금밭이어서, “강모래를 퍼 어렝이(소쿠리)로 금을 일어 하루에 쌀 한말벌이를 쉽게 했다”고 한다.
 
북한강에 댐이 생기면서 사라진 또다른 풍경이 뗏목 행렬이다. 떼꾼들은 양구·인제 등 북한강 상류에서 벌목한 나무들을 엮어 물에 띄워 서울 광나루·뚝섬으로 가져가 팔았다. 떼꾼들이 오며가며 먹고 묵어가던 주막이 마을 앞쪽에 세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당시 강물과 강변 풍경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고 입을 모은다.
 
잔디고개에 사는 장석환(90)씨가 말했다. “그때는 말이요, 강물이 으찌나 맑던지 아무리 짚은 데라도 그냥 다 들여다보였소. 달걀 같은 자갈돌이 강변에 쪼옥 깔려가지구서니, 어렸을 때 미역 감으러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청평댐으로 집이 수몰된 물가 주민들은 일제에 의해 만주로 이주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잔디고개 넘어 비령대(비려대) 마을은 ‘된봉’ 아래 우묵한 골짜기에 들어선 마을이다. 금대리 전체 집의 절반, 땅의 60%가 외지인 소유인 데 반해, 30가구가 사는 이 마을은 온전히 주민들 소유라고 한다. 마을의 낡고 빛바래고 뜯어고쳐진 농가들은 대부분 애초엔 위풍당당했을 한옥 모습을 하고 있다.
 
비령대를 비롯한 금대리는 40여년 전까지도 닥나무로 한지를 만들어 팔아온 이름난 한지 마을이었다. 비령대 버스정류소에서 만난 장기목(80)씨가 말했다. “집마다 다 했지. 겨울에 밤새두룩 닥나무 긁어가지구서 삶아, 닥풀 두드려 넣어 한지를 떴지.” 문창호지 크기의 한지 ‘한 뎅이’(2천장)를 뜨면 소 한마리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점도를 높이기 위해 으깨어 넣던 닥풀이 그때는 흔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img_03.jpg금대리 마을의 자랑거리가 잔디고개에 있는 ‘장원한 정려’와 두채의 장씨 사당이다. 장원한은 조선 영조 때의 효자로, 12살 때부터 98살로 작고할 때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철종 때 효자 정려를 받았다. 본디 산유리 강가에 있었으나, 청평댐이 생기며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정려각을 불태워 재를 묘소에 묻었다고 한다. 현재 건물은 최근 다시 지은 것이다. 금대리에선 해마다 음력 9월9일 잔디고개 마을 뒷산(주산) 자락의 당산나무(참나무)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린다. 이때 소 한마리를 잡아 바쳐왔으나, 요즘은 소머리·우족·꼬리를 구입해 형식을 갖춘다고 한다. 비령대 마을 뒷산 골짜기인 검은독골엔 ‘고려장 터’ 흔적이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 장석환씨가 설명했다.
 
“그 내력은 내 잘 모르겠소만, 검은독골 안쪽(안검은독골)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면 거기 돌무더기로 둘러싼 한평 정도의 자리가 있소이다. 내 어렸을 적부터 어르신들이 고려장 터라고 부르던 곳이 거기올시다.” 검은독골 입구는 잔디고개에서 비령대 마을로 넘어가다 서낭고개 못미처 길 왼쪽에 있다. 이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 고개 넘으면 왼쪽에 다랑논이 나오고 그 끝에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그 뒤쪽 골짜기가 안검은독골인데, 잡풀 우거지고 수림이 울창해 안내인 없이는 다가가기 어렵다.
 
강변 쪽으론 펜션·별장들이 즐비한 마을이지만, 금대리엔 정작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게는 단 한곳뿐이다. ‘경기도 교직원 가평 수덕원’에서 ‘장원한 정려’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른쪽 샛길에 있는, 담배 팻말을 단 금대리상회(금대슈퍼)다. 이 가게 앞길은, 몇년 전  직선 차도가 새로 뚫리기 전까지 버스가 다니던 큰길이었다. 용창섭(76)·정혜순(73)씨 부부가 40년째 문 열고 있는 구멍가게다. 가게에 들러 캔커피를 하나 사 마시자니, 가게 안이 ‘지지배배’ 소리로 요란하다. 제비가 산다는 건 주변 환경이 깨끗하다는 방증이다.
 
 
뒷산엔 ‘고려장 터’ 흔적도…오가는 길에 수상레저 즐겨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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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금대리 마을도 밀려드는 외지인들로, 언제 옛 모습을 잃을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민들은 의연하다. 잔디고개에 사는 장기서(54)씨가 말했다. “조상이 물려주고 부모님께서 주신 땅을 함부로 버릴 수 있겠습니까. 논밭 일구며 살다가 또 자식들에게 물려줘야죠.”
 
청평호반길엔 웬만한 여행자라면 한번쯤 들러봤음직한 명소들이 수두룩하다.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호명산 자락 산길, 프랑스 마을 축소판인 쁘띠 프랑스, 영원한 연인들의 섬 남이섬, 오토캠핑장으로 잘 알려진 자라섬 등이 이 길 주변에 있다. 그리고 산 푸르고 물 맑은 청평호에서의 수상레포츠가 있다. 금대리 앞 강변을 비롯한 청평호반길엔 수상레저 업체들이 성업중이다. 물살 가르며 수상스키·웨이크보드·플라잉피시 등 수상레저를 즐기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후련해진다. 보트를 타고 연예인·기업인 별장 늘어선 북한강을 둘러보는 보트 투어도 인기다. 보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수상레저 체험에 나서볼 만하다.
 
최근 금대리 쇠터 앞 강변에, 가족 단위 체험객을 대상으로 새로 문 연 클럽 레벤(레벤 하우스)의 수상스키 전문강사 박정수(대한수상스키협회 이사)씨는 “청평호 중에서도 금대리 일대는 깨끗한 물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라며 “전문강사의 지도로 초보자도 쉽게 수상스키·웨이크보드 등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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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 쪽지>
  
⊙ 가는 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강일나들목에서 나가 경춘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서종나들목에서 나가 46번 국도 타고 청평댐 들머리로 간다. 서울 태릉에서 삼육대 앞을 지나 직진하면 나오는 춘천 방향 고속화도로를 이용해도 된다. 46번 국도 청평 못 미쳐 청평댐 바라보며 호명리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금대리 지나 남이섬 들머리까지 청평호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갈림길이 나올 때 계속 우회전하면 강변길로 이어진다.
 
img_00.jpg⊙ 먹을 곳| 금대리의 금대식당(031-582-1279)은 닭·오리백숙도 하지만 가정식 백반이 인기 있는 집. 조미료를 쓰지 않고 인심도 후하다. 금대리의 뫼촌가든(031-581-8014)은 매콤한 닭볶음탕과 민물매운탕을 내는 식당. 연예인들도 많이 찾는다는 곳이다. 복장리의 고원산장(031-582-8006)은 산채비빔밥·청국장을 낸다. 이웃한 강촌(춘천시 남산면)엔 직접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쇠등심·갈비를 내는 이조숯불갈비(033-262-6889)가 있다.
 
⊙ 여행문의| 가평군청 문화관광과 (031)580-2067, 가평읍사무소 (031)582-3002, 수상레저 클럽레벤(레벤 하우스) (031)581-1132. 수상스키 초보자 2회(강습 포함) 6만원. 경험자는 1회 2만원. 플라잉피시 1회 2만5천원, 바나나보트 1인 1만5천원, 땅콩보트 2만원. 프랑스 테마마을 쁘띠프랑스 (031)584-8200.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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