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새옷 갈아입는 춘향이 고을 마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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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 `문화도시 재생' 한창》

전국 주요 도시들에서 쇠락한 옛 거리나 건물, 공간 등을 되살리기 위한 이른바 ‘도시 재생’ 작업들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 과정에 그 지역만의 전통문화와 특성을 접목시켜 다른 지역과 차별화하려는 곳들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거리 정비, 벽화 그리기, 비슷비슷한 체험거리 등 획일적인 골목 치장에서 벗어나, 거리와 주민들 삶에 지역 특색이 담긴 문화·예술의 옷을 입히려는 시도들이다. 지역민이 일상적으로 전통·현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문화 도시를 목표로 내건 이른바 ‘주민 밀착형 문화도시 재생’ 사업이다.

춘향전·판소리·농악의 고장 전북 남원시의 경우가 그렇다. 광한루 북문과 남원문화원 사이의 유서 깊은 골목들과 옛 남원역사, 옛 <한국방송> 건물 등 지역 역사가 담긴 공간들을 활용한 문화도시 재생 작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역 활동가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낡은 골목을 되살리는 한편, 전통문화와 주민 생활을 연계시킨 다양한 행사를 주말마다 진행한다.

빈집과 쓰레기로 가득 찼던 옛 도심 골목은 지역 지킴이들의 활동 거점이 들어선 뒤 카페·생활소품점·음식점 등이 자리를 잡으며 활기를 되찾았다. 예술인들은 주요 길목에 ‘지리산 조형물’ 등 지역 정서를 드러내는 설치작품(남원루 프로젝트)을 선보였다.

‘남원루 프로젝트’ 만들어진, 함파우소리체험관의 설치작품 와선루. 지리산과 광한루 기와지붕의 선을 형상화했다.
‘남원루 프로젝트’ 만들어진, 함파우소리체험관의 설치작품 와선루. 지리산과 광한루 기와지붕의 선을 형상화했다.

‘남원루 프로젝트’로 옛도심 뒷골목 안에 조성된 쉼터 겸 소규모 공연 공간 ‘비닐루’.
‘남원루 프로젝트’로 옛도심 뒷골목 안에 조성된 쉼터 겸 소규모 공연 공간 ‘비닐루’.

남원 청년 활동가들이 꾸린 문화예술협동조합 ‘보이고’의 사무실 건물.
남원 청년 활동가들이 꾸린 문화예술협동조합 ‘보이고’의 사무실 건물.

지난 11월25일 오후 2시, 남원시 향교동 옛 <한국방송> 건물과 옛 남원역사에서는 지역민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퍼포먼스들이 펼쳐졌다. 남원문화도시사업추진위원회가 2주 동안 진행한 ‘남원 사운드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성과물 전시·발표회다. ‘소리의 본고장’에서 벌이는 ‘소리의 탐구와 재발견’ 프로그램으로,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 행사다.

한국·스코틀랜드·말레이시아·싱가포르의 소리·영상·미디어 예술가 6팀이 2주간 거리와 장터, 광한루, 지리산 자락 등에서 채집한 소리와 영상 등을 결합시켜 빚은 흥미로운 작품들이 선보였다.

스코틀랜드의 마크 라이켄은 건물 지하 전력기술실의 비좁은 공간에서 영상·사운드 퍼포먼스 ‘새마을 새물결’을 30분 동안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나무 영상, 1970년대 방송용 녹음테이프 소리와 지하 전력실의 소음, 그리고 거리의 다양한 소리들을 녹음해 활용한 작품이다.

건물 지하 전력실에서 30분짜리 소리·영상 퍼포먼스 ‘새마을 새물결’을 선보이고 있다." alt="‘남원 사운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가한, 스코틀랜드의 소리예술가이자 영화감독 마크 라이켄이 지난 11월25일 남원의 옛 <한국방송> 건물 지하 전력실에서 30분짜리 소리·영상 퍼포먼스 ‘새마을 새물결’을 선보이고 있다."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0px;" editor_component="image_link">
‘남원 사운드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가한, 스코틀랜드의 소리예술가이자 영화감독 마크 라이켄이 지난 11월25일 남원의 옛 <한국방송> 건물 지하 전력실에서 30분짜리 소리·영상 퍼포먼스 ‘새마을 새물결’을 선보이고 있다.

“생소한 소음들이나 정리되지 않은 소리들을 모아 작업하기를 좋아한다”고 한 라이켄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면 남원에서 만난 인상적인 소음과 자연의 소리, 영상들을 여러 형태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원 지역 활동가와 예술인이 함께 꾸려가는 이런 특별한 행사들은 지역민에게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기회로 작용한다. 전날 저녁엔 소리 전문가 김창훈씨의 ‘소리를 만나다’ 강연과 침묵의 의미와 가치를 강렬하게 전해주는 독립영화 <침묵을 찾아서>(패트릭 셴 감독) 상영이 있었다. 강연장에서 만난 고교생 김윤성(19·용성고 3)군은 “평소 전자음악을 하면서 소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큰 감동을 받았다”며 “개성 있는 소리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건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일부도 이곳에서 펼쳐지게 된다." alt="남원 ‘문화적 도시 재생’ 사업의 거점 구실을 하게 될 옛 <한국방송> 건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일부도 이곳에서 펼쳐지게 된다."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0px;" editor_component="image_link">
남원 ‘문화적 도시 재생’ 사업의 거점 구실을 하게 될 옛 <한국방송> 건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문화가 있는 날’ 행사 일부도 이곳에서 펼쳐지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정한,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문화의 날)에도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공연·전시·체험행사들이 펼쳐진다. ‘문화의 날’ 행사는 11월을 마지막으로 올해 일정이 마무리됐지만, 남원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일부 행사는 계속 진행된다.

‘함파우 소리체험관’에서 매주 금·토요일 오후 5시(동절기) 사물놀이·판소리 공연이 벌어진다. 남원농악·판소리·소고춤 배우기, 미니장구 만들기, 한지공예 거울과 천연염색 손수건 만들기도 할 수 있다. 광한루에서는 12월8일까지(목~일요일) ‘이도령 장원급제 가마타기 체험’이, 12월9일까지(토요일) ‘꼬마신랑·꼬마각시 전통혼례 체험’이 무료로 진행된다.

남원 광한루원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이도령 장원급제 가마타기 체험’.
남원 광한루원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이도령 장원급제 가마타기 체험’.

남원문화도시사업추진위원회 신동근 사무국장은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국내외 문화예술인들을 상주시켜, 주민들과 함께 창작하고 성과를 나누도록 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원 ‘문화예술도시’ 재탄생의 본거지는 옛 <한국방송> 건물이 될 전망이다.


(*위 내용은 2017년 11월 29일자에 씌여진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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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반갑습니다. 한겨레신문 이병학 기자입니다.