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한국전쟁…, 애달프고 고달픈 뒷골목 길따라 삶따라
2011.05.12 15:16 너브내 Edit
법원 옆길이어서 ‘법대로’…우렁이 닮아 우렁골
40년 전엔 워낙 고기가 많아 그냥 깔린 게 덕장

강원 북부 해안의 속초시는 일제강점기 이후 발달한 신흥 항구도시다. 조선시대 말까지 양양도호부 소천면의 작은 포구마을(속초리·속진·속새)이었다. 일제강점기 양양의 철광석 등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청초호 입구를 항만으로 개발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37년 면이 되고, 42년 읍으로 승격한 뒤 한국전쟁 때 피난내려온 함경도 주민들이 대거 정착하며 인구가 늘어나, 63년엔 시로 승격했다. 따라서 시내 거리에서 오래된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흥미로운 건 포구 주변과 산동네에 깔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에 형성된 애달프고 고달픈 사람살이 흔적들이다. 시내 중심거리는 깔끔하게 단장됐지만,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50~60년대의 묵은때와 굳은살이 보이고 만져진다. 속초시청에서 출발해 동명항·속초등대 거쳐 옛 철로길 터를 따라내려와, 금호동 산동네와 중앙시장을 들여다본 뒤 갯배 타고 건너가 청호동 아바이마을까지 걷는다.
“저 노인네 ‘이제 가야지’하는 얘긴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여”
속초시청에서 나와 길 건너 해경 전용부두 옆 도로 따라 수복탑 오거리쪽으로 걷는다. 40년 전까지 도로 안쪽까지 바다였다. “일루다 고기 덕장이 그냥 깔렸는데, 원체 고기가 많으니까는 터만 있으면 거저 낭구(나무) 엮어선 고기를 내거는 거라.”(문화관광해설사 김성환씨·70)
전쟁 직전 4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월남해, 떠돌다 67년 속초에 정착했다는 김씨는 “이 해안에 69년 태풍 때 들이닥친 높이 4~5m의 해일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왼쪽 센트리움 리조트 자리엔 90년대 중반까지 옛 속초 4대 극장의 하나였던 삼보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6월말부터 본격적인 ‘연안 오징어’ 경매가 벌어지면 시끌벅적해진다는 오징어 어판장을 지나 수복기념탑을 만난다. 한국전쟁 뒤인 1954년 수복을 기념하고 피난민 향수를 달래기 위해 세운 모자상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도 굳세게 사는 어머니와 아이를 표현했다. 청양의 최익현 동상, 울산 공업탑 등을 세운 원로 조각가 박칠성(82)씨의 작품인데, 1983년 강풍으로 부서져 다시 세웠다.
바닷가쪽 몇년 전까지 울릉도 등을 오가는 여객선이 정박하던 여객터미널 건물은 “이용객이 없어 폐쇄돼” 텅 비었다. 골목길을 돌아, 세운 지 84년 됐다는 속초감리교회 쪽으로 오른다. 구불구불 오르는 골목길엔 70년대 지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담한 연초록색 옛날집을 살펴보는데, 옆 집터의 시멘트 바닥 한 구석에서 고추 심을 밭을 일구던 고창순(78)씨가 말했다. “내 어릴 땐 여기 집이라곤 한 채나 있었나 어디. 내 속초 영랑동 토백인데, 인저 토백이두 거의 없어. 다 여기저기서 몰려온 잡종덜이지. 나두 인저 갈 때가 됐으니 가야지.” ‘여기저기서 몰려온 잡종’ 중 한 분인 해설사 김씨가 84년 역사를 지닌 속초 감리교회 앞마당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갈 때가 됐다구? 어림 반푼어치두 없지. 저 노인네들 ‘이제 가야지’ 하는 얘긴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여.”
높고도 널찍한, 교회의 앞마당은 빼어난 전망대다. 항구도 섬(조도)도, 시내도, 설악산 일부도 바라다보인다. 그리고 나서, 턱밑에 다닥다닥 붙어 깔린 회색빛 스레트 지붕들과 좁디좁은 골목길들이 눈에 들어온다. 낡고 구멍난 오래된 빈 집을 바라보며 동명동 성당으로 들어선다.
사다리꼴에 가까운, 본당 건물(1951년 건립) 모습이 아름다운데, 옛 맛은 덜하다. “이게 근대문화유산 감인데, 안에 습기가 차니까 거죽에 콜타르칠을 하고 다시 페인트칠을 해 망쳤어요. 창문까지 갈아끼우고.”(신자 서낙원씨·72) 본당 역사책을 썼다는 서씨는 “원래 미군 수송부대가 지어준 건물”이라며 “지붕은 드럼통을 잘라 얹었었다”고 말했다.
멋없는 최신식 성황당, 할머니신과 할아버지신 생이별


소나무숲 계단 밑 쪽문을 나서 흑장미 미용실 보고 우회전해 동명항 입구 쪽으로 내려간다. 보건목욕탕 앞 건너편 골목에 일제 때 가옥을 닮은 2층 건물(동원부식)이 보인다. 동명항으로 가기 전 볼거리가 있다. 주민들이 ‘망지꼬대’라 부르던 산자락에 세워진 동명동 성황당이다. 그러나 본디 영금정 부근 산자락에 있던 것을 여러 곳으로 옮겨세우면서 원형을 잃었다. 유리문까지 해달고 담장까지 두른, 멋없는 최신식 성황당이다. 한 쌍의 성황신을 모셨었는데, 할머니 성황신을 중앙동으로 모셔가 할아버지 성황신만 남았다고 한다.
김성환씨가 성황당 오르는 길 옆 파란대문집 담과 마당의 시멘트 기둥들을 가리켰다. “이게 30여년 전 덕장 흔적이요. 이 집은 문어를 주로 말렸지.”
오징어·노가리·쥐포·가자미가 널린 건어물가게들 지나 30~40년 전 지은 집들이 남은 골목을 돌아 대한민국 횟집 어로와 화이트 횟집 사잇길로 나서, 동명항 주차장 쪽으로 걷는다. 멀리 영금정 돌산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 옆 구명 튜브 모양의, 냉난방이 되고 음악도 흘러나오는 공중화장실 지나 50여척의 어선들이 머리를 들이대고 흔들리는, 어구 보수장으로 간다.
그물 손질엔 대개 남녀 한 쌍이 매달려 있다. “옛날이나 사람을 사서 했지, 요즘엔 다 부부나 가족이 달라붙어 해요. 뭐 돈이 돼이지, 돈이.” 요즘 뭐가 많이 잡히냐고 묻자, 한 선주는 “하두 고기를 못봐서 뭐이가 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두 모르겠다”며 외면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동명항 활어유통센터 1층엔 활어가게 28집이 있고, 2층엔 수협 직영의 널찍한 매운탕집이 있다. 1층에서 골라 사서 회를 떠 갖고 올라가면 실비를 받고 야채 등을 제공한다. “센터에선 요 앞에서 입찰본 자연산만 다뤄요. 고기 없으면 문 닫고.”(남치우 활어센터 관리팀장)
500여m 길이의 방파제 시작점에 영금정이 있다. 본디 영금정은 정자 이름이 아니었다. 속초등대 밑 바닷가의 넓은 암반고 이어진 돌산을 지칭하던 이름이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신비한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비선대라고도 불렀다(<대동여지도>). 이 바위산과 암반은 일제강점기 청초호 축항공사를 할 때 채석장으로 쓰며 파괴돼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속초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깎아낸 암반 자국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돌산 위 영금정과 다리로 이어진 해상정자는 최근에 만든 것이다. 영금정 밑(방파제쪽)에는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파는 좌판이 있다. 30년 경력의 해녀 진숙자(66)씨는 “한 5년 전까지 17명이나 있었는데, 이젠 다들 나이 들고 몸이 아파 3명만 물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상정자 들머리엔 동명항의 옛 사진들을 전시해놨다.
혼자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구불구불

속초등대 2·3층에 올라 앞바다·뒷산 감상하고 소나무숲길 걸어내려가, 30여년 전까지 해당화밭이었다는 해변 옆 영랑동1구 마을 옛 시장터를 둘러본다. 간판 없는 이모네식당 옆 구멍가게(성미수퍼)에서 만난 신광철(64)씨는 “여기 영랑1구 시장이 60년대 후반까지 속초의 대표시장이었는데, 중앙시장이 생기면서 쇠퇴했다”고 말했다. 골목마다 빈 집과 창고들이 낡아가고 있다.
옛 동해북부선(양양~원산) 철길 터는 4차선 도로가 돼 있다. 옛 철길 따라 가는 길은 ‘법대로’ 걷는 다소 지루한 길이다. 법원 옆길이어서 도로 이름을 ‘법대로’라 붙였다고 한다. 속초버스터미널 옆 네거리 건너 수복로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꽃다방 건너편에 ‘카오디오 자동차용품점’ 건물이 보인다. 옛 속초역 자리다. 1941년 지어진 속초역사는 1978년 헐렸다. 도로 양쪽으로 설악산산신도사·일광보살·천수암보살 점집들이 많이 보여, 주변 상권·생활권이 쇠퇴기로 들어섰음을 드러준다. 길 건너편 천도교회관 옆쪽 마을은 움푹 파인 지형이 우렁이를 닮아 우렁골이라고 한다.
시청과 연결하는 도로공사장 지나 현대미니수퍼 옆골목으로 오른다. 혼자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금호동 산동네 들머리다. 막힌 길로 들어서더라도 잠시 돌아 내려가면 다소 넓은 골목길과 만난다. 잠시 시간을 잊고, 멈춘 시계가 가리키는 시침·분침 따라 걸으며, 이 미로를 헤매보는 것도 좋겠다.
능선 위으로 올라(능선 너머는 2011년 5월7일 현재 수복로~시청 도로공사중) ‘사이렌 탑’ 지나 ‘중앙시장로 8길 1-29’ 이정표 따라 다시 골목길로 내려선다. 지붕 밑 벽에 ‘여인숙’ 글씨가 뚜렷한 오래된 건물 지나 담쟁이 덩굴 화사한 돌담집 거쳐 내려가면 천신선녀 보살집 지나 중앙시장 들머리로 나서게 된다. 골목 끝에서 막국수집 간판 옆 파란 유리문을 가리키며 해설사 김씨가 말했다. “요게 20여년 전엔 주민과 상인이 이용하던 유료 공중변소였어요.”
엘피판으로 전축 틀어놓고, 신나게 구두 닦고 고치고…

중앙시장(중앙관광시장) 으로 들어선다. “없는 게 없는” 수산시장 지나 “최근 부쩍 늘어난” 닭강정집 즐비한 닭전골목을 구경한다. 만석닭강정집이 방송을 타고 뜨면서 몇년새 10여집이 생겼다고 한다. 1마리분 2만원. 20~30년 된 순대국집이 여서일곱집이나 된다는 순대골목(순대국 6000~7000원) 지나, 의류·화장품·휴대폰 매장 이어지는 번화가로 나선다.
길 건너, 퍼덕이는 활어를 움켜쥔 어부들을 묘사한 ‘어부상’ 보고, 구두 수선 가게 ‘구두 수선 카페’를 만난다. “요 앞에서 한 30년쯤 손수레·트럭에서 구두를 닦다, 5년전 작은 건물 한 채를 사들여 입주했다”는 50대 후반의 구두 수선 카페 주인이 당당하게 말했다. “개인이 밝고 떳떳해야 사회가 밝고 당당해집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와두 까딱마이신이죠.” 주인은 전축(턴테이블)으로 흘러간 팝송·가요(엘피판 300여장이 꽂혀 있다)들을 틀어놓고, 신나게 구두 닦고 고치고 돈 벌어 저축하는 시민이다. 가게 안에 커피 자판기도 있다. 100원.
청초호 선착장을 걸어, ‘아바이 마을’ 청호동으로 건너는 갯배를 타러 간다. 청호동은 “소낭구(소나무)들과 공동묘지만 즐비하던 모래땅”에 한국전쟁 직후, 함경도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마을이다. 쇠밧줄로 꿰인 사각형 나무배(갯배) 2대가 30여m 폭의 물길을 오간다. 사람·자전거·손수레 편도 200원. 갯배선착장 주변엔 ‘가을동화’ ‘1박2일’ 등 촬영지임을 알리는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청호동에서도 수십년 묵은 옛 골목과 낡은 집들을 만날 수 있다.
“절반이 행경도(함경도) 사람들인데, 1세대는 다 돌아가고 인전 세 분인가만 남았다데요. 아, 몇이나마나 그 분네들은 다 구십이 넘었으니까는.”
곧 청호대교 밑 모래톱을 뚫어 청초호와 앞바다가 이어지면, 지금까지 갯배선착장 쪽으로 돌아 드나들던 고깃배들이 이 물길로 드나들게 된다고 한다(2011년 안에 개통 예정). 다시 갯배 타고 건너와 생선구이집 즐비한 물길 옆으로 걸어 속초시청으로 돌아왔다. 8㎞를 걸었다.
속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여행쪽지
⊙ 가는길/수도권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 강일분기점에서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탄다. 동홍천나들목에서 나가 44번 국도 타고 인제~원통~용대리~미시령(터널) 거쳐 속초로 간다. 수도권 남부지역에선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거쳐 7번 국도 따라 양양 지나 속초로 간다.
⊙ 먹을곳·묵을곳/동명항 활어유통센터는 속초 어민들이 잡아온 활어만 다루는 수협 직판장이다. 1층에서 횟감을 고르고 떠서 2층으로 올라가면 야채·반찬·매운탕을 마련해 준다(1인 3000원). 갯배선착장 주변엔 숯불생선구이집이 즐비하고, 청호동 아바이마을엔 아바이순대·오징어순대·함흥냉면·생선구이를 내는 식당과 젓갈집들이 많다. 조양동 관광엑스포장 부근에 새로 생긴 모텔들이 몰려 있다.
⊙ 여행문의/속초시청 문화관광과 (033)639-2365, 속초박물관 (033)639-2974, 속초문화원 (033)632-1231.
40년 전엔 워낙 고기가 많아 그냥 깔린 게 덕장

강원 북부 해안의 속초시는 일제강점기 이후 발달한 신흥 항구도시다. 조선시대 말까지 양양도호부 소천면의 작은 포구마을(속초리·속진·속새)이었다. 일제강점기 양양의 철광석 등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해 청초호 입구를 항만으로 개발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37년 면이 되고, 42년 읍으로 승격한 뒤 한국전쟁 때 피난내려온 함경도 주민들이 대거 정착하며 인구가 늘어나, 63년엔 시로 승격했다. 따라서 시내 거리에서 오래된 문화유산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흥미로운 건 포구 주변과 산동네에 깔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전후에 형성된 애달프고 고달픈 사람살이 흔적들이다. 시내 중심거리는 깔끔하게 단장됐지만,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50~60년대의 묵은때와 굳은살이 보이고 만져진다. 속초시청에서 출발해 동명항·속초등대 거쳐 옛 철로길 터를 따라내려와, 금호동 산동네와 중앙시장을 들여다본 뒤 갯배 타고 건너가 청호동 아바이마을까지 걷는다.
“저 노인네 ‘이제 가야지’하는 얘긴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여”
속초시청에서 나와 길 건너 해경 전용부두 옆 도로 따라 수복탑 오거리쪽으로 걷는다. 40년 전까지 도로 안쪽까지 바다였다. “일루다 고기 덕장이 그냥 깔렸는데, 원체 고기가 많으니까는 터만 있으면 거저 낭구(나무) 엮어선 고기를 내거는 거라.”(문화관광해설사 김성환씨·70)
전쟁 직전 4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월남해, 떠돌다 67년 속초에 정착했다는 김씨는 “이 해안에 69년 태풍 때 들이닥친 높이 4~5m의 해일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왼쪽 센트리움 리조트 자리엔 90년대 중반까지 옛 속초 4대 극장의 하나였던 삼보극장이 있었다고 한다.
6월말부터 본격적인 ‘연안 오징어’ 경매가 벌어지면 시끌벅적해진다는 오징어 어판장을 지나 수복기념탑을 만난다. 한국전쟁 뒤인 1954년 수복을 기념하고 피난민 향수를 달래기 위해 세운 모자상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도 굳세게 사는 어머니와 아이를 표현했다. 청양의 최익현 동상, 울산 공업탑 등을 세운 원로 조각가 박칠성(82)씨의 작품인데, 1983년 강풍으로 부서져 다시 세웠다.
바닷가쪽 몇년 전까지 울릉도 등을 오가는 여객선이 정박하던 여객터미널 건물은 “이용객이 없어 폐쇄돼” 텅 비었다. 골목길을 돌아, 세운 지 84년 됐다는 속초감리교회 쪽으로 오른다. 구불구불 오르는 골목길엔 70년대 지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아담한 연초록색 옛날집을 살펴보는데, 옆 집터의 시멘트 바닥 한 구석에서 고추 심을 밭을 일구던 고창순(78)씨가 말했다. “내 어릴 땐 여기 집이라곤 한 채나 있었나 어디. 내 속초 영랑동 토백인데, 인저 토백이두 거의 없어. 다 여기저기서 몰려온 잡종덜이지. 나두 인저 갈 때가 됐으니 가야지.” ‘여기저기서 몰려온 잡종’ 중 한 분인 해설사 김씨가 84년 역사를 지닌 속초 감리교회 앞마당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갈 때가 됐다구? 어림 반푼어치두 없지. 저 노인네들 ‘이제 가야지’ 하는 얘긴 아주 새빨간 거짓말이여.”
높고도 널찍한, 교회의 앞마당은 빼어난 전망대다. 항구도 섬(조도)도, 시내도, 설악산 일부도 바라다보인다. 그리고 나서, 턱밑에 다닥다닥 붙어 깔린 회색빛 스레트 지붕들과 좁디좁은 골목길들이 눈에 들어온다. 낡고 구멍난 오래된 빈 집을 바라보며 동명동 성당으로 들어선다.
사다리꼴에 가까운, 본당 건물(1951년 건립) 모습이 아름다운데, 옛 맛은 덜하다. “이게 근대문화유산 감인데, 안에 습기가 차니까 거죽에 콜타르칠을 하고 다시 페인트칠을 해 망쳤어요. 창문까지 갈아끼우고.”(신자 서낙원씨·72) 본당 역사책을 썼다는 서씨는 “원래 미군 수송부대가 지어준 건물”이라며 “지붕은 드럼통을 잘라 얹었었다”고 말했다.
멋없는 최신식 성황당, 할머니신과 할아버지신 생이별


소나무숲 계단 밑 쪽문을 나서 흑장미 미용실 보고 우회전해 동명항 입구 쪽으로 내려간다. 보건목욕탕 앞 건너편 골목에 일제 때 가옥을 닮은 2층 건물(동원부식)이 보인다. 동명항으로 가기 전 볼거리가 있다. 주민들이 ‘망지꼬대’라 부르던 산자락에 세워진 동명동 성황당이다. 그러나 본디 영금정 부근 산자락에 있던 것을 여러 곳으로 옮겨세우면서 원형을 잃었다. 유리문까지 해달고 담장까지 두른, 멋없는 최신식 성황당이다. 한 쌍의 성황신을 모셨었는데, 할머니 성황신을 중앙동으로 모셔가 할아버지 성황신만 남았다고 한다.
김성환씨가 성황당 오르는 길 옆 파란대문집 담과 마당의 시멘트 기둥들을 가리켰다. “이게 30여년 전 덕장 흔적이요. 이 집은 문어를 주로 말렸지.”
오징어·노가리·쥐포·가자미가 널린 건어물가게들 지나 30~40년 전 지은 집들이 남은 골목을 돌아 대한민국 횟집 어로와 화이트 횟집 사잇길로 나서, 동명항 주차장 쪽으로 걷는다. 멀리 영금정 돌산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주차장 옆 구명 튜브 모양의, 냉난방이 되고 음악도 흘러나오는 공중화장실 지나 50여척의 어선들이 머리를 들이대고 흔들리는, 어구 보수장으로 간다.
그물 손질엔 대개 남녀 한 쌍이 매달려 있다. “옛날이나 사람을 사서 했지, 요즘엔 다 부부나 가족이 달라붙어 해요. 뭐 돈이 돼이지, 돈이.” 요즘 뭐가 많이 잡히냐고 묻자, 한 선주는 “하두 고기를 못봐서 뭐이가 나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두 모르겠다”며 외면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동명항 활어유통센터 1층엔 활어가게 28집이 있고, 2층엔 수협 직영의 널찍한 매운탕집이 있다. 1층에서 골라 사서 회를 떠 갖고 올라가면 실비를 받고 야채 등을 제공한다. “센터에선 요 앞에서 입찰본 자연산만 다뤄요. 고기 없으면 문 닫고.”(남치우 활어센터 관리팀장)
500여m 길이의 방파제 시작점에 영금정이 있다. 본디 영금정은 정자 이름이 아니었다. 속초등대 밑 바닷가의 넓은 암반고 이어진 돌산을 지칭하던 이름이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칠 때 신비한 음악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비선대라고도 불렀다(<대동여지도>). 이 바위산과 암반은 일제강점기 청초호 축항공사를 할 때 채석장으로 쓰며 파괴돼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속초등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깎아낸 암반 자국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돌산 위 영금정과 다리로 이어진 해상정자는 최근에 만든 것이다. 영금정 밑(방파제쪽)에는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해산물을 파는 좌판이 있다. 30년 경력의 해녀 진숙자(66)씨는 “한 5년 전까지 17명이나 있었는데, 이젠 다들 나이 들고 몸이 아파 3명만 물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상정자 들머리엔 동명항의 옛 사진들을 전시해놨다.
혼자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구불구불

속초등대 2·3층에 올라 앞바다·뒷산 감상하고 소나무숲길 걸어내려가, 30여년 전까지 해당화밭이었다는 해변 옆 영랑동1구 마을 옛 시장터를 둘러본다. 간판 없는 이모네식당 옆 구멍가게(성미수퍼)에서 만난 신광철(64)씨는 “여기 영랑1구 시장이 60년대 후반까지 속초의 대표시장이었는데, 중앙시장이 생기면서 쇠퇴했다”고 말했다. 골목마다 빈 집과 창고들이 낡아가고 있다.
옛 동해북부선(양양~원산) 철길 터는 4차선 도로가 돼 있다. 옛 철길 따라 가는 길은 ‘법대로’ 걷는 다소 지루한 길이다. 법원 옆길이어서 도로 이름을 ‘법대로’라 붙였다고 한다. 속초버스터미널 옆 네거리 건너 수복로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꽃다방 건너편에 ‘카오디오 자동차용품점’ 건물이 보인다. 옛 속초역 자리다. 1941년 지어진 속초역사는 1978년 헐렸다. 도로 양쪽으로 설악산산신도사·일광보살·천수암보살 점집들이 많이 보여, 주변 상권·생활권이 쇠퇴기로 들어섰음을 드러준다. 길 건너편 천도교회관 옆쪽 마을은 움푹 파인 지형이 우렁이를 닮아 우렁골이라고 한다.
시청과 연결하는 도로공사장 지나 현대미니수퍼 옆골목으로 오른다. 혼자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금호동 산동네 들머리다. 막힌 길로 들어서더라도 잠시 돌아 내려가면 다소 넓은 골목길과 만난다. 잠시 시간을 잊고, 멈춘 시계가 가리키는 시침·분침 따라 걸으며, 이 미로를 헤매보는 것도 좋겠다.
능선 위으로 올라(능선 너머는 2011년 5월7일 현재 수복로~시청 도로공사중) ‘사이렌 탑’ 지나 ‘중앙시장로 8길 1-29’ 이정표 따라 다시 골목길로 내려선다. 지붕 밑 벽에 ‘여인숙’ 글씨가 뚜렷한 오래된 건물 지나 담쟁이 덩굴 화사한 돌담집 거쳐 내려가면 천신선녀 보살집 지나 중앙시장 들머리로 나서게 된다. 골목 끝에서 막국수집 간판 옆 파란 유리문을 가리키며 해설사 김씨가 말했다. “요게 20여년 전엔 주민과 상인이 이용하던 유료 공중변소였어요.”
엘피판으로 전축 틀어놓고, 신나게 구두 닦고 고치고…

중앙시장(중앙관광시장) 으로 들어선다. “없는 게 없는” 수산시장 지나 “최근 부쩍 늘어난” 닭강정집 즐비한 닭전골목을 구경한다. 만석닭강정집이 방송을 타고 뜨면서 몇년새 10여집이 생겼다고 한다. 1마리분 2만원. 20~30년 된 순대국집이 여서일곱집이나 된다는 순대골목(순대국 6000~7000원) 지나, 의류·화장품·휴대폰 매장 이어지는 번화가로 나선다.
길 건너, 퍼덕이는 활어를 움켜쥔 어부들을 묘사한 ‘어부상’ 보고, 구두 수선 가게 ‘구두 수선 카페’를 만난다. “요 앞에서 한 30년쯤 손수레·트럭에서 구두를 닦다, 5년전 작은 건물 한 채를 사들여 입주했다”는 50대 후반의 구두 수선 카페 주인이 당당하게 말했다. “개인이 밝고 떳떳해야 사회가 밝고 당당해집니다. 그러면 대통령이 와두 까딱마이신이죠.” 주인은 전축(턴테이블)으로 흘러간 팝송·가요(엘피판 300여장이 꽂혀 있다)들을 틀어놓고, 신나게 구두 닦고 고치고 돈 벌어 저축하는 시민이다. 가게 안에 커피 자판기도 있다. 100원.
청초호 선착장을 걸어, ‘아바이 마을’ 청호동으로 건너는 갯배를 타러 간다. 청호동은 “소낭구(소나무)들과 공동묘지만 즐비하던 모래땅”에 한국전쟁 직후, 함경도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마을이다. 쇠밧줄로 꿰인 사각형 나무배(갯배) 2대가 30여m 폭의 물길을 오간다. 사람·자전거·손수레 편도 200원. 갯배선착장 주변엔 ‘가을동화’ ‘1박2일’ 등 촬영지임을 알리는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청호동에서도 수십년 묵은 옛 골목과 낡은 집들을 만날 수 있다.
“절반이 행경도(함경도) 사람들인데, 1세대는 다 돌아가고 인전 세 분인가만 남았다데요. 아, 몇이나마나 그 분네들은 다 구십이 넘었으니까는.”
곧 청호대교 밑 모래톱을 뚫어 청초호와 앞바다가 이어지면, 지금까지 갯배선착장 쪽으로 돌아 드나들던 고깃배들이 이 물길로 드나들게 된다고 한다(2011년 안에 개통 예정). 다시 갯배 타고 건너와 생선구이집 즐비한 물길 옆으로 걸어 속초시청으로 돌아왔다. 8㎞를 걸었다.
속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 가는길/수도권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 강일분기점에서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탄다. 동홍천나들목에서 나가 44번 국도 타고 인제~원통~용대리~미시령(터널) 거쳐 속초로 간다. 수도권 남부지역에선 영동고속도로 타고 강릉 거쳐 7번 국도 따라 양양 지나 속초로 간다.
⊙ 먹을곳·묵을곳/동명항 활어유통센터는 속초 어민들이 잡아온 활어만 다루는 수협 직판장이다. 1층에서 횟감을 고르고 떠서 2층으로 올라가면 야채·반찬·매운탕을 마련해 준다(1인 3000원). 갯배선착장 주변엔 숯불생선구이집이 즐비하고, 청호동 아바이마을엔 아바이순대·오징어순대·함흥냉면·생선구이를 내는 식당과 젓갈집들이 많다. 조양동 관광엑스포장 부근에 새로 생긴 모텔들이 몰려 있다.
⊙ 여행문의/속초시청 문화관광과 (033)639-2365, 속초박물관 (033)639-2974, 속초문화원 (033)63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