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개구리 품은 신두리 모래언덕 길따라 삶따라
2010.06.24 16:20 너브내 Edit
국내 최대 해안사구 태안 신두리 사구와 두웅습지 생태탐방
고추 심은 땅도 벼 심은 땅도 모래밭이다. 해당화 붉게 흐드러진 모래밭엔 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들이 깔려 있고, 그 사이로 표범장지뱀이 줄달음친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3리. 원형을 잘 간직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가 자리잡은 지역이다. 해안사구란 파도에 의해 밀어올려진 모래가 오랜 세월 바람에 날리며 쌓여 형성된 모래언덕을 말한다. 신두리 해안사구가 모래 채취와 개발, 서해안 기름유출 사태 등으로 인한 훼손 위기를 넘기고, 최근 인기 생태탐방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웃 마을 소원면엔 국내 최대 식물종을 보유한 천리포수목원도 있어, 올여름 휴가여행길 가족 생태탐방여행 코스를 꾸려볼 만하다.
신두리엔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이 약 3㎞, 폭 0.2~1.3㎞의 해안사구가 형성돼 있다. 대표적인 해안사구의 특성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90년대 후반에야 독특한 지형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1년 북쪽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독특한 생태계 덕에 생태탐방 여행지로 떠올라
드넓은 사구 한쪽엔 바람을 막기 위해 50여년 전 심은 아까시나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소나무밭은 큰솔창·작은솔창으로 불리며 주민들에게 솔가리 등 땔감을 제공했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키 작은 풀들이 사구에 깔리면서 모래 이동을 막아 ‘활동성 해안사구’엔 더는 모래가 쌓이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다 엄청난 양의 모래 채취, 주변 해안의 관광지 개발 등 영향으로 모래언덕들은 더욱 낮아져, 지금 널찍한 모래사막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신두리 해안사구가 살아남은 건 10여년 전부터 환경단체들이 보전운동을 펴온 덕이다. 훼손 위기에 몰렸던 해안사구와 배후습지에선 금개구리·표범장지뱀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무수한 동식물들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며 산다. 태안군과 환경단체, 마을 주민들은 몇년 전부터 해안사구를 지속 가능한 생태탐방 여행지로 가꾸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신두3리 번영회 권오수(45) 총무는 “환경·생태 교육을 받은 주민 10명이 생태탐방 안내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논밭에서 일하다가도 연락을 받으면 달려와 해안사구와 배후습지 탐방 안내에 나선다”고 말했다. 평소에 닫아뒀던 목책 문을 열고, 옛 농로를 따라 해당화·띠·산조풀·갯씀바귀 펼쳐진 사구 초지를 돌며 식생을 설명해 준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관심을 끄는 대표적인 식물이 갯방풍과 초종용입니다. 모두 멸종위기종이죠.” 권 총무가 작은 꽃들이 둥글게 모여 핀 흰 꽃을 가리켰다. 잎은 나물, 뿌리는 약재로 쓰이는 갯방풍인데 최근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보라색 꽃들이 뭉쳐 핀, 키 작은 초종용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모래땅에서 자라는 사철쑥 뿌리에 기생하는 식물인데, 역시 약재로 많이 쓰인다. 꽃은 지금 시들어가는 중이다.
풀밭 사이 모랫바닥엔 깔때기 모양의 구멍을 만들어놓고 밑에 숨었다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개미 등을 잡아먹는 개미귀신(명주잠자리 유충) 구멍들이 깔렸다. 두더지가 파고들어간 구멍도 널렸다. 권씨가 작은 가시들이 무수히 돋은, 며느리밑씻개 풀을 뜯어 맛보라고 권했다. 못된 시어머니의 심성이 엿보이는 풀 이름이지만, 그 맛과 향은 새큼하고도 향기롭다.
신두3리엔 개발지구에 펜션 지으며 들어온 이주민을 포함해 90여가구가 산다. 토박이들은 40여가구 정도다. 신두리 모래땅은 본디 주인도 없었다. 동네 주민 전체의 공유재산이었다. 신두3리 토박이 김창수(92)·권익준(82) 두 어르신이 해안사구에 얽힌 옛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내 나이 아흔둘인디, 조상 땅 받아 농사짓는 겨. 그런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다가니 당했지. 있는 것들이 남으 땅에 금 그서놓구 자기 땅이라는 거여. 촌 부자라는 놈들이 다 그렇게 갈퀴질해서 부자 된 겨.”
“옛날엔 모래땅이 전부 마을 공동재산인디. 자유당 때 불량한 이장허구 몇몇이 작당을 헌겨. ‘땅 팔아서 나눠가집시다’ 허더먼, 다 팔아쳐먹구 우리헌테 준 게 뭐냐. 달랑 저울 하나씩 돌리는 겨. 땅을 저울 하나랑 바꾼 겨어.”
신두리 해안사구는 40~50년 전까지도 대규모 모래언덕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성째라구, 엄청나게 큰 모래언덕이 있었는디 그 큰 산뎅이가 인저 다 읍서졌어. 거기 올라가 바다를 보믄, 전어떼가 누우렇게 가는 겨. 우르르 달려가 그물 쳐서니 한바꾸 돌리믄, 그 안에 조기만헌 전어들이 아주 가득혀. 시방은 다 읍서졌지.”
모래언덕엔 쇠똥구리도 지천이었다. “옛날 쇠 먹일 땐 아, 이 모자만헌 쇠똥을 뭉쳐서는 이리 굴리구, 저리 굴리구 아주 난리였시유.” 장지뱀도 종달새도 천지였고, 해당화가 엄청나 꽃을 피우면 모래밭이 시뻘겠다고 한다.
신두리 해안사구엔 모래언덕뿐 아니라 민물이 모래에 막혀 형성된 배후습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두룽개 마을 부근의 두웅습지다.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이 사구습지는 다른 사막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습윤사구습지와 달리 물이 잘 마르지 않아 안정된 동식물 생태계가 유지된다고 한다. 습지의 넓이는 가로 150m, 세로 90m. 수면엔 애기마름이 깔려 있고, 곳곳에 옮겨다 심은 수련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습지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 베치레잠자리(배치레잠자리)·무자치(물뱀) 등이 산다. 나무 탐방로가 설치돼 물가 일부를 거닐며 동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귀화한 미국인이 만든 천리포수목원 숲길 매혹적
두웅습지에 상주하며 생태해설을 하는 안내원은 “3~4년 전엔 황소개구리들이 엄청나게 번식해 골치였는데, 해마다 올챙이를 몇 통씩 잡아냈더니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며 “8월에 오면 물가를 노랗게 장식한 식충식물 통발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무와 숲을 좋아한다면, 이웃한 소원면 의항리의 천리포수목원에 들러볼 만하다. 입장료(8천원)는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아름다운 수목원이다. 귀화한 독일계 미국인 고 민병갈(1921~2002)씨가 40년 전부터 조성했다. 바닷가 18만7천여평 터에 1만2천여종에 이르는 국내외 식물종을 갖춘 수목원이다. 목련이 400여종, 호랑가시나무류가 370여종, 무궁화는 250여종, 단풍나무가 200여종이나 된다. 그동안 연구자 등에게만 개방해 오다, 지난해 봄부터 일반 개방을 시작했다.
나무의 다양함도 놀랍지만, 바닷가 잡목림 언덕을 이용해 자연스런 식재돼 자라온 나무들과 연못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길이 매혹적이다. 숲길도 흙길·모랫길·나무껍질길·낙엽길 등 나무 내음이 물씬한, 청량한 길이다. 천리포수목원 관리팀 최수진씨는 “수목원 나무들엔 인위적인 것은 전혀 가하지 않는다”며 “약도 치지 않고 가지치기도 없다”고 말했다. 10여명의 안내원이 상주하며 매일 30분 간격으로 정기 수목 해설을 한다.
태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고추 심은 땅도 벼 심은 땅도 모래밭이다. 해당화 붉게 흐드러진 모래밭엔 개미귀신이 파놓은 함정들이 깔려 있고, 그 사이로 표범장지뱀이 줄달음친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3리. 원형을 잘 간직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해안사구가 자리잡은 지역이다. 해안사구란 파도에 의해 밀어올려진 모래가 오랜 세월 바람에 날리며 쌓여 형성된 모래언덕을 말한다. 신두리 해안사구가 모래 채취와 개발, 서해안 기름유출 사태 등으로 인한 훼손 위기를 넘기고, 최근 인기 생태탐방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웃 마을 소원면엔 국내 최대 식물종을 보유한 천리포수목원도 있어, 올여름 휴가여행길 가족 생태탐방여행 코스를 꾸려볼 만하다.
신두리엔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이 약 3㎞, 폭 0.2~1.3㎞의 해안사구가 형성돼 있다. 대표적인 해안사구의 특성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990년대 후반에야 독특한 지형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1년 북쪽 일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독특한 생태계 덕에 생태탐방 여행지로 떠올라
드넓은 사구 한쪽엔 바람을 막기 위해 50여년 전 심은 아까시나무,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소나무밭은 큰솔창·작은솔창으로 불리며 주민들에게 솔가리 등 땔감을 제공했다. 나무가 숲을 이루고 키 작은 풀들이 사구에 깔리면서 모래 이동을 막아 ‘활동성 해안사구’엔 더는 모래가 쌓이기 어렵게 됐다. 여기에다 엄청난 양의 모래 채취, 주변 해안의 관광지 개발 등 영향으로 모래언덕들은 더욱 낮아져, 지금 널찍한 모래사막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신두리 해안사구가 살아남은 건 10여년 전부터 환경단체들이 보전운동을 펴온 덕이다. 훼손 위기에 몰렸던 해안사구와 배후습지에선 금개구리·표범장지뱀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무수한 동식물들이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며 산다. 태안군과 환경단체, 마을 주민들은 몇년 전부터 해안사구를 지속 가능한 생태탐방 여행지로 가꾸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신두3리 번영회 권오수(45) 총무는 “환경·생태 교육을 받은 주민 10명이 생태탐방 안내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논밭에서 일하다가도 연락을 받으면 달려와 해안사구와 배후습지 탐방 안내에 나선다”고 말했다. 평소에 닫아뒀던 목책 문을 열고, 옛 농로를 따라 해당화·띠·산조풀·갯씀바귀 펼쳐진 사구 초지를 돌며 식생을 설명해 준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관심을 끄는 대표적인 식물이 갯방풍과 초종용입니다. 모두 멸종위기종이죠.” 권 총무가 작은 꽃들이 둥글게 모여 핀 흰 꽃을 가리켰다. 잎은 나물, 뿌리는 약재로 쓰이는 갯방풍인데 최근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보라색 꽃들이 뭉쳐 핀, 키 작은 초종용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모래땅에서 자라는 사철쑥 뿌리에 기생하는 식물인데, 역시 약재로 많이 쓰인다. 꽃은 지금 시들어가는 중이다.
풀밭 사이 모랫바닥엔 깔때기 모양의 구멍을 만들어놓고 밑에 숨었다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개미 등을 잡아먹는 개미귀신(명주잠자리 유충) 구멍들이 깔렸다. 두더지가 파고들어간 구멍도 널렸다. 권씨가 작은 가시들이 무수히 돋은, 며느리밑씻개 풀을 뜯어 맛보라고 권했다. 못된 시어머니의 심성이 엿보이는 풀 이름이지만, 그 맛과 향은 새큼하고도 향기롭다.
신두3리엔 개발지구에 펜션 지으며 들어온 이주민을 포함해 90여가구가 산다. 토박이들은 40여가구 정도다. 신두리 모래땅은 본디 주인도 없었다. 동네 주민 전체의 공유재산이었다. 신두3리 토박이 김창수(92)·권익준(82) 두 어르신이 해안사구에 얽힌 옛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내 나이 아흔둘인디, 조상 땅 받아 농사짓는 겨. 그런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다가니 당했지. 있는 것들이 남으 땅에 금 그서놓구 자기 땅이라는 거여. 촌 부자라는 놈들이 다 그렇게 갈퀴질해서 부자 된 겨.”
“옛날엔 모래땅이 전부 마을 공동재산인디. 자유당 때 불량한 이장허구 몇몇이 작당을 헌겨. ‘땅 팔아서 나눠가집시다’ 허더먼, 다 팔아쳐먹구 우리헌테 준 게 뭐냐. 달랑 저울 하나씩 돌리는 겨. 땅을 저울 하나랑 바꾼 겨어.”
신두리 해안사구는 40~50년 전까지도 대규모 모래언덕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한다. “성째라구, 엄청나게 큰 모래언덕이 있었는디 그 큰 산뎅이가 인저 다 읍서졌어. 거기 올라가 바다를 보믄, 전어떼가 누우렇게 가는 겨. 우르르 달려가 그물 쳐서니 한바꾸 돌리믄, 그 안에 조기만헌 전어들이 아주 가득혀. 시방은 다 읍서졌지.”
모래언덕엔 쇠똥구리도 지천이었다. “옛날 쇠 먹일 땐 아, 이 모자만헌 쇠똥을 뭉쳐서는 이리 굴리구, 저리 굴리구 아주 난리였시유.” 장지뱀도 종달새도 천지였고, 해당화가 엄청나 꽃을 피우면 모래밭이 시뻘겠다고 한다.
신두리 해안사구엔 모래언덕뿐 아니라 민물이 모래에 막혀 형성된 배후습지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두룽개 마을 부근의 두웅습지다.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이 사구습지는 다른 사막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습윤사구습지와 달리 물이 잘 마르지 않아 안정된 동식물 생태계가 유지된다고 한다. 습지의 넓이는 가로 150m, 세로 90m. 수면엔 애기마름이 깔려 있고, 곳곳에 옮겨다 심은 수련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습지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 베치레잠자리(배치레잠자리)·무자치(물뱀) 등이 산다. 나무 탐방로가 설치돼 물가 일부를 거닐며 동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귀화한 미국인이 만든 천리포수목원 숲길 매혹적
두웅습지에 상주하며 생태해설을 하는 안내원은 “3~4년 전엔 황소개구리들이 엄청나게 번식해 골치였는데, 해마다 올챙이를 몇 통씩 잡아냈더니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며 “8월에 오면 물가를 노랗게 장식한 식충식물 통발 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무와 숲을 좋아한다면, 이웃한 소원면 의항리의 천리포수목원에 들러볼 만하다. 입장료(8천원)는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아름다운 수목원이다. 귀화한 독일계 미국인 고 민병갈(1921~2002)씨가 40년 전부터 조성했다. 바닷가 18만7천여평 터에 1만2천여종에 이르는 국내외 식물종을 갖춘 수목원이다. 목련이 400여종, 호랑가시나무류가 370여종, 무궁화는 250여종, 단풍나무가 200여종이나 된다. 그동안 연구자 등에게만 개방해 오다, 지난해 봄부터 일반 개방을 시작했다.
나무의 다양함도 놀랍지만, 바닷가 잡목림 언덕을 이용해 자연스런 식재돼 자라온 나무들과 연못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숲길이 매혹적이다. 숲길도 흙길·모랫길·나무껍질길·낙엽길 등 나무 내음이 물씬한, 청량한 길이다. 천리포수목원 관리팀 최수진씨는 “수목원 나무들엔 인위적인 것은 전혀 가하지 않는다”며 “약도 치지 않고 가지치기도 없다”고 말했다. 10여명의 안내원이 상주하며 매일 30분 간격으로 정기 수목 해설을 한다.
태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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