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겨울 강, 태극무늬 닮았네! 길과 풍경

홍천 금학산 정상에서 본 홍천강 물길
마을 휘감아돌며 ‘수태극’ 지형 뚜렷
북노일리엔 섶다리 놓여 옛 정취
읍내 주변 문화재 탐방도 해볼 만

홍천 금학산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홍천강 ‘수태극’ 지형.
홍천 금학산 정상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홍천강 ‘수태극’ 지형.

‘금빛 학이 날개를 펴고 춤추는 형상’이라 해서 금학산(金鶴山)이다.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과 남면의 경계에 솟았다. 팔봉산·가리산·공작산 등 홍천의 이름난 산들이나, 철원에 있는 같은 이름의 산 금학산에 비해 홍천 금학산은 덜 알려진 산이다. 가까이 있는 팔봉산의 그늘에 가리기도 했고, 주변 강변 물놀이 유원지의 유명세에 눌린 탓도 있다.


최근 몇년 사이 해발 652m에 평범한 산세를 지닌 이 산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정상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관 때문이다. 홍천강이 굽이치며 만들어내는 ‘태극무늬’ 지형, 이른바 ‘금학산 수태극(水太極)’을 보기 위해서다. 이 경관 덕에 금학산은 ‘홍천 9경’ 중 제4경에 이름을 올렸다.

전국에 산을 휘감아 도는 물길이 만들어낸 ‘한반도 지형’이나 ‘오메가’ 지형은 숱하게 많지만 태극무늬 지형은 드물다. 홍천군 관광안내 책자엔 ‘태극 문양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은 금학산이 유일하다’고 나와 있다. 물길이 두번 매우 심하게 꺾여야 ‘에스(S)자’ 형태의 태극무늬가 만들어진다. 눈 덮인 겨울 ‘태극무늬’ 경관을 만나기 위해 홍천강 물길을 따라 지난 1일 차를 몰았다.

금학산 산행 출발점 중 한곳인 북방면 북노일리로 가는 길은, 홍천읍 쪽에서 들어가든 팔봉산 쪽에서 들어가든, 강줄기와 더불어 굽이쳐가는 과정이다. 언 물길에 쌓인 눈으로 홍천강은 굽이굽이 순백의 신작로를 이뤘다.

왕복 3시간 산행으로 만나는 ‘수태극’

산행 들머리는 4~5곳이다.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곳이 산 남쪽 자락의 북노일리 노일분교장(폐교) 터다. 정상까지 2㎞ 남짓 거리로, 왕복 3시간 안팎이 걸린다. 북쪽 금학산관광농원 코스는 완만하지만, 1시간쯤 더 걸린다. 단체 등산객들은 관광농원 쪽에서 시작해 정상에 올라, 버스를 대기시켜 놓은 북노일리 또는 남노일리로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노일분교는 지난해 초 신입생이 없어 80년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학교 터 주변과 위쪽 밭 옆에 차를 서너대 댈 만한 곳이 있다. ‘경주 김씨 제각’을 지나면 곧바로 산으로 접어들게 된다. 먼저 반겨주는 것이 겨울을 잊은 듯 푸르게 우거진 잣나무 숲이다. 굵은 나무는 드물지만, 하늘을 향해 곧게 치솟은 잣나무들이 제법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금학산 자락의 잣나무숲.
금학산 자락의 잣나무숲.

능선으로 올라서면 완만한 산길이 시작된다. 등산로 이정표(지도와 방향 표지)는 들머리와 막바지 능선에만 있다. 중간에 거리 안내 표지가 없어 아쉽지만, 단순 명백한 산길이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정상 부근까지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뒤섞여 나타나는 오솔길·바윗길의 연속이다.

혼자 걸어도 심심하지 않은 건,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른 나뭇잎들 화들짝 놀라 뒤집어지는 소리와, 무심하게 가까워지고 또 멀어져가는 새들의 지저귐이 있어서다. 중간쯤 오르면 오른쪽 헐벗은 나무들 사이로 물길이 보이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고개를 들면 정면으로 산꼭대기가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정상 능선 밑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져 30분가량 땀을 쏙 빼게 한다. 밧줄을 설치한 급경사 구간이 2곳 있다. 이정표가 선 능선에 올라서면 정상에 다 온 것이다. 눈밭길·바윗길 따라 100m를 더 가면 정상 전망데크에 이른다.

눈 덮인 남노일리 감아 도는 물길 한눈에

전망대에 서서 가장 먼저 눈길을 준 곳이 남쪽, 발아래서 까마득하게 굽이치는 홍천강 물길이다. 흔히 ‘장쾌하게 뻗은 산줄기’ ‘일망무제의 전망’으로 표현되는 경관이야 어느 산꼭대기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이번 산행의 관심은 ‘태극무늬’다.

굴지리·장항리를 거쳐 흘러와, 남노일리를 두 번 휘감으며 오른쪽 북노일리로 빠져나가는 홍천강 물길이 ‘태극 무늬’처럼 보인다.
굴지리·장항리를 거쳐 흘러와, 남노일리를 두 번 휘감으며 오른쪽 북노일리로 빠져나가는 홍천강 물길이 ‘태극 무늬’처럼 보인다.

동쪽인 굴지리·장항리 쪽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두번 급격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원을 그리듯 꺾이며 남노일리를 관통해 북노일리 쪽으로 돌아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일부 물길이 산에 가려져 있고, 주변 산과 들의 눈이 많이 녹아 완전한 설경은 아니었지만, 태극무늬는 또렷하게 드러났다. 거꾸로 선 ‘에스(S)자’ 지형으로, 남노일리 마을 전체가 둥근 태극무늬 안에 든 형태다.

금학산은 일부 지도에 ‘금확산’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해발도 지도마다 다르다. 포털 네이버 지도엔 654.1m, 다음 지도엔 655m, 홍천 관광안내도와 산 정상 표석에는 652m로 표기했다. 전망대가 남향이라 겨울 한낮에는 역광이 든다. 이른 아침이나 해가 기우는 오후가 상대적으로 사진 찍기에 좋다. 하산하는 데 1시간이면 족하지만, 오후에 올랐다면 서둘러야 한다.

홍천(洪川)이란 지명은 강 이름에서 비롯했다. ‘넓은 내’, ‘너브내’를 한자로 적은 것이다. 북한강의 지류인 홍천강은 조선시대에 남천, 화양강으로도 불리다 홍천강으로 굳어졌다.

북노일리 홍천강 줄기에 겨울 강 경치를 돋워주는 것이 있다. 나무를 칡덩굴로 엮어 다릿발을 세우고 상판을 놓아 솔가지와 흙을 덮어 만든 섶다리다. 북노일리 샛말과 강 건너 남머리골을 이어주는 다리다. 노일리 주민들은 1996년까지도 해마다 세곳(구룡밭·남머리·위안터)에 섶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고 한다. 시멘트 다리가 생기면서 사라졌던 섶다리는, 2009년부터 주민들이 마을 전통 복원을 위해 다시 놓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섶다리는 전국적으로, 늦가을 무렵 만들어 놓고 건너다니다가 이듬해 여름 장마철에 떠내려보내고 다시 놓곤 하던 임시 다리다.

북노일리 섶다리.
북노일리 섶다리.

북노일리 주민들은 해마다 가을 힘을 모아 섶다리를 새로 놓는다.
북노일리 주민들은 해마다 가을 힘을 모아 섶다리를 새로 놓는다.

섶다리 보고 수타사 등 문화유산 탐방

남·북노일리는 본디 하나의 마을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북으로 나뉘었다. 북노일리는 북방면 소속이고 남노일리는 남면에 속한다. 북노일리·남노일리 홍천강을 따라 펜션들이 즐비하다. 대개 여름 피서객들을 바라보고 지어진 것들이다. 눈 덮인 강변을 따라, 여름에 내건 ‘위험, 수영 금지’ 현수막이 촘촘히 남아 있는 걸 보면, 피서철에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지 짐작할 수 있다.

‘태극무늬’ 안의 남노일리는 유려하게 굽이쳐 흐르는 강변 평지에 형성된 전형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옛날 큰물이 지면 서로 단절됐던 남노일리 주민들은 굽이치는 물길을 꿰는, 위안터교·고주암교·남노일대교가 놓이면서 이어졌다.

여덟개의 바위봉우리가 특이한 팔봉산(327m·홍천 제1경)은 북노일리에서 강 하류 쪽으로 20분쯤 차를 몰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에는 낙상 위험 때문에 입산을 통제한다.

북노일리에서 홍천읍까지 차로 20분 거리다. 읍내에서 동쪽으로 15분 거리에 공작산 자락의 고찰 수타사가 있다. 수타계곡 등 주변 경관과 함께 찾는 이가 많은 조선시대 사찰이다. 수타계곡 상류에 있던 신라시대 절 일월사를, 조선 세조 때 지금 위치로 옮기면서 수타사로 바꿨다. 절 옆의 폭포와 소(용담)를 가리키는 ‘수타사’(水墮寺)였으나, 물에 빠져 익사하는 일이 잦자 1811년 ‘수타사’(壽陀寺)로 고쳤다고 한다. 아담한 크기의 대적광전, 동종, 절 들머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소박한 삼층석탑 등이 볼거리다. 성보박물관 보장각에는 세조 때 간행한 <월인석보>(보물)와 영산회상도 등이 보관돼 있다.

홍천미술관 앞의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탑을 옮겨왔다.
홍천미술관 앞의 ‘괘석리 4사자삼층석탑’.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고려시대 석탑을 옮겨왔다.

홍천미술관. 1956년 지어진 옛 홍천군청 건물로, 등록문화재다.
홍천미술관. 1956년 지어진 옛 홍천군청 건물로, 등록문화재다.

문화재에 관심 있는 이라면 홍천읍내 홍천미술관 앞의 석탑도 찾아볼 만하다. 미술관에 지금 전시 중인 작품은 없으나 앞마당에서 아담한 크기의 석탑 2기가 기다린다. 고려시대 석탑인 ‘괘석리 4사자 삼층석탑’(보물)과 ‘희망리 삼층석탑’(보물)이다. ‘4사자 삼층석탑’은 일부가 파손된 상태지만, 네 마리의 사자가 머리로 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홍천미술관 건물(옛 홍천군청사·등록문화재)은 1956년 지어져 군청사, 읍사무소로 쓰던 곳이다. 부근의 홍천성당(1955년 건립)도 등록문화재다. 읍내 홍천강 둔치 주차장 들머리에는 고려시대 당간지주(보물)도 있다. 앞서 만난 희망리 삼층석탑과 함께 홍천읍내 희망리 일대가 절터였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홍천 여행 팁>

△먹을 곳/북방면 홍천로(하화계리) 11사단 부근 ‘내고향순두부’의 두부전골·순두부 등. 매일 직접 두부를 만드는 집으로 두부전골이 인기다. 북방면 팔봉산로(원소리) ‘원소리막국수’의 순두부·막국수(사진). 두부를 직접 만든다. 메밀 함량 높은 막국수를 냉면처럼 가늘게 뽑아내 면발이 부드럽다.


홍천읍 희망로(진리) ‘홍천막국수’의 막국수 등. 팔봉산관광지에는 민물매운탕을 내는 식당이 많다. 홍천읍 하오안리 오안초등학교 주변에는 돼지고기·소고기 화로구이 집들이 모여 있다.

△묵을 곳/남·북노일리 일대에 펜션이 많다. 읍내에 LK호텔·홍천관광호텔 등 호텔이 있고, 모텔도 여러 곳 있다.

△여행 문의/홍천군청 문화관광과 (033)430-2470, 홍천군 관광안내소 (033)433-1259, 홍천종합버스터미널 (033)432-7891.


홍천/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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