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마을서 찾은 남원의 ‘숨은 보석’ 마을을 찾아서

호곡리의 250년 된 고택 몽심재 걸작
팔각기둥 사랑채, 정자 딸린 문간채 이채
장작불 때는 온돌방 숙박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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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수지면 호곡리 홈실(호음실)마을 고택 몽심재의 사랑채.

청정 자연과 풍성한 전통문화 유산을 자랑하는 고장 전북 남원. <춘향전>의 무대 광한루로, 지리산 둘레길로 계곡으로 탐방객들 발길이 이어진다. 이게 다 보석 같은 여행지들인데, 남원시가 최근 새로운 보석 목록을 내놨다.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이다. 덜 알려졌거나,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쉬운 특색있는 문화유산 10개를 골라 ‘숨은 보석’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워지는 이때, 남원의 숨은 보석을 찾아가는 여행 일정을 짜볼 만하다. 장작불 때는 온돌방을 갖춘 멋진 전통 한옥들이 기다린다. 남원의 대표 음식 뜨끈한 추어탕도 추위를 녹여준다.


‘숨은 보석 10선’의 첫머리에 오른 ‘보석’ 몽심재(夢心齋)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몽심재는 수지면 호곡리 홈실마을에 자리한 250년 된 한옥 이름으로, 홈실에 터잡고 살아온 죽산 박씨의 고택이다. 연당 박동식(1753~1830)이 지었다고 한다. 볼거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한 한옥이자, 양식 있는 사대부들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중요민속문화재 149호인 몽심재는 현재 원불교 교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 집안인 문중에서 최근 교단에 고택을 기증했다.

몽심재 마당의 주일암과 문간채. 문간채엔 정자(누마루)가 딸려 있다. 집 주인은 이곳을 머슴들이 쉬는 장소로 쓰도록 했다고 한다.
몽심재 마당의 주일암과 문간채. 문간채엔 정자(누마루)가 딸려 있다. 집 주인은 이곳을 머슴들이 쉬는 장소로 쓰도록 했다고 한다.

둘러보는 동안 ‘보석’ 찾은 기분을 실감하게 되는 매우 아름다운 집이다. 솟을대문 앞에 서면 문안으로 경사진 마당이 나타나고 축대 위에 올라앉은 고색창연한 사랑채 건물이 보인다. 경사진 마당도 특이하지만, 사랑채 앞마당과 문간채 사이에 자리잡은 바위가 더 이채롭다. 관리인 류인태(67)씨에 따르면 홈실마을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지맥 중 하나인 견두산(호두산) 자락에 있는데, 지리산의 기운이 견두산을 타고 내려와 이 바위에 모인다고 한다.

“해마다 풍수지리 연구가들이 수백명씩 찾아옵니다. 집터가 누운 호랑이 머리 자리인데 지맥의 기운이 다 이 바위에 뭉쳐 있답디다.”

바위에 주일암(主一巖)이라 새겨져 있다. ‘주일무적’(마음을 하나로 집중해 잡념을 떨친다는 뜻)에서 따온 이름이다. 바위 위에는 작은 ‘호석’(호랑이 석상)이 놓여 있다. 유래가 재미있다. 홈실마을 동쪽의 견두산(개머리산)은 본디 호랑이 머리를 뜻하는 호두산이었다. 산 주변에 호랑이들이 들끓어 호환이 끊이지 않자, 영조 때 전라감사 이서구가 산 이름을 견두산으로 바꿨고 호환이 사라졌다고 한다. 호랑이가 사라지자 이번엔 들개(또는 늑대)들이 크게 늘어나 피해를 줬다. 이에 이서구가 광한루와 호곡리 몽심재, 고평마을 3곳에 호석을 세워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자 들개 피해도 호환도 멈췄다고 한다.

몽심재 문간채 앞의 감나무 ‘호족시’. 줄기 밑둥과 뿌리 부분이 호랑이 발을 닮았다.
몽심재 문간채 앞의 감나무 ‘호족시’. 줄기 밑둥과 뿌리 부분이 호랑이 발을 닮았다.

홈실마을 이름은 호랑이 소리를 뜻하는 ‘호음실’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호곡리도 ‘호랑이골(범골)’을 뜻한다. 주일암과 문간채 사이에는 200년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호족시’라 불린다. 드러난 뿌리 모양이 호랑이 발을 닮았다.

문간채 옆의 사각 연못(천운담)도 이채롭다. 사대부 집 안에 연못을 파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문간채엔 연못 쪽으로 ‘요요정’(樂樂亭)이란 정자(누마루)가 딸려 있다. 건축주는 연못 경치를 즐기기 위해 누마루를 설치했겠지만, 역대 이 고택의 주인들은 이곳을 문간채에 머무는 머슴들이 쉬는 장소로 제공했다고 한다. 만석꾼 집안으로 집에는 언제나 손님이 끊이지 않았는데, 힘들게 일하는 머슴들에 대한 배려였다. 몽심재 주인들은 손님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늘 베풀었고, 마을에 학교를 지어 주민을 가르치는 등 ‘적선의 철학’을 실천했다고 한다. 그러니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도 나왔을 것이다. 대를 이어 ‘배려와 나눔’을 중시해 온 명문가임을 알 수 있다.

몽심재 마당가의 연못 천운담. 못 안에 ‘매사에 조심하라’는 뜻을 담은 네개의 디딤돌이 놓여 있다.
몽심재 마당가의 연못 천운담. 못 안에 ‘매사에 조심하라’는 뜻을 담은 네개의 디딤돌이 놓여 있다.

문간채 이야기가 재미있다. “바위에 모인 기운 덕에 바위 앞 문간채에서 잠을 자면 큰 인물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산달을 앞두고 묵으러 오는 이들이 심심찮게 있어요.”(관리인 류인태씨) 최근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딸과 엄마가 하루 묵어갔다고 한다.


몽심재의 특이한 건축 형식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랑채 마루의 기둥 6개가 특이하다. 둥근기둥은 궁궐이나 사찰에서 쓰이고, 사각기둥은 일반 사대부 집에 널리 쓰이는데, 이곳은 별나게 팔각기둥이다. 기둥 위쪽에는 태극 무늬가 그려져 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로 보아 팔각기둥이 주역의 8괘를 뜻하고, 집 지은 이가 주역에 밝아 이를 건축에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천장과 지붕 사이 외벽에 환기용 창을 단 것도 이색적이다.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는 ㄷ자형이다. 남부지방 한옥의 안채가 일반적으로 ㅡ자형이거나 ㄱ자형인 것과 다른 형태다. 안채의 양쪽엔 누마루방이 다락처럼 설치돼 있는 점이, 누마루방 창 앞쪽에 난간을 덧댄 점도 색다르다.


몽심재 안채. ㄷ자형 구조다. 앞에 커다란 확독(돌확)이 놓여 있다.
몽심재 안채. ㄷ자형 구조다. 앞에 커다란 확독(돌확)이 놓여 있다.

몽심재 안채의 누마루방.
몽심재 안채의 누마루방.

집 서쪽에 담장을 사이로 또 하나의 고택이 있고 동쪽엔 사당이 있다. 서쪽 집도 박씨 집안의 고택인데, 두 집 사이에 곳간채가 세워져 있다. 이 하나의 건물을 두 집이 양쪽에서 곳간과 방으로 각각 사용했다고 한다. 동쪽엔 박동식의 8대손 박환진(93) 어른이 살고 있는 문중 종가 고택과 사당 건물이 있다.

몽심재 고택은 숙박체험 장소로도 활용된다. 사랑채의 방 5개, 안채 3개, 그리고 문간채 1개의 방을 빌려 묵어갈 수 있다. 사랑채의 방 모두와 안채의 방 하나는 옛날식 그대로 장작불을 때 구들장을 덥히는 온돌방이다. 화장실은 외부 공용화장실을 써야 한다.


몽심재 고택엔 재래식 변소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몽심재 고택엔 재래식 변소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몽심재 탐방길에 이웃 마을 초리의 수지미술관에도 들러볼 만하다. 폐교를 활용한 작은 미술관인데도 무게 있는 기획전들을 연이어 여는 곳이다. 개관을 준비 중인 시립미술관(김병종미술관)을 빼면 현재 남원의 유일한 공식 미술관이라고 한다. 한국화가 박상호씨 부부가 사채를 털어 운영하는 곳이다. 지난 주말까지는 ‘현대조각가 4인전(엄혁용·이상헌·이재효·한정무)’을 열었고, 12월2일부터는 ‘한국·일본·중국 작가 3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남원시 수지면 초리 수지미술관에서 만난 ‘현대조각 4인전’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상헌 작).

남원시 수지면 초리 수지미술관에서 만난 ‘현대조각 4인전’의 작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상헌 작).

한옥에서 묵고 싶은데 고택에서의 숙박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전통 한옥을 재현한 숙소들을 찾으면 된다. 광한루 옆에는 지난해 문 연 고급 한옥호텔 예촌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최기영 대목장 등 국내의 대표적 한옥 명장들이 직접 지은 명품 한옥숙박시설이다. 접착제·스티로폼 등 화학재료를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한다. 24개의 객실(6~40평형) 모두 참나무 장작을 때 덥히는 온돌방이다. 특급호텔 수준의 객실 서비스를 제공한다.

평범한 수준의 한옥 숙박을 원한다면 노암동 함파우소리체험관에 들어선 4채의 한옥을 이용할 수 있다. 이들 한옥 역시 예촌을 지을 때 함께 지은 것들이다. 9개의 객실 모두 전통 구들장 방식의 온돌방이다.

남원 함파우소리체험관의 한옥 숙소.
남원 함파우소리체험관의 한옥 숙소.

몽심재 외에 ‘남원의 숨은 보석 10선’에 든 문화유산도 만나볼 만하다. 대산면 신계리의 마애여래좌상, 향교동의 교룡산성 홍예문, 주천면 회덕마을의 덕치리 초가, 운봉읍 행정리의 서어나무숲, 대산면 대곡리 암각화, 소설 <혼불> 배경지 서도역, 왕정동 만복사지 석인상, 운봉읍 서천리 남녀 석장승, 운봉읍 수철길의 공안서당 등이다.


남원/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남원 여행 팁>

묵을 곳/250년 된 몽심재 고택 9객실 1박 5만원, 함파우소리체험관 한옥 9객실 주중 5만원부터, 고급 한옥호텔 예촌 24객실 비수기 주중 14만원(2인 조식 포함)부터. 남원시내 요천변에 마음호텔 등 모텔급 호텔들이 여러 곳 있다. 남원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도 모텔들이 있다.

먹을 곳/광한루원 주변에 추어탕을 내는 식당이 20여곳 모여 있다. 광한루 옆 도로변 남원새집추어탕, 매일 아침 두부를 직접 만드는 두부마을(춘향테마파크 관광단지), 대패삼겹살을 내는 진고개식당(흑돈 거리), 메밀소바와 냉면을 내는 미미식당(하늘중학교 옆 골목) 등.

남원 여행 문의/남원시청 관광과 (063)620-6162, 종합관광안내센터(해설사 예약) (063)632-1330, 광한루원 안내소 (063)631-1330, 남원시 문화도시사업추진위원회 (063)63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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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