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김도 거시기한 여근곡 ‘어허~험’ 길따라 삶따라

경주 건천 오봉산과 단석산
샘 휘저으면 처녀들 바람 난다는 옥문지도 야릇
노승이 궁녀들을 밤마다 동굴로 데려간 전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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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겨울과 초여름이 뒤엉겼다. 찬 비바람 속에 매화·개나리·진달래·벚꽃·복숭아꽃·배꽃들이 한꺼번에 피고 지는 봄이다. 두서없긴 해도 산과 들이 싱숭생숭하기는 매한가지다. 맑은 물 고인 여근곡에도, 갈라진 바위 깔린 단석산 자락에도 길고 짧고, 굵고 가는 나무들 저마다 물이 올라 아우성이다.
 
봄 향기에 감싸인 경주 서쪽 관문 오봉산·단석산으로 간다. 경주시 건천읍, 시내권의 숱한 보물들이 발하는 광채에 가려져 찾는 이 뜸한 음지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의 장쾌한 전망과 여근곡의 신비, 그리고 거대한 바위벽에 새긴 신라인의 내공을 느껴보는 여정이다.
 

“남성의 것은 여성의 그것에 들어가면 죽어” 선덕여왕의 신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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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여섯개의 봉우리가 올망졸망 솟은 오봉산(640m·닭벼슬산)은 남서쪽의 부산(729m) 줄기와 닿아 있다. 두 산을 합쳐 오봉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두 산줄기가 이어지며 감싼 분지와 능선이 신라 문무왕 때 쌓았다는 둘레 7.5㎞의 부산성 터다. 득오가 죽지랑을 그리는 향가 ‘모죽지랑가’를 이곳에서 지었다고 전한다.
 
빼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오봉산 마당바위(지맥석)와 작은 암자 주사암 오르는 길에, 여근곡의 적나라한 자태를 피해갈 수 없다. 건천읍 신평2리다. 오봉산 동쪽 줄기인 소산(작은 산) 기슭에 북향으로 형성된 둥글고 도톰한 지형인데, 여성 성기 모습을 빼닮았다 해서 여근곡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미리 알았던 세 가지 일) 중 한 가지 이야기에 여근곡이 등장한다. 신라 선덕여왕이, 왕궁 안 옥문지에서 한겨울에 개구리들이 울자 ‘여근곡에 백제 군사들이 숨어 있으니 공격하라’는 명을 내려 섬멸했다는 이야기다. 신하들이 신기해, 어떻게 그것을 알았느냐고 묻자, 선덕여왕은 ‘개구리가 목청을 돋우는 것은 병사들의 형상을 뜻하고, 옥문은 음이고 음은 흰색인데 흰색은 서쪽을 뜻하며, 남성의 것은 여성의 그것 안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게 돼 있으니, 반드시 이길 것을 알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은 신평·샛들·샙들·쌥돌·샘들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이 마을 한 할머니(68)가 잠시 망설이다 말씀하셨다. “내 스무살 때 여기로 시집오이께네, 여길 쌥들이라카데. 그기 저기 저 산, 여근곡 때문이라.” 건천읍 식당에서 만난 한 아저씨 말씀은 좀 구체적이다. “쌥들은 무신 쌥들이고. 옛날부터 ○들이라캤구마.” 그가 목소리를 좀 낮춰 덧붙였다. “여근곡이라카는 저것도 그 뭐로 보○골이라캤다.” 마을 주민들과 달리, 주변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점잖지 않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어쨌든, 경부고속도로에서도 4번 국도에서도 빤히 보이는 여근곡 앞 쌥들엔 지금 복숭아꽃이 만발해 도홧빛이 한창이다. 여근곡 아래엔 소산지·고척지(고자골못)·부채못(부처못) 등 연못들이 즐비하다. 습한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다. 작은 절 유학사 옆 산책로에 옥문지라는 샘이 있다. 이 샘을 휘저으면 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난다는 속설이 있다. 한 모금 마셔 보니 몸이 쩌릿하고 정신은 맑아진다.

 
연한 새순들 가쁜 숨 토해내 연분홍 절정
 
백제 군사들이 숨어 있었다는 여근곡 주변엔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음모처럼 울창하게 깔렸다. 유학사에서 출발해 여근곡 둘레에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한바퀴 돌아 내려올 수 있다. 30여분이면 가파른 통나무계단길을 올라 쉼터를 거쳐 다시 유학사로 내려오게 된다. 연한 새순들 가쁜 숨 몰아쉬며 돋아나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연분홍빛 진달래 잔치가 막 절정을 누리고 잦아드는 중이다.
 
쉼터에서 더 올라 능선길을 따라 1시간30분쯤 가면 주사암과 마당바위에 이른다. 주사암은 의상대사가 주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하는 불국사 말사다. 여기에 고승과 궁녀의 전설이 있다.
A5.jpg ‘신라 때 한 노승이 왕궁의 궁녀들을 매일 밤 자신의 동굴로 데려갔다. 화가 난 임금은 어느 날 미리 궁녀에게 주사(붉은 염료)가 담긴 병을 주며, 끌려갈 때 동굴에 주사 칠을 해놓으라고 일렀다. 군사를 이끌고 뒤를 쫓은 임금이 주사가 칠해진 동굴을 찾아 에워쌌다. 그때 하늘에서 수많은 신병들이 나타나더니 노승을 호위하고 보호했다. 이를 본 임금은 노승을 부처가 돕는다는 걸 깨닫고, 노승을 국사로 삼고 주사암이란 절을 지어주었다.’
 주사암 옆으로 잠시 걸으면 위쪽은 평평하고 옆으론 깎아지른 바위벼랑이 나온다. 마당바위다. 널찍한 마당바위 끝에 서면 좌우 전망이 시원하고 후련하다. 왼쪽으로는 부산으로 이어진 부산성의 흔적이 또렷하고, 오른쪽으론 산내면 우라리로 넘어가는 산길이 아스라이 눈에 잡힌다. 이 바위를 지맥석이라고도 하는데, 김유신이 이곳에서 군사를 훈련시키며 바위에 쌓아둔 보리로 술을 담가 주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의 마지막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주사암 앞까지 차 한대가 다닐 만한 비좁은 시멘트길이 나 있어, 신평리~모길마을을 통해 차로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우 좁고 가파른데다 굽이가 심해 일반차량 운행은 삼가는 게 좋다.
 
 
김유신이 무술 연마하다 칼로 바위 내리쳐 ‘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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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단석산(827m)은 오봉산 동남쪽에 있다. 건천읍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산내면·당고개 쪽으로 5~6㎞ 차를 몰면 송선저수지 지나 왼쪽으로 우중골로 드는 갈림길이 나선다. 우중(雨中)골 끝자락 오덕선원 앞쪽에 차를 대고, 계곡을 따라 1시간30분 가량 안개를 헤치고 산길을 오른다. 골짜기 물은 수량은 적으나 매우 깨끗하다. 우중골 출신 문화해설사 박주연씨는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약물로 부르며 마셔온 물”이라며 “지금도 상류쪽 물을 끌어다 식수로 쓴다”고 전했다.
 
신선사 법당을 에워쌌던 자욱한 안개가 맑은 풍경소리와 함께 서서히 걷히고 옆 산기슭의 바위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보 제199호 ‘신선사 마애불상군’이 있는 곳이다. 김유신이 17살에 이곳에 와 무술을 연마하다 신검으로 바위를 내리쳐 갈라졌는데,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칼로 잘라낸 듯한 절벽과 바위기둥 안쪽에 10구의 크고 작은 불상과 인물상이 돋을새김돼 있어 장관을 이룬다. 갈라진 바위 틈으로 들어서면, 왼쪽 절벽에 새겨진 4구의 불상이 두 손을 일제히 본존불 쪽을 향해 가리키며 안내를 해준다. 그 앞 밑엔 공양을 바치는, 버선발의 인물상 둘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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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떨어진 바위기둥에 새겨진 주존불 미륵여래입상은 키가 8m를 넘는다. 두툼한 입술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이 불상은, 내민 손바닥도 유(U)자형 옷 주름도 발가락도 두툼하고 둥글둥글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맞은편 절벽 중간엔 심하게 닳아버린 각자 흔적이 보인다. 1969년 400여자 중 일부를 해독한 결과 이곳 절 이름이 신선사임이 밝혀졌다. 주변에선 지붕을 얹었던 흔적으로 보이는 신라~조선시대 기와 조각들이 무수히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투명지붕과 철제 구조물로 마애불 무리를 보호하고 있다. 신선사 주지 용담 스님은 “산 이름이 원래 월생산인데, 김유신이 신검으로 바위를 자른 뒤 단석산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영험한 금자, 중국이 탐내자 몰래 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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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오다 우중골 물길에서 작은 폭포를 만나 잠시 쉰다. 낯을 씻으니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면서도 한 가닥 푸근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여근곡의 야릇한 자태와 지맥석의 시원한 전망, 마애불의 온화한 미소가 뒤섞여 핀 봄꽃들처럼 겹쳐져 가슴에 남았다.
 
건천읍 주변에 볼거리가 남아 있다. 신라시대 왕족·귀족들의 무덤 50여기가 모여 있는 금척리 고분군, 신라 중기의 아름다운 석탑 용명리사지 삼층석탑(보물 제908호) 등이다. 금척리 고분군엔 ‘혁거세왕이 하늘로부터 영험한 금자(금척)를 얻었는데, 중국에서 이를 탐내자, 이곳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크고 작은 고분 무리 사이로 아지랑이와 키를 잴 듯 말 듯한 냉이꽃들이 뽀얗게 깔려 있다.

 

건천(경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여행쪽지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건천나들목에서 나가자마자 좌회전, 잠시 가다 읍내에서 4번 국도 만나 다시 좌회전해 철길과 나란히 3㎞ 남짓 직진한다. 신평2리·원신마을 팻말(여근곡 팻말) 보고 좌회전해 철길 건너고 고속도로 굴다리 지나 여근곡 밑 유학사로 간다. 부채못 옆에 삼신할머니 상이 있는 집에 이른바 ‘여근곡 전망대’가 있으나, 전망이 좋지는 않다. 마을 안길이나, 4번 국도 옆 철길 부근에서도 잘 보인다. 단석산 신선사는, 앞서 경부고속도로 건천나들목에서 나와 우회전해 20번 국도를 따라 말무덤이 있는 달래창, 송선저수지, 절골 지나 좌회전해 우중골로 들어간다. 소형차로 신선사 밑(걸어서 20분 거리) 국립공원 게시판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길이 다소 험하다.

먹을거리

건천읍에서 20번 국도 따라 산내·청도 쪽으로, 단석산 우중골 들머리 지나 당고개(땅고개) 넘어 가면 한우고기로 이름난 산내면이다. 다경한우숯불구이(054-751-1123) 등 한우고기 전문점이 많다. 건천나들목에서 15분 거리. 건천읍 용명리 장시마을 4번 국도변 장시영양탕(054-751-2456)은 닭계장(5000원)과 보신탕(〃)을 잘하는 집. 건천시장 앞 감로당빵집은 건천 주민이면 누구나 아는 쫄면집. 28년째 도넛과 쫄면을 팔고 있다.

여행 문의

경주시청 문화관광과(054-779-6395), 신라문화원(1577-1950) 등에 연락하면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경주시청 문화재과 (054)779-6061.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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